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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의 블랙코미디–
“리나야. 반에 좋아하는 친구 없어?”
“없어. 난 방판 오빠들이랑 결혼할 거니까.”
“그전까지 아무도 안 만나려고?”
“응, 방판 오빠들과 결혼하려면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해. 그러려면 공부를 잘해야 하니까 연애할 시간 없어.”
리나는 오랜 단짝 친구이다. 공부도 잘하고, 날씬하고, 자신감 넘치는, 누가 봐도 참 예쁜 이른바 엄친딸이다. 같이 있으면 내가 못나 보일까 걱정 되지만, 그래도 리나가 좋다.
“방판 오빠들 중에서 누가 제일 좋은데?”
“글쎄, 난 다 좋은데?”
“너 좀 이상해. 여러 명 좋아하는 애는 처음 봐.”
“한 명만 좋아하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야?”
“방판이 뭐가 좋다고 그래. 난 마도가 제~일 좋더라!”
“방판이 더 제~~~일 좋거든!”
리나가 방판소년들을 말할 때마다, 나는 마도 이야기를 했다. 마도를 만나기 전까지는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1학년 때 마도를 처음 봤을 때였다. 마도의 눈웃음에 주변이 빛났고, 이후 내 머릿속에는 마도 밖에 없었다. 인연은 따로 있다고 하지 않나? 3년간 같은 반인 것을 보면 인연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다른 남자애들과는 편하게 말하는데, 마도 앞에만 가면 가슴이 ‘쿵쾅’거리고 얼굴에 뜨거워져서 말을 할 수 없었다. 다만 마도 주변을 맴돌며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마도는 어떤 여자가 이상형인데?”
“글쎄, 나만 바라보는 여자? 통통하면 더 좋고.”
마도가 한마디 하면, 머릿속에서 맴돌아서 잊혀지지 않는다. 일편단심에 통통녀면 딱 나잖아! 이 정도로 주변에 이야기 하고 다녔는데, 마도도 알고 있는 거 아니야? 그런데 하루는 친구들이랑 같이 있을 때 마도가 먼저 말을 걸었다.
“지현아, 편지.”
“응?”
진짜? 역시 마도도 나를 좋아하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편지만 주고 ‘응?’에 대답도 없이 가버렸다. 내 말에 실망한 것일까? ‘응?’이 뭐야 촌스럽게. 어쩌면 마도도 편지로 고백하는 것이 부끄러웠나 봐.
“뭐야. 뭐야. 빨리 뜯어봐!”
“그렇게 마도 좋아하더니, 드디어 빛 보는구나?”
“기다려. 여기 말고 화장실로 가자.”
친한 친구들을 10명 모았다. 자랑하고 싶었고, 이 기쁨을 함께 하고 싶었다. 봉투가 상하지 않게 살살 뜯으니, 왠걸. 봉투가 하나 더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노란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이 편지를 리나에게 전해줘.’
나에게 보낸 편지가 아니라, 단짝 친구 리나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혼자 조용히 봤으면 쪽팔리지나 않지. 차마 친구들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어떡해.”
“뭐 이런 애가 다 있어?”
겉으로는 위로하는 척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나대더니 꼴 좋다’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터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어서 뛰쳐나갔다. 교실에 있는 가방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 시간에 집에 가면 혼나니까 근처 노떼리아로 갔다.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아무도 없는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두시간 동안 펑펑 울었다. 평생 흘릴 눈물을 다 쏟은 것 같다.
다행인 건, 그날 리나가 학교에 오지 않았기에, 당장 편지를 줄 필요는 없었다. ‘당장 줄 필요가 없다고? 그러면 내가 살짝 읽어보고 다시 붙이면 되잖아.’ 편지를 티나지 않게 살살 뜯어서 편지지를 펼쳤다.
#리나야.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금요일 수업 끝나고 노떼리아로 올래? 6시까지 기다릴께.
