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션 |
|
※ 주의 : 이 글은 픽션입니다. 따라서 종교적 논쟁 및 비난을 삼가주시길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천국의 문
10살 소년의 눈으로 본 세상은 흡사 거대한 공동묘지 같았다. 거리와 광장, 학교와 공원 그리고 소년의 눈에 닿는 모든 곳이 시체로 즐비했다. 칼에 찔린 자, 차에 치인 자, 건물에서 떨어져 머리가 박살난 자, 그 밖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죽음이 그곳에 있었다. 일찍이 도시라 불렸던 회색빛 콘크리트 숲은 어느새 그 소임을 다하고 수백만구의 시체를 품어 안은 거대한 관으로 변모해 있었다.
‘까악’ 갑작스런 인기척에 놀란 까마귀 몇 마리가 소년을 피해 후다닥 하늘로 날아올랐다. 쪼이고 씹혀 한쪽 눈을 잃은 시체가 심드렁히 얼굴을 드러내자 놀란 소년이 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때 어디선가 ‘쿵’하는 충격음이 들려왔다. 소년이 돌아보니 저 멀리 멧돼지 세 마리가 주인을 잃은 도로 위를 종횡무진 쏘다닌다. 무엇에 화가 났는지 전복된 차량을 몇 번이나 들이 받으며 화풀이를 한다. 그 순간 소년의 눈이 그 중 한 마리와 마주친다. 멀지 않은 거리다. 책에서나 보던 커다란 들짐승과의 조우에 소년은 긴장한 듯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멧돼지가 갑작스런 불청객을 향해 몸을 돌렸다. 흠칫 놀란 나머지 소년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멧돼지도 조심스레 두어 걸음 다가온다. 딱히 위협적이지 않았던 이 상황이 급박해진 건 겁먹은 소년이 돌연 뒤돌아 내달리면서부터였다. ‘야생동물을 만났을 땐 절대 등을 보이지 마라.’ 생존엔 필수적이지만 동화책과 어린이용 동물도감에선 쉽게 다루지 않는 내용이다. 아이의 걸음이 바빠졌다. 시체와 시체를 넘고 시체와 시체 사이를 가로질러 달린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작은 가슴이 터질듯 뛰었다. 허나 고작 열 살이다. 추적과 포획을 업으로 삼는 야생의 날 것들에겐 비할 바가 아니다. 달릴수록 꾸웩대는 짐승의 괴성이 가까워오자 불안해진 소년이 흘깃 뒤를 돌아보았다. 그게 실수였다. ‘툭’하며 소년의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길에 널린 시체 중 어느 하나에 발이 걸린 모양이었다. 그대로 떼구르르 바닥을 구르며 넘어졌지만 다행히 행운의 여신은 소년의 어깨 위에 앉았다. 멧돼지 한 마리가 넘어진 소년을 따라 방향을 틀었지만 미처 속력을 줄이지 못한 다른 한 놈이 달려와 들이 받는다. 큰 소리가 나며 한데 뒤엉킨 두마리의 멧돼지가 저 만치로 나동그라진다. 소년이 까진 무릎을 비비며 겨우 몸을 일으키니 한 쪽에서선 이미 ‘꽥꽥’대는 아우성이 한창이다. 아마도 갑작스런 접촉사고를 일으킨 동료를 성토하는 모양이었다. 어느새 소년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린 두 짐승의 다툼을 바라보며 소년이 크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안도는 채 몸을 돌리기가 무섭게 식어버린다. ‘씩씩’ 대는 숨소리가 코앞에서 울려 퍼졌다. ‘그래, 세 마리였지...’ 한층 진해진 불안감이 소년의 작은 가슴을 짓누른다. 급히 뒷걸음질 쳐 보지만 이번엔 다르다. ‘툭’하고 벽이 등을 가로막는다. 겁먹은 얼굴로 좌우를 돌아보지만 보이는 것은 온통 시체 뿐, 도움을 줄 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멧돼지가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뒷발을 고른다. 성체가 되면 길이가 1.6미터에 몸무게는 300kg에 육박한다. 10살 소년과 마주서니 다윗과 골리앗이 따로 없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도 문다지만 이건 경우가 다르다. 소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하아... 하아... 사... 살려주세요.”
