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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김씨 백촌공파 김동암 할아버지 daum cafe
북교초등학교 게시판. 2019. 7.11
(서론)
일본이 한국의 국제법 위반에 (항일청구권으로 완결된 사항 및 종군위안부 문제) 전자부품수입 3건과 1.000건 넘는 여러 규제를 들고 나오고 ....
(결론)
부산항만공사의 조사에 따르면 매년 한국 관광객 25만 명 정도
가 쓰시마를 찾는다고 한다2017년에는 무려 73만 명이 방문했다
고 하니 앞으로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쓰시마가 한국관광객 유치로 벌어들이는 돈도 어마어마한데,10여 년 전인 2007년도 나가사키현 통계자료를 보더라도 그 재정효과가 이미 200억원을 넘어섰다. 최근에는 낚시꾼보다자전거를 타는사람들이 급격히 증가했다고 한다.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쓰시마를 먹여 살리는 것은 우리나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퍼뜩들었다.
정말로 조선이 쓰시마번의 생명줄을 쥐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쓰시마번은 임란때 병사로젊은 남자5,000명을동원했고,
정유재란때는농민과어민까지 동원했다. 전쟁이 끝나자 쓰시마 번
은 극도로 피폐해졌다. 조선과의 무역 단절은 쓰시마번 백성들의
생존자체를 위협하는 일이었다.그들에게 조선과의 국교회복은 생사가 달린 문제였다.조선은 쓰시마번에 매년 쌀과 콩을 200석씩, 후에는 250석씩 공공해주었다.종사관 당연한 얘기지만 작은 섬에 사판 사람듣이 외부의 지원 없이 생존하기란 어려운 일이지요 쓰시마번 역시 일본에서든 조선에서든 도움을많이 받고자했을듯합니다 조선은쓰시마번에 얼마나 지원해주었나요?
정사필: 18세기 중엽이기는한데 쌀2만수천여 석‘ 공목公木, 즉무명 720여 동 同 3만 6.000띔을 주었지 값을 따져 계산하면 30만 냥이 훨씬-념는규모라네 .
종사관: 굉장한 규모네요 그렇다면 쓰시마번이 조선에 바치는 물품은 없었나요? 정사필 물론 있었네 그들은흑각 黑角, 동철 銅鐵, 후추 명반,단목 丹木 등을 바쳤어 하지만 다 해봤자 값을 따지면 3만냥 지나지 않았으니,그들이 바치는것은우리가주는것과비교하면 10 분의 l에 불과했던거지 이와 관련해 정사 윤지완尹跳完,1635-1718이 쓰시마번 통사와 대화를 나눈적이 있었다.
윤지완: 이 절도에 곡식이 나올 땅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 너희는 어 떻게살아가고있느냐?
통사 :조선에서 쌀을 얻기 전에는 백성 이 자식을 낳아도 굶어 죽는 것을 차마볼수없어서 물에 던졌습니다 지금은 자식을 낳으면모두기릅니다 섬이 번성하고 있습니다 소인들은 비록 일본인이지만실제로는 조선의 변방에 사는 백성과 다름이 없습니다.
스스로 조선의 변방에 산다고 생각한 쓰시마 사람들은 조선에서
벼슬을 제수받기도 했다. 호군諸軍에 임명된 자는 해마다 한 번씩 동래에 들어왔다. 이때 들어오는 배가 무려 50여 척에 달했다. 몇 달씩 체재하는탓에 경상하도:慶尙下道의 미곡이 동날지경이었다. 영조 24년1748 무렵에는 공작미公作米 1만 6,000여 석, 요미料米 2,000여석, 쌀과콩 1,000여 석 등곡식 2만수천 여석을제공했다. 공작미는 일본에서 공무역품公貿易品을 수입할 때 결제수단으로 지급하던 공목 대신 준 쌀을 가리킨다. 요미는 왜관 소속 관리, 조선의 사행원 이나 송사, 쓰시마번의 사절인 차왜 등에게 지급하는 쌀이다. 이 양곡으로 쓰시마 사람들은 생계를 유지했다. 대부분 땅이 메마른 자갈땅으로 농사지을 수 있는 평지가 적어 조선이 하사하는 쌀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형국이었다. 조선인삼은 병치레하는 자들에게 영약이었다. 이키시마를 지나서부터는가격이 더 붙어 에도에서는 조선인삼 한 근의 값이 거의 1,000금에 달했다. 조선이 하사하는 곡물과 조선인삼 그리고 조선과의 무역으로쓰시마번은부를누렸다.
(결론)부산에서 장시간 거주했던 저로서는 부산분들의 여행의 협소함을 잘알고 있다. 그래서 당일치기로 쇼핑을 하고 바람을 쏘려고 대마도를 가는 것을 알고 있다. 저역시 가족들과 태종대를 가면 맑은날 대마도가 바다에 홀로 떠있는 광경을 종종 보곤하여 얼마나 가까운지도 잘알지만 국가의 문제에 양보하고 대신 물건 구매는 해외직구(G마켓도 제공)로 ,여행은 신안의 다이아몬드 섬(자은등)을 갈 것을 권하고 싶다. 자은 역시 쓰시마 섬처럼 소금과 여러 농작물만 나오지 윤택한 섬이 아니고 ..... 소금지역.멍텅구리배등이 있는지라 노예제도가 종종있어왔고 ...... 너무도 넓은 다도해는 대한민국의 치안과는 좀 다른 지역이라고 하는것도 쓰시마섬과 비슷하다.개인적으로는 이제 일본과 한국의 경제 전쟁은 시작에 불과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500여년전 스페인(네델란드)의 상선이 나가사키에 정박한후 일본이 한국에 베푼 여러 가지 은혜를 이제 모두 갚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모른것은 한국은 좌파니 우파니하면서 국력을 소모하고 있었을뿐 일본의 생각을 잡지 내지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大衆은 일본이 영원한 한국의 동생인 것이다. 남이야 어찌 생각하든지 말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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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도서)통신사의 길을 가다. 서인범지음. 한길사.116-119 쪽. 2018.11월30일. (이미지)구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