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게에서 자신의 주장을 통해 토론과 정보를 공유하는 장소입니다. 따라서 서로 주장이 상반되는 경우에 종종 이러한 갈등은 과열될 수 있으며 종종 상대에 대한 비난이나 무시하는 어투가 섞여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모두 클린유저 차원의 제제 대상이자 역게에서 금하는 태도입니다.
1) 유저들에 대한 비난 유형
역게에서 가장 종종 나오는 유저 비난의 유형은 크게 2가지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첫번째로 '친일파' '식민사관학자' '매국노' 등의 유형입니다. 주로 유사사학을 주장하시는 분들에 의해 주장되는 부분으로 과한 민족주의에 의하여 상대를 일제에 부역한 식민사관학자들과 동격으로 두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파쇼집단' '국뽕' 등의 유형입니다. 첫번째 사례와는 다르게 과한 탈민족주의에 의하여 상대를 한국 민족주의에 경도된 파시즘과 동격으로 두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비난의 유형이 있으나 크게 위에서 상술한 2가지로 나뉘어 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토론과 정보공유를 주 목적으로 하는 역게에서 상대에 대한 위와 같은 비난들은 정도를 넘은 것이며, 제제의 대상이 됩니다.
2) 특정 유저들에 대한 과한 별칭들
대표적인 별칭으로 '환빠' '국빠' '일빠' '일뽕' '일까' '조선까' '중뽕' '중까' 등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별칭의 사용은 건강한 토론 혹은 그릇된 주장에 대한 정상적인 반박 이전에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며 옳바른 토론을 위한 기본적인 태도를 무너뜨리게 됩니다. 결국 이러한 별칭들은 그들을 인격적 혹은 감성적으로 비난하는 것이며 이성적인 토론과 판단을 최우선으로 삼는 역게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표현들입니다.
4장 역사게시판의 쟁점과 해설
이 장은 지금까지(2014년 3월 기준 *가이드 수정마다 날짜수정 요) 역게에서 논의가 되었고 크게 쟁점화 되어 다양한 목소리가 나왔던 몇가지 주제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고 해당 주제에 대한 간단한 해설을 소개하는 장입니다.
4-1 학계
역사를 연구하는 교수진을 비롯한 연구원들의 논문이나 새로운 유물등이 발표되고 다양한 전문가에게 평가받고 논의되는 학술적인 집단들을 관용적으로 부르는 명칭입니다. 이렇게 학계에서 논해지는 내용이야 말로 이곳 역게에서 논해야 마땅한 내용들이며, 학계로 인정받지 못하는 단체들의 주장은 설령 그것이 논문이나 전문서적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신빙성이 없으며 이곳 역게에서 논하는것을 지양해야만 하는 것들입니다.
1) 대표적인 학술단체 소개 (1)한국고대사학회 http://www.koreaancienthistory.net/ 1987년에 발족한 한국고대사를 위한 학술단체로 "한국고대사연구"라는 학회지를 매년 4분기로 나누어 발간하고 있습니다. 해당 학회지는 회원가입시 무료로 웹에서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2)한국서양사학회 http://www.westernhistory.or.kr/ 1957년에 발족한 서양사연구를 위한 학술단체로 "서양사론"이라는 학회지를 매년 4분기로 나누어 발간하고 있습니다. 해당 학회지는 회원가입시 무료로 웹에서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3)동양사학회 http://www.asiahistory.or.kr/ 1965년에 발족한 동양사연구를 위한 학술단체로 "동양사학연구"라는 학회지는 매년 4분기로 나누어 발간하고 있습니다. 주로 중국사의 연구가 주를 이루나 간간히 비 중국권의 연구도 찾아볼수 있는 학술단체입니다. 해당 학회지는 회원가입시 무료로 웹에서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4) 역사학회
http://www.kha.re.kr/
1952년 3월 1일, 임시수도 부산에서 처음 발대한 이 학회는 설립된 同學의 士를 규합, 국내 사학계의 결속을 공고히 하고, 밖으로 국제적인 광범한 제휴를 하여 역사학 건립의 초석을 세우고자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를 연구하는 모든 국내 사학자들의 단체이고 현인원은 약 천여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주된 활동으로는 국외 학회와의 학보 및 도서교환을 기반으로 현재 일본·대만·미국·영국·프랑스·네덜란드 등 22개의 주요 학회와 대학의 연구기관들과 교류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회원들의 공동연구와 편찬사업을 추진중입니다.