대답은커녕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았지만 소년은 다시 한 번 힘주어 외쳤다.
“누... 누구 없어요? 사...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역시나 어린이용 동물도감에서는 다루지 않는 내용이다. ‘큰 소리는 야생동물을 흥분시킨다.’ 꾸웨엑 괴성을 내지르며 멧돼지가 번개처럼 쇄도했다. 소년이 질끈 눈을 감으며 속삭였다.
“도와줘 엄마...”
*
눈을 뜬 소년이 본 것은 분홍색 벽지와 각종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스티커 그리고 예쁘장한 금발의 바비 인형이었다. 침대 속이었고 두툼한 이불과 적당한 온도 탓에 흡사 집에 돌아온 듯 안락했다. ‘꿈이었나?’ 소년이 허망한 눈빛으로 중얼댔다. 물론 본인이 더 잘 안다. 소년의 방 벽지는 짙은 에메랄드 색이고 선반 위엔 예쁘장한 바비 인형 대신 커다란 로봇과 자동차가 세워져 있다. 그때 ‘뚜벅 뚜벅’ 인기척이 들렸다.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리는가 싶던 소년이 갑자기 밝은 얼굴로 소리쳤다.
“엄마!”
잠시 멈추는가 싶던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끼익’하며 문이 열리며 덥수룩한 수염에 깡말랐지만 큰 키와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장발의 중년 사내가 얼굴을 들이 민다. 소년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누가봐도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사내는 쑥쓰러운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엄마가 아니라 실망했니?"
"아... 그... 그건..."
“몸은?”
“괜찮... 아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몸을 일으키려던 소년이 갑자기 신음하며 쓰러졌다. 사내가 다가와 소년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괜찮기는... 갈비뼈가 나갔던데... 망할 멧돼지 새끼들, 암튼 좀 더 쉬어. 뭐, 구태여 쉴 필요가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사내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채 몸을 돌려 나가려하자 소년이 급히 손을 뻗어 사내의 소매를 붙들며 물었다.
“아... 아저씨 저... 저기...”
“어떻게 된 거냐고?”
소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내가 말했다.
“옆 건물에 있었고, 비명소리가 들려 나가 봤더니 네가 쫓기고 있더라. 마침 총도 있겠다. 또 너는 살려 달라 하겠다. 망설일 필요가 없었지. 다만 너도 봤다시피 워낙에 덩치들이 커서 들이 받는 것까진 어쩌지 못 했어. 왜? 무슨 문제 있니?”
“아... 아니요. 그랬구나. 고... 고맙습니다.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뭐? 감사? 고맙습니다? 살려줘서? 풋! 하하하, 크하하하하”
사내가 갑자기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흡사 코미디 프로그램속의 방청객처럼 한참이나 박장대소를 늘어놓는다. 의아해진 소년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라보자 그가 말했다.
“아, 이런... 미안. 요즘엔 통 듣기 힘든 소리라... 그 말 말야...”
“예? 무... 무슨?”
“살려줘서 고맙다는 말.”
“그... 그게 왜...”
“모르는 거야?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거야? 아! 미안, 내가 너무 날카로웠지? 어린 너 한테까지 이럴 필요는 없는데, 참 몇 살이야?”
“여... 열 살이요.”
“음... 뭐 그럼, 모를 수도 있겠네. 아니, 모르는 게 나으려나?”
스무고개 하듯 사내가 연신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자 참다 못한 소년이 잔뜩 주눅 든 얼굴로 물었다.
“죄... 죄송하지만 제가... 모르는게 뭐죠?”
“정말 몰라?”
“네...”
소년의 눈빛에서 진지함을 읽은 사내가 잠시 이마를 어루만지며 고민하다 이내 소년만큼이나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다들 죽으려고 하니까.”
“주... 죽으려고 한다구요?”
소년이 재차 의아한 얼굴로 묻자 사내는 뭐라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한참이나 천장을 바라보다 털썩 소년이 누운 침대 머리맡에 앉으며 물었다.
“근데 왜 혼자야? 보호자는?”
“혼자 아니요. 엄마랑 둘이에요.”
“엄마? 어디 계신데?”
“엄마는... 엄마는... 흑흑...”
