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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종 포화#3
게시물ID : readers_339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콜이
추천 : 1
조회수 : 41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7/14 02: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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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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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진하는 자신의 간이침대에서 일어났다. 이젠 습관처럼 침대가 늘어선 피난민 집하장을 둘러본다. 어제 인터넷으로 대구의 피난 거점이 붉게 된 것을 보았다. 침대가 모두 비어있음이, 인간이 없는게, 홀로 남겨진 것이, 다행이다. 들려오기 시작한 발걸음 소리가 집하장 앞에 멈췄다.

 "아직 있네."

 순찰을 돌던 여성 경찰관이 라이트를 비춰왔다. 동이 트기 시작한 새벽. 진하의 구석 자리는 그림자에 묻혀 어두웠던 모양이다. 경찰의 눈빛에 긴장한 기색이 있다. 대구의 일을 아는 눈치다. 진하가 좀비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진하는 인사를 건네듯 대답했다.

 "다행히요."

 진하의 대답에 그녀가 평소의 덤덤한 눈빛으로 돌아갔다.

 진하는 자리를 정리하고 세면장에 들렀다가 어제처럼 밖으로 나왔다. 평소라면 경찰서 본부를 지키고 있을 뿐일 경찰 하나가 피난장에서 도로로 나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 아침에 본 그녀다. 손 끝에서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학교?"

 경찰이 도로를 주시하며 말을 걸어왔다. 근처 숲의 매미 소리와 겹쳐 들렸다. 반팔 제복. 덥다. 진하는 자전거를 끌며 대답했다.

 "설마요."

 피난 기관 내의 인간이 레드 스팟을 돌아다니는 것은 금지 사항. 학교는 블루 스팟이지만, 향하는 길은 온통 붉은색이다. 그 점을 지적하는 듯한 짧은 물음에 진하는 뻔한 부정을 했다. 도로를 바라보던 시선이 짧게 진하를 스쳤다가 다시 되돌아갔다. 담배를 한번 더 머금은 그녀는 연기를 내뱉으며 말했다.

 "안 오면 찾으러 갈게."

 진하는 이 대화가 일련의 추궁인가 아닌가를 확신하지 못하며 치레하듯 대답했다.

 "믿고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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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왼손의 손가락 두개가 없다. 중지와 약지다.

 "저 사람은 손 왜 저렇데요?"

 "취한채로 좀비한테 물린줄 알고 자기가 잘라버렸덴다."

 세상에 세상에. 속닥 속닥. 어제보다 늘어난 사람들이 3층 복도에서 떠들고 있다. 그들의 이야깃거리는 이 학교의 숙직실에 사는 남성. 학교 뒷편의 낡은 주택가에 살던 사람으로, 학교가 처음 블루 스팟으로 지정되던 무렵 그곳에서 보호되어 학교로 거처를 옮겨왔다고 했다.

 남자는 학교의 뒷편에 쭈그려앉아 뒷동네를 내려다보고 있다. 진하는 핸드폰 카메라를 그에게 향했다. 휴대폰 프로그램이 그를 인식했다. 저장해둔 별명을 화면에 표시된다. 남자의 별명은 경비원이다.

 그러고 보면 딱 저 장소였던가. 작년, 진하가 좀비 사태 이후 처음으로 이 학교에 돌아왔던때 그와 나눴던 대화가 기억이 있다. 경비원은 그때도 담배를 물고 있었다.

 '담배 맛있어요?' 진하가 물었다.

 '안피워봤냐.' 그가 대답했다.

 '올해 넘어가면 살 수 있게돼요.'

 후. 하얀 연기가 퍼진다. 이 세상 무법천지에 담배의 나이 제한이라니. 그 농담같은 대답에 자리에서 일어난 경비원은 두 손가락이 끊어진 왼손으로 진하의 가슴팍을 툭 쳤다. 손에는 찌그러진 담배곽이 쥐어져있다. 진하는 그것을 받았다.

 '많이 피고 훌륭한 어른 돼라.'

 그는 터벅터벅 걸어가버렸다. 그 후론 특별히 대화를 나눈 기억이 없다. 담배곽은 아직도 진하의 외투 안쪽 주머니에 그대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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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아직 인간이 두 종류이던 시절. 가파른 벽 위의 녹색 철망 안에서 고등학생 하나가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긴 머리카락. 단정하게 생긴 여자아이의 눈빛은 차갑다. 못 사는 사람들의 동네가 눈동자 표면에 비친다. 모습 속에 포함되고 만 초라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잘못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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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의 방송실을 개조해 연구를 하고 있던 박사는 전화기에 대고 되물었다.

 "오늘부터 온다고."