보아하니 그냥 전했다가는 둘이 사귀게 될 것 같다. 리나는 평소 방판 오빠들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우리반 킹카인 마도가 이렇게 나오면 안 봐도 뻔하다. 난 마도와 손 한번 못 잡아 보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것이다. 손을 잡는다니 너무 부끄럽잖아. 어쩔 수 없다. 편지의 내용을 조금만 손봐야겠어.
#리나야. 너 입에서 꼬랑내 나. 양치질 좀 하고 다녀.
다음날 그 편지를 리나에게 전했다. 그런데 리나는 편지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마도에게 가서 손을 올렸다.
“아!”
고통의 외침과 함께 마도의 뺨은 붉게 달아 올랐다. 엄청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 다음 말이 압권이었다.
“노…노떼리아 싫어해?”
“풉”
속으로는 빵 터졌지만, 차마 웃지는 못했다. 상황이 이렇게 안 좋게 될 줄은 몰랐다. 이게 그렇게까지 화낼 일인가? 리나는 자리에 돌아가 엎드렸다. 흐느껴 울었다.
“리나야. 편지에 안 좋은 말 있었어?”
“응.”
“무슨 말이길래?”
“아니야. 혼자있고 싶어.”
죄책감이 들었지만, 모르는 척해야 사랑도 우정도 지킬 수 있다. 위로가 될까 싶어 말했다.
“내가 왜 마도 같은 애를 좋아했나 모르겠어.”
“괜찮아. 마도한테 너무 뭐라고 하지 마.”
“알았어.”
왜 마도를 감싸지? 사실은 아직도 마도가 좋다. 절대 리나에게 빼앗길 수는 없다.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그만 내 자리로 가려고 하는데, 리나가 말을 이어갔다.
“나보고 입에서 꼬랑내 난대.”
“미친거 아니야?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땡땡땡~
“이따가 또 이야기 하자”
수업이 시작돼서 자리로 돌아갔다. 미안한 마음에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하교 길에 리나에게 말했다.
“리나야. 노떼리아 가서 아이스크림 먹을래? 내가 살게.”
“아냐. 오늘은 공부 좀 하다가 가려고.”
“그럼 나도 같이 공부할래.”
“미안하지만, 혼자 있고 싶어.”
“아, 알겠어. 그럼 먼저 집에 갈게.”
교문 밖을 나왔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교실에 놓고 온 숙제 노트가 생각나서 교실로 향했다. 도착할 즈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내가 그런 게 아니라니까.”
리나랑 마도구나. 리나랑…마도라고?
“3년이나 사귀었으면서 남자친구 글씨도 몰라?”
“그러는 너는 여기저기 눈웃음치는 거 모를 줄 알고? 그러니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잖아!”
둘이 그런 사이였어? 나 몰래? 그것도 3년동안? 마도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보다 리나가 3년간 날 속여 왔다는 것이 더 충격이었다.
“넌 나랑 사귀는 것도 알리지 않잖아.”
“말하면 지현이가 싫어하니까 못 하는거지.”
“지현이가 중요해, 내가 중요해?”
“물론… 너지.”
“사랑해.”
“나도, 자기야.”
열심히 싸우다가 갑자기 화해하는 분위기로 바뀌더니 서로 껴안고 빨고 난리도 아니었다. 신성한교실에서 별꼴도 이런 별꼴이라니. 재수없다. 마도가 통통하고 일편단심인 사람이 좋다는 말은 순전히 거짓말이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마르고 변덕이 심한 지현이를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집에 돌아왔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입맛도 없고, 잠도 안 왔다. 세상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더니. 억울함과 분노는 복수심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예쁜애가 좋다면 나도 달라질 것이다. 보란 듯이 달라져서 마도를 꼬시고, 받은 상처만큼 돌려줄 것이다.
성형외과에 가서 견적을 뽑았다. 저렴하게 뽑았지만 쌍커풀과 앞트임에 200만원, 턱깎는 안면윤곽술에 500만원, 물방울 가슴성형 700만원. 총 1400만원이 들었다. 대학갈 때 쓰려고 어릴 때부터 모은돈 1000만원이 있지만 400만원이 부족하다.
