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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싶은 과민성 대장증후군 약 80% 극복 후기
게시물ID : humordata_18252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브로콜리덮밥
추천 : 19
조회수 : 11785회
댓글수 : 83개
등록시간 : 2019/07/23 19:4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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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바야흐로 스물 둘… 죽이고 싶은 과민성 대장증후군 선고가 내려진 나이였습니다. 앳되고 세상 물정 모르던 제겐 사형 선고나 다름 없었죠.. 재수 시절 장시간 스트레스 받으며 책상 머리를 지켜왔던 게 화근이 된 걸까요? 원인 불명, 치료 방법 불명. 현대인에게 과민성 대장증후군이란 불치병과 같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그때는 잘 와닿지 않았습니다.
 
현대사회에서 과민성 대장증후군 환자들이 겪는 고통은 희화됩니다. 그리고 과민성 대장증후군 때문에 발표와 시험을 말아먹는 걸, 가지런한 황금똥을 배설하는 똥르주아들은 알아주지 않죠. 일언지하에 자기관리의 부족으로 치부합니다. 이런 사회적 억압이 B+는 족히 맞던 제 학점을 D까지 떨어뜨린 걸지도 모릅니다… 원래 900점은 맞을 만한 토익 성적도 과민성 대장증후군 때문에 결국 750점을 넘지 못 했죠ㅜㅜ
 
이상한 장소에서 찔끔 지리는 웃긴 에피소드를 기대하셨나요? 안타깝지만 저는 광대 마냥 웃긴 DDONG 에피소드나 선보이자고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는 게 아닙니다. 물론 어느 술자리에서나 배를 움켜쥐게 할 에피소드가 몇 가지 있긴 하지만..ㅎㅎ 그보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의 굴레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지금, 몇 가지 의미 있다고 판단한 제 족적을 여러분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선한 의도이지요. 부디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글루텐 프리 퀘이커 오트밀을 씹듯 천천히 음미해 보시길…

 
1. 생체실험자가 되어라
서울 지하철 1호선 하행 열차에 붙은 서울대병원 임상실험에 지원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무릇 과민성 대장증후군 환자라면 ‘FODMAP’ 이란 용어를 들어본 적 있을 것입니다. 구글에 FODMAP을 검색하면 과민성 대장증후군 환자를 위한 식단표가 나오는데, 이를 그대로 실천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모닝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자제해야 하는 건 저 같은 도시남자에게 고문이나 다름 없죠..
희망적이게도, 모든 과민성 대장증후군 환자가 동일한 음식에 같은 정도의 증상을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냥 케바케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저는 과민성 대장증후군 권장식품인 바나나, 토마토를 먹으면 바로 증상이 오는 반면, 제한식품인 사과, 양배추, 마늘에는 끄떡 없습니다. 출근길 마노핀 아메리카노는 비교적 괜찮은 반면,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는 직격탄입니다.

표를 만들어 평소 먹는 음식을 쭉 적으십시오. 그리고 하나씩 섭취해보세요. 괜찮으면 동그라미, 모르겠으면 세모, 증상이 왔으면 엑스. 이런 식으로 제품마다 최소 세 번의 기록을 누적하면 어느 정도 여러분 장의 윤곽이 보입니다. 꽤 빽뺵하게 표를 채워 넣으셨다면, 세분화 가능한 음식은 세분화해보십시오. 커피는 크게 각기 다른 원두를 쓰는 브랜드, 아이스와 핫, 우유 포함과 불포함, 모닝 커피와 오후 커피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채워진 표는 여러분이 죽을 때까지 참고할 인생의 나침반입니다. 잃어버리지 마시고 구글 드라이브에 고이 간직해두십시오,, 불쌍한 생체실험자여.
 
2. 내 장을 상전 모시듯 하라
과민성 대장증후군은 쉽게 말해 장이 민감해 장 관련 증상이 남들보다 쉽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새벽 두 시에 뿌링클을 먹는다? 밤새 술을 마신다? 하루 한 끼만 먹는데 그 한 끼에 폭식한다? 똥롤레타리아답지 않게 분수를 모르는 행동입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화장실 바로 앞에서 괄약근에 힘이 풀려 보면 눈알이 뒤집어지면 그럴 순 없겠죠. 방콕 클럽에서 헌팅 성공을 앞두고 지려버리면 결코 그런 경솔한 행동은 하지 못할 겁니다...흑흑
장이 평온한 상태를 최대한 조성해주십시오. 마음 속에 조금의 바람도 불지 않는 프랑스 남부 앙티브, 은퇴도시인 그곳의 고요한 해변가를 그려보세요. 갑자기 바람이 부는 것은 여러분이 맵고 짠 음식을 그래선 안 되는 시간에 먹기 때문입니다. Please be Calm guys, Okay?
 
