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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변태(變兌)
게시물ID : panic_10052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r.사쿠라
추천 : 8
조회수 : 1527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9/07/20 23:4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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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갱!”
커다란 짐승의 울음소리가 온 골목길에 울려 퍼졌다.
씨발...... 씨발....... 씨이발........!”
남자의 얼굴 양 옆에서는 식은땀이 폭포가 되어 흐르고 있었다. 오른손의 잇자국도 폭포처럼 피를 흘렸다. 머리가 띵했다. 잇자국은 비단 오른손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양 발과 양 다리가 발톱과 이빨로 선명했다.
그날의 잔상이 그의 눈에 겹쳐 보였다. 얼룩진 외투와 싸늘한 여자, 그리고 피가 흐르는 소주병.
....... 으으........”
쓰러진 여자는 신음을 흘리며 어두운 골목 바닥 위에서 죽지도 못하고 꿈틀거린다. 하지만 그건 남자의 안중에도 없다. 그는 덜덜 떨면서 오른 손의 녹색 소주병에 묻은 피를 보고 덜덜 떨며 굳센 담벼락에 그것을 내던질 뿐이다.
으아아아아아!”
남자는 그 길로 내달린다. 그가 뿌옇게 흐려가는 여자의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나자 여자는 비로소 피를 안식에 잠긴다.
이윽고 여자가 땅에 그린 그림은 서서히 날아오른다. 화려한 색깔과 기괴한 날개를 가진 몽환적인 세계에서. 끝내 그림은 서서히 커지더니 징그러운 입을 벌리며 도망갈 수 없는 남자를 붙잡아 한 입에 집어삼킨다.
*
으아아!”
남자는 악몽과 함께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른손은 어제의 피가 채 말라붙지도 못했고 허리의 자상과 다리의 무수한 상처에서 나온 피 때문에 때가 누렇게 탄 흰 이불은 울긋불긋 단풍처럼 물들어 있었다.
이런 씨부랄.......”
태양은 어느새 중천을 넘어 서서히 지기 시작하였다. 남자는 어젯밤 난데없이 튀어나온 거대한 개에게 물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개가 오른손을 문 찰나에 간신히 벽돌로 개의 머리를 부수고 집으로 도망 온 터였다.
남자는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 절대로 우연이 아니었다. 이런 일이 벌써 다섯 번째였기 때문이다. 남자는 약 반년 전 그날이후로 무언가에 습격받고 있었다.
처음엔 어디선가 파리가 날아와 공복감을 느끼던 그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 토해내려고 목젖을 만져봐야 헛구역질만 나왔다. 간신히 토악질을 해내 보아도 위액이 아주 조금 섞인 물 몇ml만 망가진 수도꼭지에서 새어나오듯 아주 조금 흘러나왔을 뿐, 텅 빈 위 속에선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남자는 영 찝찝하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두 번째는 파리 사건이 있은 지 바로 다음 주였다. 시골에 내려간 남자는 기와집의 지붕을 바라보고 있었다.
짹짹! 짹짹!”
처마 밑에는 제비가 둥지를 틀고 있었다. 갓 태어난 새끼들은 시끄럽게 지저귀며 어미 제비에게서 먹이를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어우, 제비네.”
그중 한 마리는 제비 새끼치곤 유독 컸다. 메추리알만 하던 새끼들 중에서 거의 병아리만 한 크기의 새끼 한 마리가 먹이를 독차지하고 있었다.
째액! 째액!”
남자는 유독 커다란 제비 새끼를 보고는 저게 뭐야. 더럽게 크네. 저런 걸 군계일학이라고 하는 건가? 크크크크.”하고 웃으며 즐거운 눈빛으로 제비 둥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커다란 새끼가 날개를 퍼덕이며 소리쳤다.
째액!”
날개를 펼친 만큼 둥지는 좁아졌고, 누군가는 둥지를 떠나야 했다. 다른 제비새끼 한 마리가 둥지 밖으로 내동댕이쳐 정확히 남자의 눈 위로 떨어졌다.
으악!”
남자는 운이 없었다. 제비의 부리가 정확히 떨어져 남자의 오른 눈의 각막을 찢어발겼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떨어진 제비새끼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행히 실명을 면했을 뿐, 그로부터 두 달간 오른 눈으로 앞을 보지 못했다.