대답대신 소년이 돌연 울음을 터트리자 사내는 잠시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소년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리곤 소년을 꼬옥 끌어 안으며 담담히 말했다.
“울지 마, 사내자식이... 괜찮아. 누구나 한 번은 죽는 거야.”
그가 보듬어 안으려하자 돌연 소년이 그의 가슴팍을 밀치며 외쳤다.
“아니에요! 우리 엄마 안 죽었어요.”
“그래? 그런데 왜 울어?”
“아파요. 아파요 우리 엄마...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는데 원래부터 심장이 안 좋대요. 엄마랑 저랑 시골에 내려온 것도 그래서인데, 갑자기 세상에 큰 일이 생겼다면서, 약도 타야하고 알아볼 것 있다며 그래서 같이 차를 타고 나왔는데, 한참 가니까. 도로가...”
“차들로 꽉 막혔지? 어디든 그래...”
“맞아요. 차들 때문에 갈 수가 없었어요. 나는 그냥 집에 가자고 했는데. 엄마가 안된다고, 걷자고, 그래서 차를 두고 한참을 걸었는데... 흑흑”
“얼마나?”
“이틀이요.”
“물은 있었니?”
“아니요.”
“저런...“
사내가 입술을 깨물었다.
“걸어서, 걸어서 겨우 이 앞까지 왔는데, 그런데...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막 토하면서 가슴이 아프다고... 흑흑흑...”
“전에도 그런 적이 있으시니?”
“네... 흑흑”
“심장이 안 좋은데 구토에 흉통이라. 급성 심근경색일 확률이 높은데... 그래, 쓰러지신 지는 얼마나 됐니?”
“그... 글쎄요. 하... 한 시간? 아니 두 시간인가? 모르겠어요. 도와줄 사람 찾는다고 정신없이 뛰기만 해서...”
“젠장...”
사내가 질끈 눈을 감으며 굳은 표정으로 이마를 쓸어내리자 소년이 사내의 옷깃을 잡아 흔들며 말했다.
“도와주세요. 아저씨가 도와주세요. 우리 엄마 아직 거기에 있어요. 아저씨가 가서 아픈 우리 엄마 살려주세요. 네?”
그때였다. 닫혀있던 문이 살포시 열리며 앳된 소녀 하나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작고 귀여운 얼굴 위로 약간의 주근깨가 돋아난 곱슬머리 소녀였다. 큰 눈망울을 깜빡이며 호기심을 내비치던 소녀는 잠시 사내와 소년을 번갈아 바라보다 이윽고 물었다.
“아빠! 잠꾸러기 오빠 이제 일어난 거야?”
“어허 들어오지 말라니까!”
“얼마나 잠꾸러기길래 사흘이나 자는지 궁금해서 왔지.”
“시끄러 너는 이제부터 잘 시간이야.”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사내는 곧장 소녀의 손을 잡고 방을 나서며 말했다.
“더 자... 너희 엄마한테는 아저씨가 가 볼게. 골든타임이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
동그란 흙더미 앞에 선 소년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엄마는요?”
사내가 크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구자 아이가 사내 앞에 다가와 외쳤다.
“데려다 준다고 했잖아요 엄마한테...”
“엄마야.”
“아니요. 이런 거 말구요. 우리 엄마요! 우리 엄마 어디갔냐구요!”
사내가 와락 소년을 끌어안았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표정이었지만 입을 굳게 다물고 소년을 더욱 강하게 끌어안는다. 품에 안긴 소년이 버둥대며 소리쳤다.
“우리 엄마, 엄마 도와주신다고 했잖아요. 살려주신다고 했잖아요!”
“미안... 너무 늦었어...”
소년이 스르륵 무너지며 크게 흐느꼈다. 주근깨 소녀가 다가와 말했다.
“잠꾸러기에 울보!”
*
사내가 비로소 입을 연 건 늦은 밤이었다. 오래된 성당 뒤에 위치한 공터였고, 그곳은 이 도시에서 시체가 보이지 않는 유일한 장소였다. 낡은 협탁과 예배용 의자 그리고 부러진 십자가를 모아 만든 모닥불 앞에 앉은 소년과 소녀는 말없이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러니까 그건... 뭐랄까? 계시였어. 탐욕과 오만에 젖은 타락한 우리 인류에게 보내는 신의 마지막 계시, 온 하늘이 밝게 빛났고 눈부신 날개를 지닌 자가 하늘 높이에서 내려와 말했지.”