(5) (사)한국건축역사학회
http://www.kaah.or.kr/
1989년 첫 학술모임을 가진 뒤 한국의 건축사에 대한 논문발표 및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곳입니다. 학회지와 논문 등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6) 한국고고학회
1976년에 발족된 한국고고학을 위한 학술단체로 "한국고고학보"를 학술지로 발간하고 있다. 홈페이지에서는 가입을 특별히 하지 않아도 2014년 3월 기준으로 17571건의 고고학문헌정보를 웹으로 서비스 하고 있다.
2) 자료 및 주장의 신뢰성이 낮은 단체들 (학계로 인정 받지 못하는 단체들) (1)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부설 국학연구원 http://kukhak.ube.ac.kr/index.asp 풀네임으로는 아무리 검색해도 좀처럼 검색조차 안되는 사이트를 홈페이지로 가진 가짜 학술단체. 2003년에 국제평화대학원대학교 부설 선도문화연구소에서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학회지로 "선도문화"를 출간하고 있습니다. 해당 단체는 비단 역사 뿐아니라 선도나 단전호흡과 같은 유사과학이나 사상을 연구하는 단체로 환단고기의 총아와도 같은 곳입니다. (2) 국학원 http://www.kookhakwon.org/Default.aspx 일전에 "우리역사바로세우기운동"이라는 기상천외한 켐페인을 벌였으나 별거 없는 가짜 학술단체. 1980년에 공원에서 '단학기체조운동'을 주도하던 단체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특별히 학회지는 없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국학연구원과 함께 종종 가짜 학술회의를 가지는 단체입니다. (3) 한민족참역사 http://cafe.daum.net/khankorea/ 그냥 다음 카페입니다. 인터넷 환단고기 추종자들의 성지와도 같은 곳으로 운영진의 소개에 따르면, 삼우라는 사람이 '연사'라는 참역사가 쓰여진 역사서를 발견해 이를 추종하고 따르는 단체입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조선은 화교국가이며 우리의 역사가 아닙니다. 하지만, 연사를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이를 요구하는 회원들을 일방적으로 차단하는 유사사학집단에 불과합니다. (4) 삼태극 http://cafe.daum.net/mookto/ 그냥 다음 카페입니다. 위의 한민족참역사 처럼 환단고기를 추종하는 집단이나,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앙숙이라고 합니다. 가장 전형적인 환단고기 추종단체입니다. (5) 우리역사의비밀 http://www.coo2.net/ 대표적인 환단고기 추종자들이 서식하고 있는 사이트로, 유사사학을 신봉하는 단체들입니다.
(6) 디씨 역갤
http://gall.dcinside.com/board/lists/?id=history
디씨를 정식 학술단체로 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일부 유저들이 종종 인용하는 자료들이 양산되는 곳입니다. 이곳의 자료는 극히 친일적이고 식민주의적 사관 뿐만 아니라, 파시즘과 반윤리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고, 그 내용 중 어느 하나도 정식으로 다룰만한 가치가 없다고 단언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곳의 자료를 인용하시는 것은 주장하는 바에 대한 신뢰성을 급감시킬 수 있습니다.
(7) 환단고기
대표적인 사이비 종교단체인 증산도에서 운영하는 상생출판에서 '환단고기' 출판을 기념하고 '환단고기 Book콘서트'를 진행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유사사학 사이트입니다. 사실상 학술단체라고 부를수 없는 단체이지만, 몇몇 관리자에 의하여 환단고기와 관련된 게시물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1) 유사사학이란? (1) 유사사학에 대한 정의
위키피디아의 설명에 따르면, 의사 역사학(擬似歷史學, pseudohistory) 또는 유사 역사학(類似歷史學)은 역사인 듯하나 공인된 역사 기술의 관습을 따르지 않고 그 결론을 훼손하는 주장을 낮추어 이르는 말입니다. 새롭고 확실하지 않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는 역사적 증거로 국가·정치·군사·종교 등에 대한 쟁점이 되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경우에 지칭되며, 역사학의 범주에는 속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유사사학 집단들은 스스로를 일명 재야사학이라 부르며, 기존의 학계를 강단사학이라 칭하여 서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본래 재야사학의 사전적인 의미를 따르자면 향토사를 연구하시거나 강단에 속하지 않은 그야말로 진짜 재야의 은둔고수들의 사학을 이른다고 할것이나 현재는 주로 유사사학자들을 이르는 관용적인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사사학에 빠지지않고 향토사 등을 연구하시는 선량한 분들도 계시는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유사사학자들을 상대로 재야사학자라고 칭하는 것은 자제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 유사사학자의 대다수는 역사 전공자가 아니며, 주류 한국사학계와 다른 해석을 많이 내놓고 있습니다. 일부 유사사학자들은 필사본 화랑세기 혹은, 중국 지명과 한국 지명의 어원적 유사성이나 기타 천문, 날씨 등의 기록과 같은 논란이 있는 저서들이나 기록, 혹을 위서로 판명된 환단고기 같은 서적을 眞書로 가정하고 논리를 전개하기 때문에, 기존 역사학계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스캡틱의 사전"이란 책에서는 이 유사사학에 대해서 몇가지 특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이비 역사학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는 역사학이다.
