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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무역에서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대일무역적자'이다. 특히 소재 및 부품부문이 문제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추세가 줄어들고 있다. 자동차 부품 등 일부 품목에서는 역전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100년 빼고 일본이 아시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적은 없다. 지금도 미국이 아시아에서 주도권을 유지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일본의 중요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아시아에서 중국을 잊고 산 적은 없지만, 일본을 잊고 살은 적은 많다. 한반도에서 일본을 잊고 산 적은 많지만, 역시 일본에서 한반도를 잊은 적은 없다.
한국의 근세사는 잘못 풀린 시점이었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어쩔 수없이 일본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일본에 대하여 갖는 관심을 줄여도 될 때가 되었다.
경제적으로도 일본은 외국에 대하여 자신들을 개방한 적이 없는 나라이다. 명치유신도 그들이 적극적으로 개방한 것이 아니라 서구 열강의 강압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한 것이고, 정작 자신들의 속한 아시아에는 개방하지 않았다.
그러한 속성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자기네 시장은 닫아놓고, 열려있는 남의 시장에 이익을 챙기기에 열중하였다. 그들이 유일하게 문을 연 나라는 미국뿐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뻔히 잘 팔리는 한국의 자동차, 한국의 가전 전자제품이나 스마트 폰이 유독 일본에서 팔리지 않는 것은 그러한 폐쇄성 때문이다. 그런 성향은 한국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폐쇄성으로 인하여 일본을 아시아와는 다른 문화권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는 새뮤얼 헌팅턴은 그의 저서 '문명의 충돌'에서 유교권의 동양문명과 일본문명으로 완전히 다른 문명체로 보기도 하였다.
문화를 정신적인 삶의 방식으로 보고, 문명을 물질적인 방식으로 본다면 일본의 문화와 문명은 분명히 한반도에서 건너갔지만 이제는 확연히 다르다. 일본이 아시아적 문명이나 문화가 아니라고 인정될 정도로 서로 간에 다름을 전제로 본다면 한국과 일본은 충분히 갈등하였다.
그러한 갈등을 경제적 규모가 서로 간에 동등한 영향을 미칠 정도로 된 현 시점에서 일본과의 무역 관계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 대일 경제에서의 자신감 회복과 수출 면에서는 노력대비 성과가 적은 일본시장보다는 한국 제품에 대하여 훨씬 우호적인 일본 이외의 나라들에 투자하는 것이 낫다.
일본 경제에 대한 자신감 회복
한일교역에서 대일무역적자는 이전에는 매우 큰 문제였다.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이래로 50년 동안 대일 무역적자가 우리 돈으로 576조원 (5164억 달러)라는 통계가 있다. 그 대부분이 부품과 소재기술이다.
일본에서 원천 기술 제품을 들여와 한국에서 다른 제품들과 노동력을 더하여 수출하는 시스템이었다. 그건 지난 50년간 단 한해도 일본에 대하여 무역흑자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더욱 가슴이 아플 수도 있다. 그래서 한국을 일본의 낚시에 이용되는 새에 비유하여 '가마우지'신세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 신세를 벗어나기 위하여 한국에서 노력도 많이 하였고 이제는 일본의 소재 및 부품의 수입이 많이 줄어들었다. 많이 개선되었다는 말이다. 대일 무역적자는 국교정상화 첫 해인 1965년 1억 달러를 기록한 이래로 2010년 361억 달러를 수입하여 최대의 무역적자를 기록하였지만, 이후로 꾸준히 줄어 2014년에는 216억 달러까지 하락하였다.
