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을 역게 가이드를 위해 쓰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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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환단고기란?
2. 환단고기 위서론
1) 이유립이 만든 환단고기
2) 11년 원본의 진실
3) 위서론에 대한 억지
3.환단고기 진서론의 근거와 반박
1) 오성취루현상
2) 11년 원본을 주장하는 이들의 『환단고기』의 기록 입증 주장
3) 사료속의 기록을 부정한 사례
4) 이병도의 양심고백
5) 유물의 자의적 해석
6) 가림토 문자
나가는 말
머리말
환단고기에 대해 다들 아마도 많이 들어 봤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 책을 가지고 진실된 우리의 역사를 밝히는 책이라 목소리 높일 것이고 누군가는 그 책은 누군가의 허위에 의해서 쓰여진 거짓되며 왜곡된 역사라 목소리 높였을 것이다. 그 높디 높은 목소리 앞에선 당신을 상상해 보라. 그것이 자신의 생각과 같던 혹은 같지 않던 간에 누구든지 그렇게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듣게 된다면 아마도 당황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 잘못된 것인가 조금은 의심하게 되고 그리고 뒤돌아보며 자신의 족적과 생각들을 되새김질 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없다면 그 사람에게 기존의 주장은 맹목적인 ‘신앙’과 다르지 않으며 더 이상 ‘학문’이라던가 ‘이성’에 근거한다 말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의 주장이 맹백히 그른 것이라면 자신이 믿고 있고 또 자신이 지금까지 말해왔던 그 주장과 행동들에 대해서 책임을 질 필요성도 있다. 자신의 것이 비록 틀리고 부족할지라도 그 높은 상대의 목소리에 부딪혀 나의 것과 비교해 보기도 하며 상대를 무너뜨려야만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지금 이 글에서 논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상황에 놓인 역게의 유저들에게 바치는 글이다. 환단고기와 관련된 글은 종종 올라오며 이들 중에는 정말 모르는 이들에서부터 맹목적인 신봉자들 까지 다양하다. 그런 이들을 상대할 때 당신의 충분한 근거와 충분한 대답의 기초가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작성한다.
참고로 나는 환단고기의 신빙성을 부정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글은 환단고기의 眞書說을 비판하고 僞書說을 지지하는 글이 될 것이다. 이에 반하는 의견을 가진 사람이 혹여 이글을 읽고 있다면 부탁컨대 한번만 정독을 하고 스스로의 족적과 생각에 대해서 되새김질을 해보기를 바란다. 실상 그것이 나의 목적중의 하나인 셈이다.
1. 환단고기란?
환단고기는 계연수라는 인물에 의해서 1911년에 기존의 여러 사서들 (삼성기, 단기고사 등)을 합쳐서 만들어졌다고 ‘주장’되는 책이다. 그 내용은 한국의 고대사, 그 중에서도 고조선을 포함한 그 이전의 역사를 주로 다루고 있으며, 놀랍게도 그 역사서의 시작은 기원전 8000년경 혹은 그 이상의 시대(혹자들은 환단고기의 첫 국가인 배달국이 3만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말한다..)라고 한다. 책의 주 저자로 알려진 계연수는 사실 1911년에 다양한 사서들을 모아 엮어서 환단고기를 편찬한 사실상의 편집자 정도이고 각 책에는 각자의 저자와 그 저자들이 썻다고 전해지는 서문이 달려 있다.
(상생출판에서 나온 환단고기 목차 http://www.hwandangogi.or.kr/hwan/community.php?mid=131&r=view&uid=936)
‘환단고기’에서는 고조선 이전의 환국에서부터 배달국 그리고 고조선과 북부여 고구려 발해 마지막으로 고려에 이르는 역사 및 비사를 서술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관심을 받으며 동시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환국 – 배달 – 고조선’ 부분이고 이 3개의 시기를 합하여 6959년에 달한다고 하고 있는데 이 3국의 왕과 그들의 생몰연대는 다음과 같다.
