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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백일장]사구
게시물ID : readers_147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달러멘디
추천 : 7
조회수 : 389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4/08/13 11: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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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게짱짱!!!
 
저도 어디가서 책 많이 읽었다는 소리는 못하지만, 적어도 책 읽어서 손해 볼 것 없듯이, 책게를 자주 방문하시면 유용한 정보와 감성을 충전 할 수 있으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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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남성이란 남성성이 굉장히 중요시된다. 남자 둘이서 영화관을 가도, 손을 잡고 화장실을 같이 가더라도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것이다.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지만 주변의 눈치와, 왠지 모를 수치심에 차마 하지 못하는 행동들의 제약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내 친구들은 조금 병..아니 특이한 성격들이라 이런 주변의 눈치에 당당했다.수치심 제거 수술이라도 뽐뿌했는지 덩치끼리 모여앉아 팥빙수를 깨작대고 있는 모습은 참 가관이리라 생각되지만, 내가 그 중 한명이 된다면 조금 생각이 달라진다. 두 명일때도 쪽팔림이 엄습해오는데, 하물며 네 명이면 그 쪽팔림은 제곱에 비례하여 올라간다.
 
자신에게 아직 열두조각의 팥앙금이 남아있다는 친구들을 억지로 끌고 나와 결국 그렇게 다시 향한 곳은 술집이다. 이 곳은 남자 기백명이 손을 잡고 들어온다 해도 거리낄 것이 없는 자유로운 공간이다. 이제서야 내 맘이 조금 편해짐을 느꼇다. 다들 그렇게 고기를 굽기 시작했고, 팥빙수를 술술 마시듯 섭취하던 버릇이 남아있었는지 고기를 섭취, 아니 이건 흡입에 가까웠다. 세상에는 고기를 굽는 사람과 고기를 먹는 사람 두 부류로 나뉜다지만 그 나 혼자 고기를 굽고, 나머지가 빨아들이기 시작하니 감당이 되지 않는다. 단체로 입에 풍혈이라도 달렸는지 뒤집는 고기가 족족 사라지기 시작했다. 홧김에 독충을 주문하고 싶었건만 아쉽게도 고깃집 주인은 나락이 아니었다.
 
조금 이른 시간부터 벌써부터 얼큰하게 취했다. 실은 한 친구가 얼마 전 여자친구와 헤어져서 그 위로차 만났건만, 전에 없게 분위기는 흥겨웠다. 매일같이 깨소금을 뽑아내던 커플이었기에 그 상실감은 크겠지만, 우리로서는 깨소금에 파묻혀 죽어버려라 라는 생각을 가질 만큼 눈꼴시었기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고 격양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여덟시가 채 안됀 시간 2차를 가기 위해 자리를 나섰다. 다시 술을 마시기 전에 먼저 술을 깰 방안을 모색했다. PC방, 노래방 등의 후보가 거론되었지만 전부 기각되었다. 한 명은 게임자체를 하지 않았고, 얼마전 헤어진 녀석 때문에 노래방이 초상집 분위기가 될 것 같은 이유였다. 사격장 또한 거론되었지만 사격장 아르바이트 1년 경력의 다크호스가 있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기각되었고, 오락실, 플스방 등등 전부 누군가 한명의 경력이 문제시되었다. 우리가 언제부터 저런 물건과 기기에 몸을 맡겼더냐, 함께 있는 것 만으로도 즐겁지 않았느냐 하면서 번화가 한 복판에 누워버리던 친구를 억지로 이끌고 다니던 도중, 문득 눈에 띈 것이 당구장이었다.
30에 가까운 나이들이 전부 당구를 쳐 본 적이 없었다. 개중 한 명은 포켓볼만 몇 번 쳐 보았을 뿐, 사구에 대해선 문외한이었다. 결국 우리는 무엇에 홀린 듯 외진 곳의 허름한 당구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게 안은 조용했다. 평일 저녁시간대여서 그랬을까. 카운터에는 노인 한 분만 계실 뿐이었다. 커다란 돋보기 안경 너머로 우리의 병신력을 체크하는 듯 했다. "호오...병신력이 올라가는군요?" 라고 발산하는 그 노인분의 포스에 나도 모르게 프리더님이라고 외칠 뻔 했으나, 곧바로 돌진하는 친구 두 놈 덕분에 현실로 돌아왔다.
 