세 번째는 이 두 달 사이에 벌어졌다. 남자는 치료를 위해 주기적으로 안과를 들려야 했다. 그러던 어느 한 주. 남자는 예비군 동원 훈련을 나가며 안약을 챙겨가던 차에 저도 모르게 그만 안약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안약을 3일 동안 넣지 못했다. 게다가 훈련을 다녀온 뒤 다시 안과를 찾는 날이 오기까지 안약을 넣어야 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랬기에 각막의 상처가 괴사하고 말았다.
이거, 정말 큰일 났는데요?”
안과의사가 말했다. 안과의사는 큰 병원을 남자에게 소개해 주었다. 남자는 동네에서 버스로 두어 시간이나 걸리는 큰 병원까지 가야했다. 큰 병원의 의사는 안과의사의 소개장을 받자마자 즉석에서 수술동의서를 뽑아 내 주었다.
수술비는 상당한 액수였으며 몇 시간 걸리지 않고 사후처리만 잘 하면 되는 수술이었지만 실명할 확률이 무려 30%였다. 방도가 없던 남자는 어쩔 수 없이 즉시에서 예금을 털어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은 별 탈 없이 진행되어 성공했지만 상당히 오래 걸린 탓에 시간은 벌써 밤. 버스는 끊긴데다가 애초에 돈은 오갈 교통비 정도만 있고 병원의 근처에는 사우나도, 모텔도 없는, 작은 교회 하나와 주유소를 제외하면 전부 밭이며 논인 시골이었다.
추운 늦가을의 밤, 병원에서 밤을 지셀 수도 없었기에 남자는 사정사정해서 주유소의 의자 위에서 잠시 눈을 붙이게 되었다.
그리고 세 번째. 주유소 사무실 끝 작은 창문 밖으로 달빛에 비쳐 거무스름한 형체가 보였다. 고양이였다. 고단했던 남자는 장난기가 생겨 벽 쪽으로 다가가더니 작은 창문을 눈 깜짝할 새 드르륵 열었다.
!”
거무스름한 형체가 떨어졌다. 고양이였다. 하지만, 썩어 문드러지고 말라붙어 여기저기 구더기가 기어 다니는 그걸 과연 고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애초에 그게 과연 있긴 했던 것일까? 남자의 비명에 놀라 달려온 주유소 주인은 씩씩 화를 냈다. 남자는 무안한 마음에 밤을 지새우듯 보내고 말았다.
그렇게 남자가 내지르는 비명과 함께 네 번째의 아침이 밝아왔다.
찌직....... ....... 찌찍......”
이상한 울음소리와 얼어붙은 발끝에 맺히는 따끔함. 실눈을 떴을 떼에는 시궁쥐 세 마리가 발에 붙어서 신발과 함께 발을 뜯어먹고 있었다.
으아악! 씨발!”
남자의 거센 헛발질에 시궁쥐는 모두 떨어져나갔다. 잠이 깬 남자가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시궁쥐는 온데간데없었다.
눈이 다 낫게 된 날부터 남자는 꿈을 꾸게 되었다.
깜깜하고도 답답한 어둠 속. 남자는 나가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아가야 이리 온....... 아가야 이리 온.......”
여자의 목소리는 끝없이 들려온다. 여자의 목소리는 께름칙하지만 남자는 하는 수 없이 한없이, 한없이 발버둥을 쳐 가며 자신을 감싸는 어둠을 벗어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한 줄기 보라색 섬광이 남자의 시야에 들어오고는 잠에서 깨어나고 만다.
으윽....... 씨발.......”
남자는 매일 밤마다 이 악몽을 꾸게 되었다. 게다가 이 꿈을 꾸고 나면 언제나 어마어마한 두통에 시달리고 말았다. “아가야 이리 온하는 여자의 목소리는 갈수록 선명하고도 기괴해져 갔고 자신을 비추는 보라색 빛의 길이도 더더욱 길어져만 갔다. 뼛속부터 각인돼 있는 남자의 원초적인 공포감이 그를 잠식해 나갔다.
이렇게 되면......’
남자는 해결책을 찾아냈다. 이런 일과 밀접한 지인에게 상담을 받는 것이었다. 남자는 몸을 일으켜 나갈 채비를 갖춘 뒤 마을 상가 끝 중국집 2층의 그 집을 찾아 나섰다.
십여 분 뒤, 남자는 시큰거리는 몸을 이끌고 중국집에 당도했다. 그리고 절뚝거리며 중국집 옆으로 나 있는 계단을 위태롭게 걸어올라 2층의 한 사무실의 철문 앞에 다다랐다.
