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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오너라~!”
집 바깥에서, 누군가 부르고 있었다. 집사(執事)가 맞이하러 나가더니, 황망(慌忙; 어리둥절)한 기색으로 방문 앞에서 고하였다.
“이번에 무과 초시에 응시한, 홍씨 성을 지닌 도련님을 찾으시옵니다.”
급한 나머지 호칭마저도 꼬였다.
“뉘신가?”
내가 물었다.
“그것이...... 안동 김 가(家)의 영초(穎樵)라고 하면 알아들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집사가 대답했다.
문 바깥에 아직도 있던 찬겸 부정자가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
“병조판서(兵曹判書; 정2품, 현재의 국방부장관) 대감 아닌가? 이 야심한 밤중에 사가(私家; 남의 집)에는 무슨 일이라 하시더냐?”
집사가 대답했다.
“아직 거기까지는 말씀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내가 말했다.
“성남아, 너를 찾는다지 않느냐. 나가서 객(客)을 맞이하고 오너라.”
성남이가 방문을 열고 나갔다.
집사에게 말했다.
“사랑채로 뫼시어라. 마땅히 이 집의 주인이 나가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 예(禮)이나, 지금 와병(臥病; 병들어 자리에 누움) 중이시고, 집안에는 아녀자 밖에 없어 손님맞이에 소홀함을 아뢰거라.”
아직 그 자리에 남아 있던 찬겸 부정자가 물었다.
“폐가 되지 아니한다면, 제가 대신 나가서 판서 대감을 영접하여도 되겠습니까?”
내가 대답했다.
“그리 하지 마십시오. 병조판서 대감께서 이 시간에 직접 걸음하실 정도라면 가벼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더구나 야심한 밤중에 찾아오셨다는 것은, 남에게 이 일을 알리고 싶지 않으시다는 의중입니다.”
찬겸 부정자가 말했다.
“예. 그러하다면 소관은 이만 행랑(行廊; 식객이 기거하는 방)으로 물러가 보겠습니다.”
“그리하시지요.”
찬겸 부정자가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일어났다.
얼굴은 보일 수 없었으나, 어찌 되었든 손님 대접을 해야 했다.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의 병수발을 들고 있으신 나머지 움직임이 제한되었다. 대소변 가리기, 끼니 때 죽 떠먹이기 등을 남에게 맡기지 아니하시고, 어머니 스스로 도맡아하셨던 까닭이다.
부엌에 들어가 간단한 손님맞이 상을 차렸다. 두루미처럼 목이 길쭉한 하이얀 백자 병에 집에서 담근 술을 따르고, 잔 두 개를 각각 소반(小盤; 작은 상)에 올렸다. 장독대에 담가 둔 김치를 꺼내, 제사 지내려고 찧어 둔 떡과 함께 간단한 주안상을 차렸다. 옆에서 떡대 아저씨 아낙이 도운 덕분에 금방 손님상을 내어 갈 수 있었다.
한양까지 소를 몰고 걸어와 나를 태워 준, 꺽다리 아저씨의 아들에게 사랑채로 상을 내어 가도록 하고, 찻상과 밥상을 차례로 준비하기 위해 등을 돌렸다. 그 때, 떡대 아저씨 아낙이 내 귀에 속삭였다.
“워메, 아씨, 찻상과 밥상은 쇤네들이 차릴랑께요. 사랑채에서 뭔 말씀이 오가는지 들어 보심이 우짜겠소?”
상황이 상황이었다. 어린 나는 금세 호기심의 유혹에 넘어갔다.
“그리하자꾸나!”
몇 번이나 말했지만, 감고당(感古堂)은 6대조 민유중 대감의 따님이신 인현왕후께서, 한때 중전마마 자리를 희빈 장 씨에게 빼앗기셨던 동안 머물던 곳이다. 다분히 정치적인 설계가 곳곳에 들어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손님맞이용 사랑채 곁방이다. 사랑채에서 손님을 맞는 사랑방은 크고 넓어서 고색창연(古色蒼然; 오래되어 낡았지만 멋져 보임)한 위용을 선보였다. 그 바로 옆에, 작은 방문이 하나 있었다. 형식상 별개의 방이었으나, 실질적으로 손님맞이용 방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그 벽도 구멍 난 나무판 하나였다. 어떻게 장치를 했는지, 작은 방에 들어가면, 손님맞이용 방에서 나누는 모든 대화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더구나 벽에 난 구멍으로, 반대쪽에서 들키지 않게 엿볼 수도 있었다. 물론 반대쪽에는 가구가 장식용 화병과 함께 위치해 있어,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소년에게 상을 들이라 한 뒤, 나는 곧바로 손님맞이 방 옆방에 들어가 안쪽을 엿보았다.
