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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두괴괴
귀신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이 얼마나 지독하고 나쁜지 당신들은 모를 것이다. 과학 문명이 발달하고 그것이 진리인 시대에 비웃음을 살 얘기지만, 경험하지 않고는 쉽게 말할 수 없다.
산업화가 꽃피울 무렵이었다. 열여덟이던 나는 알 수 없는 병에 걸렸다. 복잡한 생각만 하면 고막이 아파 기절했다. 병원에서는 마음의 병이니 한적한 곳에 가서 요양을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외갓집에 가고 싶었다.
엄마가 외삼촌에게 전화를 했다. 평소의 외삼촌이라면 반가워했을 텐데, 꺼리는 눈치였다. 동네에 귀신이 나타나서 뒤숭숭하다나?
“난 또… 무슨 일 있는 줄 알았네…. 조카 좀 부탁해, 오빠.”
시골집에 가면 마음껏 그림이나 그릴 생각이었다. 지긋지긋한 서울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고 싶었다.
외갓집으로 내려가는 길은 즐거웠다. 비가 내리기는 했지만, 운치 있고 좋았다. 김 기사도 마음이 편했는지, 음악은 듣지도 않던 사람이 조용필 노래를 틀었다. 창밖을 내다보며 한참을 흥얼거렸다. 그렇게 외갓집에 도착할 때쯤, 길가에 사람 하나가 보였다.
“아저씨… 저기… 저 사람….”
삼베옷을 입은 남자였다. 그리고… 바닥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 남자는 누워 있는 사람의 두 다리를 잡아 끌고 가는 중이었다. 몸이 바닥에 축 늘어진 사람의 생사는 알기 어려웠다. 김 기사는 그들 뒤에 차를 세우고, 안경을 고쳐 쓰며 내렸다. 삼베옷을 입은 남자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그는 화를 내며 알 것 없다고 했다. 누워 있는 사람은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나이가 꽤 많아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심하게 얻어맞았는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김 기사는 남자를 저지했다. 결국 몸싸움이 났다. 그런데 갑자기 누워 있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요란한 비명을 지르며 숲속으로 사라졌다. 남자는 김 기사에게 화를 냈다.
“지금 당신이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지 알어? 육시럴….”
남자는 고함을 지르며 누워 있던 사람을 쫓아갔다. 황당했다. 김 기사와 나는 한참 동안 눈으로 그들의 뒤를 쫓다가 차에 탔다. 외갓집에 도착하니, 외할머니와 외삼촌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숨통이 트였다.
김 기사를 보내고 방에 누웠다. 비가 더욱 거세게 내렸다. 천둥이 쳤다. 비가 내리면 운치가 있어 좋았는데, 어쩐지 으스스했다. 그때 방문이 벌컥 열렸다. 사색이 된 얼굴의 외할머니였다. 외할머니는 김 기사가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했다. 너무 놀라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김 기사가 근처 병원에 있다고 하니, 서둘러 가보자고 했다. 그때, 외삼촌이 비에 젖은 채로 들어와 막아섰다.
“지금 아무 데도 못 가요. 큰일이 나부렀당께. 임 선생이 말이여…, 고것을 놓쳤다고요. 어떤 써글 놈이 방해하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네. 지금 문 꼭 닫고 나가지 말라고 하던디…. 난리도 아니여.”
외삼촌은 집에 있는 문을 모두 잠그고, 툇마루 서랍에서 부적을 꺼내 문에 붙였다. 김 기사의 소식으로 넋이 반쯤 나간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외삼촌의 행동을 보고만 있었다. 외할머니는 어두운 얼굴로 입을 뗐다.
“몇 년 전부터 요상한 귀신 하나가 돌아당기고 있어. 사람 고기에 맛 들린 귀신이제…. 말이 귀신이지, 요괴인지 모르겄어. 옆 마을에서는 고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제. 얼마 전에 고것이 우리 마을로 온 것이여. 벌써 마을 사람 몇이 당했어….”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믿기지 않았다. 1980년대이긴 하지만, 과학이 있었고 논리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 역시도 순식간에 파괴될 수도 있다는 걸… 그날 알았다.