남자가 초인종을 누르자 안에서는 들어와-!” 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백발에 적안, 의사 가운을 입은 이 집, 이 사무실의 주인 권재호와 남자의 동아리 후배인 김성일이었다. 권재호는 언제나처럼 동태마냥 맹 하지만 무척이나 날카로운 눈으로 남자를 주시했고 유순하던 김성일은 어째서인지 경계하는 듯 움츠러든 자세와 정색하는 눈초리로 탁자 위의 플라스틱 통을 안고 있었다.
휴학 냈다며.”
권재호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남자는 침묵으로 긍정했다.
많이 다쳤군.”
권재호가 말했다.
....... 길 가다 개한테 물려서요.......”
남자는 사실대로 둘러댔다. 그리고는 탁자 오른 편, 다시 말해 김성일의 맞은편에 착잡한 표정으로 앉았다.
선배도 부른 거예요?”
성일이 물었다.
맞아. 생각보다 빨리 왔군.”
권재호는 능청스레 대답했다.
쟤한테도 보여줘.”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검지로 김성일이 안고 있는 플라스틱 통을 가리켰다. 김성일은 탁자 위로 살며시 통을 내려놓았다.
이게....... 뭐죠......?”
남자는 조심스레 통을 들어 올려 안의 것을 보았다. 안에는 알록달록한 털이 북슬북슬하게 나 있는 통통한 짐승이 남자와 시선을 마주보며 당당히 앉아 있었다. 자세히 보니, 벌레였다. 커다란 날개를 보아하니 나방이었다. 남자는 입 안에서 비명을 지르며 플라스틱 통을 거의 떨어트리듯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메이플 로지 나방.”
권재호가 말했다.
북미 일대에 서식하는 녀석이지.”
권재호는 그렇게 말하곤 통 위의 자그마한 미닫이 뚜껑을 열어 나방을 밖으로 꺼냈다.
이런 거 수집하는 친구가 잠시 맡아 달래서 말이야.”
나방은 얌전히 권재호의 손가락 위에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는 마치 잉꼬나 모란앵무처럼 권재호의 쓰다듬는 손가락을 즐기며 애교를 부렸다.
자세히 보면 귀여워요.”
김성일도 같이 나방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은주 선배라면 이런 거 엄청 좋아했을 텐데.......”
김성일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여자의 이름을 꺼냈다. 그와 동시에 원망과 분노가 섞인 곁눈질로 남자를 훑어보았다.
맞다, 성일아. 너 어디 가야한다고 하지 않았냐?”
권재호는 무표정인 그 상태에서 눈알만 굴려 김성일을 바라보았다.
, . 토익 학원이....... 그런데 6시라서 아직 한참.......”
그만 일찍 가.”
권재호는 강압적인 태도로 김성일의 말을 끊어 쏘아붙였다.
거기 선생은 늦으면 엄청 쪼니까 말이야.”
그리고 넌지시 농담을 건네듯 한 마디 보탰다.
.......”
성일은 눈치를 알아듣고 자신이 앉은 소파의 가방 지퍼를 닫고 짐을 챙기고는 안녕히 계세요!”하며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갔다. 성일의 발소리가 끊기자 재호는 나방을 통 안에 넣으며 다시금 남자를 응시했다. 그의 새빨간 동태눈의 초점은 마치 이 우주 바깥에 맞춰져 모든 것을 직시하는 악마의 눈과도 같았다.
재호는 남자의 상처를 봐 주겠다며 남자를 그대로 소파에 눕혔다. 그리고는 책꽂이 밑에 놓인 검은색 왕진가방을 가져와 열며 남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옷 자를까?”
그냥 벗을게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곤 몸을 일으켜 피로 얼룩진 상하의를 벗고 개어내 속옷 바람으로 소파에 누웠다. 갈비뼈가 여덟 개나 드러난 깡마른 그의 몸뚱이 여기저기에 간밤에 개에게 물린 상처가 곳곳에 보였다. 권재호는 상처 부위마다 알코올 솜과 연고, 반창고를 붙여주었다.
다행히 꿰맬 만한 상처는 없군.”
그가 말했다.
.......”
치료가 계속되는 와중에도 남자는 플라스틱 통 안에 갇힌 나방을 끝까지 주시했다.
말 못할 고민이라도 있나?”