“엄마, 나 수술하려고요.”
“무슨 수술?”
“성형수술이여. 이대로는 살고 싶지 않아요.”
“학생이 무슨 성형이니?”
“평생 엄마한테 부탁한 적 없잖아요.”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라!”
이후에도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계속 안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밥도 안 먹고, 학교도 가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을 버티자 안되겠다 싶으셨는지 성형을 허락하셨다.
“하려면 해라. 대신에 돈 안 줄 거니까. 알아서 해.”
여름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루에 두 탕을 뛰어 12시간을 일했다. 매일 하루 한끼 컵라면만 먹고 한 달에 번 돈은 360만원. 그리고 아침 저녁으로 2시간씩 홈트레이닝을 했다. 60kg였던 몸을 45kg까지 빼야 한다. 고된 알바 덕분인지, 컵라면 다이어트 덕분인지 한 달만에 10kg나 뺄 수 있었다.
개학 1주일 전 수술대에 올랐다. 마음 속은 울고 있었지만, 수술이 잘못될까 봐 울 수 없었다. 슬픔을 잊기 위해 마도에게 복수할 날 만을 생각하려고 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개학 때까지 붓기가 가라앉지 않아서 일주일간 학교에 가지 않았다. 학교에 가지 않는 동안에도 꾸준히 홈트레이닝을 하고, 몸매가 드러날 수 있도록 교복을 짧게 줄였다.
그리고 학교에 갔다.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남자들의 관심, 여자들의 시샘.
“지현이 아니니? 많이 예뻐졌다!”
리나였다. 얘는 양심이 있는 건지. 아직 둘이 사귀는 사실을 내가 모른다고 생각할 것이다.
“응. 오랜만이네.”
“연락이 없어서 어디 아픈 줄 알았어.”
“방학 동안 바빴어.”
“그거 알아? 옆반에 방판 오빠랑 똑같이 생긴 애가 전학 왔어.”
전학온 아이는 외국에서 살다 온 대니얼 킴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모든 여자아이들이 대니얼 킴을 보러 나갔다.
“대니얼 킴도 참 피곤하겠다. 리나는 안 가?”
“응. 괜찮아.”
“방판 오빠 좋아한다면서 왜?”
“글쎄.”
그 비밀은 하교 때 알 수 있었다. 하교 때 교문 앞에서 대니얼 킴에게 선물을 주려는 타학교 여학생들을 리나가 가로막았다.
“자기야. 빨리 가자.”
“응.”
리나는 팔짱을 끼고 대니얼 킴과 걸어갔다. 마도랑은 헤어진 것 같았다. 복수를 할 수 없어서 아쉬워야 하는데, 왠지 기뻤다. 이제 마도가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후 수능 준비, 취직 준비 때문에 다들 많이 바빴다. 마도는 학교를 나오지 않는 날이 많아서 친해지기 어려웠다.
고3 졸업 여행이었다. 서울에서 가까운 섬을 찾다가 ‘석모도’로 정했다. 아이들은 몰래 소주를 사서 가방에 챙겼다. 버스에 탔는데, 타자마자 선생님이 나타났다.
“소지품 검사다. 모두 가방 열어라.”
“아… 선생님!”
여기저기서 원성이 터졌다.
“고맙다. 이 술은 선생님들이 잘 마시도록 할께. 석모도의 슈퍼에도 다 얘기해 놨으니 절대 술은 구할 수 없을 거야.”
갖고 있던 술을 모두 빼앗겼다. 술 마시러 가는 건데 술을 빼앗기다니.
석모도는 아름다운 섬이었지만 딱히 할 것은 없었다. 보문사에 갔다가, ATV를 타고, 미네랄 온천에 몸을 담궜다. 저녁 식사 후에 밤이 됐지만, 남학생들 펜션과 여학생들 펜션이 달라서 같이 놀 수도 없었다. 12시가 넘어 모두 잠들었을 무렵, 리나가 나를 깨웠다.