이 터무니 없이 황당스러운 연표는 그래도 환단고기를 추종하는 이들이 근래에 들어 주장하기 시작한 ‘부도지’의 ‘마고문명’을 제외한 수준이다. 부도지에 의하면 마고문명은 기원전 9137년에 시작했기 때문에 총 합치면 8899년 이라는 경악할만한 숫자가 나온다...;;;; 애초에 기원전 9137년이면 뷔름 소빙기가 전 지구를 덮치고 있던 시기인데 이 시기에 엄청난 문명이 존재 했고 이후에 전 세계로 뻣어나가 문명을 이루었다라니... 놀랄 노자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분명히 밝혀 두겠다. 이 『환단고기』 라는 책은(솔직히 책명을 쓸 때 쓰는 꺽쇠도 쳐주기 싫다.. 귀찮다..) 僞書이다. 즉, 거짓된 책이다. (사서의 위서 진서의 구분에 대해서는 GwangGaeTo님의 글에서 참고하기를 바란다.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umorbest&no=849172&s_no=849172&kind=search&page=1&keyfield=subject&keyword=%C0%A7%BC%AD)
2. 환단고기 위서론
1) 이유립이 만든 환단고기
환단고기 추종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환단고기는 계연수라는 인물에 의해서 1911년에 편찬된 책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거짓’이다. 정확히 말해 이 책의 저자는 ‘이유립’이며 환단고기에 포함된 다양한 책들 (태백일사 단기고사 등) 또한 이유립의 저작이다.
(1) 계연수의 실존 문제
이를 비판하기에 앞서서 환단고기 추종자들이 주장하는 환단고기의 원 편찬자 계연수라는 인물에 대해서 짚고 넘어갈 필요성이 있다. 사실상 이 인물은 행적이 요원하다. 계연수라는 인물에 대한 평전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이 사람과 관련된 뚜렷한 행적 또한 없어 계연수란 인물이 실존했는가 에서부터 의구심이 생겨 버리는 것이다. 우선 환단고기 추종자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계연수는 1969년에 편찬된『해동인물지』에 실렸던 실존인물이다.
두 번째로, 계연수는 1920년에 간행된『정신철학통편』에 실렸던 실존인물이다.
하지만 위에서 말하고 있는 2권의 책은 계연수라는 인물에 대해서 그 실존성은 더더욱 약화 시켜 버린다.
우선 『해동인물지』는 계연수의 생애에 대해서 유일하게 쓰인 책이다. 이 책에 의하면 그는 무술년에 단군세기와 태백유사등을 간행하고 이후에 석주 이상룡의 막후로 들어가 독립운동에 활동했다가 경신년인 1920년에 사망했다고 전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책의 기록에는 그가 『환단고기』를 편찬햇다는 이야기는 없다. 재밌게도 그는 단군세기와 더불어서 태백유사를 간행했다고 하는데... 태백유사란 책은 없다. 환단고기에 실린 책의 이름은 ‘태백일사’로 환단고기 추종자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어긋나 버린다. 물론 추종자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일사를 유사로 잘못 쓴것에 불과하며 태백유사 ‘등’이라고 말했으니 환단고기는 생략된것에 불과하다” 라고 말이다. 그러나 환단고기 원본이 쓰여졌다고 그들이 주장하는 해는 1911년인 신해년이다. 『해동인물지』에서 밝히고 있는 년도는 무술년인 1898년이다. 즉, 연도가 아예 틀려 버리는데다.. 1898년이면.. 아직 조선시대이다.. 그런데 『환단고기』 서문에서는 독립운동가 홍범도와 오동진의 도움으로 이 책을 간행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뭔가 말이 안되지 않는가..;; 홍범도나 오동진이 누굴 상대로 독립운동을 했다는 소린가..?
『정신철학통편』에 오면 이 문제는 더하다. 이 책에 의하면 계연수는 묘향산에서 수도를 하던 仙人으로 묘향산의 한 석굴에서 1916년에 천부경 구절을 발견하고 필사한 뒤에 1917년에 단군교에 보냈다고 전한다. 하지만.. 천부경이 쓰여져 있는 태백일사가 포함된 『환단고기』는 1911년에 편찬된 책이다.;; 즉, 5년이라는 시간을 역행하여 계연수가 천부경을 환단고기에 실었다는 소리가 된다..;;
이 외에도 계연수란 인물의 실존은 여전히 의문점이 남는다.