 [예. 그런 분위기를 싫어하시는 것은 들어 압니다만, 학교에 장치된 소음측정계가 경계수치에 도달했습니다. 다른 업체에서도 파견이 갈겁니다.]

 박사는 방송실 창문의 블라인드를 치우고 밖을 내다봤다. 과연. 한 층 아래 건너편 건물. 2관 3층의 복도에 못보던 사람들이 모여있다. 그들은 아래쪽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다. 보나마나 뒷 편 공터에 나와있는 숙직실 그 남자를 보고 있겠지. 그 남자는 어딘지 위협적인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난폭한 일을 하던 사람이 분명하다.

 이 학교에 처음 왔던 무렵 술이나 한잔 하고자 이곳으로 부른 적이 있다. 흔해빠진 양주를 따고, 아무런 소재나 이야기를 꺼냈다.

 "결혼은 했나?"

 그런 질문을 건네며 왼손 약지로 시선을 가져갔다. 손가락이 없었다. 의아함에 눈썹을 들며 그의 눈빛을 봤다. 잊을 수가 없다. 어떤 인간이 그런 눈을 하던가. 박사의 기억 속에 남자는 반쯤 짐승 같은 것으로 기억되어있다. 그러고보니 군사 업체의 사람은 저 남자를 어느정도 알고 있는 듯이 굴었다.

 '이 뒷쪽 동네에 살던 사람입니다.'

 거기서 큰 사건이라도 일으킨 것일까. 뒷 동네. 저 좀비 소굴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라면 대단한 작자겠지만, 글쎄... 그건 그가 가진 생존요령 따위에 의한 결과일까?

 박사가 알기로 좀비를 억제하는 방법은 아직 하나 뿐이다. 주변에 모든 살아있는 인간의 숨을 아직 인간일때 끊어 놓는 것. 새로운 좀비가 생기지 않도록. 그렇다면 남자는 대량학살범 같은 흉악 범죄자일지도 모른다. 좀비가 철망 밖에 있다고 안심하기 보다 저 남자가 같은 공간에 있음을 두려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짧은 회상에서 빠져나온 박사는 과거에 그런 생각을 했었던 사실에 피식 웃었다. 두려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모르긴 뭘 몰라. 고작 살인범인데. 살인따위 뭐 대수라고.

 박사가 하고 있는 연구야말로 그런 것과 비교도 안될 대량학살로 귀결될지도 몰랐다. 그래. 정말로 모르겠는건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이 연구의 결과다. 좀비를 억제할 새로운 방법을 찾고자 시도하고 있다. 그 결과를 알고자 온갖 데이터로 추측하고 있다. 하지만 운이 나쁘면 실패할지도 모른다.

 저기 보관되어있는 백신의 프로토타입이 지금 만연한 것보다 더 악랄한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될는지, 모를 일이다.

 뒷 동네에 쓰레기처럼 쌓여있는게 좀비다. 살점조직에 투여했을때 일시적으로 활동이 멈추는 것을 내키는 만큼 확인했다. 진압용 무기로 활용할만한 성과라면 이미 거뒀다. 그렇다면 저것의 인간에 대한 영향이다. 술에 섞어 저 남자에게 먹였다. 효과는 없었나? 글쎄.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아직.

 변이가 일어난다면 이 학교는 레드 스팟이 되고 모든 실험 자료는 폐기된다. 애초에 그것을 위해 적색과 청색의 경계에 놓인 이 학교를 선택했다. 딸 아이가 다니던 학교여서 마음이 동한 것도 있었다. 그렇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후회가되는 선택이었다. 딸아이가 영영 학교로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실패한다면.

 "성공하면 좋겠는데."

 박사는 작년에 도수를 다시 맞춘 안경을 고쳐쓰고 자신의 책상으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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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뒷동네에 말야. 더러운 사람들이 살아."

 딸아이가 문득 말한다. 딸은 책상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넥타이를 풀고 있던 박사는 스스로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던 것 보다 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꿈일까? 그렇게 옛날은 아닐텐데 최근에 폭삭 늙었다는 것을 체감한다. 

 내신을 좋게 받기 위한 하향지원을 해 도시 구석의 고등학교에 진학한 딸은 이맘때쯤들어 시험에서 1등을 한 이야기보다 학교의 주변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딸이 이어말한다.

 "티비에 나오는 못 사는 사람들 다 어디 있나 했더니, 우리 학교 뒷편에 잔뜩 살고 있더라."

 "불쌍한 사람들이지."

 박사는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그에 사각사각 필기를 하던 샤프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리고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별로 안불쌍하던데."

 딸은 불쾌한 기억을 떠올리듯이 표정을 조금 찡그리다가 이어말했다.

 "좀 지저분하고.. 그리고 무서워. 표정이라던가 눈빛같은거가. 낮에 돌아다니는 취한 남자가 하나 있는데... 아마 미친사람인거 같아."

