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읊은 시들을 모두 조합해서 훌륭한 시를 지었구먼. 밥이 다 식겠어. 일단 얼른 들고 이야기함세.”
상석에 앉아 있던 판사 대감이 말했다.
밥 먹는 동안에는 다들 아무런 말도 없었다.
나 역시 조용히 찬을 들었다. 조금 과하게 많았으나, 남긴 음식이 행랑채에 있을 하인들 용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처음 느꼈던 부담감을 덜어내고 다소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
민 선달은 우리 집에서와는 매우 딴판으로, 아주 점잖게 밥을 먹었다.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과 말투를 보일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마침내 술상, 차상, 밥상이 모두 물러갔다. 손님 접대의 3단계가 다 끝난 것이다. 나를 제외한 다른 모든 이들은 긴 담뱃대를 태웠다.
“그래서,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판서 대감이 내게 물었다.
“재희는 그 동안, 엄청난 수련을 하여 무(武)의 극의(極意)를 터득했습니다.”
내가 말했다.
“이제 무과에 급제하여, 스스로의 뜻을 펼치려 하는데, 실력 외(外; 바깥)적인 것이 작용하려 듭니다. 돌아가신 홍 판서 대감과 정회(情懷; 생각하는 마음)이 있으시다면, 부디 실력 없는 자가 가문의 이름으로 재희가 차지해야 할 홍패(紅牌; 과거 급제 합격증)를 빼앗는 일이 없도록,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 의금부를 책임지는 종1품, 오늘날의 경찰청장) 대감께서 이번 부정 건을 조사하여 막아 주십시오.”
마치 예상했던 말이 나온 것처럼, 대답도 즉각 나왔다.
“무과(武科)는 병조판서(兵曹判書; 오늘날의 국방부장관) 관할 아래에 있네. 그 병조판서가 영은부원군(永恩府院君; 왕의 장인)의 청탁을 받고 그리한 것이 사실이라면, 내 주상 전하께 한 번 상주해 보겠네. 그렇지만 너무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겠네. 요즈음 세도정치(勢道政治; 특정한 가문이 권력을 잡고 휘두르는 일)는 극에 달해서, 조정에서 안동 김 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진행되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네.”
그러더니, 판서 대감은 성남이를 지그시 응시했다.
“허나, 방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닐세.”
“그것이 무엇입니까?”
“녹명(錄名; 과거 시험 볼 때 제출하는 응시원서)을 고치게. 다음 시험으로 복시(覆試; 2차 필기고사)와 전시(殿試; 3차 면접)가 남았지? 전시는 주상 전하께서 친히(직접) 복시(覆試)에 합격한 문, 무과 급제자들을 모아 놓고 문제를 내신다네. 그 어떤 부정도 개입할 수 없네. 그러니 자네는 복시(覆試)만 무사히 통과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복시에 제출하는 녹명에서, 자네 이름을 조금 바꾸세. 복시는 답안지를 제출하는 것이므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네. 자네가 말에서 떨어뜨렸다는 그 안동 김 가 도령이 눈에 불을 켜고 자네를 찾아도, 녹명이 일치하지 않으니, 과거 급제 전까지는 찾아내기 어려울 걸세.”
성남이가 벌떡 일어섰다.
“감히 그럴 수는 없습니다! 4대조 이래로...”
판사 대감이 차분하게 말을 받았다.
“자네의 4대조는 나의 종조부(從祖父; 할아버지의 형제)이시기도 하네. 작금(昨今; 요즈음)의 세도정치를 처음으로 시작하신 걸물(傑物; 훌륭한 인물)이시지. 우습게도, 안동 김씨들이 이리 위세를 떨게 된 데에는, 종조부께서 먼저 모범을 보이신 영향도 있음이야. 조상의 인과(因果)를 자네가 받는 것이지.
아무튼, 종조부께서는 한때 모든 것을 뜻대로 할 수 있으시었네. 하지만, 말년에 정조 전하의 노여움을 사, 멀리 유배 당하셨다네. 자손을 남기기는 하시었으나, 멸문지화(滅門之禍; 가문이 망하는 재앙)를 당할까 염려한 조부(祖父; 할아버지)께서, 종조부의 하나 뿐인 아들을 남양 홍씨 성을 지닌 다른 친지에게 양자(養子)로 보내시었어. 그러므로 자네가 녹명에 기록한 4대조는 친생(親生; 친자식) 족보일세. 그것 말고, 자네 조부께서 양자로 들어간 집안 족보를 쓰면 되네. 녹명에 기재하는 본인 이름 역시 자(字)나 호(號)를 쓰면 되지.”
“그런 묘안이 있으셨군요! 역시 판사 대감께서는 비상(非常; 님 천재임)하십니다!”
성남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민 선달이 선수를 쳤다.
“그렇다면, 무과에 장원급제하였는데도, 여태 아무런 보직(補職; 벼슬자리)도 받지 못한 저는 대체 어찌해야 하는지, 고견(高見; 높으신 분의 생각)을 들려주시지 않겠습니까,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 대감?”
흡사 보이지 않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것 같았다. 마침내 민 선달이 비와 바람을 맞으며, 노숙까지 불사하면서도 이곳에 온 목적을 꺼내 놓은 것이다.
“허! 허! 허! 거참, 사람 호탕하고 시원~ 시원해서 좋네. 원하는 걸 빙 에둘러 꼬지 않고 바로 말하니 얼마나 좋은가?”
