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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였다.
출입문이 거칠게 열리면서 수사과장이 들어서며 소리쳤다.
“신세들 늘어졌구먼. 반상회나 하시고?”
박형사와 정형사가 긴장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최반장은 역으로 히죽 웃으며 거수경례를 했다.
“선배님 좋은 아침입니다.”
“이 자식이 지금 뭐하자는 거야? 남은 속 타 죽겠는데........”
김과장은 투덜거리며 상황판 앞에 비치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더 이상 말꼬리를 물지 않은 것은 최반장의 행동이 뭔가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내색하지 않고 상황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많이 정리가 됐는데........ 이제는 무능의 때를 벗을 수 있는 거야?”
최반장이 과장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똥개 기사에 많이들 흥분하셨군요.”
“그래 나더러 직접 지휘하란다.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네가 지금 사건현장을 뛸 군번이냐!”
“아니죠? 곧 서장님이 되실 군번이시죠.”
“됐고. 지금 어떻게 흘러가고 있어.”
그러자 최반장이 자신 있게 말했다.
“우리 삼총사의 진가가 보입니다.”
“그럼, 목격자. 증거. 증언을 확보했다는 거야?”
“체포영장만 힘써주시면.........”
“인마. 그건 3박자가 갖춰졌다면 문제 될 거 없잖아. 정말로 확보 된 거야?”
“네. 오늘이 D데이 입니다.”
“그 말은 아직 불확실하다는 거야 뭐야?”
“아닙니다.”
“그럼 뭐야? 처음부터 확실히 정리해봐! 내가 체포영장청구 여부를 판단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정형사 상세히 말씀드려.”
그리고 최반장은 수사과장 옆자리에 앉았다. 박형사도 그 옆에 앉았다. 정형사가 고개를 조아리고 지휘봉을 들더니 상황판을 가리키며 브리핑을 시작했다.
“본 사건은 3주 전에 안성시 소재 월곡면에 위치한 월곡저수지에서 고순옥의 사체가 떠오르면서 시작된 사건입니다. 사건을 접수한 우리는 먼저 용의자 확보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깡촌인 관계로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됐습니다. 그래서 우리 수사팀은 피살자 고순옥의 주변을 수사에 착수했고, 그 결과 그녀의 배우자 황동팔을 용의자로 지정하고 탐문수사를 벌렸습니다. 하지만 완벽한 알리바이에 일단 접고 또 다른 용의자를 지정해 탐문을 시작했습니다. 그가 바로 피살자의 전남편 오동호입니다. 하지만 그 역시 법의 저촉을 받지 않는 금치산자이기에 포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피살자 지인으로부터 고순옥의 일기를 입수 받아 수사에 탄력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제 2 용의자로 그녀의 엄마 나평자가 지목된 겁니다. 그녀는 사건전모에 모두 관여하고 있었으니까요. 오동호가 사고로 금치산자가 되자 그의 재산을 딸 앞으로 돌려 갈취하게 하는가 하면 손녀 양육권에 가담하여 오동호에게 치명상을 입힌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나평자의 행적에 집중했는데요. 뜻밖에 익명의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그건 범행 장면이 고스란히 담긴 USB메모리였습니다. 내용은 검정복장에 검은 모자와 마스크를 쓴 두 사람이 시신이 담긴 듯한 물체를 힘겹게 차량에 싣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분석했는데 그건 조작된 트릭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두 사람을 남자로 알았는데 그중 한명이 여성으로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평자에 더욱 용의 점을 두고 추적을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나평자가 오동호를 그토록 증오한 것은 조상 때부터 이어진 악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증거가 부족해 손녀에 집중했는데 손녀는 이미 실종된 뒤였습니다. 그래서 그걸 빌미로 그녀를 체포하려 계획을 세웠는데 불행하게도 그녀 역시 월곡 저수지에서 시신으로 발견 된 겁니다. 그래서 다시 봉착에 빠져 수사방향을 수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수정된 수사는 주변 인물을 샅샅이 파헤쳐 보자는 거였습니다. 그동안은 금치산자라는 이유로 등한시 했던 오동호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뜻밖에 사건의 열쇠는 전남편 오동호가 쥐고 있다는 걸 확신했습니다.”