첫 번째로, 그가 같이 활동했다는 이상룡의 문집인 『석주유고』에는 계연수의 계자도 나오지 않는다. 『해동인물지』에 의하면 계연수는 이상룡의 막후에서 참획군정으로 활동하며 ‘공’을 세웠다고 한다. 더구나 일본인 밀사가 그를 20년에 따로 살해하기 까지 했다고 하니 뭔가 엄청난 활동한 셈인데... 언급조차 없다.
두 번째로, 한국에서 유일한 계씨 집안인 수안 계씨의 족보에는 이 위대한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인 ‘계연수’의 이름이 없다.
세 번째로,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계연수의 행적은 각 책에서 서로 다르게 전하고 있다. 그것도 신기한 것이 그 모든 책들(책들이라고 해봐야 환단고기 정신철학통편 해동인물지 딱 3권이지만)은 단군교에서 출간한 책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계연수란 인물이 환단고기를 제외하고 간행했다고 하는 책들은 모두 공요롭게도 단군교 즉, 대종교에서 경전으로 사용하는 책들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계연수라는 인물은 유대교에서 십계명을 전달한 모세나 이슬람에서 신의 말씀을 전한 마호메트 와 같은 특정 종교집단의 ‘진리 전달자’ 정도의 위치가 아닌가 싶다. 즉, 사실상 신의 의지를 전달하기 위한 가상의 npc에 불과하다는 소리..
(2) 이유립이 만든 『환단고기』
그렇다면 1911년에 계연수가 간행했다는 그 『환단고기』 원본은 도대체 정체가 어찌된 것일까? 불행히도 이 책의 원본이라는 1911년 판은 어디에서도 실체를 확인할 길이 없다. 어느 출판사에서 나온것도 아니고 계연수 혼자서 30권을 집필했다고 하는데다 환단고기 추종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이유립이 제자인 오형기에게 필사를 위해 잠시 맡긴 사이에 그 원본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이후에 이유립은 기억을 되살려 환단고기를 다시 썻으니 그것이 딱 100부 간행한 이유립의 1979년판 『환단고기』 이다. 헌데 신동아(2007년 9월호)에 이런 주장이 실렸다.
다음은 전형배씨의 기억이다.
“이유립 선생은 오형기씨가 붙인 발문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유립 선생은 ‘발문은 그 책을 쓴 사람이 붙이는 것이지, 필사를 한 사람이 붙이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또 이유립 선생은 오씨가 필사한 환단고기에는 오자가 있다며 환단고기를 가르쳐줄 때마다 틀린 글자를 지적하면서 수정해주었다.”
(출처 : http://orumi.egloos.com/2920373)
이 주장에 따르면 오형기씨는 환단고기를 잃어 버린 것이 아니라 앞에 필사를 완료했으며 발문까지 써넣었다. 이유립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을 뿐만 아니라 그 필사본의 오자를 지적하고 수정하기 까지 했다고 한다. 도대체 뭘 보고???? 뭘 보고서 이유립이 오자를 지적했으며 왜 앞서서 추종자들이 주장했던 내용과 다른가? 결국 이 모든 증언은 이유립이 환단고기를 스스로 편찬했다는 심증을 제시할 뿐이다.
이 뿐만 아니다. 광오이해란 출판사에서 나온 1979년판『환단고기』에 따르면 원본은 1911년 3월 15일 출판이라고 하고 있으나 배달의숙이란 출판사에서 나온 1983년판 『환단고기』(재밌는 것은 이유립이 이 책을 1979년 판본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에서는 1911년 5월 5일에 ‘범례’를 썼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이 책은 범례도 없는 상태에서 출판된 책이라는 소리다....;;; 한마디로 그냥 말이 안된다.