 표정? 눈빛? 미친사람? 생각나는 남자가 하나 있다. 단순한 연상의 일치일 뿐이지만 꿈속에서 그런 일들은 종종 깨달음처럼 거세게 떠오르곤 한다. 각성적인 감각. 그 탓에 박사는 꿈에서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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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똑.

 "박사님. 안에 계십니까."

 똑똑. 똑똑.

 "열겠습니다."

 쾅 !

 발로 거세게 문을 차는 소리. 하지만 철판 문은 꿈쩍하지 않았다. 비몽사몽이던 박사는 정신을 차렸다. 박사의 소재를 묻는건 그 군사 업체 사람의 목소리다. 박사는 대답을 위해 몸을 일으키려했다. 그때 밖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비켜보지."

 남자. 숙직실 남자의 목소리다. 그리고 문에서 형용할 수 없는 소리가 났다. 잠시동안 그게 소리라는 것도 몰랐다. 남자가 방송실을 봉쇄하는 철제 문을 찌부러뜨리며 들어왔다. 그 모습을 어이없는 눈길로 직시하던 군사 업체 파견원이 박사를 발견하고 시선을 옮겼다.

 "계셨군요."

 박사는 남자의 외견을 곁눈질 하며 대답했다.

 "잠시 눈 좀 붙이느라 대답을 못했네. 무슨 일인가?"

 남자에게 외견상의 변이는.. 없어보인다.

 파견원은 지체없이 걸어들어오며 학교의 폐쇄시스템으로 다가갔다. 이곳에서 헌팅 게임을 하던 밀리터리 동오회가 만든 것이다. 그들은 온갖 개폐장치를 설치했다. 학교를 마치 게이밍 필드처럼 개조한 뒤 방송실을 중심으로 서로 간의 브리핑을 주고받으며 좀비 사냥까지 즐겼다. 군사 업체는 박사가 남자에게 백신을 투여한 사실을 안 후 이 공간에서 절대 벗어나지 말 것을 권고했다. 그랬으면서 지금 눈 앞을 지나치는 바로 그 군사 업체의 파견원은 저 남자를 이 방으로 데려왔다.

 파견원은 박사의 무슨일이냐는 질문에 대답하기 앞서 단말기에 띄운 메뉴얼을 확인하며 모든 개폐장치를 작동시켰다. 그리고 창문으로 다가가 고속도로 방향이 주시 가능한 자리를 잡은 후 입을 열었다.

 "예측대로라면 이곳에 파견되어 오는 업체는 총 네군데. 울산 방향에서 저희와 한팀, 그리고 김해쪽에서 두 팀입니다. 그런데 저를 제외하고 한 팀밖에 안왔습니다."

 "그게 문젠가? 안 올 수도 있는거지."

 "안 온 데에 이유가 있다면 문제가 됩니다. 김해 방향의 어느 구간이 뚫렸을 수 있습니다. 윗쪽에 승합버스가 많더군요. 이곳으로 오면서 좀비 군체를 자극했을 겁니다."

 "그 사람들이."

 학교 건물 전체를 차례대로 폐쇄하기 시작한 검은 철제 셔터가 마지막으로 방송실의 창문도 덮었다. 전등이 켜져있는 실내의 조도 변화는 크지 않았지만 박사는 눈을 감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눈이 아닌 다른 곳의 스트레스 탓이다. 그 사람들. 교내에서도 정숙하질 못하더라니. 그런데. 그렇다면 왜 학교를 봉쇄하지? 이곳을 떠나 울산의 피난 거점으로 이동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런 의문을 떠올렸을때 파견원이 말했다.

 "지금도 고속도로 쪽에 많이 모여 있습니다."

 많이. 모여. 그 단어 선택에서 박사는 이해했다. 이 파견원은 많은 인원이 서로 합류하게 되는 구도를 경계하고 있다. 군사 업체의 요원들 특유의 철칙. 그들은 절대로 통제할 수 없는 인원 수의 민간인을 보호하지 않는다.

 "저희는 그들과 합류하지 않고 박사님은 헬기로 탈출하실 겁니다. 원래부터 이곳은 헬기로 접근하기 위한 장소라 옥상과 운동장 두 군데가 헬리포트로 등록되어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저희 업체의 전투부대가 와서 보호할겁니다. 신경쓰지 마십시오."

 박사는 당연히 신경쓰지 않는다. 그저 만에 하나 비난의 화살이 자신에게 향했을때 늘어놓을 내용을 확인했을 뿐이다.

 그때 남자, 숙직실의 그 남자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학교에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을거요."

 파견원은 남자의 거친 어투에도 아랑곳않고 짧게 대답했다.

 "업체의 소관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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