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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종 포화#2
게시물ID : readers_3393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콜이
추천 : 1
조회수 : 36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7/13 14:3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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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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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하가 있는 도시 내에서 블루 컬러로 표시된 것은 요새화에 성공한 경부 고속도로, 도심과 구도심 양측으로부터 동떨어져있던 강변의 경찰서 시설, 그리고 지금부터의 목적지 정도다.

 진하는 자전거를 꺼내 경찰서 부지 밖으로 나섰다. 3년쯤 지속되면 이런 세상이어도 해볼만한 취미생활이 생긴다. 등교 이다. 진하는 여기저기 부서진 구도심의 아스팔트 도로 위를 달렸다.

 강을 건너는 다리의 아래쪽, 대형 공설 운동장의 주차장 부근, 시내로 들어서는 입구부터 시장으로 이어지는 좁은 도로까지. 지나치는 골목마다 괴악한 소리를 내는 머리나 몸통만 남은 좀비들이 눈에 밟힌다. 골목으로 밀려나 있다는 것은 누군가 이 길을 청소했다는 것이기도 하다. 국도가 완전히 폐쇄되어 군인도 접근하지 않게 된 후 누군가는 마음대로 이곳에 살고있다. 아직 그 사람들과 마주친 적은 없다.

 전복된 버스와 자동차의 잔해를 피해 사거리를 지났다. 도시 외각도로까지 달려 한번 빠져나간 후, 그 외각도로를 따라 도시 부지의 가장자리를 빙글 돌았다. 그리고 자전거에서 내려 마지막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른 다음 진하는 언덕 위의 고등학교 앞에 멈춰섰다.

 국도는 폐쇄되었다. 경부 고속도로는 요새화되었다. 도시의 외각을 에두르는 그 고속도로를 장벽처럼 두르고 도시 가장자리의 언덕 위에 자리잡은 이 고등학교는 이제 성채처럼도 보인다. 학교로 들어가는 통로가 철저히 막혀있다. 운동장에서부터 이어져나오는 육교도 올라가는 길이 모두 파괴되었다.

 민간 군사 업체의 위험도 맵에 따르면 학교는 블루 스팟이다. 경남 지방을 돌아다니는 대담한 밀리터리 동호회가 이 학교의 구조를 좋아해서 여러차례 헌팅스팟으로 사용했다고 했다. 깨끗히 청소된 결과 컬러 판정 블루가 되었다.

 진하는 들어갈 수 없는 학교를 지나쳐 내리막의 주택가로 진입했다. 이 주택가에는 학교에서 청소당한 시체들이 비가연성 폐기물처럼 버려져있다. 원래부터 깨끗하다곤 할 수 없었던, 아무도 굳이 언급하지 않지만 뻔히 못사는 사람들이 사는 이 주택가에는 골목 구석의 공간에 지어진 열악한 형태의 주택이 많다. 진하가 멈춰 선 길가에도 좁은 쪽문이 하나 있다. 사람하나 간신히 들어갈 폭 사이로 자전거를 밀어넣고 안으로 들어간 진하는, 좁은 통로에 놓인 드럼통을 밟고 양철 지붕을 올랐다.

 이 장소에 좀비 덩어리들이 쌓여있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그대로 벽돌 담장을 타고 넘었다. 그리고 고등학교의 뒷쪽방향, 급식소 건물 뒷편에 내려섰다. 현역 지각생이던 시절 애용한 뒷길. 인간이 아직 두 종류이던 시절에 진하는 이 고등학교를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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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멘트로 마감된 뒷 터. 넓고 평평한 건물의 측면. 그 앞으로 나서면 공간을 따라서 관목이 늘어서있고 운동장에는 바람이 분다. 학생들이 가득이었어도 똑같이 자라났을 나무들이 숲에서처럼의 소리를 낸다. 어울리지 않게 파도처럼도 들린다.

 고요. 물너울에 밀리듯이 여러 기억이 자극돼 오는 건 이 공간의 탓이다. 평범한 시절로부터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 것처럼 느낀다. 좀비에게 소비당한 3년보다 훨씬 긴 시간. 앞으로 무엇이 얼마나 잘 되더라도 만회할 수 없는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을 한다. 쉽게 회귀적인 감정에 휩싸인다. 그래서다.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원래 있던 장소를 찾아오고 만다. 스릴을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좀처럼 그만둬지지 않았다. 향수병의 한 종류라고 해야만 설명할 수 있다. 의미없음을 알면서도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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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아침."

 "지각이에요."

 진하는 반장에게 인사를 하며 교실에 들어섰다. 시간은 점심이 다 되었다. 일찍 도착하고도 의미없이 교내를 돌아다닌 탓이다. 칠판 앞에 서있는 체육복 차림의 반장이 출석부에 지각표시를 그어넣었다. 반장은 진하가 붙인 별명이다. 

