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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였다.
출입문이 열리면서 정형사가 들어섰다. 그는 습관처럼 고개를 조아리며 한마디 뱉었다.
“다녀왔습니다.”
그의 손에는 문제의 두툼한 책자가 들려있었다. 대화를 나누던 최반장과 박형사가 그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뭐 좀 건졌어?!”
그러자 그가 말 대신 책자를 내보였다.
“이건 또 뭐야?!”
최반장이 받아 뒤적이며 다그쳤다. 그러자 정형사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진실의 열쇠입니다.”
그러자 옆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박형사가 소리쳤다.
“거참, 지방방송 그만 끄고 좀 더 자세히 얘기해봐?!”
최반장도 동의한다는 듯이 들고 있던 공책을 다시 정형사에게 건넸다. 정형사는 받아 들고 마음을 가다듬더니 입을 열었다.
“모든 진실은 월곡에 있었습니다. 그동안 여론에 밀려 오동호에게 집중 포화를 퍼 부었지만 우리의 예상대로였습니다.”
“그 말은 몸통은 따로 있었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오동호는 그야말로 전시효과용이었습니다.”로 시작된 정형사의 진술은 이러했다.
월곡면의 원래 땅주인은 친일파 민영휘의 자손이 풍광 좋은 이곳에 흘러 들어와 권력을 이용해 빼앗은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주 무대가 춘천인 관계로 소홀해지자 나평자의 할아버지가 가로 채 운영을 했다. 그러다가 해방이 되자 소유권 문제로 민씨 자손과 송사가 붙었는데 공교롭게도 6.25가 터져 인민군 부역자인 나 정구에게 다시 넘어 갔다. 그리고 다시 휴전이 되자 민씨 자손이 다시 송사를 벌여 차지했다는 것이다.
“뭐가 그렇게 복잡해! 요(要)가 뭐야?!”
묵묵히 듣고 있던 최반장이 더 이상 시간낭비하지 말자는 듯이 다그쳤다. 정형사도 그 의도를 알겠다는 듯이 요약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실질적인 주인이 민국기라는 사실입니다.”
“민국기라고?! 교장선생?!”
“네. 여기 그들의 흑역사가 다 기록 되어 있습니다.”
하며 책자를 들어 보였다. 그러자 묵묵히 듣고 있던 박형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건 누가 기록한 건데?”
“그 집 대대로 집사했던 사람의 기록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주민들의 원성 또한 만만치 않았겠는데?”
“아닙니다. 되레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왜?!”
이번에는 최반장이 나섰다. 그러자 정형사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민국기는 그것을 예상하고 그들의 땅 일부를 인정하고 돌려줬습니다.”
“그럼, 사심이 없었다는 거야?”
“그것보다는 자신의 조상이 저지른 친일행각을 희석 시키려는 의도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희석이 되나? 그것도 따지고 보면 역사인데?”
“하지만 그 효과는 매우 켰습니다. 직접적으로 욕하는 무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오동호 부친에게도 그랬나?”
“물론입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뭐가?”
“이상하게도 오동호 부친에게 만은 토지를 돌려주지 않고 대신에 오동호에게 돌려 상속의 개념을 택했습니다.”
“그건 왜?”
“제가 보기에는 오동호와 뭔가 추진하려고 한 듯 싶습니다.”
“그럼, 오영감의 땅이 알짜라도 된다는 거야?”
“풍광도 그렇지만. 은폐에 좋은 지금의 슈퍼레인저 기도원 자리입니다.”
“그러면 그곳에 사이버 왕국이라도 세우겠다는 담합?!”
“저는 그렇게 봅니다. 기도원 등기를 살펴보면 실질 적인 소유자가 원장 민국기고 또한 부원장이 오동호로 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슈퍼레인저 기도원의 실세라는 건데? 그곳은 도대체 뭐하는 곳이
야?”
“원래 뿌리는 천기교(天氣敎)라고 일제 강점기에 암암리 유행하던 사이비교로 그들의 주장은 하늘의 기운을 얻으면 영생한다는 교회입니다.”
“황당무계하구만. 누가 제창했나?”
“정확한 기록은 없는데요. 흥미로운 것은 나평자의 할아버지도 이 교회 절실한 신도로 자신의 거점인 월곡에 기도원을 세웠다는 겁니다.”
“일 리가 있고만. 나평자의 할아버지는 암환자였으니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겠지. 하지면 인명은 제천이라 결국 죽고 아들 나정구가 받았겠구만.”
“그렇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나정구 때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았다는 겁니다.”