*
‘나는 위대한 자, 창조로써 이 세상을 존재케한 절대자의 뜻에 따르는 자다. 의심하지 말지어다. 나의 말은 그분의 뜻일지니 오직 귀를 열고 새겨라. 오랜 시간 우리는 너희를 보살펴왔고 사랑과 헌신 그리고 숭고함을 가르쳤다. 허나 날이 갈수록 혼돈은 극에 달했고 창조주의 땅 위엔 평화와 존중이 아닌 욕망과 시기 그리고 분노만이 가득했다. 당신께선 끝없는 사랑과 인내 그리고 용서와 희생으로 몇 번의 기회를 더 베푸셨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결국 농부가 씨를 뿌리고 다시 거두어가듯, 그 분께서도 결단을 내리시기에 이르렀다. 곧 너희에게 주었던 모든 권능이 다시 거두어지리니 슬퍼하지도 노여워하지도 말라. 애초에 무에서 시작되었던 것이 다시 무로 돌아갈 뿐이다.’
온 세상이 탄식으로 가득 찼단다. 모두 함께 꿇어 앉아 눈물로 기원했지. 한 번만, 부디 한 번만 더 기회를 준다면 우리의 의지로 스스로를 바꿔보겠다고, 새로운 세상을 가꾸어가겠노라고. 하지만 창조주는 단호했어. 전 인류의 열렬한 기도에도 아무런 응답도 해주지 않았지. 그러자 사람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했어. 처음엔 신의 존재를 부인했고 다음엔 다가올 종말의 날을 두려워했지. 하지만 결국 찾아온 것은 참혹한 혼란과 본능적 욕구만이 남은 절망스런 모습이었어. 자신의 뜻대로 이뤄지지 않자 포기하고 모든 것을 놓아버린 거지.
“죽여! 다 죽이고 빼앗아. 어차피 끝났어. 마지막 순간을 즐겨!”
“살려주세요. 아이가... 뱃속에 아이가 있어요.”
“돈은 모두 가져가도 좋으니 제발 가족들만은 해치지 말아주세요 네?”
“전부 죽여. 어차피 끝나버릴 세상이야!”
세상은 삽시간에 지옥으로 변했지. 건물은 불에 타고 순간의 욕망을 억누르지 못해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빼앗았으며 간음과 폭력이 모든 것을 박살냈지. 그래도 한 편엔 기도하는 자들이 있었어. 부디, 부족한 우리에게 마지막 기회를 달라고. 인간 내면에 남은 한 가닥의 선함을 잊지 말아달라고.
그때 다시없을 마지막 응답이 전해졌어.
‘며칠의 말미를 두고 고심한 끝에 우리는 너희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다.’
*
“마지막 기회요?”
“그래 마지막 기회... 제7안식일...”
“제7안식일? 그게 뭐죠? 설마 그게 엄마가 알아봐야 한다던 그 건가요?”
“그래... 맞아. 계시를 직접 맞이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그리고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는 그런 것이었지.”
사내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화르륵, 불길에 타들어간 장작더미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고 사내는 들고 있던 부지깽이로 남은 재를 긁어모으며 말했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그건 어쩌면... 계시라기보다는 시험이었을지 몰라. 어리석은 우리 인류에게 주어진 시험.”
*
‘단7일, 두려움에 떠는 가련한 너희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이는 창조주의 아량인 동시에 그간 너희가 보여온 믿음과 신실함에 대한 응답이라 할 것이다. 문이 열릴 것이다. 그곳으로 들라.”
사람들은 환호했어. 잠시지만 다툼도 폭력도 절망도 사그라들었지. 대신 천사가 말하는 기회가 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열띤 토론이 벌어졌어. 그러나 아무도 마땅한 답을 내어놓지 못 했지. 결국 인간들의 대표자로 교황이 나섰어.
“위대한 자여. 창조로써 이 세상을 존재케한 절대자의 뜻에 따르는 자여. 우리는 더 이상 당신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둔하여 당신이 말한 마지막 기회가 무엇이고 그곳이 어디며 열린 문이 뜻하는 함의를 알지 못 합니다. 가르침을 주소서...”