- 신화나 전설, 이야기 등 문학상의 기술을 문자 그대로 사실로 보는 것
- 고대의 역사가가 말하는 것을 무비평적으로 전혀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것, 그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고대의 주장에 반대되는 경험적, 논리적 증거를 무시하는 것
- 사실의 발견, 즉 과거에 정말로 일어난 것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특정 정치적, 종교적인 문제를 지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
- 진리는 절대적으로 올바른 것이며 절대적으로 올바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극단적인 회의주의적인 개념에 집착해서 역사의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
- 역사는 단지 신화창조일 뿐이고, 서로 다른 역사는 정확성이나 경험적 개연성, 논리적 일관성, 타당성, 완결성, 공평성, 성실성 등의, 전통적인 학문적 기준으로 비교할 수 없으며, 도덕이나 정치의 입장에서 비교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것
- 고대의 문헌을 선택적으로 이용해, 자신의 agenda에 적절한 것만을 인용하고 그들과 맞지 않는 것은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것
- 어떠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자기의 주장과 일치하면 충분히 믿을 만 하다고 주장하는 것
- 인종차별이나 무신론, 민족 우월주의, 혹은 정치나 종교적 agenda 에 반대된다는 이유로 자기들의 주장을 억압하는 음모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
http://skepdic.com/pseudohs.html
http://rathinker.co.kr/skeptic/pseudohs.html (번역본) 위의 특징에 따르면 유사사학이란 역사란 '학문적이지 못하고, 도덕적인 측면에서 고려해야만 하며 동시에 필요한 부분만 문헌을 뽑아서 사용해도 되는 요상한 학문입니다.' 조금더 상술하자면 '논리적인 증거보다는 종교적이거나 정치적인 개념에 집착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억압하는 음모가 있다고 주장하는 음모론'이 그들이 주장하는 '역사'가 됩니다.
한국에서는 주로 환단고기 추종자들에 대해서 쓰이는 표현이며 인터넷 상에서 '초록불'이란 블로거가 처음 사용하기 시작하여 점차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2) 유사사학의 위험성
유사사학은 일단 역사가 아닙니다. 이미 위에서 정의내린 것처럼 다분히도 비 이성적이고 광신적이며 음모론에 가득찬 구성으로 이루어진 사이비학문입니다. 그런 관계로 유사사학은 사학의 正道가 아닙니다. 한마디로 역사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이 유사사학이란 毒중에서도
極毒이라는 소리가 됩니다. 하지만 본 게시판은 역사를 전공하는 학자들만의 게시판이 아닌 관계로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뒤로 넘겨 두고 일반인들에게 피해가 갈수 있는 점에 대해서 언급해 보겠습니다.
첫번째, 옳바른 역사지식 함양의 문제, 유사사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입니다. 대표적인 한국의 유사사학인 환단고기는 고조선 이전의 환국을 설정하고 인류문명의 모체를 거기서 찾고 있습니다. 또한 여기서 더 나아가 고조선을 위대한 나라로, 현 중국이 차지한 대륙을 경영했던 나라로 추앙해 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것들은 근거가 없는 '거짓말'입니다. 역사적인 지식이 부족할수 있는 일반인들에게 환단고기는 가상으로 지어낸 역사를 진실인양 호도해 전달하고 있으며 옳바른 역사 지식을 갖추는데 방해를 하게 됩니다.
두번째, 역사를 말하는 사람에 대한 모욕, 어느 학문이든 전공하고 연구하여 결과를 낸 학자들에 대해서는 그에 합당한 대우와 공경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들의 연구를 논의하고 비판할것은 비판하여 양질의 정보를 나누는 것이 그들에 대한 합당한 대우이자, 이곳 역게에서 이루어져야하는 당연한 것입니다. 헌데 유사사학자들의 경우 이들의 연구를 깡그리 무시하며 동시에 자신들의 주장을 이들이 억압 한다는 식의 음모론을 만들어 냅니다. 특히나 한국의 환단고기 추종자들의 경우에는 한국 학계의 학자들을 '식민사학자'로 모독하고 그것을 따르는 역사교사 및 일반인들에 대해서도 '식민빠' 혹은 '매식자'라고 칭하며 비난의 화살을 돌리곤 합니다. 이는 정상적으로 역사를 연구한 학자들에 대한 모독이자 그것을 따르며 양질의 정보를 공유하고 토론하는 일반 유저들에 대한 모욕입니다.
