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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 박수 그리고 당산나무 이야기
아주 오래 전, 페르시아의 황제는 자신의 땅에서 가장 명망 높은 세 명의 현자를 불러 이렇게 물었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란 무엇인가?”
현자들이 대답을 주저하자 황제는 커다란 황금조각상을 내놓으며 일렀다. 만족할만한 답을 내어놓는 자에게 이를 하사하겠다고...
그러자 가장 왼편의 현자가 앞으로 서너 걸음 걸어 나와 말했다.
“늙어 가난하게 되는 일입니다. 젊어 가난하다면 언제든 기회가 있지만 이미 늙어 버린 후에는 다시 기회를 잡기가 어려운 까닭입니다.”
황제가 만족치 못하자 중앙의 현자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고했다.
“병 들어 삶이 무의미해지는 일입니다. 몸이 아프면 산해진미도 천하 절경도 무슨 쓰임이 있겠습니까?”
황제는 잠시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만족치 못한 표정이었다. 비로소 마지막 가장 오른 편에 서 있던 현자가 서너 걸음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삶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입니다.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 지나온 삶을 돌이켰을 때, 자신을 납득시킬만한 어떠한 것도 이루지 못 했음을 깨닫는다면 그보다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일이 또 있겠습니까?”
황제는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금을 하사했다.
*
황제는 틀렸다. 그건 정말 개똥같은 소리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復次 須菩提 善男子 善女人 受持讀誦此經 若爲人輕賤 是人 先世罪業 應墮惡道 以今世人輕賤故 先世罪業 卽爲消滅 當得阿뇩多羅三먁三菩提.”
(부차 수보리 선남자 선여인 수지독송차경 약위인경천 시인 선세죄업 응타악도 이금세인경천고 선세죄업 즉위소멸 당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아내와 무당이 꿇어 앉아 경문을 외자 나무에 묶인 두 딸이 온몸을 뒤틀며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저 작은 몸뚱이 어디에서 그런 벼락같은 소리가 쏟아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기차 경적처럼 울려 퍼지는 딸의 괴성에 들짐승이 놀라 날뛰고, 평화로이 들판을 거닐던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새들이 만든 검은 띠는 나무 주위를 맴돌며 딸과 함께 울부짖었고 나도 꿇어 앉아 머리를 감싸 쥐며 오열했다. 두 딸의 몸이 태풍을 맞은 문풍지처럼 요란하게 떨리더니 차츰 핏기를 잃고 창백해 졌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던 나는 귀를 틀어막고 눈을 감았다. 딸들은 한참을 울부짖다 곧 허파 속의 남은 숨을 모두 소진한 양 ‘꺽꺽’ 쉰 소리를 토해냈다. 하얗게 눈을 까뒤집으며 물먹은 솜 마냥 늘어졌다. 입에는 피거품이 물렸고 코와 귀 그리고 허벅지를 따라 새까만 먹수가 흘러나왔다. 이를 악물고 땅에 머리를 처박으며 어떻게든 참아보려 애썼지만 그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아빠니까.’
만약 이 순간, 페르시아의 황제가 내 앞에 있다면, 나는 그의 면전에서 그가 가장 사랑하는 딸의 목을 조르며 이렇게 말 할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자신의 아이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바라만 봐야하는 일입니다.‘
딸을 가진 아비가 그 누가 이말을 부인할 수 있을까? 어느새 나는 박수 이한의 당부조차 잊고 미친 사람처럼 무당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그만해! 그만하라고!”
무당이 입은 화려한 색동저고리를 틀어쥐며 소리쳤다. 파김치처럼 늘어져 신음하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무당은 얼굴 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네 이 놈! 무엄하다! 어딜 감히 끼어드느냐!”
“그만해 이 미친 할망구야! 애들 꼴 안 보여? 이러다 죽겠어! 굿이고 나발이고 그 전에 우리 애들 다 죽게 생겼다고!”
“쯧쯧, 어리석은 것... 숲을 보라 했더니 나무도 아닌 손가락에 정신이 팔려 뭣이 중한지도 모르는구나!”
혀를 차며 한심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무당은 이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더니 제 곁에 꿇어 앉은 아내를 바라보며 외쳤다.
“뭣해 이 썩을 년아! 네 딸 살리고 싶다며! 계속해! 벼락이 떨어져도 절대 멈춰선 안 돼!”
아내가 경문을 읊자, 아이들의 비명도 다시 시작됐다.
“당신 미쳤어! 그만해! 이러다 우리 하진이 은진이 다 죽어!”
성이 나 무당을 팽개치며 외쳤지만 아내는 흡사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오로지 경문을 읊는 데만 열중했다.
“그만하라고 이 여자야!”
참다못해 달려가 밀치니 팩 하고 쓰러지며 나를 노려본다. 아니다. 더 이상 예전에 내가 알던 아내의 눈빛이 아니다. 원망, 분노 그리고 비이성적인 맹목적 감정들만이 느껴졌다. 이 순하디 순한 여자를 어찌 구워삶았을까? 막막함에 돌아보니 화상으로 일그러진 무당의 흉측한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그 사이 아내는 몸을 일으켜 정좌한 뒤 재차 경문을 읊기 시작했다.
“미쳤어... 다 미쳤어...”
고개를 저으며 망연자실 물러서니 이제는 무당까지 합세해 경문을 읊는다. 그때였다. 갑자기 지축이 흔들리며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져 흩날렸다. 지진이 난 듯 강한 진동이 전해졌다. 시소 중앙에 올라탄 양 두 발이 중심을 잃고 오르내리자 길고 주름진 무언가가 나풀나풀 흙먼지를 내뿜으며 솟아난다. 아내와 무당 그리고 딸을 에워싸며 내뻗는다. 뿌리였다. 땅 속 깊이 박혀 꼼짝도 하지 않아야 할 것들이 거짓말처럼 뻗어 나와 나무에 매달린 딸들을 휘감는다. 길이는 다섯 자 반에 굵기는 어른 머리통만하고 색은 핏물처럼 새빨갛다. 어찌나 놀랐던지 나도 모르게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박수 이한의 말대로였다. 말로만 듣던 적근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할 말을 잃고 입만 벌리고 있자니 비로소 무당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나무를 향해 두 손을 모아 빌며 말했다.
“하이고 신령님 오셨습니까. 굽어 살피소서. 굽어 살피소서. 가여운 것들 어여삐 여겨, 굽어 살피소서”
그녀의 합장 탓일까? 벌건 나무뿌리가 길게 뻗어 나와 아이들을 감싼다. 나무에 매달린 푸르른 잎사귀들이 일제히 검게 물들었다. 그때 저 멀리 헛간 뒤에 숨어 있던 박수 이한이 고개를 빼죽이 내밀며 신호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
귀촌을 결심한 건, 순전히 두 아이 때문이었다.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큰 딸과 두 살 터울의 유치원생 둘째는 아토피가 심했다. 연일 붉은 반점이 올라와 벅벅 긁다 못해 피고름이 올라왔다. 좋다는 약은 다 써보고, 유명하다는 병원도 백방으로 수소문해 보았지만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물 좋고 공기 좋은 시골로 한 번 내려가 보는 건 어때?”
“시골이요?”
“아, 환경 호르몬이다. 미세먼지다. 세상이 좀 혼탁한가? 사실 탈이 안 나는 게 신기한 거야 생각해 보세요. 우리 때 아토피니 뭐니 하는 것들이 있기나 했는지. 자동차에 공장 매연에 죄다 환경이 오염되면서 생긴 것들이 아니냐 이 말입니다.”
오지랖 넓은 충고라 생각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마침 아내와 나는 지쳐있었다. 숨 가쁜 도심의 일상에서 벗어나 시골로 가자, 답답한 회색 시멘트 대신 풀과 깨끗한 땅이 있는 너른 마당을 아이들에게 선물하자. 그곳에서라면 지긋지긋한 아토피도 털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의견을 피력하니 아내도 선뜻 동의하며 준비를 도왔다. 때마침 정리해고를 고려 중이던 직장에선 희망퇴직자들에게 3년 치 급여와 더불어 거액의 퇴직금을 지급 하겠다 공고했고 아이들 외삼촌 역시 주인 없이 버려져 있던 고향의 널따란 집을 거리낌 없이 내주었다.
가장 큰 문제인 돈과 집이 해결되니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아이들의 학교에도 전학 신청서를 넣었다. 오래 방치된 집이어서 청소와 수리에 애를 먹었을 뿐, 장인 생전에 살던 고향집에 돌아온 아내의 표정은 더없이 밝았다. 맑은 공기 속에 뛰노는 아이들을 보며 나 역시 기뻤다. 외려 찜찜했던 것은 주변 이웃들의 떨떠름한 반응이었다.
“아이구... 서울 살다가 이런 깡촌에... 되겄어?”
“좋다고 몇 달 살다가 안 되겠다고 내빼는 놈들이 어디 한 둘이어야지.”
대부분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 중 가장 불편했던 건 지역 유지인 황태식이란 자였다. 대대로 너른 땅을 소유한 지주 집안의 장손으로 지금은 그 돈과 인맥을 발판삼아 군 의회 의원을 3번이나 역임하는 등 소위 방귀 깨나 뀐다는 자였는데, 이사를 오기가 무섭게 첫 날부터 들이닥쳐서는 불편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어이구... 뭐 주서 먹을 것이 있다고 하필 여길 왔당가... 좋은데 다 놔두고...”
“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아따 그걸 또 들으셨소? 뭐 들어도 할 수 없고... 미안한데, 나가 원래 천성적으로다가 입 바른 소리를 못 허오. 아실랑가 모르겄지만, 여그는 댁의 빙장이신 유, 학자, 성자 되시는 어르신 땅이지만, 즈어기 보이는 저 느티나무 포함해서 그 일대는 죄다 우리 황씨 일가 땅 이요. 그러니 우짜겄소? 안 왔으면 좋겄지만 기왕지사 오셨으니 나도 할 말은 혀야지. 안 그렇소?”
이게 말로만 듣던 텃새인가 싶어 못 들은 척 넘어가려 했지만 황태식 그 자의 말투와 행동거지가 하도 불손하기 이를 데 없어 결국 참지 못하고 한 번 쏘아붙였다.
“뭐하시는 겁니까? 저희는 귀촌을 한 거지, 귀농을 한 게 아닙니다. 농사나 땅에는 일절 관심 없으니까. 걱정 말고 돌아가세요.”