“김 기사 그 양반도 고것이 죽인 거 아니여? 그 신출귀몰한 것이….”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느꼈다. 외할머니와 외삼촌에게 삼베옷 입은 남자 이야기를 조심스레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둘은 한숨을 쉬었다. 김 기사와 실랑이를 벌인 사람은 마을에서 고용한 퇴마사 임 선생이었다. 우리가 귀신을 끌고 가던 임 선생을 방해한 것이다. 사람처럼 생겼는데 어떻게 귀신이라고 생각하겠나?
삼촌은 그것이 ‘두두괴괴’라고 했다. “두두괴괴… 두두괴괴…”거리며 나타나 사람을 홀려 잡아먹는다고 했다. 평범한 50대 남자처럼 보인다고도 했다. 새하얀 얼굴에 거대한 크기의 벗겨진 머리를 한 그는, 사람을 잡아먹어서인지 말을 할 때마다 피를 토하듯 한다고 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때문에 한동안 군인들만 보면 사람들이 겁먹었다고도….
“상우야, 고것이 말이다. 한 번 본 먹이는 놓치지 않어. 분명 고것이 너를 봤을 것이여…. 김 기사는 딱하지만 오늘은 나가지 말고 집에 있어라. 알겄냐?”
머리가 복잡했다. 정말 그 사람이 두두괴괴라는 귀신이라고? 갑자기 고막이 아파왔다.
방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김 기사 목소리였다. 반가운 마음에 창을 열었다.
“두두… 괴괴… 두두… 괴괴….”
눈과 귀를 의심했다. 군복을 입은 남자가 몸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분이라도 칠한 듯 새하얀 피부에 두꺼비 같은 얼굴이었다. 눈에는 황달이 심해 검은자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토록 기이한 것은 처음 봤다. 눈을 뗄 수 없었다. 그것이 순식간에 달려와 방 안으로 거대한 머리를 들이밀었다.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나를 보자, 조롱하듯 혀를 날름거렸다. 그럴 때마다 혀에서 피가 쏟아지는데 거북했다. 보란 듯이 안경을 들어 흔들었다. 김 기사의 것이었다.
“두두괴괴… 두두괴괴… 두두괴괴…”
그것이 방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나는 놀라 비명을 질렀다. 방 안으로 뛰어 들어온 외삼촌이 역정을 냈다.
“저것 땜시 문 잠그고 부적 붙이는 거 너도 봤자네…? 그 사이에 창을 여냐? 미쳐불것다.”
외삼촌은 잽싸게 나를 붙잡아 거실로 끌고 갔다. 귀신도 빠르게 쫓아왔다. 나 때문에 집에 있는 모두가 위험하게 됐다. 식구들은 할머니 방으로 피신했다. 두두괴괴가 요란하게 웃어대며 마구 문을 두드렸다.
“으흐흐흐흐 허허허허… 어서 문 열어. 그렇게 버틴다고 살 수 있는 거면, 기사 양반도 안 죽었지…. 두두괴괴…”
할머니 말대로 그것이 김 기사를 죽인 것이었다. 그것은 엄청난 괴력으로 순식간에 문을 박살냈다. 외삼촌은 어떻게든 나와 외할머니를 지키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외삼촌이 가소로웠는지 우스꽝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제 끝났다, 싶었다.
“우당탕탕!”
현관문 쪽에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위험을 감지한 임 선생이 마을 주민들과 집으로 들어왔다. 그들의 손에는 횃불과 농기구, 화염병이 들려 있었다. 두두괴괴는 그것을 보며 큰 소리로 비웃었다.