“지현아. 가자. 남자애들이 널 꼭 데리고 오래.”
지현이를 따라가니 남자 숙소에서 술판이 벌어졌다. 좀 논다는 아이들은 다 모여 있었다. 물론, 마도도 있었다.
“술은 어떻게 가져 온거야?”
“졸업여행 하기 전에 선배들한테 물어 봤지. 버스에서 소지품 검사를 한다길래 버스 타자마자 의자 밑에 소주를 넣어 놨다가 내릴 때 다시 갖고 내렸어.”
난 처음 마시는 것이었지만, 다들 많이 마셔 본 것 같았다. 처음 해본 술게임이라 나만 계속 마시는 것 같았다. 소주 한 병가량 마셨을 때 더 이상 못 마실 것 같았다. 흑기사를 요청했는데, 마도가 대신 마셔줬다. 이후에 속이 좋지 않아 밖에 나왔다. 앉아서 끙끙대고 있을 때, 등에서 토닥이는 손길이 느껴졌다.
“괜찮니?”
마도였다.
“응, 이제는.”
“조금 걸으면 낫지 않을까?”
“그래.”
해변을 따라서 걷는데 마도가 물었다.
“춥지?”
“응.”
마도가 팔로 어깨를 끌어 안았다. 마도한테는 이런 향기가 나는구나. 싫지 않았다. 마치 사귀는 기분이었다.
“너 많이 좋아했었어.”
“응.”
이번엔 제대로 대답하고 싶었다.
“나도 그랬어. 왜 얘기 안 했어?”
“고백했다가 거절당할까 봐.”
화답하는 뜻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10분쯤 걸었을까. 늦은 시간에 불이 켜진 건물 앞에서 마도가 멈췄다.
“추운데, 우리 조금만 쉬다 갈까?”
대답하지 못하고 있는데, 마도가 팔을 잡고 들어갔다. 고등학생이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됐지만, 사복을 입어서인지 물어 보지 않았다. 방 키를 받아서 모텔에 들어갔다. 모텔에 들어왔지만 편하지 않았다. 남자랑 단둘이 있어서, 침대에 누울 수도 없었다. 대화가 끊어지고 정적이 흘렀다. 어색했다. 그 때 마도가 허벅지에 손을 올렸다.
“이러면 안돼. 리나랑 사귀는 거 아니야?”
“어떻게 알았어?”
“그런 것 같길래.”
“아니야. 헤어졌어. 오늘부터 우리 1일 하자.”
이러면 안 되는데, 복수해야 되는데. 여기서 돌아가야 마도가 날 더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거부하면 복수할 기회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맞아. 오히려 날 더 좋아하게 만들어 놓고 차야 제대로 복수가 될지도 몰라. 조금만 더 나가도 괜찮을거야. 그 때 마도가 가슴에 손을 뻗었다. 성형한 가슴인 줄 알면 안 되는데.
“아..안돼.”
“괜찮아.”
“난, 처음인데. 하아… 야..야메떼!”
마도는 멈추지 않았다. 많이 해본 것처럼 능숙했다. 사귀는 첫 날, 아프지는 않을지 임신하지는 않을지 두려웠다. 하지만 그런 말로 분위기를 깰 수 없었다.
조금 더 안아 주길 바랐지만, 마도는 볼일을 다 본 듯 옷을 입고 빨리 자리를 떴다. 나도 여자 숙소로 돌아왔다. 씻고 잠을 청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사라졌다. 대신 앞으로도 마도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졸업 여행을 마치고 학교에 돌아왔다. 버스에서 내리고 헤어질 때 마도를 쫓아 갔다. 주변에 친구들이 없을 때 말을 걸었다.
“마도야.”
“왜?”
“어제 있잖아.”
“바쁘니까 다음에 이야기하자.”