“전성기라니?”
“혼란기에 흔히 볼 수 있는 흉흉한 민심 때문이겠죠. 그때 오동호의 엄마도 광신도 였다네요.”
“그래. 오동호의 부친 오달석은?”
“견원지간이라 믿지 않았데요.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나정구의 폭정에 견디다 못한 오동호의 엄마가, 수고산으로 도망가 숨어 살다가 오달석에게 발각돼 같이 살게 됐다는 데요.”
“그야말로 흑역사이구만. 그 뒤 어떻게 됐나?”
“나정구가 역시 암으로 죽자 관리인 민수기가 맡아 운영했는데. 그때부터 기도원 명칭도 천기교에서 지금의 수퍼레인저 기도원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럼, 민수기란 인간이 민국기와 인척관계라도 된다는 거야?”
“맞습니다. 민수기는 민국기의 사촌동생으로 그가 의도적으로 심어 둔 것이었습니다.”
“그래? 명칭이 바꿨다면 교리도 바뀌었겠는데? 뭐야?!”
“아네. 악의 무리를 사이버 찬양으로 회개 시켜 순한 양을 만든다는 교리로 바뀌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일종의 사이비 종교 과(科)입니다.”
“호응은?!”
“대단합니다.”
“주로 갱생개념으로 입소하면 거의가 개과천선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법무부로부터 그 공을 인정받아 표창까지 받았고요.”
“그래?! 그렇다면 뭔가에 의해 세뇌가 된다는 거네?”
“그렇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네트워크 원격 조정에 의한 세뇌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참 그건 그렇고 신 교수님께 의뢰한 결과는 왔습니까?”
“조금 전에 왔어.”
“결과는 요?”
그러자 박형사가 나서며 말을 이었다.
“첫 번째는 악성 바이러스에 의한 좀비 폰이 맞고, 두 번째는 앱을 통한 원격 조정 통증 유발 가능성은.... 학계 보고된 사례는 없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판단이야. 기타 자세한 것은 정형사 메일로 보내시겠데.”
“예상대로군요.”
“하지만 문제는 이게 모두 심증이라 증거 채택이 어렵다는 거야? 게다가 유일한 증거인 황동팔하고 홍달식이가 뒤져버렸으니 말이야.”
“뭐라고요?! 그들이 죽어요?!”
정형사가 놀라 소리쳤다. 박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약물과다 투여로........”
“그 말씀은 마약 치사량 투여라는 겁니까? 외부흔적은 요?”
그러자 박형사가 말을 받았다.
“깨끗해. 부검은 신청했지만 자살이 확실해........ 주변에서 여러 개의 주사기가 발견도 됐고.”
“그럼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종결뿐이네요?”
“그렇게 됐어.”
“그럼 저희는 이제 어떡하죠?!”
“무슨 소리야. 우린 자네한테 희망을 걸고 있는데. 반전 카드가 전혀 없는 거야?”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나머지 분석이 필요합니다.”
“나머지 분석이라니?”
“2부에 기록된 오동호 집구석에 대한 흑역사입니다. 그건, 오늘 날을 세워서라도 마칠 계획입니다.”
“가능하겠어. 내일 아침에 서장님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는데.”
그러자 정형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어떻게 해서든 맞춰야지요.”
하며 책자를 들고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그러자 박형사가 뭔가 생각난 듯 불러 세웠다.
“아참 그리고 잠깐만…….”
정형사가 자리에 앉으려다 말고 쳤다 봤다.
“거 있지. 그 인간들 불두덩에 문신 말이야. 나는 그 문신의 ㄴ.ㄱ이 우리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한 거라고 보는데..... 예를 들자면 변태적 발상에서 첫 음만 따 ‘내 것’ 정도로 말이야.”
그러자 정형사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처음에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따지고 보니 그것은 일종의 퍼포먼스였습니다.”
“퍼포먼스라니?!”
“다시 말하면 그건 일종의 강력한 메시지였습니다.”
“어떻게?”
“첫 번째. 박형사님 식으로 풀면 ‘내 것’ 또는 노. 굿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뒤집어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자 뭔가 정답이 보이더군요.”
“그게 뭔데?”
“컴퓨터 자판으로 풀면 ㄴ은 S고 ㄱ은 R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해당하는 단어를 찾아 봤는데 두 가지로 압축되었습니다. 하나는 슈퍼로즈(Super Rose: 화원)고 다른 하나는 슈퍼 룸(Super Room: 건강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과 연관 시켜보니까 별 상관이 없어. 고민하다가 우연히 슈퍼레인저(Super Ranger) 기도원을 생각해 낸 겁니다.”
