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중에 돌아가지 못하게 하려면 해외여야 해.
오사장에게 다음 여행은 해외로 잡으라고 했다.
이번엔 유강이까지 함께 가야하니 조금의 장치가 필요했다.
강이는 순진하고 경험도 없고, 부족한 게 없어서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 가자하면 절대 갈 리가 없다.
강이에겐 우리 셋의 여행이라 말하고 오사장일행과는 현지에서 조인하기로 하는 거다.
우린 모르는 사이였고, 우연히 그 곳에서 마주 쳐서 함께 지내게 될 것이다.
오사장에게 내 계획을 얘기했더니 다른 때보다 더 좋아했다.
“야~! 역시! 넌 방송보다 이런 쪽의 연기가 더 좋은 것 같아. 으흐흐흐흐흐. 이런 거 너무 좋아. 마치 우리도 처음 만났을 때 같이 짜릿하잖아. 이런 거 종종 하자구.”
연신 음흉한 소리로 웃어대는 오사장 얼굴을 보는 건 고역이었지만 계획대로 잘 협조해 줄 것 같았다.
오사장의 친구들도 벌써 캐스팅 해 뒀다고 한다.
강이의 스타일에 맞게 그중 어려보이고 젠틀해 보이는 친구로 말만은 세상 제일가는 신사라고 한다.
이젠 주아의 협조가 필요했다.
“주아야, 내가 강이에게 잘 말했어. 강이가 처음엔 안보겠다 했는데, 그래도 내가 잘 설득하니 한번 보자고 하더라.”
“정말 고마워. 나도 강이 직접보고 사과하고 싶었어. 고맙다 시연아. 진짜.”
“근데 말이야. 다음 여행은 강이도 같이 가면 어떨까? 해외여행 가자는데 셋이 가면 너무 좋을 것 같은데.”
“같이 가면 좋지만...강이가 가려고 할까? 낯가림도 심한 애라서...”
“그래서 말인데.....”
주아에게 계획을 얘기하니 반신반의 하는 눈치였다.
“오빠 친구 중에 제일 친절하고 착한 사람이래. 그리고 너도 알겠지만 우리 오빠 친구 나쁜 사람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근데 강이는 남자친구도 있고....”
“결혼해서 바람피우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해외여행가서 같이 놀다 오는 건데 남자친구가 알리도 없고. 네가 옆에서 바람만 조금 잡아주면 강이도 분위기타서 잘 놀거야. 우리가 그래도 친구 아니냐. 얼마나 잘 맞았던 친군데.”
이미 이 세계를 알아버린 주아가 끝까지 마다할 리가 없었다.
그렇게 계획은 내 생각대로 진행되었고, 도착해서 오사장일행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다.
첫날부터 무리해서는 안 되었기에 조금 신의를 쌓아가면서 접근하도록 유도했다.
둘째 날부터는 모든 일정을 함께 해야 한다. 그래야 이 여행에 의미가 있으니까.
급속도로 친해진 나와 주아를 보며 강이도 스스로 틀을 깨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걸 돕는 게 주아와 파트너의 역할이었다. 아직까진 모든 게 순조롭다.
생각보다 수영장에서 강이와 파트너가 잘 어울렸고, 저녁약속까지 웃으며 하는 걸 보면 강이도 싫지만은 않은 눈치다.
화장대에 앉아 눈썹을 그리고 있는 강이의 속마음을 좀 들여다봐야겠다.
“강아, 여기 수영장 진짜 좋지?”
“으응... 진짜 좋더라. 난 워낙에 물을 좋아하니까. 다들 즐거워보여서 다행이야.”
“그러게. 저 아저씨들 나이는 좀 있어 보여도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 같아.”
주아가 곁에서 지원사격을 해준다. 똑똑한 애들은 하나만 알려줘도 둘, 셋을 하니 역시 편하다.
“저녁은 오사장님이 신나는 곳으로 안내한다는 데 어때?”
“신나는데?”
겁 먹지마라 강아. 그냥 즐겨. 인생은 즐기라고 있는 거야.
“응. 음악도 좋고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는 데. 술도 종류별로 다~ 있고, 바텐이 실력 좋기로 유명하다더라고.”
“와~! 바텐더가 쇼도 하고 그러는 건가?”
주아가 진심으로 좋아서 기대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래? 그러자 그럼. 뭐......칵테일 한잔은 괜찮겠지.”
“그럼 오늘은 제일 예쁜 옷으로 갈아입는 거다~!”
음악소리가 너무 커서 뇌가 흔들릴 지경이었다.
“강이씨, 여기 어때요? 분위기 괜찮죠?”
도진씨가 바짝 다가앉으며 물었다.
음악소리가 너무 커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대화가 안 되기도 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 거리자
“오늘밤 너무 예뻐요. 하얀 원피스가 천사 같네요.”
민망한 칭찬 때문인지 칵테일 때문인지 얼굴이 달아올랐다.
“강이씨는 지금처럼 부끄러워 얼굴이 살짝 빨개질 때 정말 예쁩니다. 정말 예뻐요.”
도진씨도 말하고는 쑥스러운 지 볼이 상기되었다. 친구들 말처럼 나쁜 사람 같진 않았다.
“우리도 나가서 춤출래요? 잘 추는 건 아니지만 이런 일탈도 재밌네요.”
그래, 이 정도의 일탈은 괜찮겠지? 오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행복해 보이는 친구들을 보며 도진씨를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음악에 몸을 맡기고 칵테일에 취해가는 시간이었다.
알코올이 거의 들지 않았다는 칵테일을 몇 잔 마셨는지 모르겠지만, 조금씩 웃음이 많아지고 상대가 편해져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의 즐거움은 일탈이 주는 의외의 사건들도 한 몫을 한다고 주아가 말해줬는데.....
그런데 주아는 어디 있지? 시연이는?
주위를 둘러보는 내 의도를 알았는지 도진씨가 날 끌어당겨 귀에 대고 말해준다.
“친구 분들은 좀 전에 파트너들과 나갔어요. 아마도 해변을 산책하거나, 분위기 좋은 조용한 바에서 가볍게 한 잔 더 하겠죠. 우리도 나갈까요?”
고개를 끄덕이자 도진씨는 내 어깨에 가볍게 팔을 둘러 밖으로 인도했다.
상쾌한 밤공기와 바닷바람내음이 섞여 순간 술이 깨는 듯 했다. 이국적인 도시의 밤 거리가 꽤나 낭만적이었다. 이 순간 오빠와 함께 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보같이.
“어디 가서 한 잔 더 할까요?”
“아니요. 그냥....들어가서 쉬고 싶어요.”
“그래요 그럼. 바래다줄게요.”
친절한 웃음을 지으며 땀에 젖은 곱슬머리를 쓸어 넘기는 도진씨를 보니 좀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호텔 바에서 가볍게 한잔 할까요?”
내 제안에 금세 환하게 웃는 걸 보니 이번엔 내가 잘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