“그렇다믄 다행이지만서도, 나가 쪼까 걱정 되는 바가 있어서...”
황태식은 특유의 그 두꺼비 같은 넙대대한 얼굴로 흘깃 나를 쏘아보고는 이내 멀찍이 서 있는 한 그루의 고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서울 서 오셔서 아마 모르시겄지만, 저것이 보통 나무가 아니요.”
“나무면 나무지 보통 나무가 아닌 건 또 뭐요?”
“당산 나무라고 들어봤소?”
“당산... 나무요?”
장인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언덕에 위치한 느티나무는 키가 30여 미터에 둘레만 대략 대여섯 아름이나 되는 장대한 체구의 고목이었다. 수령이 오래되어서인지 나무껍질이 군데군데 떨어져 울퉁불퉁 하긴 했어도 물방울 모양의 커다란 이파리가 풍성해 넓고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그는 나무를 바라보며 잠시 어떤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홱 돌리며 말했다.
“원래 저 자리에 서낭당이 있었소. 대대로 마을에 변고가 생기면 제일 먼저로다가 달려가서 치성을 드리는 신성한 나무라 이 말이지. 심기야 우리 17대조 할아버지가 손수 심으셨지만서도, 살아온 세월이 얼매요? 천 년이요. 천 년. 그 긴 세월을 보냈으니 신령이 깃들어도 보통 깃든 것이 아니다 이 말이지.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말이오.”
“신령?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가까이 가지 마소.”
“뭐라구요?”
“어차피 그 일대는 죄다 내 땅 잉게. 괜스리 남의 금싸라기 같은 땅에서 알랑대지 말고. 멀찌감치 떨어져 계시라고. 알라들한테도 단디 이르시고. 아줌씨한테도 단디 말하시오. 아시겄소?”
“이보세요. 거 말씀드렸다시피... 우리는 귀농이 아니라...”
“아따 서울 양반, 똑띠하게 생겨가지고 말귀 한 번 더럽게 못 알아들으시네. 귀촌한 거 누가 모르요? 그만치 중한 일잉께. 이 바쁜 나가... 아따 여그 지금 뱃지 보이시지라? 군 의회 의원. 나가 바쁜 일 다 제치고 여그까지 와서 당부 드리는 거니까. 잊지 마시고, 단디 챙기소. 아셨소?”
‘나무에 가지 마라’ 요모조모 따져 봐도 특별할 것 없는 얘기였다. 외려 대단한 일인 양 당부하는 그의 행태가 별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 무례함에 답하고자 멱살이라도 잡고 크게 대거리를 한판 해볼까도 싶었지만 귀농 첫 날부터 이목을 끌고 싶진 않았다. 두꺼비 같이 생긴 넓대대한 면상과 사람을 위 아래로 훑는 불손한 눈알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차갑게 알았다 한마디 하고 돌아서니 놈도 더는 말이 없다. 흡사 수박 서리하다 들킨 아이처럼 부리나케 차를 타고 사라졌을 뿐이다.
“시골인심이 예전 같지 않다더니...”
귀농 첫 날부터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 기분이었다. 이곳에서 시작될 우리의 새로운 삶이 과연 순탄하게 흘러갈지 사뭇 걱정도 됐다. 하지만 나는 곧 그의 당부를 잊어갔다. 가족들에게 전하지도 않았고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무식한 촌놈의 잔소리이자 주제넘은 경고에 지나지 않는 그의 말을 전한다는 게 어딘가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가면 지가 어쩔 건데?’ 약간의 오기도 있었다.
*
“만재 말씀이오? 소싯적에 웃 마을 살던 그 만재? 그 이름 차암... 거시기하네. 갸가 병풍 뒤에서 향 내 맡은 지가 수십 년이 지났는디. 아직도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네 그랴? 와 타 죽었냐꼬? 그 거시기 뭐여. 그때가 전쟁 통 아니었소. 땔감이 부족했단 말이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무식헌 놈이 당산나무 가지를 몰래 잘라다 땔 줄은 아무도 몰랐제? 그 집에 만재랑 만재 마누라에 애들까지 식솔만 넷이 있었는디, 나무 해 가지고 온 만재 놈만 숭하게 타 죽었으니 그게 어디 우연이겄소?.”
“나가 김 순이 오래비는 맞는디. 서울 사는 순이 야그를 와 여기서 묻는 당가? 갸 다리가 그 꼴 된거는 한 참 됐제. 쪼깐할 때 부터니께. 다 그 당산 나무 때문이라 안 하오. 철딱서니 없는 것이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해도 만날 천날 뭐가 좋다고 그 나무에 매달려 뛰놀고 난리를 치드만. 한 번은 가지가 부러져서 높은데서 뚝하고 떨어진 거요. 그때 다친 거냐고? 아니, 신기하게도 그땐 상처 하나도 없더라니까? 해서 마을 어르신들이 눈물 쏙 빠지게 혼내고 다시는 거기 가지마라. 아주 신신당부를 혔제. 그란데 말이오. 그러고 얼마 안 가서 멀쩡하던 아 한티 소아마비가 왔다 안 허요. 뭐긴 뭐요 다 당산나무 가지 부러뜨린 죄 아니겄소?”
*
“무슨 소리야! 무당이라니!”
시골에만 내려오면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아가리라 믿었던 내 안이함이 깨진 것은 불과 한 달만의 일이었다. 갑자기 아이들의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아토피는 더 심해지고 전에 없던 두통과 고열 그리고 구토가 쉼 없이 이어졌다. 급히 읍내 소아과는 물론이요. 서울 큰 병원까지 찾아가 보았지만 아이들의 괴질은 낫기는커녕 하루가 다르게 심해졌다. 당연히 가장 속이 탄 사람은 아내였다. 내가 새 직장을 구하느라 바빠진 사이 아내가 대신 아이들을 도맡아 돌보았기 때문이다. 답답한 마음이야 십분 이해하지만, 무슨 소릴 듣고 온 건지 아내는 갑자기 무당의 필요성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여보 굿하자 우리. 응? 진짜로 영험한 무당이래.”
“미쳤어? 병원에서도 못 고치는 병을 무당이 뭘 어떻게 고쳐!”
“당신이 몰라서 그래. 무당이 보자마자 그러더라. 집에 우환이 들었지? 왜 가지 말라는 데를 가서 속을 썩이냐. 그 얘길 듣는 순간 짜르르 소름이 돋더라니까!”
“원래 그런 사람들이 대충 넘겨짚는 데 도사인 거 몰라? 세상에 우환 없는 사람이 점집엘 왜 가?”
“아니야. 더 들어봐. 거기까지야 나도 그런가보다 했어. 그런데 그 분이 그러시더라고. 한두 살도 아니고 천살 먹은 할머니가 노하셨으니, 혼쭐이 나는 게 당연하다! 이래도 모르겠어? 나무야 나무! 우리 하진이 은진이가 심심할 때 마다 매달려 놀던 그 나무 말이야!”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이들이 아픈 게 나무 때문이라니, 나로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나 참... 그러니까 당신 얘기는 지금, 우리 애들이 아픈 게 전부 그 당산 나무 때문이란 소리야?”
“틀림없어! 당신은 원래 이 동네 주민이 아니어서 몰라. 근데 난 잠깐이지만 어려서 여기 살았었잖아. 그게 보통 나무가 아니야. 그런데 그 무당분이 보자마자 그걸 족집게처럼 집어 내더라고! 더 볼 것도 없어. 확실해. 그 나무가 틀림다고.”
그제야 비로소 귀농 첫 날, 나무 주인 황태식이 찾아와 했던 말이 떠올랐다.
*
“서울 서 오셔서 아마 모르시겄지만, 저것이 보통 나무가 아니요.”
“당산 나무라고 들어봤소?”
“원래 저 자리에 서낭당이 있었소. 대대로 마을에 변고가 생기면 제일 먼저로다가 달려가서 치성을 드리는 신성한 나무라 이 말이지. 심기야 우리 17대조 할아버지가 손수 심으셨지만서도, 살아온 세월이 얼매요? 천 년이요. 천 년. 그 긴 세월을 보냈으니 신령이 깃들어도 보통 깃든 것이 아니다 이 말이요.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말이오.”
“가까이 가지 마소.”
“어차피 그 일대는 죄다 내 땅 잉게. 괜스리 남의 금싸라기 같은 땅에서 알랑대지 말고. 멀찌감치 떨어져 계시라고. 알라들한테도 단디 이르시고. 아줌씨한테도 단디 이르시오. 아시겄소?”
*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황태식의 한 말 중 유독 그 부분이 기억에 남았다. 무슨 뜻으로 한 말이었을까? 우리에게 나쁜 일이 생기리라는 걸 놈은 혹시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한 번에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사라지길 반복해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무 때문이란 사실을 인정할 수 없으면서도 동시에 황태식의 당부를 알리지 않았다는 죄책감이 무겁게 가슴을 짓눌렀다. 불안해진 나는 결국 아내를 붙잡고 제안했다.
“우리 다시 서울 갈까? 애들 병원 알아보기에도 좋고... 풍토병같 걸지도 모르니까 아무래도 시골보단 서울이 낫지 않을까...”
“안 돼”
어렵게 내민 제안을 아내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간단한 이유였다. 다시 집을 구하는 것도 어렵고 힘들게 적응한 지금의 이 생활을 불과 한 달만에 버린다는 건 문제가 있다는 거였다. 하지만 찬찬히 따져보니 속내는 달랐다.
“우리 하진이 은진이... 지금 상태로는 병원 가봐야. 아무 도움도 안 될 거래. 나무 밑에서 놀다 얻은 독이니까. 나무로 빨아내야 한 대. 실제로도 그렇잖아. 병원가서 치료 받고 좋다는 약에 뭐에 다 해봐도 아무 효과 못 봤잖아.”
“독? 무슨 독?”
“굿을 해야 돼.”
“미쳤군. 당신 미쳤어.”
어처구니가 없었다. 서울로 돌아가자는 내 제안을 거절한 이유가 겨우 무당의 말과 굿이라니...
“아까도 말 했지만 당신은 이 지역 출신이 아니라 몰라. 그 나무... 정말 보통 나무 아니야. 이 동네 사람들은 다 알아. 그 분도 그랬어. 속세의 의술로는 고칠 수 없는 병이라고... 나도 처음엔 안 믿었지만 그 분이랑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확실히 와 닿더라. 나무, 그래 그 나무가 문제야.”