교황이 외치고 또 외치자. 빛과 함께 천사가 다시 나타나 응답했어.
“너희들이 오랜 세월 바래오던 것이다. 영원한 안식의 땅, 평화와 번영으로 무르익은 곳, 너희들이 흔히 천국이라 말하는 곳이다. 지금 그 곳의 문이 활짝 열렸다. 어서 그곳에 들라.”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부족한 저희에게 천국의 문을 활짝 열어주심에 이루 말 할 수 없는 감사를 드리나 저희는 아직 당신이 말하는 천국이 어떤 곳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부디 부덕한 저희에게 깨달음을 주소서.”
‘너희들이 알고 있는 그대로다.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고, 다쳐도 아프지 않으며 모든 질병과 더 이상의 죽음이 없는 평화로운 곳이다.’
“오오... 감사합니다. 그럼 어찌해야 그 곳에 들 수 있습니까?“
‘죽어라.’
“네? 그... 그... 무슨...”
‘죽음으로 말미암아 선함 그리고 죄의 무게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공평히 천국의 문이 열릴 것이다. 이생의 삶을 쥐고 어찌 천국에 이르고자 하느냐? 공존할 수 있다면 애초에 나눌 이유가 없다.’
“아... 그... 그런...”
그때부터였다. 수천 년의 세월동안 인간이 갈구해왔던 깨달음이 이 땅을 지옥으로 바꾼 것이... ‘쿵’ ‘쿵’ ‘쿵’ 시끄러운 굉음이 연신 귓가를 파고들었다. 놀라 뛰쳐나가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인간의 비가...
고층 아파트의 베란다 앞이었다. 처음엔 노인 그리고 여자, 다음엔 작은 아이들이 차례로 쏟아져 내렸고 마지막엔 가장으로 보이는 중년 사내가 아스팔트 위로 곤두박질쳤다. 처음엔 놀라 모두 아우성을 쳤지만 누군가의 한 마디가 우리를 침묵케 했다.
“천국이다. 천국으로 갔다.”
생각해보면 가장 쉬운 방법이었지. 건물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그리곤 얼마 안 돼 멀쩡히 도로 위를 달리던 차량 한 대가 총알처럼 빠른 속도로 달려가 전신주를 들이 받았어. 당황한 나는 한달음에 달려갔지. 운전석에는 단란했을 한 가족이 타고 있었어. 운전석의 여자와 조수석의 아이는 이미 죽었고, 뒷자리에 타고 있던 한 남자만이 피를 흘리며 살아 있더구나. 놀라 그를 차에서 끌어내려 하니 갑자기 그가 손을 뻗어 나를 만류했어.
“그냥 두세요. 전 지금... 행복합니다.”
“무... 무슨 소리하는 거야 당신! 그냥두면 죽어!”
“아프지만, 이제 곧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인다면 믿으시겠어요? 당신은 모를 겁니다. 전 지금 보여요. 따사로운 햇빛과 부드러운 바람 그리고 아름다운 노래가 귓가를 스칩니다. 아내와 아이들의 목소리도 들리구요. 몸이 가벼워지고 있어요. 드디어 때가 됐나 봐요. 안녕! 부디 당신도 그곳에 다다를 수 있기를...”
그게 그의 마지막이었어. 하지만 또 다른 시작이기도 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서 비명과 고통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으니까. 들불이 번지듯 곳곳에서 말이야. 나무엔 사과 대신 사람이 주렁주렁 열리고 하늘에선 비행기가 바다에선 배가 침몰했지. 누군가는 나처럼 도움을 청하기도 했지만 경찰도 의사도 소방관도 모두 저마다의 방법으로 사라지기 시작한 그 혼란의 와중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어. 결국 전 인류의 10분의 1이 채 하루가 지나기 전에 사라지고 말았지. 물론 그건 시작에 불과했어. 한번 불이 붙기 시작한 죽음은 한층 더 속도를 내어 멸망의 페달을 밟아 댔지. 동이 트기 전에 이미 인류의 10분의 2가 사라졌고, 점심녘이 되자 더 이상의 통계가 무의미한 수준이 이르렀지. 산 자보다 죽은 자가 더 많아진 건, 아니 살아있는 인간을 볼 수 없게 되기까진 3일 밖에 걸리지 않았어. 조바심 때문이었지. 그럴 만도 해. 천사가 우리에게 내어 준 시간은 겨우 7일 뿐이었으니까. 그러자 그때까지도 천사의 계시를 믿지 않고, 이 땅에 남기를 선택 했던 이들마저도 불안에 빠지고 말았어. 천국과 지옥, 간단한 이분법이잖아.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를 묻는다면 바보가 아닌 이상 누구나 같은 선택을 고민하겠지.
