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션 |
|
가입하고 눈팅만하다가 글씁니다.
긴글이라 많이 읽혀질지 모르지만, 한국 해방때 헤어진 외할머니의 일본인 친구를 찾아요.
조금 시간을내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시고, 행복하세요.
도쿠야마 교코 할머니께.
안녕하세요. 교코 할머니, 저는 대한민국 안동에 사는 김한나라고 합니다.
제가 이렇게 국적도 다르고 서로 일면식도 없는 교코 할머니께 편지를 쓰는 이유는, 교코 할머니와 저희 외할머니와의 인연 때문입니다.
저희 할머니의 성함은 김수일이며, 올해로 87세가 되십니다. 올해 초 대퇴골을 다치셔서 뼈를 잇는 치료를 하시고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하면서 지내세요. 저는 할머니의 외손녀로서 주말마다 병문안을 가서 산책을 함께하고 수다를 떨곤 합니다. 그러던 중에 교코 할머니와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한국이 해방되기 전 할머니 앞집에는 교코라는 동갑내기 여자아이가 살았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나이가 같았고, 마을에는 같은 학년이 둘밖에 없어서 통학을 함께 했다고 해요. 저의 할머니는 7남매로 부모님과 함께 살았고, 교코 할머니는 외동딸로 부모님과 세 가족이 함께 살았다고 해요. 일본에 다른 식구가 더 있는지는 모르신다고 하셨어요.
둘이 다니던 학교 이름은 용두들초등학교 였대요. 두 분이 함께 살던 동네는 경상북도 봉화군 제산면 도산리 였고요. 교코 할머니는 동네에서 9살부터 14살까지 지내셨어요. 할머니가 14살이 되던 해 한국이 해방됐고, 일본사람들은 모두 일본으로 돌아갔지요. 그때 교코 할머니와 헤어지게 되셨대요. 집 마당에서 교코~ 라고 부르면 교코 할머니가 나와서 함께 등교를 하거나 했는데, 그러던 어느 날 교코 할머니는 불러도 나오지 않았데요. 모든 문이 다 열려있고, 사람은 없었다고 해요. 교코 할머니께서는 밤길을 해치고 일본으로 돌아가셨겠지요. 그 이야기를 하시면서 어두운 길을 밤새 걸었을 교코할머니를 걱정하셨어요. 1945년 여름이었어요. 8월 15일 해방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으로 가셨겠지요. 교쿄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짜는 기억하지 못하셨어요.
그렇게 두 친구가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외할머니께 편지가 한 통 왔대요. 교코 할머니께서 안부를 전하는 편지였어요. 나는 잘 있다고 너는 잘 있느냐고 묻는 편지였다고 해요. 봉투에 일본어를 쓰면 전달되지 않을 테니, 주소를 한글로 써서 저희 할머니께 붙였데요. 할머니께서는 답장을 마찬가지로 일본어로 쓰셨어요. 그 후로는 세상을 사느라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소홀해졌겠지요.
교코할머니 이야기를 하시고는 한 번쯤은 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지금 할머니는 거동이 힘들어요. 교코할머니도 연세가 있으셔서 마찬가지겠지요. 저는 두 분이 예전처럼 편지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답하는 사이가 되었으면 해요. 세상이 발전해서 영상통화를 할 수도 있고요. 서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서로의 사진을 보내줄 수도 있겠지요.
교코 할머니, 김수일 할머니가 기억나시고 그립다면 편지한 통 써주세요. 할머니에 남은 인생에 다시 한번 친구로 찾아와 주세요. 제게 메일을 보내주시면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교코할머니의 자녀분들 도움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한국에서 김한나 드림.
トクヤマ・キョウコさんへ。
こんにちは。キョウコおばあさん。
私は韓国のアンドンに住んでいるキム・ハンナと申します。
私がこのように国籍も違ってお互い一面識もないキョウコおばあさんに手紙を書くことになったのは、キョウコおばあさんと私のおばあちゃんとの絆のためです。
私のおばあちゃんのお名前は金スイルであり、今年で87歳となります。
年初に大腿骨を痛めてしまい、骨をつなぐため病院でリハビリ治療をしています。私は毎週末見舞いに行き、散歩やおしゃべりでおばあちゃんとの時間を過ごしています。おばあちゃんとのおしゃべり中、キョウコおばあさんのお話を聞くことになりました。
韓国がまだ日本の植民地だった頃、おばあちゃんの家の向こう側に「キョウコ」という同い年の女の子が住んでいたそうです。
年と学年が一緒だったのは二人しかなかったので、通学を一緒にしたそうです。私のおばあちゃんは7兄妹で両親と一緒に暮らしていて、キョウコさんは一人娘で両親と3人で暮らしていたとおばあちゃんは覚えています。日本に他の家族がいるかは覚えていないそうです。
お二人が通っていた学校の名前はヨンドゥドル小学校だったそうです。
住んでいた町は,慶尚北道・奉化郡・堤山面・島山里(キョンサンプクド・ポンファグン・チェサンミョン・トサンリ)でした。キョウコさんは9歳から14歳の間あそこで暮らしました。おばあちゃんが14歳の頃、韓国は独立し、日本人たちは皆日本に帰ることになり、あの時おばあちゃんとキョウコさんはお別れを迎えることになりました。庭で"キョウコ~"と呼べばキョウコおばあちゃんが出てきて一緒に登校したりしてたけど、ある日キョウコおばあさんは呼んでも出てこなかったのです。 すべてのドアが開いていて、人はいなかったそうです。キョウコおばあさんは夜道を切り抜けて日本に帰ったことでしょう。その話をしながら、おばあちゃんは暗い道を一晩中歩いただろうとキョウコおばあさんを心配しました。それは1945年の夏、8月15日の独立日の後まもなくのことでした。正確な日にちは覚えていませんでした。
そんなお別れの後、幾らもしないうちにおばあちゃんに手紙が届いたそうです。それはキョウコおばあさんからでした。私は元気だと、あなたは元気ですかとの内容だったそうです。封筒に日本語を書けば届けて貰えないだろうから、住所をハングルで書いておばあちゃんに送ったそうです。おばあちゃんは日本語で返事をしました。その後は、日々生きることに手一杯で、手紙は段々書かなくなったそうです。
おばあちゃんはキョウコおばあさんにまた会ってみたいと言いました。
彼女は今体を自由に動かすことが出来ません。キョウコおばあさんの方はいかがなのでしょうか。私はお二人が以前のように手紙でお便りし合えるようになって欲しいです。世の中発展しててビデオ通話もできますし、お互いにどうやって生きてきたのか写真をメールやメッセンジャーで送ることもできます。
キョウコおばあさん。金スイルに覚えがあり、懐かしく思うのであれば、是非是非ご連絡ください。おばあちゃんの残りの人生に、もう一度友達として訪ねてください。私にメールを送ってくだされば、おばあちゃんとの連絡先を送ります。
キョウコおばあさんのご家族や知り合いの方々にも、どうぞよろしくお願い致します。
読んで頂いてどうも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韓国でキム・ハンナより。
출처 |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64515606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