아내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 같았다. 거듭된 반대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확신에 가득 차 연신 굿을 하자 종용했다. 당혹스러운 마음에 달래도 보고 화도 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내가 잠시 일 때문에 서울에 간 사이엔 기어코 무당을 집에 불러들이기까지 했다.
“여보 봐! 발진이 확 줄은 거 보이지? 열도 내렸고... 됐어! 이거야! 역시 그 분 말이 옳았어!”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정말 굿 덕분인지. 무당이 다녀간 사이 아이들의 상태는 눈에 띄게 호전되어 있었다. 열도 내리고 토악질을 하는 횟수도 줄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인형을 가지고 놀며 깔깔대며 웃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채 사흘을 버티지 못하고 아이들은 다시 앓아 누웠다. 더 심한 고열에 시달리며 헛소리까지 해댔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굴렀지만 이미 무당에 홀려버린 아내는 걱정할 것 없다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천만 원이면 된데.”
“뭐? 천만 원? 당신 미쳤어? 우리가 그런 돈이 어딨어?”
“왜? 당신 퇴직금 있잖아. 그 중에 천만 원이면 그렇게 큰돈도 아니지 뭐! 사실 우리가 그 동안 애들 병원비로 쏟아 부은 돈만해도 얼만데!”
“미치겠네. 당신 지금 제 정신이야? 나 아직 일도 못 구했어. 애들 학비며 병원비는 또 어쩔 건데? 당장은 몰라도 길게 보면, 죽어라 아끼고 모아도 힘든 상황이야!”
“지금 돈이 문제야? 애들 건강부터 찾아야 할 거 아니야! 당산나무가 다 해줄 거래. 그 분이 말씀하셨어. 지난번 굿은 임시방편이고 당산나무 아래서 제대로 된 씻김굿 한 번만 하면 다 해결된데, 그럼 우리 애들 병, 아토피부터 열까지 씻은 듯이 다 나을 거래. 원래 목숨 걸고 하는 위험한 굿이라 이천은 받아야 하는데, 우리 사정 듣고 절반으로 깎아 주시겠대!”
“어휴! 이... 이... 어후...”
답답해 한숨만 새어나왔다. 무당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아내는 어떤 말을 해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아픈 두 아이 때문에 안 그래도 걱정이 태산인데, 멀쩡해야 할 아내마저 무당의 사기극에게 속고 있다 생각하니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 미칠 것 같았다.
“이 멍청한 여자야! 그걸 믿어? 다 돈 뜯어내려고 하는 수작이잖아!”
“그런 소리 마! 그러다 당신 벌 받아! 그 분,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기꾼 아니야. 얼마나 영험하신데, 그 분 왔다 가고 나서 우리 애들 싹 나았던 거 기억 안 나? 그 분 말만 따르면 돼. 그럼 우리 애들 더는 아플 일 없어. 우리 하진이 은진이,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어찌 구워삶은 건지 무당에 대한 아내의 믿음은 벽처럼 단단했다. 아픈 아이들을 돌보며 가장 속상했을 사람이 아내라는 건 알지만, 깐깐한데다 평소 누구보다 논리적이었던 아내가 미신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겨지지 않았다. 물론 아내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얼마나 속상했으면 그럴까하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무당은 다르다. 아픈 사람, 아니 아픈 아이를 돌보는 엄마의 절박함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더러운 상술엔 정말이지 욕지기가 치밀었다.
*
“젤로다가 크게 피해를 본 집을 꼽자면은 아랫마을 욱산이네 따라 갈 사람이 읍소. 그 자리가 원래는 서낭당이 있던데라 안 하요. 그거를 서울서 목사 되가지고 돌아온 욱산이 큰 아들이 뭐라더라? 마귀? 귀신? 암튼 주님이 노하셨다. 어쨌다. 이람서 멀쩡한 나무에 시뻘건 락카로 십자가를 그려 싸고 도끼로 찍어 넘긴다 어짠다 허벌라게 난리를 치드만... 큰 아들은 생전 안 해본 도끼질하다 실수로 제 발등 찍어서 다리 병X되고, 욱산이네는 그해 여름에 장마 들었을 때 수해로 일가족이 싹 다 뒤지뿟소. 아 그 집 식구는 키우던 개부터 닭, 소, 돼지 할 거 없이 다 죽었다고! 뭐 그해 물난리가 엄청 크게 나서 피해 본 집이 한 둘이 아니긴 하지만서도 시신 하나 못 찾고 싹 다 뒤져분 집은 내 알기로 딱 거기 하나요.”
“어휴, 말도 마요. 동네 사람들 무서워서 그 근처로 발길 끊은지 한 참 됐어요. 한 5년 전인가? 옆 마을 최 씨가 거기 느티나무 그늘이 좋다고 땅 주인 몰래 그 옆 공터에 텃밭을 냈지 뭐요. 그란데 우째 됐는지 아시오? 심는 것 마다 잎이 시꺼멓게 변해서 다 죽더니, 이듬해엔 최 씨부터 시작해서 그 집 애들까지 온 가족이 싹 다 시름시름 앓지 뭐요. 열은 불덩이에 종일 토악질을 해 대길래 하도 요상해서 낭중에 병원에를 가보니까. 아 글쎄 암이래요. 그것도 온 가족이 싹 다... 최씨야 그렇다쳐도 애들이 뭔 암이요. 그거시 어디 말이 되는 소리냐고요. 사람들이 죄다 손가락질했죠. 어디 땅이 없어서 신령님 노하시게 번잡스레 옆에다 뭘 심냐고. 그러니 벌을 받제!”
*
아내를 설득하는 일이 여의치 않아진 나는 그 길로 나무 주인인 황태식을 찾아 갔다. 천만 원이란 거금으로 돌팔이 무당에게 굿을 할 바엔 차라리 황태식에게 주고 흉악한 당산나무를 내 손으로 직접 베어버릴 요량이었다. 하지만 나무 주인인 황태식 역시 내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뭐라고라? 뭐슬 벤다고라? 아재 시방 미쳤소? 택도 없는 소리 마소!”
“황 사장님, 아니 황 의원님 나무 값은 넉넉히 쳐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어허! 이 양반이 진짜 큰 일 날 사람이네. 그것이 어디 하루 이틀 된 나무요. 천년을 산 나무라 이 말입니다. 그거시 지정만 안 됐다뿐이지 국가 지정 천연기념물이 되어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나무요. 서울서 오셔 가지고 아직 지역 정서를 잘 모르시나 본데, 여기는 돈이 다가 아니에요. 그거이 마을 수호신이란 말이오. 정신 차려요! 세상엔 돈보다 더 중요한 것도 있는 벱이라고. 게다가... 그걸 벤다고 하면 마을 사람들이 어디 가만있을 줄 아세요? 아마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난리를 칠게요. 그거 진짜 보통 나무 아닙니다. 장담하는데 나무 가지 하나만 베도 다음 날 당신 손모가지가 부러져 있을 거요. 후환이 있는 나무라 이 말입니다. 아시겄소?”
생긴 것과 달리 황태식은 일처리가 꽤 빨랐다. 저녁에 돌아오니 어느새 당산나무 주변엔 높다란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그가 박아 놓은 ‘관계자 외 출입금지’ 팻말을 보며 결국 나는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틀 뒤, 도저히 물러설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장이 열리던 날이었다. 생필품과 아이들 약을 타기 위해 병원이 있는 읍내에 들렀다. 막막한 마음에 정처 없이 걷고 있는데 저 멀리 낯익은 자가 반짝이는 은회색 정장을 입고 큰 소리를 내고 있었다. 황태식 그 자였다. 거기까지야 워낙에 막 되먹은 인간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싶었지만 문제는 그가 한 바탕 호통을 쏟아내고 있는 상대였다. 나는 화들짝 놀라 벽을 등지고 숨었다.
“무당?”
곱사등이처럼 굽은 허리와 얼굴 가득한 징그러운 화상자국. 만나 본 적은 없지만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사진으로 본 기억이 났다.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강렬한 인상 이다. 그 여자가 틀림없다. 문득 두 사람이 어떤 사이이고 어떤 연유로 만나는지 궁금해졌다. 그때 황태식이 껄껄 웃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아따 누이가 이래 나를 다 신경 써 주시니. 나가 고마워 뒤져 불것소. 아야! 거기 봉투 좀 하나 끄내봐라. 으따. 얇은 놈 말고 두툼한 놈으로 끄내야!”
황태식이 수행기사에게서 건네받은 봉투를 무당의 품에 쑤셔 넣었다. 무당은 한사코 거절하는 분위기지만 저 두 년 놈들이 짬짜미를 해 무언가 못된 꿍꿍이를 벌이고 있다는 걸 쉽게 알아 챌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선 머리채를 틀어쥐고 한바탕 대거리를 하고 싶었지만 증거가 먼저였다. 저 둘이 입을 맞춰 발뺌하면 아내는 또 속을 것이고 나는 바보 꼴이 된다. 황태식의 곁에 선 건장한 수행기사도 마음에 걸렸다. 조용히 휴대폰을 꺼내 벽 밖으로 내밀었다. 하얀 봉투를 들고 옥신각신 사이좋게 실랑이를 벌이는 두 사람의 사진을 촬영해 아내에게 보냈다.
“사정이 있겠지. 이런 사진 한 장 가지고 뭘 알아. 내가 아는 그 분은 절대 그럴 분이 아니야.”
사진을 보고도 아내는 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 아니 믿으려고 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정말... 이... 이 사진을 보고도 그렇게 고집 부릴거야?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 그러네!”
“당신이 무슨 말을 해도 내 생각엔 변함이 없어.”
“정 그렇게 굿을 해야 시원하겠다 이거야? 천만 원이나 주고?”
“응... 우리 하진이 은진이 나으려면 그 방법 밖에 없어!”
벽창호도 세상에 이런 벽창호가 다 있을까? 요즘 주부들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 가정도 버리고 자식도 버린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 시골 깡촌 무당년의 언변도 그에 못지않은 모양이었다. 속이 터져 잠도 오지 않고 종일 끙끙 앓기만 했다. 그러던 차에, 하늘이 도왔던지 구세주가 찾아왔다.
‘이한’
서른은 넘었을까 싶은 젊은 친구였다. 키도 크고 생김도 말끔하며 배시시 웃을 땐 하얀 치아가 훤히 드러나는 흡사 영화배우처럼 생긴 미남자였다. 답답한 마음에 한 번은 한탄하듯 인터넷에 내 사정을 적어 올린 적이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글을 보고 찾아 왔다 했다. 당혹스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뭐하는 친구냐 물으니 그가 답했다.