권재호가 물었다. 남자의 의표를 찌르는 정확한 질문이었다.
.......”
남자는 지난 반년 간 주기적으로 크고 작은 봉변을 당하고, 자신이 답답한 곳에서 나가는데 어쩐지 찜찜한 느낌이 남는 악몽을 꾼다고 권재호에게 말했다.
악몽이란 말이지.......”
권재호가 말했다.
그게 왜 악몽이 되지? 결국 어둠을 뚫고 빛을 맞이한다는 거잖아. 길몽이면 길몽인데, 악몽이 되긴 좀 어렵다 생각하는데?”
권재호가 팔뚝의 다소 깊은 마지막 상처를 소독하며 물었다.
그렇지만.......”
남자는 에탄올에 따끔하게 작은 신음을 내고는 말을 이었다.
뭔가 기괴해요........ 여운이 남는다구요....... 그게 절대로 길몽이라고 느낄 수 없는, 찜찜하고 기분 나쁜 여운이.......”
남자는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윽고 권재호는 마지막 상처에 연고를 다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며 말했다.
드림캐처 같은 거라도 한 번 써 봐봐. 마침 집에 하나 있는데, 가져가. 효과야 장담 못 하지만.”
치료는 그렇게 끝이 났다. 바깥은 어느새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창고에서 드림캐처를 꺼내 온 권재호는 찬바람을 쐬며 창가 밖 불이 꺼진 상가의 풍경을 바라보곤 남자에게 말했다.
늦었다. 아플 텐데 자고 가라, 그냥.”
. 감사합니다.......”
권재호는 자신의 방에 들어가서 베게와 담요를 한 장 꺼내 남자에게 덮어주었다. 가운데 하얀 보석 장식이 박힌 드림캐처는 머리맡 소파 팔걸이에 살짝 올려두었다.
잘 자라.”
권재호는 그렇게 말하고는 불을 껐다. 남자는 깨어난 지 불과 몇 시간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안도감에 곯아떨어졌다.
여긴....... 꿈속........’
사방이 어둠이다. 공기로부터 전해져 오는 답답함 또한 느껴진다. 그렇다. 남자가 매일 꿔 오는 악몽 속이다. 남자는 몸부림을 치고, 또 친다. 어느새 남자의 주위를 감싸던 답답함의 공간 저 끝에 균열이 생기더니 서서히 빛이 남자에게로 비춰진다.
아가야 이리 온....... 아가야 이리 온........‘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그것도 점점 더 크게, 점점 더 선명하게. 하지만 남자는 탈출을 멈출 수 없다. 그저 조금 더 빨리 균열을 찢어내 더 많은 빛을 쬐려는 본능을 따를 뿐이다.
이윽고 남자는 자신을 가두는 그 답답함의 공간에서 완전히 벗어나 기괴한 보랏빛이 자신을 비추는 바깥으로 탈출했다.
....... 드디어.......’
남자는 알지 못할 쾌감과 만족감에 젖어 자신의 탈출에 대해 미소를 지었다.
아가야 이리 온....... 아가야 이리 온.......”
순간, 잠시 잊고 있었던 여자의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뒤에서 서서히 다가왔다. 여자의 목소리는, 아니 여자는 수많은 다리로 살금살금 뒤에서부터 남자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남자는 도망가려 했지만 도망갈 수 없었다. 다리가 무언가에 꽉 묶여서 움직이지 않았다. 여자는 남자를 뒤에서 덮치지도 않고 몸소 앞으로 돌아가 남자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리고 남자는 깨달았다.
그는 저 잔혹한 포식자로부터 도망칠 수 없는 몸이란 것을. 마치 거미줄에서 고치를 튼 멍청한 누에나방의 꼴이 되었다는 것을.
*
넌 저 꼴 나지 않아서 다행이구나. 그치?”
권재호는 통 안의 화려한 나방을 꺼내 손 위에 올려놓고 쓰다듬으며 말했다. 주황색 가로등이 비춰지는 건물 외벽에 쳐진 거미줄에는 하필이면 그곳에 고치를 튼 아둔한 누에나방이 우화와 함께 벌벌 떨며 최후를 맞이하고 있었다.
재호 씨.......!”
성일이 철문을 다급히 열어 재끼며 권재호를 찾았다.
마침 잘 왔다.”
그리고는 권재호는 검지로 건물 외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진귀한 광경이지 않냐......?”
텅 빈 소파 앞에 서 있는 김성일을 보며.