또한 1911년의 원본은 대종교의 기록에서도 부정된다. 대종교의 창시자 나철은 1915년에 사망할 때 그의 유서에서 단기를 4373년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1915년은 단기 4249년이다. 이러한 오류는 2대 교주인 김교헌이 저술한 『신단민사』란 책에서 단기를 124년 작게 잡고 있는 점에서 확인된다. 즉, 이미 나철이 사망할 당시의 대종교는 단기를 기존의 것보다 124년 적게 잡고 있었던 관계로 위와 같은 나철의 유서가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기록은 『환단고기』에서 밝히고 있는 민족의 연대기와 다르다.(애초에 기원전 8천년전에 국가가 시작됬다고 말하는 사람들인데 뭘..) 특히나 나철이 대종교를 창시할 당시에 일본에서 백두산의 선인에게 받았다는 『단군교포명서』에 의하면 고조선 이전의 배달이나 환국은 언급도 없고 그냥 단군이 국가와 종교의 시조로 언급된다. 그리고 이 책은 환단고기 풍의 역사서가 아닌 관계로 단군의 세기같은 것은 기록되어있지 않다.
1911년에 간행되었다고 전하는 이 책을 아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으며 심지어 대종교에서도 이 책을 몰랐다는 소리가 된다.
이 『환단고기』가 이유립의 작품이라는 점은 1976년 월간 ‘자유’ 5월호에 이유립이 檀下山人이라는 필명으로 올린 ‘동양문명서원론을 비판한다’를 본다면 더더욱 확실해 진다. 재밌게도 이 원고에서 『환단고기』의 태백일사와 아주 유사한 문장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문장들이 아예 동일하다면 이유립이 1911년 본을 보고서 썻다고 생각할 법도 한데... 다르다.. 아주 교묘하게 몇 글자가 다르며 그로인해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자유’지에 실린 내용
① 昔有桓國, 衆富且庶焉, 初桓仁, 居于天界, 得道長生, 擧身無病, 代天宣化, 使人無兵, 人皆作力, 自無飢寒
② 桓雄, 亦以是日, 自天以降, 立壇祭天, 爲民祈禳
③ 伏羲, 旣受封於西鄙, 職位盡誠, 不用干戈一域化服, 遂代燧人, 號令天下
『환단고기』에 실린 내용
① 昔有桓國, 衆富且庶焉, 初桓仁, 居于天山, 得道長生, 治身無病, 代天興化, 使人無兵, 人皆力作以勤, 自無飢寒也 (환국본기)
② (삭제됨)
③ 伏羲, 旣受封於西鄙, 職位盡誠, 不用干戈一域化服, 遂代燧人, 號令域外 (신시본기)
(출처 : http://orumi.egloos.com/3588843)
위의 자유지에 실린 것을 해석하면
① 옛적에 환국이 있으니 무리가 부하고 또 많은 지라 처음에 환인이 천계에 계시사 도를 얻어 오래살고 몸을 배워 병이 없으시며 하늘을 대신하여 교화를 펴서 사람들로 병과가 없게 하시니 사람이 모두 힘을 주어 스스로 기한이 없으니라
② 환웅이 또한 이날에 하늘로 부터 내려오시여 단을 무어 삼신께 제하시며 백성을 위하여 기양하시니라
③ 복희가 이미 봉을 서비에 받아 직위에 성을 다하니 간과를 쓰지 않아도 일역이 화복한지라 드듸여 수인을 대하여 천하를 호령하니라
아래의 환단고기에 실린 것을 해석하면
① 옛적에 환국이 있으니 무리가 부하고 또 많은 지라 처음에 환인이 천산에 계시사 도를 얻어 오래살고 몸을 다스려 병이 없으시며 하늘을 대신하여 교화를 펴서 사람들로 병과가 없게 하시니 사람이 모두 힘을 주어 근면하게 되어 스스로 기한이 없으니라
② (삭제됨)
③ 복희가 이미 봉을 서비에 받아 직위에 성을 다하니 간과를 쓰지 않아도 일역이 화복한지라 드듸여 수인을 대하여 역외를 호령하니라
보면 알겠지만 매우 미묘한 차이가 있게 바뀌었다. 자유지에 기고된 것은 사실상 신화이다. 하지만 환단고기에 실린 것은 전체적으로 유사하지만 ‘역사’가 된다. 예를 들어 환인을 천계에서 내려왔다고 한 자유지와 천산에서 내려왔다고 한 환단고기의 차이가 그렇다. 이뿐만 아니다. 아예 환웅의 천강 부분은 환단고기에서 삭제되어있으며, 환국의 존재와 모순되는 복희씨의 천하 호령 부분을 환국의 밖인 역외로 변경 처리하였다. 이유립이 사실상 환단고기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자유지에서 확인 가능한 것이다. 혹자들은 이를 두고 이유립의 오기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자유지에 기고한 문장에는 아예 한자와 번역을 같이 기고한 사람이 이유립니다.. 한마디로 오기가 아니라는 소리가 된다.