“빙고! SR! 바로 그 거야!”
최반장과 박형사는 이구동성으로 외치며 박수를 쳤다. 정형사는 고개를 조아렸다. 박형사가 나서며 물었다.
“그렇다면 그 뜻은 뭐야?”
“아네. 그 뜻은 풀이하면 ‘규모가 큰 조력자’란 뜻인데요. 일테면 염라대왕의 명령에 따르는 저승사자 정도로 응징의 낙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옳거니. 나도 동의해. 반장님도 그렇죠.”
그러자 최반장은 엄지 척을 해보이며 말했다.
“자 이제 어느 정도 의문이 풀렸으니 기자회견 자료 준비나 하자고…….”
“네.”
“아참. 기자 호출은요?”
박형사가 돌아서려다말고 최반장을 보며 물었다. 최반장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건 서장님 비서실서 알아서 할 거야.”
“견기자 그 자식은 빼야 하는 데........”
“우리뿐만 아냐. 다 이를 갈고 있어. 뺀다고 해도 개 코는 귀신같이 냄새를 맡고 올 거야.”
그러자 묵묵히 지켜보던 정형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연히 와야죠. 거기에 한술 더 떠 이 사건의 관련자 모두도 몰려 올 거라 봅니다.”
“그건 왜?!”
박형사가 다그쳤다. 정형사는 역시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얼버무렸다.
“그래야. 커튼콜이 확실히 이루어지니까요?”
“그러니까 연극이 완전히 끝났다?”
정형사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최반장이 뭔가 의심쩍다는 표정으로 정형사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자네 혹시 나 모르는 뭔가 계획하고 있는 거 아냐?”
그러자 정형사가 망설였다. 그건 말을 해봐야 뻔히 반대할 거라는 의사 표현이기도 했다. 그러나 최반장은 이제 더 이상 잃을 것 없다는 투로 다그쳤다.
“인마! 뭐야?! 우린 누가 뭐래도 같은 배를 탄 인간들이잖아!”
그러자 그는 신중하게 주위를 둘러보더니 한쪽 빈구석으로 불렀다. 그 곳은 책상과 멀리 떨어진 곳이기도 했지만 콘크리트 벽이었다. 그가 그곳을 택한 것은 어디에 있을지 모른 도청을 피하자는 의도였다. 최반장과 박형사도 그의 의도를 눈치 채고 구석으로 모였다. 정형사 여전히 사주경계를 하며 자신의 속마음을 작은 목소리로 털어놨다. 순간 최반장과 박형사가 놀라 소리쳤다.
“인마! 그건 항명(抗命)이야!”
그러자 정형사가 반박하고 나섰다.
“아닙니다. 이건 우리의 마지막 자존심입니다.”
“그래도 이건.......”
박형사도 염려가 된다는 듯 뒷말을 흐렸다. 정형사는 최반장과 박형사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 추측이지만 분명히 이루어지리라 봅니다. 그래서 제 말씀은 그 상황이 되면 기회를 놓치지 말자는 겁니다. 분명히 말씀 드리지만 이건 우리가 놓은 덫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놓은 덫이니까요.”
그때서야 최반장과 박형사는 수긍한 듯 싶었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했다. 그러자 정형사가 못을 박았다.
“두려워하실 것 없습니다. 그렇게 펼쳐지지 않으면 그만이니까요.”
“그럼, 과장님께 귀띔이라도 해야 하지 않나?”
그러자 정형사가 고개를 흔들었다.
“안됩니다. 그러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갑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제가 말씀드린 게 잘못되면 전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내겠습니다.”
그러자 최반장이 버럭 소리쳤다.
“인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냐! 파장이 문제라는 거지!”
“모르긴 해도 그는 이미 다 대책을 세워 뒀을 겁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길 만이 우리가 그동안 무시당한 것에 대한 마지막 자존심 회복입니다. 언젠가 선배님들이 말씀하셨죠. 촌놈들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이 죽기보다 싫다고!”
그러자 최반장과 박형사는 바닥을 주먹으로 치고 일어나며 소리쳤다.
“콜!”
그리고 최반장은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 위에 박형사와 정형사가 올렸다. 최반장이 버럭 소리쳤다.
“우리는 하나!”
“우리는 하나!”
박형사와 정형사도 목청껏 외쳤다. 그리고 세 사람은 묵묵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컴퓨터를 켰다. 창문 안으로 긴 햇살이 파고들었다. 그건 머지않아 어두워질 거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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