“그 인간 금치산자라면서 가능한 거야?”
묵묵히 경청하던 수사과장이 의문을 제시했다. 그러자 정형사가 진지하게 운을 띄웠다.
“그걸 십분 활용한 겁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이상의 컴퓨터 전문가였습니다.”
“그래도 그건 그 사람이 사고 당하기 전 아니야?”
“맞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그가 확보한 인맥이 확실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의 한마디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확실하게 구축되어 있다는 거죠.”
“그렇다면 그 사람이 자기에게 닥칠 사고를 미리 예측하고.......”
“지금까지 정황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수사과장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지 머리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네트워크라니? 그럼 연관된 모든 자가 용의자라는 거야.”
“그렇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그들의 연관관계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하며 정형사는 상황판의 오동호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여기 오동호와 첫 번째 연관자는 고순옥입니다. 또 그 고순옥은 엄마 나평자와 연인 황동팔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두 번째 오동호와 연관자는 부모님과 은인 민국기 교장과 이어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민국기와 주변 인물들입니다. 민국기 교장은 오동호가 IT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도록 물신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인물로 인맥 중간 책입니다. 법률대리인을 자처한 그는 먼저 견기자와 외 조카 격인 강명호 변호사를 섭외 지명해 사건전부를 맡겼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정나리’라는 여성을 끌어들여 연락책으로 쓰고 있습니다.”
“정나리라....... 처음 들어본 이름인데?”
최반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그쳤다. 정형사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용인에서 오동호의 흔적을 쫓다가 우연히 분식점에서 마주친 아가씨인데요. 그녀가 주인으로부터 오동호의 가방을 건네받을 것을 목격하고 미행해서 알게 된 겁니다.”
“그럼, 오동호와 접촉하는 것도 봤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 아가씨는 오동호와 무슨 관계라는 거야?”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그녀는 백혈병환자로 오동호로부터 골수를 이식받은 관계였습니다.”
“그렇다고 이용을 한다는 거야?”
“아닙니다. 그 끈은 역시 민국기 교장 선생님이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그녀가 가방을 전달하고 가다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 제가 병원으로 데리고 갔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그가 병문안 차 오동호와 같이 왔으니까요.”
정형사는 자신과 나리와의 관계를 철저하게 숨겼다. 그건 자신의 사생활로 사건과 무관하기도 했지만 그녀의 부담을 주기 싫어서 였다. 최반장은 어느 정도 눈치를 챈 듯 싶었지만 상관치 않고 질문을 이어갔다.
“그때 문제의 USB를 습득한 거고?”
“네.”
하지만 수사과장이 이해가 되지 않은 듯 또다시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USB라니?”
그러자 최반장이 나서며 말했다.
“우리가 확보한 유일한 증거가 담긴 겁니다. 보실 랍니까?”
“그래.”
순간, 박형사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가방에서 태블릿PC를 꺼내들고 와 정형사에게 내밀었다. 정형사는 받아 주변에 있는 TV를 켠 다음 무선으로 능숙하게 미러링을 했다. 순간 화면에 2개의 폴더가 떴다.
정형사는 첫 번째 폴더를 클릭했다. 순간 비명소리와 함께 무자비한 구타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어서 피투성이가 된 체 바닥에 한 사내가 뒹굴고 있었다. 그 앞에는 몽둥이를 든 황동팔과 나평자가 노려보고 있었다. 그 옆에는 고순옥이 팔짱을 끼고 보고 있었다. 이어서 나평자가 소리쳤다.
“명의를 넘길 거야! 말 거야!”
그러자 사내가 고개를 쳐들었다. 그는 놀랍게도 오동호였다. 그는 울먹이며 말했다.
“이건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전부입니다.”
“그래도 이놈이” 하며 나평자가 오동호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오동호는 나가 떨어졌다. 고순옥은 꿈쩍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안되겠어! 더 손을 봐야지!” 그러자 황동팔이 몽둥이를 마구 휘둘렀다.
“그만!”