품목별로는 적자품목이었던 무선통신기기가 3억7000만 달러, 자동차부품이 2000만 달러 등 흑자로 전환했고 이외 많은 폼목들의 적자 폭이 줄어들었다. 이처럼 주요 적자품목이 흑자로 전환하고, 적자 품목의 수와 금액이 줄어든 것은 우리 기술력이 좋아지고 수입선을 다변화하려는 노력이 결실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주요 대일 수입 품목이었던 전자제품들인 컴퓨터, 음향기기 등의 수입이 대폭 줄어들고, 우리가 비약적 발전을 이루어낸 ICT 산업분야에서 고기술산업의 대일 수입 비중이 이전에 비해 축소했다. 언제나 두통거리였던 소재·부품의 일본에서의 수입이 크게 하락하여, 이제는 일본의 비중이 1994년 34.9%에서 2014년 18.1%로 줄었다. 대신에 중국에서의 소재부품 수입이 같은 기간 동안 5.2%에서 28.9%로 늘었다.
아직도 대일적자가 적지 않다고 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자존심을 구길 정도는 아니다. 혹자는 일본이 한국의 경제를 지배하거나 나쁜 영향을 미치기 위하여 대한국 부품수출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 하기도 어렵지만, 그렇게 하면 일본의 기업체들이 더 나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완제품 업체는 부품업체를 다른 업체로 대체하거나 스스로 개발할 수 있지만, 부품업체는 완제품 업체를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가 일본에서 수입하는 부품이나 소재 중에서 정말 한국에서 기술이 없어 수입할 수밖에 없는 제품의 비중이 얼마나 되는 지도 따져봐야 할 문제이다.
많은 품목은 시장이 협소하여 한국에서 개발하느니 차라리 수입하여 사용하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일 수도 있는 경우도 많다. 그들이 완제품 시장에서 더 이상 강세를 보이지 않는 것은 시장 주도력을 완전히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부품이란 완제품 생산자가 바꾸고자 하면 대부분의 경우 대체가 가능하다.
우리가 일본 부품을 사기 때문에 여전히 경제적으로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이야기다. 일본도 독일에 대하여는 기술수입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일본의 대독일 무역수지는 적자이다. 실제로 전 세계 히든 챔피언 기업의 절반은 독일에 있다.
우리도 이제는 필요하면 수입하여 이의 부가가치를 높여 다른 나라에 팔면 된다는 여유를 가져도 될 때가 된 것이다. 전체적인 수출입의 결과는 2015년 6월 현재 한국이 462억 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보고 있는 반면에 일본은 1조 7299억엔 (약 17.5억 달러)의 적자를 보고 있다.
무역운영 면에서 한국과 일본의 상황은 이제 역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462억불의 흑자 가운데서 대일본 적자가 100억불이나 되는 것은 여전히 개선할 점이 많다는 점은 충분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가져왔던 부품소재에 대한 부족감에서 벗어나 일본에서 배워야 할 것은 왜 일본이 완제품 시장에서 철수당하고, 부품 하청국가로 전락했는지 이다. 이전에는 일본에게 어떤 길을 가야하는 지를 배웠다면, 이제는 일본이 간 길을 어떻게 하면 가지 않을 지를 공부해야 한다.
수출도 일본보다 다른 지역을
“오는 3월부터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됨에 따라 정부는 한·일 FTA를 제치고 3자간 협상에 우선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6일 “일본 정부는 법과 제도 측면의 비관세장벽이 없고 전적으로 민간의 일이라 정부와는 관련 없다는 입장이어서 쉽게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면서 “한·일 FTA를 뒤로 미루고 한·중·일을 우선 추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비관세장벽은 법이나 정부 차원의 제도에서 비롯된 것보다는 민간 차원의 오래된 관행에 따른 비제도적 장벽이 크다. 특히 폐쇄적인 유통구조와 외국 기업의 진입을 가로막는 비즈니스 관행이 대일 수출 확대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히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일본 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제조사와 유통망 간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일본의 높은 비관세장벽 탓으로 알려져 있다. KOTRA 측은 '국제기준과 상이한 식품검역과 기술표준도 자유무역을 가로막는다'고 덧붙였다. ” (파이낸셜 뉴스, 2013.1.6)
일본 시장을 개척하는 사람들이 가장 자주 하는 이야기는 일본 시장을 시작하기도 어렵고, 주문을 받기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제품에 대하여 너무 까다롭다고 한다. 기왕에 판 제품에 대한 제품 보증 관리나 바이어 관리도 번거롭기 이를 데 없다. 또한 일본적 특성을 가진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
세계에서 시장점유율 2위를 다투는 삼성의 스마트 폰, 세계 5위인 현대자동차가 일본 시장에서 철수한 이유는 일본 시장의 페쇄성 때문이다. 그런 단순히 한국과 일본 간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의 어느 제품이던지 일본에 대하여 하는 불만이다.