세번째, 과도한 패배의식, 유사사학들의 경우 대부분이 고대의 찬란했던 역사를 그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외국의 유사사학자 '그레이엄 헨콕'은 남극과 대서양 한가운데에 침몰한 고대 문명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현대의 문명에서도 이룰수 없었던 환경에 대한 극복을 고대시대에 이루어낸 것입니다. 한국의 유사사학 환단고기에서도 위대한 고대 문명을 이야기 하는데, 이러한 유사사학이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찬란한 고대에 비하여 볼품없이 쪼그라든 현대의 문명과 작은 영토 혹은 역사로 인한 '패배의식' 이라는 것입니다. 단적으로 환단고기에서는 넓은 영토의 고대 환국과 고조선을 언급하고 있으니 현대의 한반도에 존재하는 한민족을 생각한다면 이는 '처절하게 몰락한 한민족'이라는 결론 외에는 내리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네번째, 과도한 민족주의, 모든 유사사학에 해당되는 부분은 아니나 다수의 유사사학의 사례에서 보이는 '유사사학의 실체'로 민족의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에 '민족'을 설정하고 고대의 위대한 우리 민족을 그리게 하는 과도한 민족주의가 또 다른 위험성입니다. 터키의 유사사학 투라니즘에 따르면 알타이 어족을 가진 모든 민족은 투르크 족인데, 터키에서는 이 투라니즘에 경도된 정치 단체 까지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이들 유사사학의 실체인 과도한 민족주의의 위험성은 투라니즘의 사이트 "http://www.hunmagyar.org/turan/turan.html" 에서 명백히 명시되어져 있습니다.
"
Throughout history, the Turanian lands have been invaded by foreigners: Semites, Persians, Chinese, Greeks, Romans, Slavs, and Germanic peoples. In many cases, the indigenous Turanian peoples have been and are still subjected to genocide, colonization, deportation, or assimilation. Foreign rule has not only caused great losses in demographic and cultural terms, but also economically and environmentally as severe damages have been inflicted by the exploitation and pollution of the Turanian lands by states such as Russia (formerly the Soviet Union) and China. Faced with all these hardships, the Turanian peoples are struggling to preserve their distinct cultural identity and to reassert their rights. "
간단히 번역하자면 "역사를 지나오며 투라니안 사람들은 여러 다른 민족들에게 핍박받았고 이들 외국인들은 정치 문화 환경 모든 측면에서 피해를 입혔다" 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원래 위대했는데 저 다른 민족의 놈들이 우리를 괴롭혔어 찡찡" 요 소리를 장황하게 떠들고 있는 것이지요. 이 과정을 통해 유사사학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의 민족애 라는 착각으로 타 민족을 적대시하고 본래 자신들의 영토나 문화를 되찾기 위한 복수전 혹은 배척을 수행하게 됩니다. 전형적인 확장적 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틀러의 게르만 민족주의와도 유사하지요.)
(3) 한국의 유사사학
한국의 유사사학의 가장 대표자는 누가 뭐래도 환단고기 입니다. 가장 독보적이며 가장 해악을 미치는 유사사학으로 여기서 파생되어 중립을 표방하며 은근히 환단고기를 인정 혹은 홍보를 시도하는 이들이 존재합니다.
다음의 단락에서 다루겠지만 이런 환단고기를 추종하는 이들의 주장은 단순히 환단고기를 眞書로 주장하는 것을 넘어서 현 학계를 모욕하고(이병도 문제), 발굴중인 유적군에 대해서 날조를 시도하며, 주변국인 중국과 일본에 대해서도 고대사를 날조하곤 합니다.
이 모든것들이 한국의 유사사학인 환단고기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환단고기 문제.(제공자 랑랄라, GwangGaeTo, ILoveCaRRie) (1) 환단고기란?
환단고기는 계연수라는 인물에 의해서 1911년에 기존의 여러 사서들 (삼성기, 단기고사 등)을 합쳐서 만들어졌다고 ‘주장’되는 책입니다. 그 내용은 한국의 고대사, 그 중에서도 고조선을 포함한 그 이전의 역사를 주로 다루고 있으며, 놀랍게도 그 역사서의 시작은 기원전 8000년경 혹은 그 이상의 시대(혹자들은 환단고기의 첫 국가인 배달국이 3만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말합니다..)라고 합니다. 책의 주 저자로 알려진 계연수는 사실 1911년에 다양한 사서들을 모아 엮어서 환단고기를 편찬한 사실상의 편집자 정도이고 각 책에는 각자의 저자와 그 저자들이 썻다고 전해지는 서문이 달려 있습니다.