“고통 없이 죽여 드립니다.”
“천국으로 당신을 인도하겠습니다.”
“모두 함께 열반에 듭시다.”
그때 전면에 나선 이들이 바로 신부와 수녀, 목사와 승려 그리고 랍비와 이맘이었어. 이제껏 그들같이 모순된 살인자들이 존재한 적이 있을까? 한 손으론 축복을 또 다른 한 손으론 신도의 이마에 총을 쏘아 갈겼지. 믿음을 이끄는 자들이 믿는 자들의 두개골에 구멍을 냈다고, 총알이 떨어지면 독을 먹였고 우는 아기는 베게로 눌러 죽였어. 믿어지니? 그게 단 6일 동안 그들이 행한 일이야.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 마지막 안식의 7일이다.
*
말을 마친 사내가 돌연 얼굴을 감싸 쥐고 울기 시작했다.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듯 절규하며 울음을 터트렸다. 이를 본 소녀가 아비를 따라 훌쩍이자 소년도 고개를 떨궜다. 어느새 뿌연 연기만큼이나 흐릿하고 탁해져버린 소년의 눈에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비친다. 모닥불 옆 사내의 왼편에 놓여 있던 사냥용 라이플이다. 소년의 눈에도 눈물이 어렸다. 잠시 고개를 떨구고 훌쩍이며 어깨를 들썩이던 소년이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물었다.
“엄마는... 그럼 우리 엄마는 천국에 있겠죠?”
소년의 말에 흐느끼던 사내가 고개를 들어 흠뻑 젖은 얼굴을 끄덕인다. 소년이 또 소녀가 다가와 사내를 끌어안았다. 한참을 부둥켜안고 울던 그들 사이로 총성이 울려 퍼졌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사내가 손목의 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이제 곧 자정이야.”
소년이 눈을 깜빡였다. 입을 꾹 다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죽으면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요?”
“아마도...”
“그럼 죽어야겠네요?”
사내가 대답대신 또 한 번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소년이 부지깽이를 들고 일어나 바스락대는 꺼져가는 모닥불 속의 잿가루를 뒤적인다. 눈가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지만 침착한 표정과 눈빛은 고요한 호수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그 사이 다시 한 번 시간을 확인한 사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총을 집어 들었다.
“세... 세발이야. 다행히. 운명처럼 3발이 남았어.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없어.”
‘툭’ 그가 겁에 질린 얼굴로 라이플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그의 손목시계가 11시 57분을 가리킨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아빠의 무서운 표정에 소녀는 재차 울음을 터트리고 소년은 이해할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불을 뿜을 것 같던 사내의 총구는 소년과 소녀 그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헤메이며 망설인다. 시계가 11시 58분을 가리켰다. 사내가 질끈 눈을 감으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니?”
“없어요.”
“그래... 그래... 그렇지...”
“하지만 궁금한 건 있어요.”
“뭔데?”
“엄마가 그랬거든요.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고.”
방아쇠에 올라앉은 사내의 손가락이 살며시 떨린다. 소년이 말을 이었다.
“다들... 그러니까 모두가 죽어 천국에 간다면... 그걸 과연 천국이라 부를 수 있을까? 엄마가 보고 싶어요. 만나게 되면 답을 알려줄까요?”
11시 59분...
‘탕’ ‘탕’ ‘탕’
세 발의 총성이 연거푸 울려 퍼졌다. 마지막 남은 모닥불의 불길이 사그라들었다.