그런데 겉으로는 공개 자유무역을 추구한다고 한다. 그리고 수입관세가 평균적으로 저렴하고 비과세 품목도 많은 편이다. 그래서 일본인 스스로는 일본 시장이 전혀 폐쇄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무선통신의 표준을 세계에 맞추지 않고 일본만의 표준을 갖추는 것처럼 공식적인 폐쇄성도 있지만, 일본 자체가 지니고 있는 정신적 문화와 물질 문명에 기인한 바가 더 크다.
겉으로 보기에 한국과 일본은 매우 비슷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두 나라처럼 다른 곳도 별로 없다. 일본이 경박단소하고 아기자기 한 것을 좋아하지만, 한국은 중후장대하고 겉과 속이 일치한다. 일본처럼 본 마음(혼네, 本音)과 겉으로 하는 말(다테마에, 建前)이 따로 있지는 않다. 말의 순서와 겉모습만 비슷할 뿐이다.
일본의 주류적인 사상이나 종교를 말하라고 하면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한국처럼 유교문화라고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불교도 아니다. 한국과 일본의 정신문화와 물질문명은 비슷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매우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팔리는 물건을 그대로 미국이나 유럽 등에 팔 수 있어도 일본에 팔리기는 어렵다.
자동차도 한국과 일본의 핸들의 위치가 다르다. 한국에서는 고양이가 들어간 제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잘 팔린다. 일본의 책들은 손에 쥐기 편한 대신 글자가 작아 읽기 어렵고, 한국의 책은 부피가 크지만 읽기가 편하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의 미적 기준, 실용적 기준이 다르다.
일본보다는 한국이 세계적인 표준에 더 가깝다. 한국에서 잘 팔리면 세계 시장에서 그대로 팔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 차이는 매우 크다. 예를 들면 자동차를 일본에 수출하려면 핸들의 위치를 바꾸어야 하고, 그에 맞는 부품들을 새로 개발해야 한다.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일본용 플라스틱 컵을 만들려면 그에 맞는 금형을 만들어야 하는 등 일본에 수출하기 위한 추가적 비용을 들여야 한다. 설사 이러한 비용을 감내하고라도 일본 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려면 또 다시 유통시장의 장벽을 만나게 된다. 일본 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전 세계의 모든 기업들이 한결같이 하는 불만이 일본의 보이지 않는, 그들의 보이지 않는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장벽이다.
삼성이나 현대가 일본에서 철수한 이유는 노력대비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그들의 실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삼성과 현대가 다른 미국이나 유럽계회사들보다 심한 차별을 받기는 했겠지만, 삼성과 현대만의 문제는 아닌 것은 분명하다. 굳이 배척하는 곳에 힘겹게 들어가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 노력으로 다른 곳에 기분 좋게 들어가는 편이 비용이나 시간을 훨씬 절약하며 수출도 더 늘릴 수 있는 지름길이다. 우리가 팔 물건이 별로 없을 때, 아는 게 그저 일본시장뿐이었을 때는 그게 어려운 지, 노력에 비하여 성과가 제대로 있었는지를 따질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해외 시장에 충분히 팔 시장도 많고, 팔 만한 물건도 충분히 있고, 그럴 만한 해외 마케팅 능력과 경험도 가졌다.
천년이 넘게 갈등하던 독일.프랑스가 EU안에서 갈등을 풀고 협력하는 것처럼 한.중.일이 협력할 방도를 찾아내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정치의 몫이지 경제의 몫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