(2) 환단고기 추종자들의 주장과 반박
ㄱ. 오성취루현상
아마도 환단고기 추종자들이 가져오는 근거중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자료가 아닐까 합니다. 이 오성취루 현상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박창범 교수의 연구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에 따르면 『환단고기』에 기록된 ‘오성취루’현상이 실제로 기원전 1734년 7월 13일 일몰 직후에
나타났음을 증명하였다. 따라서 『환단고기』 과학적으로 증명된 眞書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는 크게 2가지의 문제점이 발생합니다.
첫 번째, 五星聚 현상의 상징적인 의미는 후한 이후에 발생했습니다.
두 번째, 『환단고기』가 기록하고 있는 오성취루 현상과 박창범 교수가 말하는 오성취 현상은 다른 것입니다.
(이 오성취루 현상에 대해서 ILoveCaRRie님의 보론을 추가합니다.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istory&no=14803&s_no=14803&page=1)
ㄴ. 11년 원본을 주장하는 이들의 『환단고기』의 기록 입증 주장
이 부분을 설명하기에 앞서 다시금 떠올릴 것은 『환단고기』의 11년 원본은 ‘거짓’이라는 점입니다. 위에서 장황되게 설명했지만 이 책은 1979년에
이유립이 직접 만들어낸 위서입니다.
첫 번째 사례, 발해문왕의 연호 입증
환단고기 추종자들은 『환단고기』원본이 출간되는 11년 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발해 문왕의 연호가 이 책에는 실려 있으니 진서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환단고기』는 1979년에 쓰여진 책입니다. 46년의 발견 정도는 얼마든지 집어넣을 수 있다. 또한 발해 문왕의 연호가 ‘대흥’ 인 것은
『신당서』에도 실려 있는 내용입니다
두 번째 사례, 고구려장수왕 연호 입증
위의 사례와 사실상 동일한 문제로 『환단고기』에 기록된 장수왕의 ‘건흥’이란 연호가 1915년에 충주에서 발견된 금동불상에서
‘건흥오년세재병진’라고 쓰여진 것이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이 책의 저술 시기는 1979년입니다.
세 번째 사례, 연개소문의 할아버지 이름 입증
『환단고기』에서 연개소문 할아버지를 ‘자유’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1923년 발굴된 연남생의 묘지 비문에 그 증조부를 ‘자유’라고 쓰여있습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진서의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ㄷ. 사료속의 기록을 부정한 사례
이 유형은 엄연히 사료에 등장하는 기록을 부정하고 『환단고기』에 처음 실렸다고 주장하는 ‘거짓말’ 입니다.
첫 번째 사례, 평로치청왕국
『환단고기』에 처음 이정기가 고려인이라고 나온답니다. 그런데 이건 『신당서』열전에 ‘李正己 高麗人’ 이라고 나옵니다.
두 번째 사례, 마니단에서 제사를 지내는 이유
아무도 몰랐던 마니단에서 제사를 지내는 이유가『환단고기』에 처음 ‘단군왕검이 쌓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종실록지리지』에 ‘조선 단군(檀君)이 하늘에 제사지내던 석단(石壇)이라. 한다’ 라고 쓰여있습니다.
세 번째 사례, 갑골문의 귀방 정복 사건 입증
『환단고기』에 갑골문에서 기록하고 있는 은나라의 귀방 정복 기사가 실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주역』 63 기제편에 실려 있는
내용 입니다.
(자세한 것은 ->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istory&no=14797&s_no=14797&page=1)
3) 이병도 문제 (제공자 랑랄라)
(1) 이병도는 식민사학자 인가?
일부 유사사학자들은 이병도가 친일파였다는 이유로 그의 연구를 모두 식민사관으로 규정하고 공격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 이병도는 친일파이나 식민사관학자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첫번째로 유사사학자들은 이병도를 단군조선을 부정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신화상의 단군을 역사로 끄집어낸 장본인중 하나이며 특히나 곰부족 VS 호랑이 부족과 같은 단군신화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으로 단군조선을 규정한 사람입니다. 또한 고조선에 관하여 그는 기자동래설을 부정하였으며 위만에 대해서 본래 조선인이라는 현재 교과서에서 말하고 있는 고조선에 대한 다분히도 민족주의적인 연구를 내세웠던 사람입니다.
두번째로 유사사학자들은 이병도가 조선사편수회에서 역사를 왜곡하는데 앞장섰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실제 그는 촉탁이라는 외주를 맡았던 외부업체 사람으로 '이름만'올라가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가 편찬하는데 참여했다고 알려진 "조선사"에는 그의 이름이 편찬자로 올라와 있지 않으며 결정적으로 "조선사"는 역사서가 아닌 '사료모음집'입니다. 특별한 사관이 개입될 여지가 없는 책이라는 소리지요.