“박수입니다.”
“박수요?”
“여자 무당을 가리켜 흔히 만신이라고들 하시는데, 남자 무당은 보통 박수라고 부르십니다.”
“뭐? 무당? 이... 이런 미친X을 봤나!”
무당이라는 소리에 역정이 나 대번에 그를 내쫓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달라붙어 나를 설득했다.
“고생 많으셨던 거 다 압니다.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모두 그 나무 탓입니다.”
“나무?”
“네, 나무... 여우도 천년을 살면 기로에 접합니다. 신이 될지, 요물이 될지 말입니다. 제 짧은 소견으로 보건데, 그 나무는 요물이 되었습니다.”
“요물이요?”
“예, 제가 요 며칠 마을을 다니며 알아본 바에 의하면 분명합니다. 나무와 가까이하다 상한 자가 한 둘이 아니더군요. 불에 타 죽은 자, 다리가 부러진 자, 빗물에 익사한 자. 다들 신령스러운 나무라고 하던데, 속고 있는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신령스러운 나무라한들 그것이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면 어찌 그걸 신령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죠. 맞습니다.”
“예로부터 함경도에선 호랑이를 산신이라 부르며 신성시 해 왔습니다. 산을 다스리는 신이라 이거죠. 하지만 제 아무리 산신이라 불리는 호랑이도 죄 없는 사람을 잡아먹기 시작하면 포수와 사냥꾼들이 나섭니다. 요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를 믿어주십시오. 어떤 대가가 따르더라도 제가 선생님의 포수와 사냥꾼이 되어 그 요물을 해치우겠습니다.”
“뭐... 뭘 어쩌자는 거요?”
“그 요망한 나무를 베어 없애야 합니다.”
옳거니 싶었다. 나무를 베는 건 나도 원하던 바였다. 비록 거절당했지만 그래서 황태식을 찾아갔던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나무 주인이...”
“사람 목숨이 달린 일입니다. 아무렴 따님을 구하는 일이 중하지, 나무 주인의 허락을 구하는 일이 중하겠습니까? 먼저 자르고 허락은 나중에 구하시죠.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모두 그 요목이 벌인 일입니다. 그 요목만 처리하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 올거라 이 말입니다. 아프신 따님들도 건강해지고, 요목으로 인해 고통 받던 이 마을 사람들에게도 영구히 평화가 찾아 올 것입니다.”
그럴듯한 제안이었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고 찾아왔다는 것도 그렇고 일단 나이가 너무 어렸다. 저 새파란 젊은이가 대체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다.
“그... 그런거라면 도움 같은 건 필요 없수다. 안 그래도 내가 벨 참이요. 그 나무...”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장담하건데, 선생님께서는 절대 그 나무를... 벨 수 없습니다.”
“왜 못 벤단 말이오! 어디 그 나무 몸뚱이는 쇠로 되었답디까?”
“아시다시피 요목입니다. 나무주인이란 자도 말했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요목을 베기 전에 선생님께서 먼저 해를 입을 거라고요. 절대 그 말을 헛으로 듣지 마십시오. 이 마을만 해도 요목을 건드렸다가 해를 입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닙니다. 가지를 부러뜨린 자는 다리가 부러졌고 도끼로 찍어 낸 집은 가족이 몰살당했습니다. 설마 그렇게 되길 원하시는 건 아니시겠죠?”
“아... 아니, 그럼 나보고 어쩌라는 거요?”
“그래서 제가 온 거 아니겠습니까? 제가 돕겠습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신력을 발휘해 요목이 내뿜는 요기를 막아 내겠습니다. 그럼 그 틈에 선생님께선 요목의 숨통을 베십시오. 다 벨 것도 없습니다. 적근(赤根)만 베어 내면 요목은 힘을 다해 말라 죽을 것입니다.”
“저... 적근이요? 그게 무슨...”
“적근이라 함은, 고목에 달린 수많은 뿌리 중 길이는 다섯 자 반이요. 굵기는 어른 머리통만한 것으로 그 생김이 흡사 소 핏줄 마냥 붉다 하여 적근이라 합니다. 놈의 숨구멍이자 목숨 줄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보통의 뿌리와 달리 강철처럼 단단한데다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신묘한 뿌리이기 때문에 힘이 있다 하여 쉽게 벨 수 있는 물건은 아닙니다. 제가 적근을 잠재울 테니, 그때 선생님께서 나서서 베어 내십시오.”
온통 믿을 수 없는 이야기뿐이었다. 적근이라니, 강철처럼 단단한데다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뿌리라니. 터무니없는 이야기에 실소를 터트리고 있자니, 젊은 박수도 따라 웃는다. 하지만 표정과 음성이 매우 진중한데다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이 하도 심상치 않아 속는 셈치고 한 번 믿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제일 궁금했던 바를 넌지시 물었다.
“얼마요?”
“네?”
“굿 값 말이오. 젊은 친구는 얼마를 생각하고 오셨소?”
아내를 현혹시킨 늙은 무당은 천만 원을 요구했다. 이 친구는 과연 얼마를 바라고 있을까? 천만 원? 같거나 그 이상이라면 아무 의미가 없고, 절반 정도라면 최소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대답을 기다리고 있자니 그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다 이내 말했다.
“돈은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
나는 속물이다. 얼굴에 번지는 미소를 억지로 참으며 의아한 척 물었다.
“에? 그... 그게 무슨...”
“선생님, 때로 세상에 돈보다 더 중요한 것도 있는 법입니다.”
“아... 하이고... 이런 고마울데가...”
무당이 싫어 나무를 베겠다던 나는 어느새 젊은 박수의 손을 꼬옥 잡고 있었다.
*
모든 것이 형편없는 하루였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 시커먼 먹구름을 불러 모았고, 거듭된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기어코 무당을 불렀다. 아침부터 젯상을 차린다고 신이 났길래 어디서 돈이 났냐. 앞으로 어쩔 작정이냐 물었지만 아내는 일언반구도 없이 전만 부쳤다. 속으로는 천불이 났지만 애써 태연한척 웃으며 ‘기왕지사하기로 한 거. 잘 해’하고 돌아섰다. 젊은 박수 이한의 당부 때문이었다.
“이제와 말씀드리기 송구스럽지만 사실 불가능합니다.”
“예? 뭐가 말이오?”
“망설이는 선생님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부득이 호언장담을 했을 뿐, 사실 제 미력한 힘으론 요물의 적근을 온전히 끌어 낼 수 없습니다. 제 아무리 노력해 법력을 쌓는다 한들, 아직 젊은 제가... 어찌 감히 저 천 년 묵은 요물과 비견 될 수 있겠습니까.”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였다. 당황한 나는 그의 팔을 잡아 끌며 말했다.
“이보슈 박수 양반! 이제 와서 그런 소릴 하면 어쩝니까! 나야 그렇다 쳐도 댁에 하나만 바라보고 있는 우리 애들은요.”
“심려 마십시오. 저도 다 생각이 있습니다.”
“아니, 지금 심려 안 하게 됐습니까? 적근을 온전히 끌어 낼 수 없다면서요. 요물을 당해 낼 수 없다면서 대체 어쩔 작정이요?”
“일전에 듣기로, 아내 분께서 지리산 만신님을 부르신다고...”
그의 계책은 이랬다. 아내가 부른 무당, 즉 그 끔찍한 노파가 제를 올려 당산나무의 기운을 불러올리면, 자신이 나타나 요목의 힘을 봉인하고 적근을 자르겠다는 것이었다.
“잠들어 있는 요목의 힘을 불러내고 땅 속 깊이 뿌리내린 적근을 땅위로 끌어내는 일이야 말로 가장 고된 일이며 이 일의 열의 아홉입니다. 그것만 해내면 그 뒤는 제 미력한 법력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적근이 올라온다면 필시 그 만신은 제 가진 힘을 모두 소진한 뒷일 것입니다. 그럼 선생님께서는 주저 없이 달려가 완력으로 그 만신을 제압하십시오.”
“완력으로 그 무당을?“
“네, 어차피 팔순 넘은 노파가 아닙니까. 이미 적근을 불러내느라 기력을 모두 쏟은 터라 선생님도 손쉽게 제압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일반인이신 아내 분 역시 기력이 부족해 적근이 나타날 때쯤이면 이미 탈진해 혼절해 계실 테니 그 부분도 크게 걱정 하실 바가 없습니다.”
“그... 그렇지만...”
“뭐가 걱정이십니까? 돈에 눈이 멀어 혹세무민하던 자가 아닙니까?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할 자가 아닙니까. 선생님께서 만신만 제압해 주시면, 제가 목숨을 걸고 요목에게 접근하겠습니다. 부적과 법력으로 요목의 적근을 무력하게 만들겠습니다. 물론 그 뒤는 아시다시피...“
박수 이한이 전기톱을 꺼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굿을 할 생각에 들 떠 있을 아내에겐 미안한 일이었지만, 다른 도리가 없었다.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제 소임을 다 하지 못 했으니 늙은 무당은 굿 값을 받아갈 명분이 없다. 아내를 속인 벌을 받는 것이다. 일이 잘 돼 요목을 베고 아이들의 병이 나으면, 무당에게 속고 있는 아내도 정신을 차릴 것이다. 일석삼조의 계책이었다. 돈도 아끼고 무당도 혼내주고 아내도 되찾아 올 수 있다. 그때 상을 차리느라 분주하던 아내가 조용히 다가와 말했다.
“여보 고마워.“
“뭐가?”
“굿 하자고 했을 때, 당신 끝까지 반대했잖아. 지금이라도 마음 바꿔준 거 너무... 고마워.”
“무... 무슨... 에헴”
민망함에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오해에 불과하지만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 결심은 더욱 확고해졌다. 비록 잠시 나를 원망하더라도 일이 끝나면 알게 될 것이다. 누가 속았고, 누가 냉철했는지를 말이다.
그게 이제까지의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무당과 아내가 읊는 경문 소리에 거대한 적근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수 이한이 말했던 그대로였다.
*
“須菩提 我念過去無量阿僧祗劫 於燃燈佛前 得値八百四千萬億那由他 諸佛 悉皆供養承事 無空過者.”
(수보리 아념과거무량아승지겁 어연등불전 득치팔백사천만억나유타 제불 실개공양승사 무공과자)
“若復有人 於後末世 能受持讀誦此經 所得功德 於我所供養諸佛功德 百分 不及一 千萬億分乃 至算數譬喩 所不能及.”