수사과장이 더 이상 못 보겠다는 듯이 소리쳤다. 정형사는 일시정지 버튼을 눌렀다. 수사과장이 애써 진정하며 말했다.
“저기 죽사발이 된 인간이 오동호고 폭행을 가하는 것들이 황동팔과 나평자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기 팔짱 끼고 보고 있는 여자는 아내인 고순옥입니다.”
“저것들 철저한 악질들이구만. 그건 그렇다 치고, 왜 반항하지 않지? 오동호 저 인간도 덩치가 만만치 않는데?”
그러자 정형사가 끼어들었다.
“제가 보기에는 전시효과를 노린 것 같습니다. 조사결과 태권도 유단자로 밝혀졌습니다.”
“그럴만한 이유라도 있나?”
“이미 계산이 서 있었다는 거죠.”
“그렇다면 오동호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일테면 정당방위 같은.......”
“그렇습니다. 그의 빈 가게에서 발견된 낙서에도 분명히 고순옥과 나평자의 이름이 붉은 펜으로 X자가 그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자네 심증 아냐.”
“심증이라기보다는 여러 곳에서 정황이 심심치 않게 발견 됐습니다.”
“그럼 그 장면도 기록돼 있다는 거야?”
“네. 이 폴더에도 있습니다. 일단 2배속으로 돌려보겠습니다.”
그리고 정형사는 되감기 버튼을 1번 눌렀다. 순간 영상이 2배속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지나치는 영상 또한 폭행 장면이었다. 얼마나 감았을까. 정형사는 화면 속에 시간표시를 보더니 정지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정 배속으로 화면이 펼쳐졌다.
그 장면은 피범벅이 된 오동호가 바닥에 엎드려 있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 옆에서 지켜보고 있어야할 그들은 없었다. 대신에 그 앞에 봉투가 놓여 있었다. 그는 갑자기 고개를 쳐들더니 울부짖었다.
- 아 으으으!
그리고 갑자기 비장한 표정을 짓더니 인지를 깨물어 봉투 위에 혈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건 놀랍게도 그들의 이름이었다. 피가 응고돼 정확히 써지지는 않았지만 연결해 보면 틀림없는 그들의 이름이었다.
- 황동팔. 나평자. 고순옥이었다.
그는 짐승처럼 다시 한 번 울부짖더니 몇 번이고 X자를 그었다.
“처절하고만........ 그 다음은 뭐야?!”
“결국 수긍하는 장면입니다.”
하며 정형사는 또다시 2배속으로 화면을 돌렸다. 역시 폭행 장면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암전으로 바꿨다. 정형사는 그곳에서 정 배속 버튼을 눌렀다.
그 장면은 시간이 상당히 지난 듯 오동호의 맨얼굴이 드러났다. 핏자국을 지우긴 했지만 찢기고 멍든 자국은 여전했다. 그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 앞에는 탁자가 놓여 있고 그 위에는 서류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나평자와 오동호 사이에 사랑하는 딸 사랑이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울고 있었다. 그 옆에 고순옥도 보였다. 나평자는 흐느끼는 사랑 이에게 “뚝!” 이라 소리쳤다. 그러자 사랑이가 겁에 질러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엄마 고순옥을 쳐다봤지만 고순옥은 무표정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평자가 탁자에 발을 올리며 말했다.
“마지막 기회야. 네가 오늘도 거부하면 네 딸은 오늘로써 끝이야!”
순간 오동호가 파랗게 질려 울먹였다.
“사랑이 만은 안 돼요.”
“그러니까 찍으라고!” 하며 사랑이의 팔을 거칠게 움켜잡았다. 사랑이가 비명을 질렀다.
- 아.....아…….
그러나 고순옥과 황동팔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오동호는 입술을 질건 씹으며 오른 손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입술에 피가 흐르자 그걸 묻혀 지장을 찍었다. 그러자 나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인주 한번 확실하고만.......”
그리고 서류를 들어 확인했다. 오동호는 겁에 질려 있는 사랑 이를 보며 양팔을 벌렸다. 그러나 사랑 이는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릴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때 서류를 확인한 나평자가 오동호를 노려보더니 사랑이의 팔을 낚아채 고순옥에게 팽개쳤다. 사랑이가 울음을 터뜨리며 안겼다. 그러나 고순옥은 넋잃은 표정으로 물끄러미 쳐다볼 뿐 얼싸안지 않았다.