귤산이 자칫 어색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수습해(收拾;쉴드를 쳐) 주었다.
“무과 정시(庭試; 시험에 소요되는 시일과 비용을 줄이고, 지방 유생들이 오랫동안 서울에 체류하는 부담을 줄인다는 것이 명분으로, 하루 안으로 결과가 나오는 시험)가 해마다 열리고, 식년시(式年試; 3년 간격으로 보는, 수능 정시모집 같은 정기 시험), 알성시(謁聖試; 국왕이 성균관을 방문하여 성인을 뵙고 치르는 시험)에 증광시(增廣試)까지. 합격자가 넘쳐나니, 설사 민 선달처럼 장원 급제를 했다고 해도, 자리 나기가 쉽지 않지.”
판사(判事; 판의금부사의 약자) 대감이 일반론을 펼쳤다.
"예. 소관 (과거 급제자 스스로를 낮춤) 역시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장원 급제할 정도로 소관의 능력이 뛰어난데, 그 뛰어난 능력을 써서 위로는 주상 전하를 섬기고, 아래로는 도탄에 처한 백성을 왜놈이나 양이 (서양오랑캐)로부터 지켜내지 못하고, 이토록 술이나 퍼 마시고 있는 것이 참으로 한에 사무칩니다."
민 선달이 비장하게 말했다. 궁상에 찌든 모습만 보다가, 의외의 면을 본 것 같았다.
“벼슬길에 나아가, 종묘(宗廟; 역대 왕의 무덤)와 사직(社稷; 토지신과 곡식신)을 위하시는 주상 전하의 업무를 어떤 식으로든 보필할 수만 있다면, 소관(小官) 설사 그것이 말을 돌보는 가장 천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기쁘게 수행할 것입니다.”
“그래, 자네의 입장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야.”
판사 대감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비록 무과 시험이 병조(兵曹; 군사, 국방 담당) 관할이라 하나, 녹명소(錄名所)에 기재된 녹명 정도야 내가 바꾸어 줄 수 있네. 큰일도 아니고 그 정도야. 사조단자(四祖單子;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외할아버지, 이렇게 조상 4명의 관직을 기록한 문서)에 기록한 성명, 본관, 사는 곳, 4대조 이내의 관직을 바꾸면, 자네가 무과 전시에 응시하더라도, 급제하기 전까지는 자네라는 것을 식별하기 곤란하지 않겠나. 그리고 보단자(保單子; 신원보증서)는 내가 써 주겠네. 6품 이상의 관료가 써야 하는 데, 마침 내가 종1품이니 적임 아니겠나.”
성남이가 대꾸했다.
“제 보단자(保單子)는 여기 자리한 아씨의 아버님께서 써 주셨습니다.”
판사 대감이 바로 말을 받았다.
“그러니 내가 쓴 보단자와 교체하면, 병법을 답안지에 서술하는 복시에서, 아무도 자네를 일부러 떨어뜨릴 생각을 하지 못할 거야. 자네는 공정한 기회를 원한다고 하지 않았나?”
성남이가 되물었다.
“어찌하여 이렇게까지 해 주려고 하십니까?”
판사 대감이 얼핏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남인가? 자네 아버지 제사를, 내 아들 일순(一純)이가 사후 양자(死後養子; 죽은 뒤 대를 잇기 위해 양아들로 입적)로서 매년 드리고 있다네. 비록 자네가 서자라고 해도, 나는 자네 아버지와 형제 뻘 아닌가.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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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온 성남이와 나는 몇 시간 동안 토론을 벌였다. 그러나 달리 뾰족한 대응방법이 없었다. 적어도 병조판서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했다. 결국, 처음 보는 성남이 삼촌 뻘 되는 판사 대감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판사 대감은 약속대로 보단자(保單子; 신분 보증 문서)를 써 주었다.
그리고 민 선달은 자신이 한 말을 극심하게 후회하게 되었다.
사복시(司僕寺; 궁중의 말 담당 부서)의 가장 말단으로 근무하게 된 것이다. 예전에 아버지를 영주에서 한양까지 데려온 마부를 쫓아내고 그 자리에 앉았던 종9품직은 또다시 민 선달에게 쫓겨났다. 비싼 뇌물을 많이 먹여서 관직을 얻었는데, 아직 본전(本錢; 뇌물 바친 원가)도 못 찾았다며 격하게 억울해 했다. 그러나 그가 ‘본전’을 찾는다며 말의 여물을 횡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무도 그의 호소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바쳤던 애첩 역시 다른 사내와 도망갔다는 소문을, 우리 집 아낙네들로부터 전해 들었다.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말라 죽어가던 말들은, 민 선달의 보살핌 아래 다시 살이 찌기 시작했다고도 들었다.
추운 겨울이 되었다.
아버지의 상태는 더 나빠지지도, 더 좋아지지도 않았다.
어머니는 밤이나 낮이나 아버지께 붙어 지극정성으로 수발을 들었고, 어멈은 어머니께서 내 놓으신 아버지의 기저귀 같은 빨래를 해 왔다. 너무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피차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없었다.
감고당이 워낙 큰 집이라, 관리하려면 손이 많이 갔다. 나 역시 어머니를 대신해서 눈 코 뜰 새 없이 움직였다. 아버지를 따라온 전직 도적, 아니, 새로 생긴 하인들은 감시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정말 헌신적으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