세번째로 유사사학자들은 이병도가 삼국사기초기기록을 불신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을 그대로 믿는것은 삼국사기 초기의 인물들의 이상한 생몰연대를 그대로 믿는다는 소리가 됩니다. 이는 유사사학자들이 존중하기 그지 없는 신채호선생의 의견에서도 확인되는 것으로 신채호는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실상 이 주제는 유사사학을 신봉하는 이들이 자기발등에 도끼질을 하는 형세라고 하겠습니다.
네번째로 유사사학자들은 이병도가 한사군의 위치를 한반도내로 식민사관에 근거해 왜곡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한사군재한반도설은 우리 고유의 입장입니다. "고려사"에서 부터 "세종실록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그리고 한백겸의 "동국지리지"에서 먼저 한사군을 한반도내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리하자면 이병도는 친일파가 맞습니다. 하지만 그의 연구는 다분히도 민족주의적인 색체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자세한것은 ->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istory&no=14748&s_no=14748&page=1)
(2) 조선일보에 이병도가 고백했다는 고대사의 진실은?
일부 유사사학자들에게 이병도는 자신들과 다른 학계 주류인 '강단사학'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공격의 대상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각종 음해를 획책하게 되는데, 급기야는 이병도가 말년에 한국의 역사를 숨겼던 사실을 고백하는 기고문을 조선일보가 다루었다고 날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조선일보에서 이병도의 기고문를 다룬 기사는 유사사학을 신봉하는 사이트를 마치 유령처럼 배회하며 현 주류 학계가 식민사관에 매몰된 집단이라는 것의 증거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사실들은 이미 밝힌 것처럼 모두 날조이자 '거짓말'입니다.
우선 이병도가 기고했다고 하는 조선일보의 기사의 주요 내용은 한국고대사, 특히나 단군조선에 관한 내용입니다.일제에 의해서 사실상 신화로 여겨졌던 단군조선에 대해서 이병도가 단군신화를 해석하며 단군조선의 존재를 긍정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헌데 이를 유사사학자들은 "생전에 단군을 신화로 여겼던 이병도가 양심의 가책을 느껴 고백한 증거이다" 라고 주장합니다.
간단히 말해 유사사학을 신봉하는 이들이 판단하는 논리 구조는 이것입니다.
'이병도 = 식민사관학자 = 단군조선을 인정하지 않음' -> '조선일보 기고문에서 단군조선 긍정 -> '이병도가 양심고백을 했다!'
이미 위에서 논한 문제이지만 이병도 = 식민사관학자라고 부를 증거가 희박한 상황에서 위와 같은 논지구조를 취한다는것은 전제부터 틀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선일보의 기고문에 목숨을 거는 이들을 위해 간단히 기고문을 살펴보게된다면 오히려 이병도의 학설이 그가 활발히 활동을 하던 시기와 기고문을 올렸던 1986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기고문에서 밝히고 있는 단군조선에 대한 이병도의 학설은 그가 48년에 처음 쓰고 58년에 증보한 국사대관(조선사대관)과 크게 차이점이 없습니다. 오히려 기고문의 글은 국사대관의 내용을 일부 풀어서 쉽게 쓴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어찌된 것일 까요? 간단합니다. "이병도는 조선일보에 양심고백을 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그의 학설은 '단군조선'을 부정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단군신화를 역사적으로 해석하여 일제가 부인했던 단군조선의 존재를 긍정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유사사학자들은 이병도를 맹목적으로 비판하기 위하여, 그리고 조선일보 기고문으로 지금까지 자신들이 했던 거짓말(이병도는 식민사학자이고 단군조선을 부정한 사람이다)이 들통나는 것을 숨기기 위하여 또다른 거짓말을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3) 이병도를 어찌 대해야만 하나?