(3) 위서론에 대한 억지
이쯤되면 진서론을 주장했던 사람도 뭔가 잘못된 것을 느끼게 된 것인지 이제는 딴 소리를 한다. “비록 환단고기가 위서라고 해도 환단고기에는 진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진실일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해야 한다.” 이런 소리를 말이다.
전체적인 수준에서 본인들은 중립이라고 이야기하며 어떤 이들은 “환단고기를 비판하는 이들 또한 광신적이다” 라는 막말을 서슴치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환단고기』의 내용이 조작되었다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진실의 가능성이라는 말은 좋으나 그것이 있다라는 보장은 어떻게 하는가? 진실의 가능성이 있을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제시해야만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일것이 아닌가? 헌데 그런 일말의 가능성은 하나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진실이 있을 수가 있다는 소리를 반복하는 사람들의 사고는 “돌킨옹이 쓴 반지의 제왕도 역사적 내용이 가미되었을 수 있으니 이를 연구해야만 한다” 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반지의 제왕의 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전 시대이다. 결국 환단고기보다 더 이전의 역사를 말하는 책이라는 소리다.
2) 지나가다슬쩍 님의 보론
사료 내에서의 문제도 지적할만 합니다.
이건 명성황후가 썼다는 "한글" 편지입니다.(아래아는 그냥 ㅏ로 처리함)
"글시 보고 야간 잘 잔 일 든든하미 예난, 상후 문안 만안하오시고, 동궁 제질 태평하시니 츅슈츅슈하며 나난 한자고 무탈한 일 든든하다 차차 숭신이 슈ㅣ 워 오니 긔특긔특하다 덕니난 재 쳐 보려 나간다 하드."
이게 19세기 조선말입니다. 당시의 한글은 발음대로 그대로 씁니다. 즉, 저 말이 19세기 조선말의 일반적인 발음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실제로 과거의 한국어의 발음이 어땠는지를 연구하러 제주도 방언등을 연구하는 분도 있죠.
그런데 조선보다 수천년 이전의 환단고기의 글의 내용이 이렇습니다.
"萬民乙 睹羅保美御 豊年乙 叱居越爲度多 / 만민을 도라보미어 풍년을 질거월위도다 "
한자로 기록한 내용이 일반적인 한글로 읽혀집니다.
즉, 수천년전 한민족은 지금 20세기 21세기 한국인과 거의 같은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단 소립니다.
2.환단고기 진서론의 근거와 반박
이제는 환단고기 추종자들이 이야기 하는 진서론의 근거를 살펴보고 이를 반박해 보겠다.
1) 오성취루현상
아마도 환단고기 추종자들이 가져오는 근거중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자료가 아닐까 한다. 이 오성취루 현상의 주요 주장은 다음과 같다.
“박창범 교수의 연구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에 따르면 『환단고기』에 기록된 ‘오성취루’현상이 실제로 기원전 1734년 7월 13일 일몰 직후에 나타났음을 증명하였다. 따라서 『환단고기』 과학적으로 증명된 眞書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는 크게 2가지의 문제점이 발생한다.
첫 번째, 五星聚 현상의 상징적인 의미는 후한 이후에 발생했다. 이게 뭔소린고 하면.. 사실 이 오성취현상은 250년에 한번씩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니 천문학을 연구했던 학자들이라면 하늘을 관찰해서 얼마든지 이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허니 어떠한 책에서도 이 현상은 기록되어져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오성취의 현상은 전한의『사기』에 처음 실리고 그 이전의 기록에서 보이지 않는다. 왜 일까? 간단하다. 5개의 행성이 하나의 자리에 모이는 현상이 정치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 한나라 시기 부터이기 때문이다. 이 오성취의 현상은 동아시아에서는 새 왕조의 흥과 구왕조의 망을 의미하는 것으로 새시대를 예견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사기』에서 처음 기록될 뿐 그 이전에는 대수롭지 않는 현상으로 여겨져 무시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서는 이를 기록하고 있으니 이것은 당대의 문화적인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인 것이다.