“스톱! 야비한 인간들! 어린애까지 손을 대!”
수사과장은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듯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최반장을 비롯한 박형사와 정형사는 묵묵히 천정만 올려다보았다. 그에게는 철칙이 있었다. 그건 다른 건 다 참아도 어린애에게 손대는 건 절대로 용서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선지 그가 반장시절에 어린애 관련 사건은 기필코 처리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수사 지휘관으로써 감정을 내세울 수 없어 애써 진정하며 말을 이었다.
“이만하면 살해의도가 분명하긴 한데 증거 채택이 가능할까?”
정형사가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요즘은 대체로 인정하는 추셉니다. 하지만 다음이 문제입니다.”
“다음이 문제라니?”
“다음 영상을 봐 주십시오.”
그리고 그는 또 다른 폴더를 클릭했다. 그러자 영상이 펼쳐졌다. 그러나 곧바로 영상이 뜨지 않고 음성이 이어졌다.
“니들 죄는 잘 알겠지!”
그러나 그 음성은 실제 음성이 아닌 기계로 조작된 음성이었다. 이어서 화면 속에 인물이 비쳐졌다. 거긴 황동팔이 피범벅이 된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황동팔은 정상음성으로 애원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이건 다 나평자가 시켜서 한 일입니다.”
그러자 누군가 머리를 걷어차며 소리쳤다. 그는 놀랍게도 하회탈을 쓴 건장한 남자였다. 황동팔이 몹시 괴로워하며 머리를 감싸 쥐고 나뒹굴었다.
“비겁한 새끼! 남자 새끼가 여자 때문이라고 변명을 해!”
“사실입니다! 저도 어쩔 수 없이 그녀에 협박에.......”
그러자 하회탈이 간드러지게 웃으며 소리쳤다.
“그렇다면 그게 필요 없겠구먼!”
하며 날선 가위를 치켜들었다. 순간 비명이 이어졌다. 그리고 영상은 끊어 졌다. 수사과장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넋을 잃고 쳐다봤다. 그러는 사이 화면은 다시 이어졌다. 거기는 나평자가 결박 지어진 채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구타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평자는 괴로운 듯 온몸을 뒤틀며 발악했다.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난 네 놈이 누구인줄 알아!”
그러나 아무 응답도 없었다. 나평자는 더욱 발악하며 소리를 질렀다.
“철천지원수의 아들! 오동호 이놈!”
하지만 역시 아무 응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나평자가 온몸을 뒤틀며 애원을 했다.
“살려 줘! 내가 다 잘못을 했어...... 목숨만은 살려 줘........ 날 살려 준다면 죗값을 치루면서 살게.......”
그러자 언제까지나 침묵으로 일관할 것 같던 실내에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 용서는 시작의 반성에서 비롯돼야 하는 거야. 왜냐하면 그 시작으로 자신의 영혼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지. 그래서 지금의 용서는 의미가 없는 거야. 당신은 그로 인한 심판을 감수하기로 마음을 정한 거니까.
나평자는 또다시 애원하며 흐느꼈다.
- 아냐! 아냐! 난 지금 진심이라고…….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 진심은 이해를 바탕으로 생기는 거야. 다시 말하면 상대방의 아픔을 진정으로 헤아리고 나누어 가졌을 때 생기는 마음이야. 고로 지금의 당신에게는 해당되지 않아. 지금 내가 왜 당신을 폭행하지 않는지 알아. 그건 그럴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야. 폭력은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기 때문이지. 다시 말하면 폭력은 누구에게 지시해서도 안 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가해서도 안 되는 거야. 그 권리는 누구에게도 부여되지 않은 불법이기 때문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상관치 않았어. 그로인해 상대방은 비록 동의해 줬다고는 하지만 그건 오해야. 상대방의 진 마음은 결코 꺾이지 않았어. 되레 이렇게 부메랑이 될 뿐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폭력도 부족해 남의 혼까지 조정하려 들었어. 분명히 말하지만 자식은 결코 당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로봇이 아니야. 엄연한 한 객체야! 독립적 인간이라고!