지금 까지 이병도를 악의적으로 음해하는 몇몇 주장들에 대해서 살펴보고 그 거짓을 반박해 보았습니다. 혹자들은 유사사학자들의 거짓말에 혀를 내두를 것이며 어쩌면 분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혹자들은 이 글을 보고서 굉장히 혼란스러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병도는 친일파이건만 실제로 살펴보니 그의 연구는 다분히도 민족주의적인 색체를 띠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를 대함에 우리는 어찌해야만 하는가?’ 하는 문제 때문에 말입니다. 단순히 생각해보세요, 학자 개인으로서의 활동을 비판함에 우리는 동참해야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어찌 되었든 그는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오른 친일파입니다. 그를 옹호하는 것은 우리의 정서상 용납될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의 연구를 바라봄에 있어서는 개인적인 활동과 구분해서 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독일의 화학비료 창시자 ‘프리츠 하버’의 사례를 생각해보세요. 그는 현 농업계의 일획을 그은 화학비료의 실질적인 창시자이지만 1차대전 당시에 독일을 위해 독가스를 만드는데 협력한 ‘전범’이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비인도적인 전범행위에 분노하지만 그가 창안한 화학비료의 혜택을 누리고 살며 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상대성이론의 창시자 ‘아인슈타인’을 생각해 보세요. 그는 철저한 반전주의자였으며 평화를 사랑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연구는 핵물리학의 신호탄이 되었고 핵무기라는 인류역사상 가장 무서운 무기를 만드는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를 누구도 핵을 만드는 기초를 제공한 학자란 이유로 비판하지 않습니다.
결국 학자로서의 개인적인 삶과 그 뛰어난 연구성과는 분리되어져 사고되어질 필요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비판할 것은 비판하되 이미 우리가 그 혜택을 보고 있는 연구의 성과까지 부정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인류의 문명 발전은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으며 우리가 연구했던 한국사는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병도를 대할 때 그를 일방적으로 추켜세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는 친일파이기에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의 연구를 대함에 그 개인적인 처신을 이유로 부정하고 거짓을 담아 비판해서는 안된다고 할 것입니다.
(자세한것은 ->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istory&no=14748&s_no=14748&page=1)
4) 홍산문화 문제 (제공자 Lemonade)
1980년대에 요하일대에 홍산문화로 명명된 유적군이 발견되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발굴중에 있는 유적군으로 아직까지 이 유적의 존재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중입니다. 하지만 일부 한국의 유사사학계에서는 이 유적군을 우리의 역사와 연계시켜 환단고기에 나오는 고조선보다 더 이전의 환국 혹은 배달국의 유물적인 근거로 삼으려 시도하고 있습니다.
결론 부터 말씀드리자면 현재 연구된 바를 살펴볼때 홍산 문명과 우리는 어떠한 연관도 없습니다, 전통적으로 이 지역은 하가점 상층 문화일때는 산융이나 선비 거란과 같은 유목 민족들의 터전이었고 하가점 하층 문화일때는 정주민족이던 이 들의 터전이었는데 이 들과 한국사를 연계시키기위해서는 한국인과 관련이 있는 집단이 이 지역에 한때나마 거주하며 활동했음을 입증을 해야한다는 이야기인데 일단 문헌 사학쪽으로는 불가능한게 당연한게 문헌이 전무하지요.
그렇다면 고고학적으로는 어떠한가를 보자면 가령 옥제 장신구들의 경우 우리만의 무언가는 절대로 아닙니다, 가까이는 일본 멀리는 러시아 까지 동북아 어디에서나 쉽게 발견되는 유물이며, 곰이나 용의 모양을 한 가공품들의 형상 역시 토테미즘의 성격상 전 세계에 걸쳐 발굴되는 형상이지요, 마찬가지로 상투를 튼 모양의 남성 상의 경우도 중국에서도 상투를 틀었다는 아니 중국으로부터 한반도로 상투가 유입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합니다.
빗살무늬 역시 그렇습니다, 최초로 발견된 곳도 유럽이고 최초의 학술명이나 연구 성과 역시 유럽에서 나왔습니다. 폴란드 독일 스웨덴 러시아 중국 일본 등등 빗살 무늬 토기의 출토지는 그 만큼 많지만 우리가 이 빗살무늬토기 문화권안에서 우리의 문화권을 한정 짓는것은 그 안에서 우리와의 명백한 관련성을 찾았고 입증할수 있었기 때문일뿐이지 우리의 문화권 내에서만 빗살무늬 토기가 출토된게 결코 아닙니다, 무엇보다 홍산문명에서 발굴된 채문 토기와 협사회도는 우리가 빗살무늬 토기라 부르는 즐문토기와는 다릅니다.
건축 양식 역시 우리와 중국이 전혀 다른 양식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기에 증거가 될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와 홍산 문명간의 관련성이 부정되는 가장 큰 이유는 주관적인 요소를 배제할수 있고, 인구이동과 문화 전파라는 고고학적 난제를 해결할수 있는 유전자 인류학과 체질인류학에 있어서 우리의 조상뻘되는 민족은 요서지역에서 홍산 문화를 건설했던 집단과는 거리가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서지역에서 출토된 인골은 고동북 유형 그리고 고화북 유형 끝으로 고몽고고원유형의 순서로 그 중 고동북유형으로 지칭되는 집단중에서 한국인의 선조뻘되는 집단과 연계시켜 볼만한게 있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신석기 단계와 청동기 초기 단계에서 이미 이 들 요서와 요동 및 한반도 사이의 문화적 격차는 상당한 터라 요서의 홍산문명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홍산문명은 황화 문명과의 연관성부터 신러 문화나 자오바오거우 문화등에서 볼수 있듯이 황화문명과 비교할만한 새로운 고대 문명이라는 주장까지 여러가지 주장이 나오고 있는게 사실입니다만 아직까지 연구 성과는 갑론 을박인게 사실입니다.