마도는 급히 자리를 떴다. 나를 피하는 것 같았다. 어제 내가 별로였을까? 이후에도 마도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마도는 나를 피했다. 도리어 화를 내기도 했다. 그렇게 헤어지자는 말도 없이 헤어졌다. 나는 사랑이라고 믿었지만, 마도에게는 하룻밤의 노리개였을 뿐이다. 상처를 주려다 상처만 받았다. 졸업 여행에서 있었던 일을 지현이에게 알렸다. 지현이는 말이 없었다. 대신 며칠 뒤 노떼리아 앞에서였다.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너 먼저 대니얼 킴이랑 양다리 걸쳤잖아?”
“친구로 만났지 사귀지는 않았어! 뽀뽀한 게 다야!”
“나도 지현이랑 사귄 거 아니야. 술 마시고 실수한 거야!”
“한두 번이 실수지! 예전에도 여러 번 이랬잖아.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마!”
“리나야. 정말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
마도는 무릎을 꿇고 리나에게 매달렸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어머!”
리나는 놀랐다. 웃음을 억지로 참는 듯한 표정이랄까.
“이제, 공개 연애하자.”
상자에는 커플링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다시 별꼴이 시작됐다. 그것도 대로변에서! 저런 쓰레기를 좋다고 따라다녔던 내가 한심했고, 저렇게까지 만나는 저 커플이 불쌍해 보였다. 그 날 이후로 둘과는 인연을 끊었다.
몇 개월 뒤 지현이는 서울의 대학교에 들어갔고, 마도는 재수를 준비했다. 나는 대학교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을 성형수술에 다 썼기에 갈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쉬었다. 대신 평상시 꾸준히 홈트레이닝을 하면서 휴대폰으로 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렸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특히 남자들한테) 용돈으로는 충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오랜만이네.”
“잘 지내? 늦었지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서.”
“무슨 일로?”
“마도랑 사귀었던 거 숨겼잖아.”
“괜찮아. 지난 일인데 뭐.”
“마도랑은 만나고 있어?”
“헤어졌어.”
“왜?”
“마도가 재수 학원에서 다른 애를 만났거든.”
“그럴 줄 몰랐어?”
“아니, 알았지. 하지만 괜찮아. 사실 나도 학교에서 다른 남자 만나고 있었거든.”
“그거 알아? 마도 같은 쓰레기를 사랑한 것은 네가 쓰레기라서 그래.”
“맞아. 하지만 헤어지고 싶었어. 여러 번 얘기했는데, 헤어질 수 없었어. 매일 학교, 학원, 집만 오가며 같은 삶을 살 때, 마도는 한줄기 빛과 같았어. 비록 나를 타락시키는 검은 빛이었지만 말이야. 나도 모르는 사이 검게 물들었어. 마치 술처럼, 담배처럼, 마도를 끊고 싶지만 끊을 수 없었어.”
갑자기 마도에게 당한 일이 떠올랐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세상의 모든 남자는 마도 같다. 여자를 등쳐먹는 기생충 같은 것들이다. 그들을 바꿀, 적어도 그들에게 반격할 것이 세상에 있어야 한다. 상처받은 여자들이 모여 받은대로 돌려주는 것이다. 거울처럼 그들의 행동을 따라해서 그들의 추악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여자들은 남자의 노리개가 아니다. 오히려 남자들을 갖고 놀 것이다.
유튜브에서 번 돈으로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마도와 전쟁이라는 뜻에서 ‘워(war)마도’로 지었다. 워마도에서 남자의 추악한 모습을 이야기했지만 사람들은 관심이 없었다. 더 많은 곳에 알리고 싶지만, 내가 그런 줄 알면 다들 나를 싫어할 것이다. 홈트레이닝 영상으로 돈을 벌기 어렵게 될 것이다. 나 대신 워마도를 홍보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고민하다가, 직접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매일 출퇴근 시간 지하철역 근처 횡단보도에서 기다렸다. 일주일 가량 기다렸을 때, 어떤 여자가 쿵쾅거리며 역에서 나왔다. 눈은 생기가 없는 게 썩은 동태눈 같았고, 인상을 팍 쓴 게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참 좋은 인상이다! 용기를 내 다가갔다.
“저기요. (워마)도를 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