“흐흐흐흐… 먹이가 제 발로 찾아오네? 자네들 옆 마을 인간들이 왜 그렇게 많이 죽은 줄 알아? 흐흐흐흐… 나를 잡겠다고 무모한 짓을 했기 때문이야. 모른 척하고 눈에 띄지 않으면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계집아이 하나 구하겠다고 온 마을 인간들이 덤비는 통에…. 두두괴괴…”
두두괴괴는 날카로운 이빨과 징그러운 혀로 위협을 가하며, 순식간에 사람 몇을 들이박았다. 맞은 이들은 피를 토했다. 사람들은 그럴수록 더욱 끈질기게 그것에게 달려들었다. 임 선생이 목검으로 그것을 집 밖으로 몰았다. 그것이 밖으로 나가자, 마을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 화염병을 던졌다. 순식간에 귀신의 몸에 불이 붙었다.
“두두괴괴… 두두괴괴… 크아아아악!”
하지만 운명은 사람의 편이 아니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에 불이 금방 꺼졌다. 두두괴괴는 사람들을 노려봤다. 사람들도 더 이상 공격하지 못하고 그것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번개가 번쩍 하고 치는 순간, 그것이 어둠 속으로 도망쳤다.
“왜 나만 갖고 그래, 두두괴괴!”
나는 그것을 쫓아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서럽게 울었다. 가족과 소중한 이를 앗아간 그것을 쫓아냈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허무하고, 서럽고, 슬프고… 어떤 보상도 억울한 마음을 달래줄 수 없었다. 특히나 그것이 언제 또 나타날지 모르는 일이었다.
시간이 꽤 오래 지났다. 가난한 만화가가 되었다. 어쩌다 보니 집과도 연을 끊었다. 매일이 원고와의 씨름, 손이 많이 가는 작업과의 전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감을 하고 후련한 마음에 연희동에서 한잔 걸치고 집 앞 골목에 들어섰는데,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한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새하얀 피부, 벗겨진 큰 머리, 음흉한 미소…. 어릴 적에 봤던 귀신과 닮아 있었다. 순간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술이 깨는 것인지 오르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골프웨어를 입은 노인이었지만, 그것과 너무나 똑같았다. 가까이 다가가 그것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노인에게 몇 가지를 물었다. 저를 아십니까? 댁은 어디세요? 혹시 사람인가요? 사람을 죽인 적이 있지요? 그때 그 사람들 죽였잖아요? 기타 등등...
노인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듯 계속 딴청을 피웠다. 아무래도 귀신은 아닌 것 같았다. 어르신에게 실례를 범한 것 같아 사과를 하고 발길을 돌리려는데, 노인이 내 팔목을 잡았다. 힘이 어찌나 센지 뿌리칠 수 없었다. 노인은 황달이 심한 눈을 치켜뜨고 광이 나는 머리를 들이밀며 내게 속삭였다.
“흐흐흐흐…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날 잘 알아? 두두괴괴… 두두괴괴… 두두괴괴…”
본 이야기는 2019.07.26 한겨레에 실린 문화류씨의 공포단편집입니다.
한겨레에서 원문 내용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903437.html
문화류씨공포괴담집
싸인북&오디오북 나눔 이벤트 당첨 발표
문제의 정답은[⑤회색인간]이었습니다.
회색인간은 같은 출판사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고 여러분이 사랑하는 작가인
김동식(복날은간다) 작가의 베스트셀러작입니다.
문제가 좀 어려웠죠. ㅎㅎㅎ
응모해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정답을 적어주신 열다섯 분 중, 네 분을 추첨했습니다.
- 趙溫馬亂色氣 님 싸인북 당첨
- 푸른하늘1024 님 싸인북 당첨
- powerjin 님 오디오북 당첨
- 달매 님 오디오북 당첨
당첨 된 네 분 축하드립니다!
당첨 된 네 분은 [email protected] 으로 메일 보내주셔요
다만 로그인 캡쳐도 하셔서 보내주셔요 ^^
모든 것이 여러분의 관심과 응원 덕분입니다.
앞으로 재미있는 글로 더욱 자주 찾아 뵙겠습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문화류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