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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싸움
게시물ID : freeboard_18511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규연이
추천 : 1
조회수 : 17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8/08 20:5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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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나는 어렸을때 부터 조용하고 말수없는 아이라는 얘기를 참 많이 들었다.
그건 31세가 된 지금도 듣고 있는 얘기다.

내가 조용하고 말수가 없는게 아니라
나는 괜한말로 사람과 사람으로 괜한 감정싸움을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의 부모님은 나를 40세때 낳으셨다.
첫째딸이었고
귀하게 얻었지만 딸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사랑받지 못했다.
3년후 태어난 더 귀한 아들인 남동생이 태어난 후 더 그랬다.
정말 어렸을때엔 그게 차별인지 모르고컸던것 같다.
막연히 아 엄마는 동생이니까 조금 더 챙겨주는구나 그랬었다.
하지만 사춘기가 남들보다 조금 더 빨랐던 나는 야속하게도 그게 차별이란걸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알아버렸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를 넘어갈때
진로상담을 해야 할때
다른 친구들은 부모님이 오셨었지만
나는 나혼자 교무실에 덩그러니 앉아서 선생님과 독대로 나의 진로를 정했었는데
그때가 내가 생각했을때 제일 굴욕적이고 서러웠던 순간이었다.
인문계를 추천하는 선생님에게 당돌하게 저희 부모님이 돈이 많이 드는 인문계보다는
장학금이 나오는 실업계를 가라고 했어요 라고 
당당하게 말할때
그때 선생님은 내 표정을 보고 뭐라고 생각했을까?

결과적으로 실업계를 선택한건 잘한일이었다.
물론 원했던건 아니었지만
좀 더 내가 하고싶었던 일을 할수있었다.

부모님은 나에게 쓸떼없이도 예술재능을 주셨다.
한편으로 우리집에서 유일하게 손재주와 그림을 그릴수 있는 재능이있는 나는
어려서 부터 당했던(??) 뭔가를 표출하기 위한 탈출구로 그림이였던것 같다.

하지만 정말 쓸떼없게도 그건 대학을 정할때 걸림돌이 되었었다.
대학을 너무 가고싶었다.
친구들이 다가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너무 가고싶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부모님에게 "나 대학을 너무가고싶어"라고 말했었다.
너무 자연스럽게 거절이었다.
그때 엄마가 한말이 "동생이 아직 있으니까 차라리 취업해서 동생 뒷바라지나해 여자는 그냥 고등학교까지만 나오면 돼"
였다.
참고로 요즘 시대에 무슨 저리 고리타분한 생각을 가진 부모가 있냐고 하겠지만
나의 부모님은 70대이시고
나는 늦둥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대학에 갔다.
원했던 대학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긴갔다.
집에서 최대한 멀리떨어지려했지만
결과적으론 통학버스가 오는 울산에서 부산까지였다.
그렇게 대학생활 내내 나는 아르바이트와 정해진 시간이 있는 통학버스를 타고 버텼다.
아르바이트때문에 대학교의 꽃인 축제를 한번도 즐긴적이 없고
놀때가 유독 많은 부산 시내를 대학생활 내내 가본적이 없다.

그렇게 대학생활을 마무리하고
나는 몇년간 직장생활을 했다.
잘난것 하나 없었기에 정말 거지같은 직장에 들어가서
거지같은 생활을 했다. 그렇게 하고싶었던 그림을 그릴순 없었다.
위에서 말했다 싶이 정말 쓸떼없는 재능이었고
그나마 그림그리면서 터득한 기술을 적목시킨 일을 힘들게 일했었다.
월급중 생활비와 통신비 그리고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 등 나는 내생활없이 그렇게 직장에 찌들어갔고
스트레스로 인한 탈모와 직업병인 손목 염좌를 얻은채 몇년을 그렇게 적응해갔다. 
적응....보다는 뭐...버텼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삶에
활력소를 얻고싶었다
그래서 연애도 했다.
처음으로 사랑받는 기분을 즐겼다.
사랑한다고 말해주었고
나도 그를 사랑했다.
 
내나이 26살 그와 결혼을 했다.
빨리 집에서 벗어나고싶었던 같다. 아니 그랬다.
예상외로 결혼은 흔쾌히 하라고 했다.

결혼은 나에게 안식을 줬고
편안했다.
남편은 좋은사람이다.
결혼생활동안에도 (현재진행형)
남편은 부모님이 나와 남동생을 차별하는것을 적지 않게 겪는중이다.
한번씩 보는 시어머니조차 "좀 심하시네" 할정도로
그 덕분인지 시어머니는 나를 안쓰러워하신다.

내나이 31세

결혼후 아기가 6년만에 생겼다.
현재 글을 쓰는 시점으로 아이를 낳은지 9일째

출산후 
부모님이 찾아왔다
오후 늦게
출산은 새벽에 했는데
해가 뜨고 질때쯔음
전화는 물론 남편이 새벽에 했지만
그리고 부모님은 나에게 아들을 낳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더 딸을 원했던것 같다고.
누워있는 딸의 손을 잡고 시어머니에게 우리 엄마는 이런말을 했다.
"얘랑 저는 딸자식 엄만데도 정이 없어요."
네...알아요

나는 딸이다.
대한민국에 태어났고,
앞으로도 이 땅에서 9일전에 태어난 나의 아들을 키우면서 살아야 한다.
나는 차별을 당했다.
남녀차별이었다.
남아선호사상의 당사자였다.
솔직히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예전엔 원망했던 마음이 솔직히 커지면 커졌지 작아지진 않을것 같지만.
아이를 이제 키워야 하니
나는 내 자식은 그리키우지 않겠다
백번 천번...다짐하고 또 다짐하고있다.

부모님과 나는 31년동안
감정싸움을 무지막지 하게 하고있다.
특히 같은 여자인 나의 엄마와
엄마는 딸인 나를 낳고 시집살이를 했다고 했다.
내가 의도 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꽤 심했다고했다.
그래서 날 미워하는걸수도 있고
한편으로 나와 엄마는 놀랍다고 비슷한 성격이라서 그런걸수도 있다.
자기 표현은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바라고 또 바란다 알아주기를
서로 그러다 보니
심각한 감정싸움이 될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 고리타분하고 질질끌려가는 케케묵은 감정싸움을 언제 까지 해야 할까?

엄마..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말좀 해줄래?

오늘 나는 그렇게 물었다

그러고 돌아온건

"그럼 난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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