물론 중국 정부의 이념적 개입이 우세한것 역시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다만 여기서 중요한것은 확실하게 고고학적으로나 인류학적인 측면에서 살펴볼때 우리와는 관련성이 없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영토 중심의 사관 정리 사업인 동북공정에 대하여 홍산문명이 어떻든 현재로서는 전혀 관련성이 없다고 밖에 볼수 없는 우리가 홍산문명에 대하여 뭐라 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지요.
5) 한국在중국설(임의로 정한 이름입니다.)
6) 기마민족주체설을 기반으로한 일본의 한국 분국설 (임의로 정한 이름입니다.)
4-3 그 외의 쟁점들
1) 동해와 일본해 논쟁 (제공자 한솥매니아)
독도 영유권과 함께 현재 대중적으로 가장 잘 팔리고 있는 대일 분쟁거리가 바로 동해/일본해 표기 문제입니다. 언론과 일부 시민단체의 선정적인 여론 몰이로 인해 동해 표기가 '당연히 자연스러운 것'이고 일본해 표기는 '논의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비상식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으며, 역사 게시판에서는 이와 관련된 수많은 논거가 제시된 바 있습니다.
- 과거 지도의 표기가 동해 기준이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19세기 이전에는 조선해와 일본해라는 표기가 비교적 동등하게 나타나며, 동해라는 표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일본해라는 표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고지도로 그 유명한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가 있습니다.
- 일본해라는 표기가 일본 제국주의의 산물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일본이 제국주의는 커녕 아직 개항조차 하지 않았던 시기부터 일본해라는 표기는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대표적으로 위에 사례로 든 곤여만국전도의 출판 시기는 1602년입니다.
- 일본이 막강한 자금력으로 로비를 하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일본해 표기가 통용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일본이 로비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국제기구 담당자들 및 외국 정부의 입장은 '아무 문제 없는, 옛부터 쭉 써 오던 명칭을 굳이 바꾸려면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 정부는 이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는 데 거의 실패하고 있으며, 이 실패의 이유 중 하나가 지금 여기서 들고 있는 비합리적인 인식입니다.
- 동해가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에 있기 때문에 동해로 불려도 중립적이라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동쪽에 있는 바다는 동해가 아니라 오호츠크해입니다. 러시아 입장에서 동해는 남쪽에 있습니다.
- 동해 국제명칭 표기 문제가 독도 영유권과 결부되어 있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만약 바다의 국제명칭이 섬의 영유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면, 대한해협에 있는 쓰시마 섬이나 남중국해에 있는 필리핀은 지금 남아나질 않고 있을 것입니다.
- 동해가 우리의 바다라는 인식은 사실이 아닙니다. 동해는 여러분의 생각보다 훨씬 넓은 바다이며, 그 중 우리 영해가 차지하는 비율은 극히 적습니다. 동해의 대부분은 그 어떤 나라의 선박이라도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는 '공해(共海)'입니다.
- 국제명칭 표기를 일본해로 해도 된다는 주장이 우리가 지금부터 동해를 일본해로 고쳐 불러야 한다는 주장을 포함하지는 않습니다. 국제명칭은 말 그대로 해당 지역을 전통적으로 불러온 방식이 없는 제 3국에게 적용되는 것이며, 당사자들이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에 대해선 전혀 규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관습적으로 동해라고 불러왔으니, 다른 나라 지도에서 뭐라 하건 동해라고 부르면 됩니다.
동해와 일본해 표기 문제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은 1. 동해(혹은 한국해)/일본해 병기 주장 2. 중립적인 새로운 명칭 표기 주장을 배척하지 않습니다. 일본해 역시 동해나 조선해와 같은 정도의 역사적 근거를 가지는 것은 마찬가지라 해도, 실제 국제명칭이 정해지는 시점에서 한국이 식민 지배를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제기구에 입장을 제시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는 사실은 엄존합니다. 이러한 과거의 유산을 씻어내기 위해 국제명칭을 보다 중립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노력 자체가 비판받을 만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본해 표기의 역사적 근거 자체를 없는 것처럼 눈가림하고, 무지를 애국으로 착각하는 태도에 대해선 단호히 비판합니다.
2) 무능한 조선에 대한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