*
아메리카 인디언인 스쿠쿰족은 캐나다에서부터 미국으로 머나먼 길을 이주해왔다고 한다. 이들은 주술을 제 1문화로 삼았으며 아울러 제 1계급 또한 주술사였다.
이들의 문화는 다소 특이했는데, 들소, 쿠거, , 독수리, 늑대 등의 털 난 짐승을 섬기는 여타 부족과는 달리 곤충에 주술적인 의미를 많이 담았다고 한다.
긍정적인 예로는 아름다운 나비는 사랑을, 단단한 풍뎅이는 강인함을, 날카롭게 먹이를 사냥하는 사마귀는 용맹함을, 몸을 숨기는 대벌레는 지혜로움을 상징했다. 반면 곡식을 먹어치우는 메뚜기는 탐욕스러움을 상징했고 인분(鱗粉)을 뿌리며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나방은 사악함과 광기, 저주를, 함정을 파 놓고 먹이를 잡는 거미는 죽음과 공포, 포획을 상징했다.
예를 들어, 대벌레 위에 올라탄 사마귀는 용맹한 우리 부족이 꾀 많은 적을 제압하리라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북미 인디언들의 공통적인 부적인 드림캐처도 이들에겐 악몽을 내쫓는 게 아닌 애도나 무언가를 붙잡는다는 의미로 쓰였다.
스쿠쿰족은 나바호족의 이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한명도 안 남았다. 이 이야기를 전해준 마지막 스쿠쿰 노인의 말에 따르면, 나바호로 장가를 온 후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했었으나 고향 사람들은 전부 사라져 마을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고 한다.”
권재호가 양피지로 쓰인 영자 책을 즉석에서 한글로 읽고 덮었다.
! 대단해요, 재호 씨! 저희는 영어동아리인데도 해석하는 데만 며칠이나 걸렸는데.......”
여자가 재호의 영어 실력에 감탄하며 말했다.
제대로 잘 사왔죠? 아메리카 원주민 관련 고문서. 드림캐처도.”
그러게.”
권재호가 미소를 슬며시 지으며 대답했다.
그럼 이만 저희는 회식하러 가 보겠습니당!”
여자와 동아리 부원들은 재호의 사무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회식은 분위기가 무르익었고 김성일과 다른 부원들은 집에 돌아가고 어느새 남자와 그 여자, 둘만 남아 포장마차에서 2차를 하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서서히 소주를 먹이며 완전히 넘어가게 만들었다.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여자를 네온사인의 불빛이 가득한 홍등가의 밤거리로 이어지는 골목길로 끌고 갔다. 그러는 순간, 여자는 그만 술이 깨 정신을 차리고는 남자를 뿌리치고 골목길을 벗어나려 했다. 그러던 중, 어느새 둘은 말다툼을 하게 되었고 급기야 남자는 깨어진 소주병으로 여자를 죽이고야 말았다.
얼룩진 외투와 싸늘한 여자, 그리고 피가 흐르는 소주병.
....... 으으........”
쓰러진 여자는 신음을 흘리며 어두운 골목 바닥 위에서 죽지도 못하고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런 여자는 남자의 안중에도 없다. 그는 덜덜 떨면서 오른 손의 녹색 소주병에 묻은 피를 보고 덜덜 떨며 굳센 담벼락에 그것을 내던질 뿐이었다.
으아아아아아!”
남자는 골목길 저 끝으로 도망가고, 또 도망쳤다. 여자는 시멘트가 굳어 있는 바닥에 자신의 몸에서 흐르는 피로 그림을 그려냈다.
*
정은주 실종 후 7. 정은주를 마지막으로 봤다는 길목에서 성일과 재호는 서 있었다.
재호 씨.......”
아직 그날의 핏자국은 선명히 남아 있었다. 꿈틀거리는 정은주가 그려낸, 스쿠쿰 일족의 그림이.
이 그림....... 뭘 뜻하는지 아시나요......?”
성일은 눈물을 삼키며 겨우 물었다. 통통한 몸통에 넓은 날개가 달린 벌레가 거미줄에 앉아있는 이 그림. 권재호는 침착하게 말해주었다.
거미줄 위의 나비. 스쿠쿰족에게 나비는 사랑을, 거미줄, 그러니까 거미는 죽음을 상징해. 다시 말해. 죽을 때까지도 연인인 너를 잊지 않겠다는 뜻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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