초시 시작할 적에 연설을 했던 병조판서 대감이 변복(變服; 변장)을 하고 앉아 있었다. 변복을 하고 나니, 그저 서른 중반의 평범한 아저씨로 보였다. 붕어처럼 툭 튀어나온 눈이 길게 기른 수염과 어우러져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곰방대 든 양반 같은 인상을 만들어냈다.
판서 대감이 말했다.
“술 한 잔 받게나.”
마치 자신의 집에 온 것처럼 여유롭게, 잔에 술을 따랐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무슨 일로 이리 납시었습니까?”
성남이가 물었다.
병조판서 대감은 받지 아니한 잔을 자신이 들이키고는 말을 이었다.
“자네의 녹명(錄名; 응시서류)을 읽었네. 돌아가신 홍 판서의 자제라지? 위로는 정조 전하의 오른 날개(右翼)라 불리셨던 홍국영 대리청정 도승지(代理垂政都承旨; 대통령 비서실장 – 세도정치란 단어 자체가 홍국영에게서 나왔다)께서 증조부 되시고?”
“예, 그렇습니다만.”
성남이의 목소리가 불퉁했다. 아닌 밤중에 불러내서 대뜸 집안을 거론하는 것이 하 수상했으리라.
“내가 아직 소과 급제를 위해, 한창 공부하던 시절의 일이었지. 홍 판서의 일은 매우 유감으로 생각하네.”
“야음(夜陰; 밤의 어둠)에 갑자기 강림하셔서, 문득 돌아가신 엄친(嚴親; 자기 아버지)의 일을 말씀하시는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성남이의 목소리에 짜증이 어렸다. 내가 있는 장소에서는 뒤통수만 보여서,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슬픈 일이지. 올라갈 수 있는 관직의 수는 제한되어 있는데, 입신양명하고자 하는 사람 수는 날로 늘어가고, 결국 이전투구(泥田鬪狗; 자기들끼리 물고 뜯고 싸움)를 벌이다 대대적인 숙청(肅淸; 조직 내 반대파를 없앰)을 벌이는 것이 태조 이래 조선의 작태(作態; 의도적으로 벌이는 일)인 것이지.”
“......”
마치 성남이의 부친(父親)이 정계에서 숙청당한 것이 안동 김 씨의 영향이 아니었던 것처럼, 태도가 여상(如常; 말투가 평범)하였다.
“자네, 초시에서 내 눈여겨 보았네. 신언서판(身言書判; 외모, 말씨, 문필, 판단력)이 훌륭해 보였네. 활솜씨, 말타기, 편곤, 조총, 모두 정말 훌륭했어. 반면, 되도 않는 무기를 갖고 자네에게 덤빈 그놈은...... 휴...... 내 자네에게 먼저 사과부터 하지.”
병조판서 대감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사실 그 놈은, 부끄럽게도, 중전마마의 친동생일세. 어떻게든 문과에 급제시켜보려고, 집안에서 모든 수단을 다 썼네만, 머리가 안 돼. 머리가!”
병조판서는 자신의 머리를 가리켜 보였다.
“나처럼 학문이 짧은 사람도, 스물 아홉에 소과(小科; 과거 문과 1차 시험)에 급제하여 진사(進士) 소리를 들을 수 있었건만, 그놈은 처음부터 공부 체질이 아니었어.”
“그래서 편전(片箭; 애기살) 시험에서, 쏘지도 않은 화살에 가산점을 주고, 상대편 응시자가 죽거나 다칠 수도 있는 철퇴(鐵槌; 플레일)를 허용하셨다는 말씀입니까?”
성남이의 말투가 비딱하게 나왔다. 어지간히 한(恨)이 맺혔나 보다.
“미안하네. 어쩔 수가 없었네. 아마도 이 일은 내 병조판서 경력 최대의 오점(汚點; 더러운 일)으로 남을 것이야. 그렇지만 청탁을 들어주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네. 무려 주상전하의 처남이지 않은가. 누이는 중전마마로 간택되어, 국모(國母; 임금의 아내)로서 내명부(內命婦; 궁중의 여자들을 총괄하는 부서)의 일을 맡아 보고 있는데, 안동 김 씨 집안의 대를 이을 동생이 아무런 관직이 없어서야, 도저히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지.”
"주상 전하의 처남이든 아니든, 심지어 주상 전하 당신께서 직접 무과에 응시하신다고 하더라도, 이리 하여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전국에서 몰려온 수 만 명의 한량(무과응시자)들이 전부 이 광경을 보고 노하며 또한 슬퍼하였습니다. 평생 무예를 닦아, 관직에 나아가 뜻을 펴고자 하는 사나이들이 수두룩한데, 단지 주상 전하의 처남이라는 이유로......"
성남이가 말을 다 맺기도 전에, 병조판서가 말을 잘랐다.
