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석과 지민이 새 보금자리를 결정하기까지 둘의 의견다툼은 치열했다. 지민은 재테크 개념으로 오래된 브랜드 아파트라도 구입하자고 했으나 민석은 동의하지 않았다.
집이란 세 가족이 때론 시원하게, 때론 따뜻하게 지낼 수 있고 맛있는 요리를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아늑하면 그만인 것이다. 집이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집은 그 자체로서의 기능에만 충실하면 된다는 것이 민석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카푸치노의 거품처럼 부풀어진 아파트 가격을 감안하고 매입할 수는 없었다. 좀처럼 의견을 주장하지 않는 민석이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자 지민도 결국에는 마지못해 그의 의견을 따라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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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중개인과 이 집을 처음 방문한 순간부터 민석은 집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이 집의 모든 분위기에 끌렸다. 그런 그의 모습을 포착한 중개인은 설명에 더욱더 열을 올렸다.
"사장님. 이 집이 말이죠. 원래대로라면 절대 이 가격에 살 수 없는 급매로 나온 집이에요. 이렇게 급매로 나온 집 싸게 사는것도 다 사장님 복이에요. 이것 좀 보세요. 화장실까지 리모델링 해 놓은거... 대박이죠?
과연 그의 말대로 화장실은 민석의 마음에 쏙 들었다. 전 주인이 리모델링을 세련되게 해둔 덕에 손볼 곳이 전혀 없는것 처럼 보였다. 한쪽 벽면을 대부분 차지하는 널찍한 거울과 그 뒤에 달린 넉넉한 수납공간은 민석이 이 집에서 제일 마음에 들어한 부분이었다. 유독 깨끗하고 투명한 거울을 보고 있으면 마음마저 정화되어 빨려 들어가는 듯한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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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야, 내가 우리 이사가는 집 동네 엄마한테 건너 들은건데, 전 주인이 실종이 됐었다네? 실종인지 가출인지 확실치는 않은데 말이야. 아무튼 하루아침에 증발한 것처럼 없어져 버렸대. 휴대폰이고 지갑이고 가방이고 다 집에 놔두고 말이야. 아무래도 실종같긴해. 그렇지?
부인이 처음 몇 년은 기다리다가 나중돼서 지쳤는지 아니면 그 집에 정내미가 떨어졌는지 어쨌는지, 급매로 처분하고 동네를 떠나려고 하는 건가봐. 좀 찝찝하지않아? 아니 뭐 나도 딱히 그런 미신을 믿지는 않는데 , 그래도 전 주인이 실종 됐다고 하니까. 괜히 기분이 그런거지 뭐. 상관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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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석의 가족이 새 거처로 옮긴지 얼추 한달이 지났다.아파트를 고집했던 지민도 살면서 점점 집에 흡족해 하는것 같았다.
문제는 민석이었다. 이유를 도통 알수없이 살이 빠지고 피부가 거칠어져만 갔다. 그는 화장실의 거울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한참 동안이나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움직여 보았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거울앞에 서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민석은 묘한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민석은 왼손을 높게 쳐든다. 거울속의 민석은 미동도 하지않고 그를 쳐다본다.
심각한 얼굴을 한 민석이 오른손을 들어 오른쪽 뺨을 어루만진다. 거울속의 민석은 그런 민석이 재미있다는 듯이 한쪽 입꼬리를 지그시 올린다.
순간 민석은 소리를 지르면서 거울쪽으로 면도기를 집어던졌다.
"말도 안돼!"
민석은 다급히 화장실을 뛰쳐나왔다.
"지..민아... 거울이 이상해!"
"여보. 무슨 일이야. 갑자기 왜 그래. 놀랐잖아!"
"거울이 달라. 다르다고!'
" 자기 도대체 무슨 소리하는거야. 일단 여기 앉아봐. 물 한잔 마시고. 자기 요즘 잠도 잘 못자고 밥도 못먹고 너무 걱정돼. 나랑 병원가서 검진 한번 받아보자. 아님 내가 아는 한의원가서 보약이라도 한첩 지어올게."
"아니야. 일단 화장실에서 거울 좀 한번만 확인하고 와봐. 지민아. 부탁이야!"
거울을 확인하고 온 지민은 측은한 눈길로 민석을 쳐다본다.그리고 깊은 한숨을 내쉰다.
"자기 요즘 너무 무리했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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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잠을 몰아서 자고 깬 후,민석은 어제의 거울에 대해서 생각했다.
'정말 컨디션의 난조로 잘못 본 것일까? 사람이 기가 약해지면 헛것도 보이고 귀신도 보인다는데,이 정도 착각쯤이야 대수는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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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석은 그뒤로 헤어진 옛 애인을 애써 외면하듯, 화장실에서도 굳이 거울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자신의 정신이 온전히 회복될때까지는 어떠한 방해물도 제쳐두고 싶은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고 민석도 다시 예전과 같은 생기를 되찾았고 거울의 찝찝했던 기억도 거의 다 잊게 되었다.
그런던 어느 날, 지민이 화영을 데리고 친정에 간 저녁이었다.
민석은 빔 프로젝터에 혼자 조용히 영화를 볼 생각에 들떠 있었다. 몸을 깨끗히 씻고 영화에 집중하다 그대로 잠들 생각이었다. 그는 세면대에서 칫솔질을 하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어서 거울을 바라보았다.
"허...억"
거울속의 민석은 칫솔질을 하는 민석을 바라보며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고 있었다.
'내가 미친게 아니었어'
민석은 옆에 놓여졌던 샴푸통을 세게 집어 던지기도 하고 주먹을 날리기도 했다. 하지만 거울속의 그는 민석의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는듯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민석은 손바닥을 펴서 거울을 세게 내리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민석의 검지와 중지가 거울속으로 스며 들어갔다. 묽은 진흙속으로 몸이 빠지는 것처럼 부드럽게 흡수되어 갔다. 민석은 소리를 지르면서 아둥바둥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그가 힘을 쓰면 쓸수록 거울안의 세계는 그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로 더 강하게 빨아들였다.
" 하...악...아...안돼!"
민석의 모습이 화장실에서 사라진 후, 그 자리에는 실종 되었다던 전 주인이 옷을 털며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