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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판타지]민족혼의 블랙홀 제20화 딸아이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
게시물ID : readers_3402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HK.sy.HE
추천 : 1
조회수 : 33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8/04 01: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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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혼의 블랙홀





제20화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





“내 사위가 되게.”


병조판서의 눈이 빛났다.


“내 딸과 결혼해서, 내 사람이 되게. 내 숙부에 맞서, 자네를 있는 힘껏 밀어줌세. 앞으로 있을 복시(覆試; 과거 2차 시험), 전시(殿試; 과거 3차 시험)도 저~언혀 걱정할 필요 없네.”


그 때 문이 열렸다. 차(茶)상이 나왔다. 어머니께 배워서, 찻잎을 내가 직접 덖은 것이었다. 잠시의 공백을 틈타, 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차를 한 잔 마신 병조판서는 품속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펼쳤다. 성숙한 여인의 형상이 드러났다. 또렷한 눈매에 붉은 입술이 강조되어, 멀리서도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보게, 내 딸이네. 참으로 아리땁지 아니한가. 자네가 허락하노라고 한 마디만 한다면, 우리는 일가(一家; 한 집안)가 되어 뜻을 함께 할 수 있네.”


등 뒤에서 나를 욕한 마을 아이들에게 맞서,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어, 피를 흘리며 싸우고 난 뒤, 내게 와서 옥가락지를 내밀던 성남이. 도적 떼에 맞서 용감하게 싸워 준 성남이. 장터에서 찹쌀떡을 내밀며, 나 외에는 아무도 업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던 성남이. 아버지께서 쓰러지시고 손님 발길이 뚝 끊긴 격조한 우리 집. 아직도 어머니와 내 곁에 있어 주는 성남이. 병조판서는 지금 성남이를 내게서 데려가려 하고 있었다. 나는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대화 광경을 훔쳐보았다.


“아까 말했다시피, 이 조정(朝廷; 임금이 정치하는 곳)은 내 숙부의 손아귀에 있네. 나는 장차 숙부의 세력권에서 벗어나, 주상 전하를 업신여기고 해치는 무리들에게서 온전히 자유롭게 해 드릴 작정이네. 지금 이 조정은 너무 썩었어. 나는 숙부의 영향력을 깨뜨리고, 내 뜻을 펴기 위해 작금의 어지러운 사태를 정리할 힘이 필요하네... 그러던 차에, 마침 자네를 보았단 말이네. 자네의 활 솜씨, 말 타는 솜씨, 편곤 휘두르는 솜씨는 조자룡이 울고 갈 정도이네. 자네 같이 든든한 인재가 내 곁에서 무력을 보태어 준다면, 숙부가 아닌 바로 나, 영초(穎樵)가 안동 김 씨를 이끌 수장(戍將; 실질적 리더)이 될 수 있을 걸세. 내 곁에서 자네가 꿈꾸는 세상을 함께 만드세. 내 사촌을 다치게 한 죄 같은 것은 내가 책임지고 나서서 없애 주겠네.”


섬뜩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나는 성남이가 과연 무엇이라고 대답할지 전전긍긍(戰戰兢兢; 벌벌 떨며 겁냄)했다. 긴 말을 요약하면 이랬다.


“내 사위가 되지 않으면 임금의 처남을 다치게 한 죄로 처벌받을 것이다.”


성남이가 대답했다.


“우선, 제 부족한 무예를 높이 평가하여 주신 점, 깊이 감사드립니다. 허나, 판서 대감의 말씀을 듣고 있사오니, 소생(小生; 자신을 낮추는 말)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병조판서가 질문을 허락했다.

“무엇이든 묻게. 내 딸과 혼인하라는 말이 대체 무엇이 어려운가? 혹, 여기 그려진 미색(美色; 외모)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실제로 얼굴을 보면 그 자태(姿態; 고운 몸가짐)가 이 그림보다도 훨씬 빼어나다네.”


성남이의 목소리에서 당황이 묻어나왔다.

“그런 것과는 하등 관계가 없습니다.

판서 대감께서는 조정이 썩었기 때문에 뜻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대감께서 직접 주재하시는 과거 시험에서의 부정(不正)을 용인(容忍; 허락하여 방치)하셨습니다. 이것은 불의(不義)가 아닙니까?”


이 문제에 대해 꽤 오래 고민해 온 듯, 병조판서가 막힘없이 말했다. 말소리가 떨렸다.

“때로는 큰 의(義)를 위해 작은 의(義)를 희생할 필요도 있는 것이지. 지금은 내 힘이 없어서, 숙부 밑에 납작 엎드려 불의한 일을 방조(傍助; 도움)하고, 그 대가로 던져주는 관직이나 받아먹고 있으나, 내 언젠가 힘을 길러서, 작금의 더러운 것들을 싸~악 갈아엎을 것이야. 중국 한나라 고조(高祖) 유방이 초한(楚漢)전쟁을 끝내고 대륙을 통일하는 데는, 한신(韓信)의 공이 가장 컸지. 그런데 한신 역시, 힘이 없던 젊은 시절에 무뢰배들의 바짓가랑이 사이를 지나가던 수치를 당하고도 태연하지 않았나? 대의(大儀)를 위해서라면, 소의(小義)를 희생시키는 것은 불가피(不可避; 피할 수 없는 현실)한 것이네. 그러니 내가 지금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은, 미래를 위한 희생(犧牲)이고, 포석(布石; 바둑돌)의 일부일 뿐이네.”