“말에 밟혀 병신(病身; 몸을 못 쓰는 자)이 된 내 사촌의 일에 대해서는, 나 역시 심히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충분히 부끄러워 하고 있네. 나라의 기강이 이리 해이해서야 되겠는가. 다행히 자네가 나서서 내 사촌을 처리(?)해준 덕택에, 더 이상 무리하게 그 애를 무과 장원 급제 목록에 올리지 않아도 되게 생겼네.”
성남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기강이 해이해질 것을 알고 계시다면, 대감(大監; 정2품 이상 벼슬 호칭)께서는 처음부터, 어찌하여 이런 변칙(變則; 규정에서 벗어남)을 허용하셨습니까?”
병조판서는 술을 한 잔 들이키더니 내뱉었다. 딱히 성남이에게 말한다기보다, 자기 자신에게 변명하는 어조였다.
“휴...... 세상에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것보다, 그렇지 아니한 것이 훨씬 많다네. 자네는 내가 병조판서 대감으로 불리고 있다고 해서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지? 실상은 결코 그렇지 않네. 판서(判書) 대감으로 불리고, 족보에 당상관(堂上官; 국가 정책에 관여하는 고급 벼슬아치)으로 기록되어 만세토록 집안의 영광으로 남는 것은 모든 사내대장부의 꿈이 아닌가. 아마 이러한 꿈을 위해서는 제 처(妻)와 자식까지도 팔아먹을 자들이 비일비재(非一非再; 많음)할 걸세.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은 소인배일세 그려. 그 옛날 율곡 이이 선생은 방년 십 육 세부터 아홉 번이나 장원급제를 했다고 칭송받지 않나. 나는 스물아홉 살에 겨우 진사를 딴 필부(匹夫; 평범한 남자)일 뿐이네. 그러나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우국충정(憂國衷情;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만은 가득하여, 벼슬길에 나아가 위로는 임금을 섬기고, 아래로는 백성을 위하고자 하는 열의가 있다네. 그런데 마침 숙부(叔父; 작은 아버지)께서 국구(國舅; 임금의 장인)가 되셨고, 나는 평생 백수(白首; 머리가 허옇게 될 때까지 관직에 나아가지 못하는) 진사 노릇을 면하는 대가로, 아직 과거시험에 합격조차 하지 못한 숙부 아들의 편의를 봐 주기로 약조(約條)를 했어. 그나마 나는 사정이 나은 편이네. 다른 이들은 우리 숙부 댁 사랑채에 진을 치고 앉아, 날마다 소며 말이며 여인들, 그리고 땅 문서와 각종 금은보화를 바치지 못해 안달이네. 그렇게 해서 겨우 지방 수령 자리 하나 얻으면 팔자가 편 거야. 그 다음부터는 그 지역 백성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어, 그 세금으로 뇌물을 벌충하고, 벌충한 뇌물로 승진하면 되니까. 나는 같은 집안에다 촌수가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까진 하지 않아도 되었네. 덕분에 내가 현감으로 있을 적에는,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내 덕(德)을 기리는 성덕비를 세워 주었네.”
성남이의 목소리가 무거워 졌다.
“세도정치의 폐단(弊端; 해로운 점)을 판서 대감께서 직접 말씀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굳이 이름 없는 필부(匹夫)를 찾아 와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병조판서가 핵심을 찔렀다.
“자네, 집단 상소를 올리려고 준비하고 있지?”
“......”
“내, 이번 사달을 일으킨 원인 제공자로서, 인간적인 미안함에서 말하는데, 그만 두는 게 좋을 걸세. 상소를 올려 보았자 어차피 주상전하는 읽지도 않으실 테고, 곧바로 숙부께 전달될 것이야. 공연히 자네만 향후 과거 시험에서 불이익을 얻을 걸세.”
“그런......!”
“현재 주상 전하께서는 강화 도령이라 놀림을 받으며, 모든 일에 있어 사사건건 잔소리를 들어온 탓에, 두문불출(杜門不出; 집 밖으로 안 나가고 방콕)하고 주색(酒色; 술과 여자)에만 빠져 있으시네. 가까이에서 지켜본 내가 잘 알지. 설령 자네가 올리는 상소문을 읽으시더라도, 실질적으로 숙부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시네.”
주상 전하께서는 역적으로 몰려 강화도로 유배된 종친의 후예셨다. 덕분에 즉위하기 전에는 사대부로서의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셨다. 중전을 배출한 안동 김 씨 일족은 그 점을 이용하여 모든 일을 뜻대로 처리했다. 병조판서는 바로 그 점을 지적한 것이다.
“어떤가. 별 소용도 없는 상소문을 쓰고, 뛰어난 실력을 죽이며 일평생 백수로 사는 것보다는 더 나은 방법이 하나 있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내 사위가 되게.”
병조판서의 눈이 빛났다.
-20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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