기양이라고 최근 읽은 책에서 알게 된 단어인데,재주있는 사람이 자기 재주를 표현하고 싶어 안달하는 마음, 참지 못할 정도의 심정적 간질거림이라고 표현하는 옛말이 있더라고요.전 재주가 있어서는 아니지만, 주접이 쌓임이 못배길 정도라 그 간질거림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뿌리고 갑니다.어거스트디하면, 정말 민윤기라는 사람의 속을 끄집어내서 까발린 앨범이라는 인상으로 제 마음에 박혀있어요. 방탄소년단을 무대영상으로 처음 접하고 반복해서 보다가, 여느 때와는 달리 멤버들 개개인에 대해 찾아보도록 저를 이끈 사람이 정국이라면. 방탄의 노래들을 들어볼까하던 생각을 진짜 실행하도록 만든, 그리고 그 가사들에 귀기울이게 만든 사람은 바로 윤기입니다. 저는 그 이전 어떤 가수의 팬를 자칭할 때에도, 전곡을 수록된 순서로 듣는 건 앨범 발매 직후 한 번뿐이었고, 그 앨범에서 마음에 드는 곡들 몇 곡을 뽑아 기존 목록에 추가해서 다른 곡들과 섞어서 듣고 다녔습니다.게다가 듣는 것보다는 읽는 것에 매우매우 익숙한 저에게, 노랫말들은 시각적인 매체가 함께 하지 않는 이상 귀에 잘 담기지 않고 흘러가버리는 것들이었어요. 가삿말들에 집중해서 듣는 곡들은 제 추억과 함께하던 곡들이거나 정서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킨, 정말 소수의 곡들뿐이었습니다. 어거스트디는 그런 제게 방탄소년단의 전 앨범을 인트로부터 아웃트로까지, 스킷하나까지도, 그 어떤 중복도, 지겨운 반복됨으로 느끼지 못하며 아무런 순서의 조정없이 전곡을 모두 귀담아 듣도록 이끈 계기였습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너무 재미있어서 온전히 가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에만 노래를 들을 정도였어요.
그러고 보면 방탄의 앨범들보다 멤버들의 믹스테입을 먼저 접한게 제게는 행운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과연 앨범들을 귀기울여 들었을까...그건 장담은 못하겠거든요.아무튼 윤기의 믹스테입을 처음에는 기대없이 접하게 되었어요. 듣고 난 후에는, 그 속에 담긴 거칠고 간결한 표현들, 드러내는 적나라함이 제게는 패기와 솔직함으로 와닿았습니다.
듣고 있으면 가사에 담아낸 상황이 자연스레 떠오르도록 메시지들이 진하게 음각으로 새긴 것처럼 담겨 있는 듯 합니다.
그 중 어떤 곡은 자꾸 듣게 되는 것 자체에 미안함을 느끼게도 합니다.
세련된 수사도 어떠한 뽐냄도 없이, 정제하거나 세공하지 않은 표현들을 정말 투박하게 툭툭 던져내는데, 스스로를 표현하는 데에만 온전히 집중했다는 것이 느껴지는 믹스테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들이 제게는 이후 듣게 된 방탄소년단 앨범들의 노랫말들이 진정 그들이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담은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어요.
방탄의 노래들을 듣기 전, 무대영상들을 몇십 번을 돌려보고, 멤버들 얼굴을 구분하게 되고, 화양연화와 윙즈에 대해 알게 되어서 밤잠을 줄여 유투브를 헤맬 때에도 전 제가 아미라고 생각하지 않았었습니다.
콘텐츠를 엮고 보이는 방식들, 거기에 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해석을 하도록 유도하는, 그 끌림에 끌려다닌 것이지 어떤 정서적인 맺음이 있진 않았어요.
제가 '나 아미구나' 라고 인정하도록 만든 데에 큰 지분을 보유하신 분이 저 어거스트디 선생님이십니다.
제 삶의 회로판에 방탄소년단이란 낯선 부품이 들어와, 이걸 낄까말까 고민하던 차에 납땜을 해야겠다며 인두를 들이미신 분이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거스트디 3주년 기념으로 오랜만에 장문의 주접을 한번 떨어봤습니다.
믹테 중 한 곡 추천하고 이 주접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새삼 너무 재밌게 느껴졌던 곡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