(약부유인 어후말세 능수지독송차경 소득공덕 어아소공양제불공덕 백분 불급일 천만억분내 지산수비유 소불능급.)
무당과 아내가 가열찬 음성으로 경문을 읊자 당산 나무 아래의 땅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희뿌연 흙먼지가 사방에서 피어오르고 주변에 심어져 있던 크고 작은 풀과 나무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안그래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내 눈에 연체동물의 다리처럼 자유로이 휘고 뻗으며 치솟는 크고 붉은 기둥들이 보였다. 하나, 둘, 셋, 넨, 무려 일곱 개다. 하나 같이 굵고 강철처럼 단단해 보인다. 과연 내가 저걸 잘라 낼 수 있을까? 걱정된 마음에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하늘 높이 치솟던 뿌리들은 어느새 둥글게 말리며 요목 주변을 감쌌다. 기분 탓일까? 아이들의 신음소리가 커질수록 푸르던 요목의 잎사귀가 검게 물들어 간다. 지금이다. 박수 이한이 예견한 바로 그 타이밍이다. 황급히 고개 돌려 바라보니 저 멀리 헛간 뒤에 숨어 있던 박수 이한이 빼죽이 고개를 내밀며 신호했다.
“으아아아!”
이를 악물고 괴성을 내지르며 내달렸다. 놀라 눈이 휘둥그레진 무당의 몸통을 그대로 들이 받았다. 무리한 탓인지 아니면 요령이 없어서인지 나와 무당이 한데 뒤엉켜 튀어나온 요목의 뿌리 사이로 떼굴떼굴 굴렀다. 구르며 부딪친 팔과 어깨가 저리고 긁힌 목과 다리는 시큰댔다. 오직 나무를 베겠다는 일념으로 아픈 몸을 일으키니 아뿔싸 무당이 보이지 않는다. 당황해 주변을 둘러보니 웬걸? 발밑이다. 무당이 쓰러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 구르다 다친 것인지 하얗게 분칠한 이마 사이로 핏물이 새어 나온다. ‘이봐! 이봐!’ 불러도 흔들어도 정신을 차리지 않았다. 화들짝 놀라 코 밑에 손을 대 보니 다행히 숨은 붙어있다. 겨우 안도하며 헤죽대고 웃는데 이번엔 ‘여보!’ 아내의 아련한 절규가 고막을 두드린다. 나를 만류하려는 지 팔을 쭉 뻗으며 버둥대는데 얼마 안가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대다 눈이 풀리며 팩-하고 고꾸라진다.
‘일반인이신 아내 분 역시 기력이 부족해 적근이 나타날 때쯤이면 이미 탈진해 혼절해 계실 테니 그 부분도 크게 걱정 하실 바가 없습니다.’
신통하게도 모두 이한이 일러준 그대로였다. 탈진한 아내를 뿌리에서 먼 곳으로 끌어내고 나니 어느새 그가 기쁘게 웃으며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수고하셨습니다. 아주 훌륭합니다.”
혼절한 아내 때문일까?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의도야 어찌되었든 아내를 배신한 셈이 아닌가? 묘한 죄책감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이한이 기지개를 펴듯 팔을 쭉 펴며 말했다.
“적근도 올라왔고, 만신도 처리했으니 큰일은 다 끝났군요. 자! 이제 적근을 몽땅 잘라냅시다. 하하핫”
상당히 들 뜬 얼굴이었다. 만면에 미소를 띠고 어린아이처럼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나야 그렇다 쳐도 참 특이한 친굴세 하며 보고 있자니, 품에서 노랗고 빨간 부적 십여 장을 꺼내 꿈틀대는 요목의 뿌리 곳곳에 붙인다. 그 중 한 장은 불을 붙여 태운 후 남은 재를 다시 제 입에 쑤셔 넣었는데, 한참을 오물대며 침과 함께 개더니 새까매진 혀의 잿물을 다시 손에 묻혀 얼굴에 발랐다. 흡사 영화에서 보던 인디언이나 도깨비 같은 몰골이다. 비로소 정좌한 그는 합장하듯 양손을 겹친 후 무당처럼 경문을 읊기 시작했다.
“滅度一切衆生已 而無有一衆生 實滅度者.”
(멸도일체중생이 이무유일중생 실멸도자)
“滅度一切衆生已 而無有一衆生 實滅度者.”
(멸도일체중생이 이무유일중생 실멸도자)
무언가 늙은 무당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들어도 도통 알 수 없는 말들을 멍하니 듣고 있으니 어느새 그의 음성에 맞춰 멈추어 요목의 적근이 꿈틀댄다. 뱀처럼 땅 위를 기는가 싶더니 이내 바르르 떨다 진저리를 친다. 싱싱한 활어처럼 팔딱팔딱 튀어 올랐다가도 곧 휘고 꺾이며 배배 꼬였다. 신묘하긴 했으나 자칫 부딪혔다간 큰 사단이 나겠구나 싶어 몸을 움츠리니 이한이 소리쳤다.
“걱정 마십시오. 곧 끝납니다.”
그의 말 대로였다. 서서히 지면의 흔들림이 멎더니 때 마침 불어온 바람에 검게 물든 요목의 잎사귀가 떨어져 사방으로 흩날렸다. 팔딱팔딱 살아 요동치던 적근도 온순한 양처럼 바닥에 눕는다. 이한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몽롱한 눈으로 헛간을 가리켰다. 나는 대번에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 깨닫고 잽싸게 헛간으로 내달렸다. 전기톱은 보기보다 제법 무거웠다. 양손으로 부여잡고 뒤뚱뒤뚱 솟아나온 뿌리를 피해 다가오니 이한이 어느새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머리 위로 희고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연신 알아들을 수 없는 경문을 읊어댔다. “바... 박수 양반, 괘... 괜찮소?” 걱정되어 물으니 그가 말했다.
“적근을 봉인하느라 너무 많은 힘을 소비했습니다. 저는 잠시 기력을 회복해야겠으니. 말씀드린 대로 저 대신 선생님께서 적근을 잘라 주십시오.”
어차피 처음부터 그건 내 몫이었다. 그가 하겠다나서도 말릴 생각이었다. 나는 흐뭇한 얼굴로 적근 위에 발을 올렸다. 일곱 가닥 중 가장 굵은 녀석이었다. 드디어 내 딸들을 괴롭힌 원흉을 벌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짜릿한 쾌감이 밀려왔다. 잠금장치와 손잡이 끝에 달린 핸드 브레이크를 풀었다. 이제 준비가 끝났다 싶어 버튼을 누르니 ‘윙’하는 모터소리가 흡사 남진의 노랫소리처럼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콧노래가 흘러나왔지만 마냥 기뻐만 하고 있을 새는 없었다. 선이 없는 충전식 전기톱이라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망할 놈! 감히 내 딸을 건드려! 너도 한 번 죽어봐라!”
양 손에 잔뜩 힘을 주고 톱날을 박아 넣으니 날카로이 돌아가는 톱날과 적근 사이로 퍼런 불꽃과 함께 요란스런 굉음이 울려 펴졌다. 그때였다. 돌연 정체를 알 수 없는 돌개 바람이 주변을 에워싸고 휘몰아쳤다. 어찌나 거세던지 다리를 벌리고 버텨 서도 마른 가지처럼 몸이 휘청댔다. 이러다 자칫 톱을 놓치면 더 큰 사단이 날까 싶어 전원을 끄니 거짓말처럼 바람이 멎는다. ‘예전 어떤 목사가 요목에 도끼질을 하다 제 발등을 찍었다더니...’ 이한에 들은 말이 떠올랐다. 어찌해야 하나 싶어 돌아보니 가부좌를 틀고 있던 이한이 두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며 외쳤다.
“요목이 요기를 부리는 것입니다. 동요하지 마십시오. 시간이 없습니다. 곧 다시 살아 움직일 겁니다. 꽁무니를 빼고 땅 속으로 숨어 버리기 전에 모두 베어내야 합니다!”
아차 싶었다. 요목을 베겠다고 나서놓고 이 정도의 위험에 동요하다니, 스스로가 창피하게 느껴졌다. 이제껏 이한의 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어렵사리 찾아온 기회를 놓쳐서야 아내를 볼 면목이 없다. 재빨리 전원을 켜고 적근에 다가가니 조금 전 톱을 가져다 댄 자리에서 뭉클뭉클 검붉은 액체가 솟아났다. ‘설마 피?’ 괴기스러운 모습이었지만 두려움은커녕 알 수 없는 희열마저 솟구쳤다. 복수다. 죄 없는 나의 두 딸을 괴롭히고 내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린 요물에 대한 복수. 어리석은 것, 천 년을 살아왔지만 너는 결국 신물이 되지 못하고 스스로 요물이 되는 길을 택하였다. 그로 인해 네가 보내야 했던 영겁의 세월 역시 너의 업보와 함께 사라지고 말 것이다. 나는 굳게 다짐하며 톱을 검붉은 핏물이 솟구치는 적근의 상처 위로 가져다댔다. 끼이잉-하는 굉음과 함께 불꽃이 튀어 올랐지만 그뿐이었다. 단단한 겉면을 잘라내니 속은 두부 자르듯 뭉텅뭉텅 부드럽게 잘리며 시커먼 단면을 드러냈다. 그 과정에서 피 같은 진액이 사방팔방으로 튀어 올라 옷과 얼굴이 온통 새까맣게 물들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저주받은 요목을 드디어 베어낸다는 기대감에 나는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그 사이 바람은 더욱 거칠어졌다. 내 팔을 흔들고 요목의 가지 사이를 스치며 웅-웅-윙-우웅-울음 같은 소리를 냈다. 실소가 터져 나왔다. 아프냐? 너 때문에 운자가 어디 한 둘이더냐? 남이 울 때 네가 웃었듯 이제 네가 울 때 내가 웃는다. 한낱 미물 주제에 인간을 괴롭힌 대가다. 하하하, 나는 큰 소리로 웃었다.
하지만 그 순간... ‘빵빵’ 생각지도 못한 잡음이 끼어들었다.
자동차 경적 소리가 위협스레 울려 퍼졌다. 왜? 누가? 어째서? 당혹스러운 마음에 돌아보니 낯익은 얼굴 둘이 차문을 열고 사색이 되어 뛰쳐나온다. 기골이 장대한 검은 정장의 사내와 빛나는 은색 정장을 입은 넙대대한 두꺼비상의 중년 사내다.