하며 에코우 되면서 줌아웃으로 끝을 맺었다.
묵묵히 지켜보던 수사과장이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시원하기는 하구만……. 하지만 어폐가 있어. 앞 장면에서의 폭행은 뭐야? 그건 자기가 즉 심판자니까 정당하다는 거야?”
그러자 최반장이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받았다.
“그전에 구구절절 옮은 소린데요. 마치 교장선생님 훈시 같은.......”
“그 말은 오동호가 직접 폭행에 나선 것이 아니라 제삼자가 한 것이다?”
“정형사 그렇지 않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동호는 참관인 정도로 머무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박형사는?”
“저 역시 동감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수사과장이 습관처럼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을 받았다.
“근데 말이야. 이걸 왜 흘렸을까?”
“그..... 글쎄요. 제가보기에는…….”
최반장이 말을 받았지만 끝을 맺지 않고 정형사를 쳐다봤다. 정형사는 뭔가 골몰히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저도 그게 아리송합니다. 처음에 일방적으로 당하는 폭행 장면은 이해되는데 역으로 폭행하는 장면은 왜 담았는지.......”
묵묵히 듣고 있던 박형사가 말을 받았다.
“혹시 실수로 들어 간 거 아닐까요?”
그러자 수사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아. 그래서 처리계획은 뭐야?”
“그...그러니까.....”
최반장이 대답을 하려다 말고 역시 정형사를 쳐다봤다. 정형사는 뭔가 다짐한 듯 말을 이었다.
“응답 송을 보냈습니다.”
“응답송이라니?”
모두 그를 쳐다봤다. 정형사는 대답대신 태블릿PC를 조작하더니 장면을 띄웠다. 그건 누군가 CCTV 전주 아래서 노트북으로 뭔가를 조작하는 사내의 모습이었다.
순간 수사과장이 생소하다는 듯이 놀라 소리쳤다.
“아니 저건 누군가 CCTV를 해킹하는 모습 아냐?!”
그러자 최반장이 자신 있게 말했다.
“네. 저희가 확보한 증거입니다. 저희 판단은 저 인간이 오동호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검은 옷에 모자. 마스크로 도배를 했는데?”
“전문가한테 의뢰한 결과 오동호 체격 조건과 일치 합니다.”
“그래도 그건 심증 아냐? 이때는 뭐니 뭐니 해도 목격자가 최고라고!”
“물론입니다. 확보했습니다.”
최반장 말이 끝나자마자 정형사가 근처에서 소변을 보고 있는 사내의 모습을 띄웠다.
“인적 사항은 파악 된 거야?”
“물론입니다. 저 녀석 목덜미에 문신이 단서로.... 출근과 동시에 사고로 내근을 하고 있는 이 형사를 보냈습니다.”
“걔 괜찮을까? 칼침 맞은 앤데......”
“걔한테 물어 봤더니 괜찮답니다. 상처가 다 아물어 실밥만 빼면 된답니다.”
“그래. 언제 정도 올까?”
“늦어도 점심시간이 지나면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 그건 그렇고 정형사 응답 송은 또 뭐야?”
정형사는 앞 장면을 되돌려 띄우고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이 화면을 오동호한테 보냈습니다.”
“뭐야!”
수사과장을 비롯한 최반장과 박형사가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그건 조금 전에 보았던 누군가 CCTV를 해킹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정형사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나는 네가 한 짓을 알고 있다는 일종의 메시지죠.”
“그래서 답장은 왔나?”
수사과장이 물었다. 정형사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아직 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는 것은 그들도 미처 계산하지 못한 장면인 듯 싶어.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과연 답장은 올까?”
수사과장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최반장을 쳐다봤다. 최반장은 뭔가 생각하더니 이내 말했다.
“온다고 봅니다. 아니면 다이렉트로 되치고 나서던 지요.”
“그건 또 무슨 말이야.”
“그건 외통수라 아직은 단언하기 어렵습니다.”
이때였다.
정형사의 휴대폰이 울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