"당구요!"
 
어 그래 당구.
 
노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당구대에 공을 가져다 주었다. 이 위에 놓여진 네개의 공. 이를 사구라 칭하는 것을 안 것은 한참 뒤에 일이다.
 
우리는 이 공을 보며 한참을 고민했다. 각자 어디서 본 건 있어서 당구 큐대를 점검하고, 쵸크질을 하면서도 우리의 물음은 같았다.
'이 공들은 대체 무엇인가?'
어렸을 적 패미콤에서 하던 당구게임이나 포켓볼의 경험을 토대로 보자면, 분명 이 큣대로 공을 쳐야 한다. 근데 어디로 쳐야 하는 것에 대한 물음이 나오지 않았다. 공을 넣어야 할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축구, 농구 전부 어딘가의 골을 넣어야 하며, 배구나 야구는 어디로든 쳐 내야 한다. 분명 이 당구대 바깥으로 공을 쳐 내는 용도는 아닐진데...
 
우리의 모든 당구지식을 동원해도 도저히 유추할 수 가 없었다. 흰 공 하나, 노란 공 하나, 빨간 공 두개가 사람을 이렇게도 고뇌에 빠져들게 한 단 말인가.
 
게다가 모두가 눈치채고 있었다. 먼저 이 의문을 입 밖으로 표현하는 자는 패배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쓴다. 당구의 당자도 모르는 당신이라며 향후 10년간 놀림받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각자 별명들을 서너가지 가지고 있고, 그 놀림거리 중 분명 한가지가 새로 추가 될 것이다. 이는 이 하이에나들에게 충분한 먹잇감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실제로 난 마이클 잭슨이라는 별명을 20년째 유지중이다.
 
그리고 저 뒤에 주판 닮은 것은 무엇인가. 나의 명철한 두뇌로 저것은 점수를 매기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지만, 점수를 매기는 방법을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마침 공이 네 개인 지라 우리 모두 공 하나씩을 자기 앞에 가져다 놓았다. 자신의 공으로 다른 사람의 공을 많이 쳐내는 만큼 점수를 매기기를 30분 째.
 
 
더럽게 재미가 없었다.
 
게다가 빨간 공의 주인 둘이 서로 자신의 공이라며 시비가 붙었다.
십수년 전 일대를 주름잡던 당구문화의 몰락인가. 그 때 오락거리가 이리도 부실했던가 하는 물음이 있었지만, 누가 봐도 이 방법은 아니었다.
 
그러던 중 친구 한 명이 핸드폰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동작그만 검색이냐?"
"뭐야?"
"니 당구 치는 법을 네이버 지식인에 검색해봤지.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이 새끼야?"
"증거 있어?"
"증거? 증거 있지. 넌 우리한테 이 커피를 타다 줬을 것이여. 그리고 이...이 스마트폰 이거 네이버 지식인 아녀?"
"잭슨이! 그폰 봐바. 혹시 네이버야?"
"폰건들지마! 손모가지 날라가붕게"
.
.
.
"자 확인들어가겠습니다...쿵짜라작짝"
"???"
"카톡이네? 카톡이여?"
 
결국 그 친구는 카톡아귀라는 새로운 별명과 손모가지를 큣대로 쪼이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다시 우리의 당구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당구는 안중에도 없었다.
 
 
당구공으로 탑을 쌓으려는 친구 한 놈은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며! 스피노자 개X끼야!"
뭐라는거야 이 병신은
 
그리고 얼마 전 헤어진 친구녀석은 공을 집어들더니 전여친 피부같다면서 오열하고 있었다.
빨간공이야 병신아.
관우 운장이랑 사귀었냐
 
한 녀석은 자기가 계산한다며 호기롭게 카운터로 간 후 소식이 없다.
미친놈아 어디갔어....
네시간이나 있었으니 좀 비싸긴 했겠다만
 
나?
나는 이 모든 것을 영상으로 남겨두었다. 명목상 우리의 추억을 남기자는 것이지만.
이 영상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한 향후 술값은 걱정이 없을 것이다.
 
당당하게 친구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부끄러운 병신들인것은 어쩔 수 없는 우리는 훌륭한 병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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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이런 병신들이어도, 아직 세월호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웃고 떠들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럽게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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