“으메 이 씨X놈 보게! 당장 못 멈추냐!”
그가 고함을 내지르자 가부좌를 틀고 있던 이한 역시 당혹스러운 눈치다. 갑작스런 불청객의 난입에 어찌할 바를 몰라 멍해 있는 내게 이한이 소리쳤다.
“자르세요. 어서!”
‘위이잉’ 다시 톱에 전원을 넣었다. 가장 굵은 적근은 이미 잘래내었으니 나머지 것들은 훨씬 수월하리란 생각으로 덤벼들었다. 불꽃이 튀고 또 다시 붉다 못해 새까만 진액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하나 그리고 둘, 자를수록 거세던 바람도 잦아든다. 그러나 아쉽게도 시간이 부족했다. 겨우 두 개를 자르고 나니 황태식과 그의 수행비서가 코앞까지 다가와 소리쳤다.
“그만 두란 말 안 들리냐? 으메 씨X것! 뭣혀? 잡어!”
황태식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얼굴로 소리치자 곁에선 수행비서가 다가와 내 어깨를 잡아끌었다. 당황해 몸을 돌리니 윙-하며 전기톱이 함께 돈다. 날카로운 톱날이 뿜어내는 무시무시한 소리에 덩치 큰 수행비서도 화들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는다.
“미.. 미쳤냐 이 쓰X놈아!”
황태식이 당황한 얼굴로 소리치기에 나도 따라 소리쳤다.
“그래! 미쳤다 이놈아!”
“뭐? 뭐? 이런 호로잡놈이...”
“우리 애들 살려야 돼! 저 나무 잘라서 우리 애들 살릴 거라고! 그래서 미쳤어. 나 지금 돌았다고 이 두꺼비 새끼야!”
악다구니를 내지르니 황태식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진다. 지역 유지에 무려 3선까지 지낸 군 의회 의원이다. 나무 값을 치르겠다는 내 말에 가차 없이 울타리를 쳐버린 모진 인간이기도 했다. 지금이 아니면 요목을 벨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런 생각에 곧장 몸을 돌려 새빨간 뿌리 위에 톱날을 박아 넣었다. 파바박 푸른 불꽃이 눈을 어지럽혔다. 쏟아진 요목의 진액이 때마침 불어온 바람을 타고 분수처럼 사방으로 흩날렸다. ‘됐어. 이제 몇 개만 더 자르면...’ 절로 미소가 지어 졌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읍’
목덜미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무릎이 꺾이고 정신이 혼미했다. 어느 틈엔가 곁에 다가온 수행비서 놈이 흐뭇하게 웃는다. 나는 톱을 놓치고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아따 이 씨X놈, 보자보자 하니까 누굴 홍어 X로 봤나!”
“으으...”
다행히 정신을 잃진 않았다. 고통을 참으며 겨우 몸을 일으키니 황태식의 수행비서가 다가와 재빨리 톱을 걷어차며 말했다.
“아재, 다 끝났소. 의원님 이 인간 어쩔까요?”
“흐흐흐, 수고했다. 아따 이게 뭔 난리다냐. 어째 아침부터 나으 촉이 싸하드라니만은... 하여튼 서울 놈들은 드럽게 말을 안 들어 처먹어... 뭣하냐? 싸게 싸게 이리 끌고 나와라!”
“네! 의원님”
수행비서의 손이 끌려 나오니 황태식이 비웃듯 배실 배실 미소 짓는다. 분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이제 남은 적근은 고작해야 세 개, 요목의 숨통을 끊어낼 절호의 기회였다. 아내를 배신하면서까지 만든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니 절로 분통이 터졌다. 하지만 내 힘으론 젊고 체격 좋은 수행비서의 완력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놈은 목덜미에 당수를 꽂아 넣었을 때처럼 솜씨 좋게 팔을 꺾더니 나를 황태식의 발 앞에 꿇어 앉혔다.
“아재요. 나가 저것은 돈 주고도 못 사는 것이다. 분명히 알아듣도록 설명을 했을텐디, 지금 뭐하는 짓이요? 나으 허락도 없이 감히 저것을 싹둑 잘라? 허이구, 증말 염치없네. 나가 이제라도 발견하고 딱 막았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음 어쩔 뻔 했수? 흐흐흐.”
“도와주세요.”
“잉? 뭐라고?”
“도와주십시오. 황 의원님. 요목... 저 요목을 잘라야 우리 하진이 은진이 건강해 집니다. 그러니 제발...”
“아따... 그거슨 댁의 사정이고. 나는 나으 사정이 있어요. 나도 저 나무하고 그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비즈니스적 관계가 있다 이 말이지!”
“부탁드립니다.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살겠습니다.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 제발 저 나무만... 남은 적근 세 개만 마저 베개 해주십시오. 네?”
“헤헤헤 미안하지만. 나도 고렇게는 못 하겄소! 댁에야 말로 내 사정 좀 봐주시오 아야 뭣 하냐? 저기 아줌씨들하고 죄다 끌어내지 않고!”
“네 의원님”
그때였다. 황태식이 깜짝 놀라 손가락질 한다. 윙-하는 전기톱의 모터 음이 들려왔다. 수행비서 놈이 팔을 찍어 누르는 통에 고개를 돌리진 못 했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이한...
황태식이 소리쳤다.
“아야! 닌 뭐냐? 누군지는 모르겄지만 그거시 알라들 갖고 노는 장난감 아닝께! 싸게 싸게 내려놓고 이리오니라! 어쭈 웃어? 아야! 뭣하냐? 저 새파란 젊은 새끼 교육 좀 시켜주지 않고!”
“네!”
팔이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황태식의 지시에 수행비서가 나를 내팽개친 채 이한에게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고개를 좌우로 꺾고 주먹의 뼈마디를 부딪쳐 위협적인 소리를 낸다.
“아야! 뒤지게 맞고 싶지 않으믄, 싸게 싸게 그거 내리 놔라 잉?”
수행비서가 이한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하며 말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이제껏 박수 이한이 보여준 신통력은 참으로 놀라웠지만 체격 차이가 너무 컸다. 호리호리한 그와 달리 100kg에 육박하는 수행비서의 싸움은 보지 않아도 뻔한 것이었다. 이를 어쩌나 싶어 머리를 감싸 쥐고 있는데, 갑자기 난데없는 비명 소리가 들려 왔다. 놀라 고개 들고 바라보니 이미 바닥을 물들이고 있던 적근의 검은 진액 위로 더 선명한 선홍색의 액체가 흩뿌려진다. 수행비서가 손을 움켜쥐고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흥수야!”
황태식이 화들짝 놀라 달려갔다.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듯 두리번대다 급히 바닥에 주저 앉아 무언가를 주워 모은다. 하나, 둘, 셋, 손가락이다. 손가락이 세 개나 잘라져 피 내음을 내뿜고 있었다.
“이... 이... 미친X! 흐... 흥수야 괜찮냐? 아야 괜찮아. 빠... 빨리 가서 붙이면 돼. 어... 얼음 없나? 하이고... 하이고 이걸 어쩌나!”
“꺼져!”
“으으... 이 새파란 놈이 너 인마 돌았어? 나가 누군 줄 알고 잉? 너 인마! 내가 경찰에 검찰에 아는 놈들이 한 타스여 인마!”
황태식이 흥분해 주절대자 이한이 놈의 면전에 전기톱을 들이대며 말했다.
“꺼져! 네 모가지 따 버리기 전에!”
“히이익... 두... 두고 보자. 미친X들! 내... 내가 니들 다 고발할 거야. 폭력, 상해, 사유지 무단 침입, 사유재산 파손! 암튼!”
황태식이 제 수행 비서를 일으켜 세우며 입만 살아 소리쳤다. 믿었던 수행비서는 입에 거품을 물었고, 상대는 전기톱을 들고 있으니 제 깜냥으론 어찌할 도리가 없는 모양이었다. 이한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따라 웃고 싶었지만 뒷감당을 어찌 해야 할지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고민할 새가 없다. 지금은 적근을 베고 아이들의 병을 낫게 하는 게 우선이었다.
“고생했네 이 군... 이럴 것 까진 없었는데 아... 암튼 나 때문에... 미안하네...”
진심이었다. 애초에 이 일은 박수 이한과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를 돕기 위해 나선 것도 고마운데, 이제 사람까지 상하게 했으니 신세를 져도 너무 큰 신세를 진 셈이었다. 너무 미안해 말을 건네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그러자 이 한이 말했다.
“꺼져!”
“응?”
“뭘 봐! 너도 이제 꺼져!”
“무... 무슨 소린가 자네... 나 황태식이가 아니고 애들... 애들 아빨세...”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젊은 친구가 큰일을 저지르고 너무 놀라 잠시 혼동을 한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한은 황태식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를 향해 전기톱을 내밀며 말했다.
“하아... 이 아저씨도 한심하게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너 말야 너! 너도 비키라고! 이젠 너 없이도 혼자 할 수 있으니까. 흐흐흐”
“자... 자네 대체 왜 그러나?”
“자네는 X발, 야 이 병X아 못 들었어? 이제 너 필요 없다고! 그러니까 꺼져! 이제 이건 다 내꺼야. 이 적근 전부! 흐흐흐”
“그... 무... 무슨... 자네 갑자기 왜 이러나? 추... 충격을 받은 건 알지만... 진정하고...”
“꺼지라는 말 안 들려!”
이한이 느닷없이 전기톱을 휘둘렀다.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다 튀어나온 나무 뿌리에 걸려 넘어졌다. 당혹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으니, 저 멀리서 ‘끌끌끌’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곱사등이처럼 굽은 허리를 가진 누군가가 요목에 기대어 한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다... 당신!”
귀신을 본 사람마냥 놀라 소리치니 무당이 박수 이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도를 깨우칠 생각은 않고 여기저기 떠돌면서 달콤한 말로 아둔한 자들을 혹세무민하는 젊은 박수가 하나 있다더니, 바로 네 놈이렸다?”
“헤헤헤, 이제 아셨수? 그런데 어쩝니까? 이제 이 천년 묵은 나무의 요력은 내 차지가 되었으니. 흐흐흐”
“어허... 스스로 정진해 도를 닦고 신령님을 모실 생각은 않고... 쿨럭... 쿨럭... 모기처럼 신물의 도력을 빨아내 제 배를 불릴 생각만 하다니... 그러고도 어찌 신을 모시는 사람이라 하겠느냐!”