*
‘쿵’ ‘쿵’ ‘쿵’ 고요한 도시에 갑작스레 굉음이 울려 퍼졌다. 누군가 커다란 오함마를 들고 철문에 매달린 쇠사슬을 내리 쳐댄다. ‘쿵’ ‘쿵’ 굉음은 몇 번이나 더 울려 퍼지고 난 뒤에야 ‘촤르륵’ 사슬 풀리는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어둡고 적막한 공간 안으로 빛이 새어든다.
“우와 먼지...”
“1년이나 방치됐으니. 당연하지. 그나저나 몇 개나 있을지...”
“혹시 저거 말씀하시는 거에요?”
손전등에서 뻗어나간 강한 빛이 어둠 속에 잠들어 있던 거대한 통조림 더미를 비춘다. 수천 개, 아니 수만 개는 족히 될 법한 알루미늄 캔들이 창고로 보이는 방대한 구역 안에 일사분란하게 쌓여 있었다.
“그래! 그거야! 네 말대로 공장에는 출하 안 된 통조림이 남아 있구나! 하하핫”
사내가 웃으며 소년의 머리를 헝클이자 소년이 기쁜 표정으로 달려 나가 그 중 하나를 꺼내 뜯고 칼로 베어 입에 집어넣는다. 오물오물 잠시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하던 소년이 대뜸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며 말했다.
“와! 제대로네요! 그냥 먹어도 이 정돈데... 이걸 후라이팬에 구우면... 와!”
“하긴, 고기 맛 본 지가 꽤 됐지?”
“꽤 된 정도가 아니라니까요. 라면이 죄다 썩어버린 이후론 벌써 한 달 째 맹물에 씨리얼 아니면 풀뿌리만 캐 먹었다구요!”
그때 부스스한 머리의 소녀가 다가와 투덜거리며 말했다.
“정말 이해가 안 돼, 대체 고기가 왜 좋은 거야? 잔인하고 미개해!”
“어쭈 이게 맛도 모르면서 또 까부네! 야 너도 한 번만 먹어봐! 밥에다 먹으면 이게 얼마나 맛있다고!”
소년이 버럭 화를 내며 손에 든 통조림 중 하나를 슬며시 소녀에게 던진다. 하지만 소녀는 받아들기는커녕 귀찮다는 듯 피해버리며 앙칼지게 소리쳤다.
“됐거든요.”
“어허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기로 했잖니. 그리고 사실 아빠도 고기가 좋아. 싫든 좋든 식사 문제는 해결해야 하니까. 당분간은 이 식품공장 주변에 머무르도록 하자. 투덜댈 시간 있으면 너도 네가 좋아하는 채소나 과일 통조림이 있는지 한 번 찾아 봐!”
“흥! 난 통조림은 싫은데... 할 수 없죠 뭐.”
소녀가 가득 쌓인 통조림더미 사이로 사라지자 비로소 사내는 미소 지으며 발밑에 떨어진 통조림을 주워든다. 조금 전 소년이 소녀에게 장난스레 던져 주었던 바로 그 통조림이었다. ‘(주)에덴식품’ 통조림 겉면에는 제조사의 상호가 커다랗게 박혀있다.
제7안식일 그리고 일 년이 지난 현재, 그들은 이 땅에 남은 유일한 인간이다.
마지막 인류이자 또 다른 현생 인류의 시초가 된 아버지 존 크리스 여호아가 발 밑의 통조림을 주워들고 자신의 딸 이브와 새로이 가족이 된 아들 아담을 따라 창고 안으로 향했다.
그렇게 모두가 떠난 세상에서도 누군가는 살아간다.
끝.
글쓴이의 말
기억하시는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이 글은 2015년에 처음 쓰였고, 2017년에 한 번 개작을 했다가 2019년인 올해 다시 한 번 고쳐 쓴 글입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삶과 죽음 그리고 천국과 지옥을 과연 무엇으로 정의 내릴 것 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큰 애착이 가지고 있는 글이기도 합니다.
맞벌이에 7살 딸아이를 키우다보니 글 쓸 시간이나 기회가 많이 없어. 엉성한 부분이 많습니다만. 모쪼록 좋게 보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글을 쓰는데 투자한 시간이 소중하듯 여러분이 글을 읽는데 투자하는 시간 역시 몹시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세요.
출처 | 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