 진하는 가운데쯤 있는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이 교실의 참여자는 스무명 가량. 다들 직업도, 나이도, 이름도 없다. 개인적으로는 가지고 있겠지만 타인과 공유하는 종류로는 그렇다.

 사람들은 폐쇄되지 않은 고속도로를 따라 각지에서 몰래 찾아온다. 목적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역시 향수병의 일종이라고 밖에. 자신이 있는 곳이 불안하면 이런 학교와 같은 장소를 찾는다. 모임의 참여자 중에서 이 도시에 사는 사람은 진하 뿐이다. 진하가 레드스팟 투성이인 구도심을 지나온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안경을 쓴 반장은 칠판 앞에 서있다. 칠판에는 게시일자가 3년 전으로 되어있는 녹화강의가 띄워져있다. 예전보다 시력이 많이 나빠졌다는 반장은 아직 새안경을 구하지 못했다. 수업을 듣는 것은 반장 정도고, 나머지 참여자들은 등교의 기분만 즐길 뿐 교실에 앉아있는 일이 잘 없다.

 교실. 고요막막한. 이따금씩 필기소리가 나고, 교실 구석에서는 엎드려 자고 있는 누군가의 숨소리가 들린다. 천장의 에어컨이 켜져있고 한가한 기분이다. 오늘 날씨면 수업시간 내내 옥상에서 졸고 있어도 좋다. 정작 학교를 다니면서는 한번도 가보지 않은 장소나 들어가보지 못한 곳에 들어가 보기도 한다. 

 이 시간 죽이기는 종종 지루하고 무의미하지만, 누군가들은 하루종일 따분하고 싶어해서 이 모임이 성립되었다.

 따분한 시간을 갖는 것이 쉽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그런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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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하가 학교에 와서 하는 주요 업무는 핸드폰을 충전하는 것. 또 충전한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일. 그리고 블로그에 업로드를 하는 일이다. 달에 한번쯤 운이 좋으면 조회수가 찍힌다.

 세상은 죽어가도 인터넷은 잘 살아있다. 신기한 일이다. 근 십여년간 시끄럽게 했던 자동화 시책. 다 꼽을 수 없을만큼 광대한 범위의 일자리를 증발시켜버린 그 시책이 일하는 사람이 모두 사라지고 나니 굉장한 도움이 되고있다. 세상은 인간이 멸망해도 알아서 잘 돌아가게 만들어졌다.

 전기도 수도도 문제 없고 공산품도 생산주기만 지나면 집하지에 산처럼 쌓인다. 그곳까지 좀비를 뚫고 갈 용기만 있다면 굶어죽을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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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쪽에서 온 사람들이래요."

 윗층에서 들리는 웅성거림에 칠판을 보던 반장이 흘리듯 말했다. 진하는 대답없이 복도 창문 너머로 보이는 소음측정계를 쳐다봤다. 벽에달린 그 계기판의 표시 수치는 90정도를 오가며 가끔 밝은 녹색에서 노란색으로 빛이 바뀌었다.

 '이건 오겠네.'

 저게 노란색으로 바뀌면 이 지역을 관리하는 민간 군사업체에서 파견이 온다. 그들이 정확히 뭘 하러 오는지는 모른다. 단지 몇몇 그들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을 본적이 있다. 이 학교처럼 드물게 지정된 블루 스팟은 나름의 이유로 군사업체의 관리를 받는다. 레드 스팟에 좀비들이 밀집되어있듯이 블루 스팟에는 인간들이 모여드니까 ㅡ 아마 그들은 인간의 밀집을 경계하는 것 같다.

 진하는 등을 푹 기대어 앉아 교실을 둘러봤다. 반장, 자신, 그리고 엎드려 자고 있는 사람이 하나. 기분좋은 인구 밀도다. 이 이상 사람이 많아지면 어떨까. 모임의 스무명 모두가 동시에 모인다면, 서른명 한반이 된다면,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학교를 찾는다면.

 좀비에 대한 피해가 가장 적은 곳은 미국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인구 밀집도가 낮고 개인 총기 소지 비율이 높은 지역일수록 그렇다고 했다. 군대가 잘 갖춰진 것은 피해 비율에 큰 영향이 없었다. 군인은 민간인을 지키려고 하니까. 그에 반해 개인은 얼마든지 그 총으로 살아있는 인간을 쏜다고 했다.

 결코 죽지 않는 좀비의 수를 줄이는 가장 효과 적인 방법은 아직 살아있는 인간을 죽여버리는 것일 수도 있다.

 그날 저녁, 대구의 거대 피난 거점 하나의 색이 바뀌었다. 블루에서 레드로. 이 도시의 경찰서에 있던 피난민들이 옮겨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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