“아니 뭐, 도를 닦나, 뺏어 오나... 어차피 엎어 치나 메치나 아니우. 동굴이니 골방이니 뭐 그런 어두침침한데 처박혀서 인생 낭비하던 시절은 이제 끝났다 이 겁니다. 이 적근만 있으면 천년의 도력을 얻는데, 뭐하러 그런 멍청한 짓을 한답디까? 그래도 고맙수. 내가 어깨너머로 배운 재주가 전부라, 저 천년 묵은 신물을 어찌 끌어내나 고민이 하나 둘이 아니었는데, 지리산 만신 어르신 덕분에 손 안대고 코 한 번 풀었시다.”
“못된 놈!”
“으아 미치겠네. 저것만 빨아 먹으면 되는 최소한 당신, 아니지. 당신 같은 들 떨어진 만신 따위는 비빌 수도 없을만큼 굉장해진다 이거 아녜요? 하하하 아니지 전국에 난다 긴다 하는 박수들 중에서도 그 정도 도력을 쌓은 작자는 없지. 그럼 이게 하루 이틀짜린가? 천 년인데? 흐흐흐”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텅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한이... 나를 도와 요목을 물리치겠다던 이한이 갑자기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요상한 말을 늘어놓고 있었다. 황당하기도 하고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아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고 있으니 무당이 흘깃 나를 바라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미련한 놈! 아직도 모르겠느냐! 저 놈이 달콤한 말로 네 놈을 꼬여낸 게야!”
“아... 아니요. 그... 그럴 리 없어요. 이... 이 보게 이군... 아니지? 그렇지? 저 무당이 우리를 이간질 하려고 저러는 거지? 자네가 저 적근을 다 잘라내기만 하면 우리 애들... 하진이, 은진이 다 건강해지는 거잖아. 그치? 그건 맞지? 그치?”
“아둔한 놈... 아직도 저 놈이 만든 거짓말에 속아 허우적대는 구나. 붉던 적근의 진액과 새파랗던 풍성하던 잎사귀가 왜 시커멓게 변했는지 진정 모르는 것이냐? 적근이 네 두 딸의 몸에 침범한 독을 빨아내준 게야! 그래서 이 나무가 씻김굿에 필요했던 거고. 이제 저 무례한 놈이 적근을 잘라 가져가 버리면 나무는 죽어. 그리고 네 두 딸이 나을 방법 역시 영영 찾을 수 없을게다!”
“딸의 독을... 나무가?”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나를 돕겠다던 이한이 나를 속였다니, 당혹감에 할 말을 잊고 망연자실 앉아 있자니 무당이 수행 비서를 들쳐 메고 슬그머니 도망치려던 황태식을 부르며 말했다.
“야 이 도적놈아! 네 놈은 또 어디 가냐!”
“아... 나... 나 말이오? 하이고 누이, 내... 내... 내가 가긴 어딜 간다고 그럽니까? 보시오. 우리 애가 여기 손가락이 싹둑 혀 가지고, 그... 그래서 벼... 병원 가려고 그런 거지... 이게 원래 빨리 붙여야 이쁘게 붙는다 안 하요? 헤헤헤 ”
“이 모두가 다 네놈의 욕심 때문에 생긴 일인데, 어딜 도망치는게냐!”
“히익! 아... 아니 아따 그... 그건 우리 사이에 서로 까발리지 않기로... 내가 용돈도 드리기로 하고... 뭐 물론 받지는 않으셨지마는... 암튼 좋게, 좋게, 지역사회 좋은 것이 뭐요 누이! 헤헤헤”
“예끼 이놈!”
결국 돈 때문이었다. 차기 군수 선거에 나가고 싶었던 땅 주인 황태식은 급히 선거 자금을 마련해야 했고, 이를 안 한 지방의 특수 폐기물 처리 업자가 그에게 접근했다. 대가는 넉넉히 지불 할 테니 놀고 있는 그의 땅 중 일부에 수천 톤에 달하는 산업 폐기물을 몰래 암매장하자는 것이었다.
“그럼 읍내에서 두 사람이 만났던 건?”
“내 저 모자란 놈에게 혼꾸녕을 내주려 찾아갔지! 그 땅이 어떤 땅인데... 감히!”
“아니! 누이가 말했지 않소. 이 당산 나무가 진공 청소기 맹키로 더러운 기운을 싹 다 빨아들인다고, 아니 이게 오수저 마냥 오염물질을 정화하면은 아무 문제없는 거 아니오? 이봐 당신! 기억 안 나? 당신 귀농이랍시고 내려왔을 때, 내가 코털이 휘날리게 달려와서 말 혔어 안 혔어? 혔잖어! 나무 근처가 다 내 땅잉게 알랑대지 말라고, 알라들하고, 아줌씨도 가지 말라고, 단디 챙기라고 혔어 안 혔어?”
“예끼 이놈아!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지. 네 놈이 땅을 들쑤셔 버려놓은 독이 어디 하나둘이더냐!”
화가 치민 나는 재빨리 황 태식에게로 달려가 그의 멱살을 틀어쥐고 말했다.
“야 이 미친X 아! 사람 사는 땅에 그런 더러운 걸 묻고도 괜찮을 줄 알았어? 너 때문에 애들이... 우리 애들이...”
두 딸은 아직도 나무에 묶인 채 정신을 차리지 못 했다. 눈물이 났다. 다 내 잘 못이고 전부 오해였다. 나는 황태식의 당부를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고, 진짜 사기꾼은 무당이 아닌 젊은 박수 이한이었다. ‘세상엔 돈보다 더 중요한 것도 있는 법’이라는 그의 달콤한 말에 속아 아내를 배신하고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린 것이다. 망연자실한 기분에 한숨을 토하고 있으니 이한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흐흐흐, 멍청한 놈들! 나는 진즉에 알아봤지. 불에 타죽은 자는 애초에 본인의 부주의로 죽은 것이 와전됐을 뿐이고, 소아마비 걸려서 다리를 전다는 여자. 그 여자는 오히려 반대였지. 벌써 병이 왔어야 할 아이가 나무의 신력 덕에 병색 없이 건강히 걸어 다녔던 게야. 그런데 멍청한 놈들이 아이가 다치니까 지레 겁을 먹고 큰 일이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아이를 나무에서 떼어냈지. 그게 원인이었어. 치료를 돕던 나무와 멀어지니, 아이는 결국 소아마비를 앓고 말았지. 어디 그 뿐인가? 나무에 락카를 뿌리고 도끼를 휘둘렀다는 그 목사 집안도 그래. 알아보니 이 마을은 이전부터 한 번도 수해를 입은 적이 없더군. 다 이 당산 나무 덕분이지. 나무가 저 거대한 적근을 이용해 넘치는 물을 빨아들이고 땅속 깊은 곳으로 물이 빠져 나갈 수 있도록 물길을 냈던 게야. 헌데 그걸 더럽히고 상처 입혔으니. 제 아무리 신령스런 나무라 해도 탈이 날 수 밖에, 나무가 돕지 않으니 때 마침 내린 비에 수해가 찾아오고, 결국 스스로 제 가족을 몰살시킨 꼴이지. 흐흐흐 그리고 아... 그 뭐야. 온 가족이 암에 걸려 죽은... 그 최 씨라는 자. 그건 제일 어처구니 없는 오해지. 애초에 그건 나무 탓이 아니라 저기 저 아둔한 자가 묻어 놓은 폐기물 때문이었으니까 하하하”
“나를 속이다니! 이익!”
“어허! 이러지 마세요. 가까이 다가오면, 댁에도 아까 그 덩어리처럼 손모가지 날아갑니다. 아까 걔 어린애처럼 엉엉 우는 거 보셨죠? 목숨은 소중한 거에요. 흐흐흐”
“낫게 해준다고 했잖아. 세상에 돈보다 더 중요한 것도 있는 법이라고 했잖아!”
“맞아요. 세상에 돈보다 더 중요한 거. 이 적근을 보세요. 이것만 있으면 저는 최고가 될 겁니다. 어디 그 뿐인 줄 아세요? 기력을 되찾고 젊어지는 비약이 있다고 하면 돈을 싸 짊어지고 찾아올 늙은이들이 한 트럭이죠. 저는 유명해지고 또 부자가 될 겁니다. 골방에 처박혀서 남의 액운이나 점쳐주는 한심한 박수가 아니라. 부와 명예를 거머쥔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무속인이 될 거라 이 말입니다! 하하하, 잡설이 길었네요. 제가 너무 흥분했죠? 자 그럼 이제... 일을 마무리 지어야겠네요.”
이한의 남은 적근 위에 전기톱을 가져다 댔다. 불행히도 두꺼운 것들은 다 잘리고 남은 것은 얇은 것들뿐이었다. 게다가 크고 굵은 뿌리를 모두 잘리고 나니 나무도 힘을 다한 듯 별다른 저항 없이 싹둑 잘려나갔다. 남은 것은 이제 겨우 하나...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머뭇대고 있는 내게 무당이 큰 소리로 말했다.
“막아야 해! 저 놈을 막지 않으면 네 두 딸을 회복시킬 기회는 영영 찾아오지 않아!”
알지만 날카로운 전기톱이 앞을 가로막았다. 이대로 저 사기꾼에게 당하고 마는 것인가 싶던 그때 저 멀리... 나무에 묶여 정신을 잃은 줄 알았던 큰 딸이 고개를 드는 것이 보였다.
“아빠... 나 아파...”
다른 이유는 필요 없었다. 그때의 나는 미쳤을지도 모른다. 무섭게 돌아가는 톱날을 보고도 무작정 놈에게 다가갔다. 윙-윙 놈이 위협하듯 전기톱을 내밀었다. 금방이라도 나를 토막 낼 듯 가깝게 다가온다. 그러나 나는 이미 정상적인 사고의 범주를 넘어 선 뒤였다. 놈에게 속아 아내를 배신하고 딸들을 위험에 빠뜨렸다.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이 나를 하룻강아지로 만들었다.
“당신 미쳤어! 앙? 죽고 싶어?”
놈이 전기톱을 휘두르며 연신 소리쳤다.
“그래 미쳤다! 죽여! 죽여보라고!”
“이 새끼가 정말 돌았나!”
내가 팔을 뻗자 놈이 재빨리 전기톱을 휘둘렀다. 황급히 팔을 뺐지만 아차 하는 사이 강렬한 통증과 함께 팔뚝 일부가 찢어져 나갔다. 피가 튀고 통렬한 고통이 밀려왔다. 그러나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봤지? 지... 진짜로 썰어 버릴 거야! 히히히 주... 죽고 싶진 않겠지?”