두 번째, 『환단고기』가 기록하고 있는 오성취루 현상과 박창범 교수가 말하는 오성취 현상은 다른 것이다. 이게 참.. 웃기는 일인데.. 박창범 교수는 그 자신의 저서인『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에서 ‘ 당시 오행성은 실제로 '루'에서 약 130도 떨어진 바다뱀자리 근처에서 모였다’라고 밝히고 있다. 즉, 박창범 교수가 밝혀낸 오성취는 ‘오성취海蛇’로 환단고기가 말하는 ‘오성취累’와는 다른 것이라는 소리이다. 130도 떨어진 것이면 아예 다른 것으로 봐야 하는데 이걸 같은 것이라고 박창범 교수는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2) 11년 원본을 주장하는 이들의 『환단고기』의 기록 입증 주장
이 부분을 설명하기에 앞서 다시금 떠올릴 것은 『환단고기』의 11년 원본은 ‘거짓’이라는 점이다. 위에서 장황되게 설명했지만 이 책은 1979년에 이유립이 직접 만들어낸 위서이다.
첫 번째 사례, 발해문왕의 연호 입증
환단고기 추종자들은 『환단고기』원본이 출간되는 11년 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발해 문왕의 연호가 이 책에는 실려 있으니 진서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발해 문왕의 연호를 『환단고기』에서는 ‘대흥’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1946년에 길림성에서 발견된 정효공주의 묘지 비문에는 문왕을 ‘대흥보력효감금륜성법대왕’이라고 칭하고 있다. 하지만 『환단고기』는 1979년에 쓰여진 책이다. 46년의 발견 정도는 얼마든지 집어넣을 수 있다. 또한 발해 문왕의 연호가 ‘대흥’ 인 것은 『신당서』에도 실려 있는 내용이다. 굳이 정효공주의 묘가 발견되지 않고도 충분히 쓰일 수 있는 문장이라는 소리다.
두 번째 사례, 고구려장수왕 연호 입증
위의 사례와 사실상 동일한 문제로 『환단고기』에 기록된 장수왕의 ‘건흥’이란 연호가 1915년에 충주에서 발견된 금동불상에서 ‘건흥오년세재병진’라고 쓰여진 것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이 책의 저술 시기는 1979년이다.
세 번째 사례, 연개소문의 할아버지 이름 입증
『환단고기』에서 연개소문 할아버지를 ‘자유’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1923년 발굴된 연남생의 묘지 비문에 그 증조부를 ‘자유’라고 쓰여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진서의 이유가 될 수 없다.
3) 사료속의 기록을 부정한 사례
이 유형은 엄연히 사료에 등장하는 기록을 부정하고 『환단고기』에 처음 실렸다고 주장하는 ‘거짓말’ 이다.
첫 번째 사례, 평로치청왕국
『환단고기』에 처음 이정기가 고려인이라고 나온단다.. 그런데 이건 『신당서』열전에 ‘李正己 高麗人’ 이라고 나온다..
두 번째 사례, 마니단에서 제사를 지내는 이유
아무도 몰랐던 마니단에서 제사를 지내는 이유가『환단고기』에 처음 ‘단군왕검이 쌓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세종실록지리지』에 ‘조선 단군(檀君)이 하늘에 제사지내던 석단(石壇)이라. 한다’ 라고 쓰여있다.
세 번째 사례, 갑골문의 귀방 정복 사건 입증
『환단고기』에 갑골문에서 기록하고 있는 은나라의 귀방 정복 기사가 실려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주역』 63 기제편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4) 이병도의 양심고백
이병도가 생애동안 단군과 환단고기를 부정하다가 말년에 조선일보 기고문으로 양심고백을 했단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이미 반박해 놨다.
5) 유물의 자의적 해석
이 유형의 경우 대부분이 이미 발굴된 유물들을 가지고 환단고기의 내용을 맞춰 놓고는 서로 일치한다고 우기는 경우이다.