3. 과민성 대장증후군 환자에게 내려진 유일한 동아줄, 유산균
썩은 동아줄에 몇 번을 속는다 해도, 우리는 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치료법이 없는 과민성 대장증후군 증상을 드라마틱하게 개선할 수 있는 단 한가지 방법이 바로 꾸준한 유산균 섭취입니다. 어떤 유산균을 골라야 하는지는 따로 공부하시길 바랍니다.
가장 중요한 건 본인에게 맞는 유산균을 고르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먹는 유산균이 효과 좋을 확률이 높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도 유산균을 열 종 이상 섭취하고 나서야 한 제품에 정착한 상태이니까요. 잘 알려진 제품은 아니고 정관장에서 만든 유산균이었습니다. 어버이날에 홍삼 사면서 하나 집은 유산균이 제 똥내나는 여정 중 길고 긴 유산균 섭취의 종착점이라니… 인생 무상이지요.. 오해하지 마세요. 아무거나 드시라는 게 아닙니다. 요지는,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까지 보시고 꾸준히 돈과 시간을 투자하셔야 한다는 겁니다.
새로운 유산균을 시작할 때 일시적으로 증상이 더 심해진 경우도 있지만, 전부 2주 이내 평소로 돌아갔습니다. 한 제품당 최소 두 달은 드셔 보세요.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어차피 평생 달고 다닐 과민성 대장증후군, 똥롤레타리아의 인생에서 몇 년의 시행착오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지 않나요?
 
4. 규칙적인 생활패턴을 가져라
백 퍼센트 효과를 봤다고 장담할 수 있는 건 위의 세 가지 뿐입니다. 몇몇 분들은 의구심을 가지실 수 있습니다. ‘규칙적인 운동은 어디 간 거야 이 똥쟁이 자식아’
오우 맨~ 진정하라구~ㅎㅎ.. 저도 몇 년째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하고 있지요. 그러나 규칙적인 운동이 과민성 대장증후군 개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고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규칙적인 생활 패턴을 만드는 데 운동이 도움이 되긴 하죠. 그러나 운동, 특히 웨이트 트레이닝은 몸의 과도한 긴장을 유발해 오히려 부정적인 장 증상을 몇 차례 유발하였습니다. 따라서 저는 맨몸 운동 위주로 운동하며, 좀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운동은 규칙적인 생활에 도움을 줄 뿐, 다이렉트한 과민성 대장증후군 증상 해소법은 아니라고 판단합니다.
제가 굳이 마지막에 운동 이야기를 꺼내서 긁어 부스럼을 낸 이유가 있습니다. 유산균만큼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운동은 선순환의 시작입니다.

운동을 한다 -> 기왕 운동 했으니 건강식으로 먹어야지 -> 아 몸이 좀 좋아진 것 같은데? -> 바뀌는 내 모습에 더 열심히 운동하고 더 건강하게 먹는다…

이 선순환 구조에 들어서야 합니다. 과민성 대장증후군 환자는 상상 이상으로 인생을 비효율적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정말 슬픈 일이지요… 대변기에 앉아 있는 시간, 긴장된 괄약근에 집중하지 못하고 고통 받는 시간… 시간으로 환산하면 일 년에 얼마일까요? 똥롤레타리아 여러분들은 똥르주아보다 규칙적으로 생활해야 합니다. 허비하는 시간을 메우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기 위한 필수조건이 바로 ‘운동’이라는 해답에 도달하였습니다.
 
위 네 개를 다 실천하는 삶은 정말 피곤해 보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원래 과민성 대장증후군 환자의 인생은 피곤합니다. 그걸 개선해서 이후의 삶이 덜 피곤해지느냐, 아니면 어딜 갈 때마다 화장실 갈 타이밍을 잡고, 부글부글 끓고 가스차는 장 때문에 학업, 일, 운동, 자기계발 전반에서 방해받느냐. 그 차이입니다. 부디 편안한 장 컨디션이 지속되는 삶의 높은 질을 경험하시길 바라며…
여기까지 읽어 주신 여러분들 중 질문이 있다면 가능한 한 답변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Farewell.
 
어디에나 있는 귀차니스트를 위한 세 줄 요약
1. 과민성 대장증후군은 완치는 불가능에 가까우나, 꽤 많은 개선은 가능하다.
2. 안 맞는 음식 기록하며 데이터 축적하고, 자극적인 음식 줄이고, 유산균 먹고, 규칙적으로 살아라.
3.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앓는 것 자체가 인생의 큰 낭비이다. 발 벗고 개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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