성남이가 반박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실제로는 왕조 개창(開創; 시작) 이래 유구히 이어져 내려온 과거 시험의 공정성을 훼손하고 계십니다. 이것이야말로 대(大)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오히려 판서 대감께서 안동 김씨의 수장이 되고자 하신다는 뜻은 가문을 위한 것이므로 소(小)가 아닙니까. 한신이 당한 수치는 개인적인 것이었으나, 오늘 과거시험장에서 무인(武人)들이 겪은 수모는 공(公)적인 것으로서, 그 크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전국에서 몰려든 수 만 명의 원망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십니까.”


병조판서가 당당하게 말하였다.

“어차피 그들은 모두 남이 아닌가. 과거 시험에 합격시켜 주지 못할 것이 두려워, 상소문 하나도 제대로 못 써 내는 겁쟁이들이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 몸뚱이와 머리카락, 손발과 피부는 부모님께 물려받았으니 함부로 손상시키지 말라)가 효도하는 첫 걸음이요, 입신행도 양명어후세 이현부모(立身行道揚名於後世以顯父母; 입신양명하여 부모의 이름을 드높이는 것)가 효도의 마침표라.’고 하셨네. 또한 맹자(孟子)께서도 모든 사람을 겸애(兼愛; 평등하게 사랑)하라는 묵자(墨子)의 말을 비판하시며, 우선 효도를 한 후에, 그 효심으로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잘해주라지 않는가. 나는 어릴 적부터 배운 바에 따라, 공자의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노력한 것뿐이네. 일단 벼슬길에 올라야 입신양명하고, 입신양명해야만 부모의 이름을 높여 효도를 마칠 수 있지 않겠는가. 게다가 사촌 한 명 더 무과에 합격시켜 준다고 해서, 그 한량들을 합격시키지 못할 것도 없음이야. 그 정도 대가를 치러서 내 집안을 일으키고, 뜻을 펼쳐 백성을 구제할 수만 있다면야 못할 것도 없지.”


그 때, 밥상이 나왔다.

종4품 사도시(司䆃寺; 쌀 관리 부서) 첨정(僉正; 실무자)의 녹봉이란 뻔한 것이어서, 야밤에 갑작스레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밥, 국, 찌개에 나물 몇 가지와 김치가 다였다. 고기는 없었다.

그러나 병조판서는 말을 멈추더니, 밥상에 놓인 음식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반면, 성남이는 한 술도 뜨지 않았다. 밥을 먹는 도중에는 말을 하면 안 된다는 예절에 따라, 잠시 방 안에 침묵이 흘렀다.


밥을 다 먹은 병조판서는 아까 소년이 미처 내어가지 못한 술상에서 술을 한 잔 더 따라서 마신 뒤, 만족스레 배를 두드렸다.


그러더니, 술기운이 약간 도는 듯한 붉은 얼굴로 목소리를 낮추어 성남이에게 은밀하게 속삭였다.

“그렇지만 자네만은 달라. 실은 말일세. 내 딸이 오늘 쓰개치마를 하고, 여종에게 업혀서, 무과의 꽃이라는 기사(騎射; 말 타고 활쏘기)를 구경하러 왔다네. 오늘 자네의 재능이, 마치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았나. 내 딸이 자네를 보고 먼발치에서 첫눈에 반했다고 하지 무언가. 꼭 그대와 맺어지고 싶다고 울면서 하소연을 하는데,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내 마음이 동하여 여기까지 변복을 하고 행차할 수밖에 없었네. 자네도 자식을 낳아보면 알겠지만, 딸아이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은 부모라면 다 똑같다네.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이루어 주고 싶지. 그게 설령 숙부에게 거역하는 것이더라도.”


식후에 이야기 주제가 급격히 바뀌었다.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에 어리둥절해 하며, 성남이가 물었다.

"비록 엄친의 집안이 4대에 걸쳐 대대로 관직에 나아갔다고는 하나, 기본적으로 저는 서출 (첩의 소생)입니다. 어찌하여 저를 사위로 삼으려 하시는 것입니까."



명쾌하게 자기만의 논리를 풀어 가던 병조판서가 처음으로, 잠시 주춤했다. 그러나 곧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초상화를 보여줄 때부터 눈치채지 않았나. 양반 댁 부녀자들은 함부로 초상화를 그리지 않네. 즉, 이 아이는 내가 이팔 청춘, 한창 피가 끓던 젊은 시절에 얻은 서녀 (첩의 자식)라네. 족보에도 이름이 오르지 못할 계집아이인데다, 어미의 신분도 정실이 아니지. 하지만 부모 마음이 어디 그런가. 내 딸만큼은, 내 딸이 늙은 고관대작의 첩이 되어 뒷방에서 시들어 가는 꼴만은 정녕 보기 싫다네. 더구나 딸아이의 모친은, 나에게 있어서는 첫사랑일세. 비록 양친(兩親; 부모님)의 강권에 못 이겨 정실(正室; 본부인)을 따로 두기는 하였으나, 내가 진실로 아끼는 여인은 이 그림 속 딸아이의 모친 하나뿐이네. 심지어 내 부모와 거래를 하여, 딸아이의 모친을 측실(첩)로 두는 대가로 소과에 합격하기까지 했다네. 그런만큼 이 아이는 비록 서녀이나, 내게는 몹시 각별하네. 자네 정도라면 내 딸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무엇보다 내 딸이 원하지 않는가. 이 아이와 혼인하여, 정실로만 삼아 준다면, 자네의 출세길을 평생 밀어주겠네."

병조판서가 애원조로 말했다.



"저를 높이 보아주신 것은 고마운 일이나, 불가합니다."



성남이가 말했다.



"저는 마음에 둔 사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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