첫 번째 사례, 비파형동검 분포와 고인돌 분포 문제
『환단고기』에서 밝히고 있는 고조선의 강역과 비파형동검 그리고 고인돌의 분포가 일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걸 보고서 환단고기를 썻으니 당연히 일치할 수 밖에.. 더구나 웃긴건.. 비파형동검과 고인돌은 동시대의 유물이 아니다. 고인돌은 중기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고 비파형은 후기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다. 더구나 비파형동검은 한국만의 유물이 아니다.
이것이 한국의 비파형동검인데 그 차이가 보이는가? 간단하다. 한국의 것은 ‘조립식’이다. 중국과 몽골지역에서도 발견되는 비파형동검은 조립식이 아닌 손잡이와 칼날이 하나인 일체형이다. 즉. 저들이 말하고 있는 환국이나 배달국의 영토와 ‘조립식’의 비파형동검은 서로 출토지가 다르다는 소리가 된다.
두 번째 사례, 하북성의 청동천자명문
하북성 중산묘에서 BC 10세기 것으로 보이는 청동도기가 발견되었는데, 거기에는 ‘천자건방중산후’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었는데, 『환단고기』에 천자란 환웅의 명칭이며 환단고기에서 말하는 영역내에인 하북성에서 발견되었기에 환단고기를 증명한다고 한다. 그냥 이정도면 멍청한거다.. ‘천자’의 칭호는 상나라부터 쓰였다.... 중국에서 쓰였던 ‘천자’칭호가 중국 하북성에서 발견된게 뭐가 『환단고기』의 증거가 된다는 건가?
세 번째 사례, 단군릉 문제
북한에 단군릉이 있기 때문에 단군조선이 증명되고 이를 기록한『환단고기』가 증명된다는 소리다. 애초에 북한의 단군릉은 그 실체조차 불확실한 존재이다. 그리고 학계의 어느 누구도 단군조선을 부정하지 않는다. 착각 좀 작작해라..
네 번째 사례, 산동성 청성조적서비
환단고기에는 BC 3898년 18분의 황웅 중 배달국을 건국한 제1세 거발환 환웅께서 신지에게 녹도문을 창안할 것을 명하였다고한다. 그런데 이 녹도문이 한국의 평양에서도 발견되었고, 산동성의 창성조적비에서도 발견되었으니 진서란다. 그런데 이 창성鳥跡書碑는 중국의 전설상의 인물 ‘창힐’을 ‘창星’으로 높여 부르며 그가 새 발자국을 보고서 글자를 만든 것을 기리는 비석이다.. 그리고 평양의 이야기는 1942년에 발행된 ‘영변지’에 기재된 내용이라는 것이다. 이건 1979년 보다 이른시기에 알려진 것으로 증거가 될 수 없다.
6) 가림토 문자
『환단고기』에 가림토 문자가 있고 이것이 일본의 신대문자의 존재와
만주에 있는 한 비석의 탁본으로 증명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들은 ‘거짓’이다.
첫 번째, 신대문자의 경우 정성훈 교수는 이를 한글을 모방한 글자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 글자는 현대 일본어의 표현과 개념이 들어있다고 한다. 즉, 현대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소리.. 그런데다 한국의 역사스페셜팀이 이 글자를 신봉하는 사람들을 방문했을 때 이들은 자신들이 한국에 가서 글자를 알려줬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무슨 천부인을 받아왔다는데.. 이거 없는게 들통났다. 한마디로 완전히 거짓말..
두 번쨰, 만주의 비석의 경우 사실 이 글자는 돌궐언어이다..
이것은 야스페르츠크님의 이글루 링크로 대신한다. http://xakyntos.egloos.com/2638849
나가는 말
지금까지 『환단고기』의 실체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 책은 분명한 僞書이다. 그 저자는 이유립인 것이 명백하며 1979년이 처음 발간본으로 1911년 본은 어디에도 증거되지 못한다. 그 뿐이랴 그 내용 또한 모든 부분에서 위서임이 명명백백하며 이를 주장하는 이들의 내용 또한 허망하기에 이를 때 없다.
그러니 혹여 환단고기의 위서설을 지지하는 이들이라면 이 글을 근거로 삼고, 반대로 진서설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이 글을 보고서 자신의 생각을 고쳐먹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