“썬다고? 그래 썰어 인마! 이름 난 박수가 되면 뭐할 거야? 돈이 많으면 뭐 할 거냐고? 사람 죽이고 감방에 간 놈한테 부귀영화가 무슨 소용이야!”
“가... 감방? 이익! 주... 죽어도 좋다 이거야?”
잃을 것이 없는 놈과, 잃을 것이 많은 놈의 싸움은 무조건 전자가 이긴다. 놈이 일순 머뭇대는 것이 느껴졌다. 무거운 전기톱을 연신 휘두른 탓에 호흡도 많이 거칠어져 있었다. 기회다 싶어 힘이 빠져 주저앉는 척 재빨리 바닥의 흙을 한웅큼 손에 쥐었다. 그리곤 간격을 살펴 다가가 놈이 전기톱을 크게 휘두르는 틈을 타 얼굴에 뿌렸다.
“으아악!”
놈이 비명을 내질렀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 일이 더 쉬워 질 줄 알았는데, 실상은 반대였다. 앞을 볼 수 없게 되자 흥분한 놈은 한층 더 사납게 톱을 흔들어 댔다. 더 정신없이 허공을 베어 나갔다. 이래선 놈에게 다가갈 도리가 없었다. 마지막 남은 적근이 코앞이라 자칫 적근이 베어져 나갈 공산도 있었다. 조급해졌다. 눈에 들어간 이물질이 천년만년 시간을 벌어주진 못 한다. 놈이 곧 눈을 뜰 것이다. 그때 놈의 발밑으로 다가가는 하얀 손이 보인다.
“여! 여보!”
아내였다. 어느 틈엔가 기력을 회복한 아내가 바닥을 기어 놈의 발밑까지 와 있었다.
“죽어 이 망할 놈아!”
그 순간 놈이 가까스로 눈을 떴고 흥분한 얼굴로 내게 톱날을 들이밀었다. 그와 동시에 아내의 손이 놈의 발목을 잡아챈다. 으악-비명과 함께 놈이 벌렁 뒤로 나자빠지고 손에서 떨어져나간 톱이 허공에 떠올랐다. 하필 아내의 머리 위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뛰어들었다.
팍-하는 소리와 함께 전기톱의 톱날이 어깨에 파고들었다. 다행히 날이 거의 멈춘 상태라 상처가 깊진 않았다. 울고 있는 아내를 끌어안으며 괜찮다고 다독였다.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헌데 그때 등 뒤에서 다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끝까지 속 썩이네... 참들 질기십니다. 예?”
이한이었다. 어느새 그가 몸을 일으켜 나와 아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등을 발로 밟으며 ‘쿡’ 어깨에 박힌 전기톱을 빼낸다. 피가 쏟아졌다. 아내가 놀라 비명을 내질렀다. ‘괜찮아. 괜찮아’ 다시 한 번 아내를 다독이며 뻗어 나온 적근에 등을 기댔다. 오직 적근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이한이 다시금 전기톱에 전원을 넣으며 소리쳤다.
“비켜!”
“아니... 못 비켜... 적근을 자르고 싶으면 나부터 잘라!”
눈을 감고 팔을 벌렸다. 이러면 놈도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러자 이한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이봐요 아저씨, 서울에 가면요. 영약이 필요한 노친네들이 엄청나게 많아요. 아주 환장을 한다니까요? 잘라서 내가 좀 먹고, 남는 건 환약이나 탕약으로 만들어 팔면, 모르긴 몰라도 벌떼처럼 몰려 들 겁니다. 서울의 난다긴다하는 변호사들을 다 붙여주겠죠. 이건 어디까지나... 우발적인 사고였니까. 흐흐흐”
“그걸 누가 믿어줄 것 같아. 이렇게나 사람이 많은데.”
“그건 법정에서 제 변호사하고 얘기하시고. 아! 그렇죠. 어차피 당신은 거기 없겠네요? 흐흐흐. 잘 가세요. 선생님!”
이한이 전기톱을 높이 치켜들었다. 아내가 비명을 내질렀고,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딸의 음성이 들려왔다. ‘아빠...’ 그리고 그 모두를 집어삼킬 듯 커다란 총성이 연거푸 울려 퍼졌다.
“머... 멈춰! 경찰이다.”
“아따! 전화한지가 언젠디 이제 오면 우짜냐 김 경장아!”
경찰이 총을 겨누자 내내 상황을 바라만 보던 황태식이 제 수행비서마저 뿌리친 채 달라나갔다.
“충성! 에이 의원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저희가 노는 사람이 아니잖습니까! 이것도 신고 받고 부리나케 온 거에요. 어이 당신! 당장 그거 내려놔! 한 발은 공포탄이고 그 뒤로는 실탄인 거 알지? 응? 지금부터 뭐야! 당신을 특수 폭행 및 암튼 현행범으로 체포 할라니까. 법정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으니 입조심하시고, 변호사는 선임하시든지 말든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끝났다. 이제 정말 끝이다. 그런 생각으로 안도하고 있었다. 그게 실수였다. 전기톱을 내려놓는가 싶던 이한의 손이 재빨리 움직인다.
“안 돼!”
찰나의 순간이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뛰어들었고 놈의 전기톱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콰콰콱’ 굉음이 울려 퍼졌고 ‘탕’ 한 발의 총성도 울려 퍼졌다.
“흐으...흐으윽...”
“여보!”
아내가 소리쳤고, 경찰의 아우성이 들렸다. 이한은 어깨에 총을 맞고 쓰러졌지만 두 동강이 나리라 생각했던 내 팔은 멀쩡했다. 적근 덕분이었다. 어느새인가 채찍처럼 휘어져 나온 적근이 내 팔을 감싸고 있었다. 반쯤 잘린채로 말이다.
“괜찮으십니까? 여기는 ㅇㅇ리, 여기는 ㅇㅇ리, 구급차 출동 바란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여기는 ㅇㅇ리 구급차 출동 바란다.”
*
그렇게 모든 일이 일단락 났다. 이한은 체포되어 구금됐고, 지금은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검사님... 혹시 신비의 명약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발기부전, 탈모, 노화방지, 각종 암부터 치매증상 완화까지... 검사님께서 도와주신다면 제가 신비의 명약을 빚어 올리겠습니다. 뿌리, 그 뿌리만 있으면 됩니다. 예? 검사님!”
법정 앞에서 본 그는 커다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처음엔 여론을 의식해 얼굴을 가렸다 생각했는데, 안에서 보니 얼굴이 울긋불긋 붓고 멍들어 있었다.
우연히 법정에서 만난 황태식이 괜스레 친한 척 다가와 한결 나긋나긋해진 말투로 이야기했다.
“아따! 그 검사님이요. 원래 서울 고검에 계시던 분인디, 가수 출신 서울 유명 연예 기획사 사장놈 청탁을 받고 뽕 먹은 애들 무마해주다가, 아 글씨 그게 걸려 갖고 좌천 되서 내려오신 분이라 안 합니까? 원래 기냥 모가지가 날아갔어야 하는데... 빽이 엄청 좋으셔가지고. 암튼 그 뒤로 그 분이 약이라면 아주 치를 떤대요. 그래서 그 새파란 놈에 새끼를 막 그냥 줘 패고... 쥐어 뜯고 암튼... 그랬나 보더라고요. 하이고 애기들도 왔네. 이제 안 아픈갑지? 반갑다. 나 태식이 아저씨야. 우리 친하게 지낼까?”
물론 황태식도 얼마 안가 폐기물 불법 암매장 혐의로 입건되었다. 그 규모가 심각할 정도로 컸던 것도 문제지만, 그로 인해 일가족이 암으로 숨졌다는 폭로기사가 터지자 지역 유지인 그도 결국 버티지 못하고 검찰로 향했다. 아직 판결이 나진 않았지만 담당 검사는 의원직 상실은 물론 그의 구속과 이익금의 국고 환수를 자신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건강해졌다. 모두 당산 나무 덕분이었다. 사건이 끝난 뒤 홀로 현장에 남아있던 무당은 경찰 몰래 잘린 적근을 모두 챙겨 들고 홀연히 사라졌는데, 그 일이 있고 일주일 뒤 돌연 우리 집 앞에 나타나서는 환약이 가득 든 목함을 내밀며 말했다.
“이거시 천만 원짜리 약 잉게... 빼먹지 말고 알라들 챙겨 맥이게나.”
“가... 감사합니다. 만신님”
“만신은 개뿔... 소처럼 달려들어서 때려 박을 땐 언제고... 쯧쯧. 이 반푼아! 느그 마누라한테나 고맙다고 해. 어디 네놈 예뻐서 해준 건 줄 알아?”
약을 전한 뒤 만신은 또 다시 홀연히 사라졌다. 이후 더 이상 그녀를 보지 못 했는데, 읍내에서 들려온 소문에 의하면 지리산 중턱 암자 어딘가에 피부가 말끔하고 탱탱해진 중년 여성이 한 명 혼자 살고 있는데, 그녀를 만나고자 뭇 남성들이 매일 같이 산행을 떠난다고 한다. 물론 그녀가 그 만신인지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슬픈 소식은... 마지막 적근을 잘리지 않았음에도 결국 당산 나무가 말라 죽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황태식이 묻어놓은 산업 폐기물의 독이 너무 강해 남은 적근만으론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나무가 죽자 진실을 알 리 없는 마을 사람 일부는 몹시 기뻐했지만 나와 우리 가족들은 매년 그 날이 되면 나무 앞에 모여 예를 표하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 3년째 되는 해다. 여느 때처럼 가벼운 묵념으로 그 날의 고마움을 전하고 돌아가려는데 어느새 건강해져 초등학교에 입학한 둘째가 웃으며 말했다.
“아빠... 여기 싹이 났어.”
끝.
p.s 7살 딸을 키우느라 글 하나 쓰려면 아이 재우고 며칠씩 새벽잠을 설치며 써야 합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재밌게 읽으셨다면 힘이 될 수 있게 댓글 하나만 부탁드립니다. 물론 재미 없으셨으면 그냥 가셔도 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출처 | 본 글은 냥이박사님이 쓰신 '귀신나무 '란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즐겁게 글을 쓸 수 있도록 도움 주신 냥이 박사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원작 : 귀신 나무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panic&no=100401&s_no=14792109&kind=member&page=1&member_kind=total&mn=78199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