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누군가 팔을 흔들었다. 박형사는 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강도가 세어지자 번쩍 눈을 뜨고 방어 자세를 취했다. 황동팔이었다. 그는 옷을 모두 갖춰 입고 있었다. 밤새 마른 듯 했다. 박형사는 그의 손을 유심히 쳐다봤다. 혹시나 흉기를 들었나 싶어서다. 그러나 그의 손에는 반찬그릇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방 중앙에 펼쳐져 있는 신문지 위에 냄비가 놓여 있었다. 냄새로 보아 라면이 확실했다. 그가 말했다.
“식사하시죠.”
“어떻게 아침을 준비했지?”
박형사는 제 집처럼 행동하는 그가 이상해 물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더 의심스럽다는 듯 물었다.
“이곳을 어떻게 아셨어요?”
“인마 그건 내가 묻고 싶은데.....”
그러자 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나 여사 아지트에요.”
“뭐야 그럼 고순옥이 엄마가 여기서 산단 말이야?”
“원래는 아닌데. 손녀가 불장난하다 태워먹어서 하는 수 없이 여기서 지내고 있죠.”
“그래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걔?”
“네.”
“지금은 어디 있는데?”
박형사는 고순옥의 일기를 통해 그 진상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지만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그러나 대답은 예상대로였다.
“글쎄요? 본적이 없어서....... ”
그리고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했다.
“근데, 제가 박형사님과 왜 같이 있죠?”
박형사는 너무도 기가차서 말했다.
“인마! 그건 네가 도로에 실신한 체 자빠져 있어서 이리 데려온 거야?”
“제가 왜요?”
황동팔은 뜻밖이라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박형사도 어이가 없다는 듯이 황동팔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네가 더 잘 알지.”
그러자 황동팔은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뭔가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이상하다. 서에서 나와 두통이 더 심해져 택시를 잡아 탄 것까지는 생각나는데...... 여긴 왜 왔지...... 그건 그렇고 형님 혹시 날 미행 한 거예요?”
“인마 내가 왜 널 미행해! 난 그저 고순옥의 엄마를 만나 오 사랑이의 생사를 확인하려 온 거야. 그리고 들어오다 도로에 쓰러져 있는 너를 발견하고 비를 피해 이곳에 온 거고.......”
그때서야 황동팔은 뭔가 이해된다는 듯이 말했다.
“그...그래요. 라면 퍼지네요. 빨리 드세요.”
그러나 그는 여전히 의문에 찬 표정이었다. 하지만 박형사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듯이 앞 접시에 라면을 건져 후루룩 먹었다. 황동팔도 머리를 갸웃거리더니 젓가락을 들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라면을 먹었다. 국물과 함께 들이 킨 라면은 출출함과 한속 기를 단번에 씻어 줬다. 박형사는 신문지 귀퉁이를 찢어 대충 입을 훔치고 담배를 빼어 물었다. 황동팔은 소매를 들어 입을 훔치고 호주머니를 뒤적였다. 박형사는 담뱃갑을 꺼내 황동팔에게 건넸다. 황동팔은 고개를 조아리고 한 개피 뽑아 입에 물었다. 그리고 또다시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박형사가 지포 라이터를 꺼내 자신이 먼저 붙이고 황동팔에게 건넸다. 그는 역시 고개를 조아리고 불을 붙였다.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담배연기를 길게 빨아 삼킨 다음 내뱉었다. 한꺼번에 토해진 담배연기는 자욱한 안개처럼 사방으로 퍼졌다. 황동팔이 오른 손으로 담배 연기를 휘저으며 말했다.
“형님, 커피 한잔 올릴까요?”
그러나 박형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게 한가하지 않아...... 그건 그렇고 나 여사는 지금 쯤 어디 있을까?”
황동팔은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어디 있긴요. 펜션 주방 골방에서 퍼 자거나 아니면 좌대 어딘 가에서 뒹굴고 있겠지요.”
그는 아무렇지 않게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말했다. 박형사는 연인관계라던 황동팔의 말이 너무도 한심스러워 물었다.
“서로 그렇고 그런 사이라며?”
“그것보다는 서로가 필요해서죠. 솔직히 말하면 나 여사와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네요.”
“그래..... 졸라 쿨하고만..... 그건 그렇고..... 그 여자 만날 수 있을까?”
“그럼요. 가시죠? 어떻든 나를 구해준 은인이니까 협조해야죠.”
황동팔은 벌떡 일어나 설거지 거리를 챙겨들고 방문을 나섰다. 박형사도 일어나 뒤따랐다.
밖은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했다. 언제 천둥번개를 치며 폭우를 쏟았냐는 듯이 드맑았다. 황동팔은 앞 만보고 걸었다. 그의 발길로 보아 펜션 쪽으로 향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박형사는 황동팔과 보폭을 줄이며 넌지시 물었다.
“지금쯤은 나오지 않았을까?”
황동팔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나왔으면 벌써 집으로 왔겠죠.”
“그럼, 딴 볼일이라도.......”
“아니오. 모르긴 해도 나 여사는 아마도 저수지가 보이는 현관 소파에 앉아 저수지를 바라보고 있을 거예요. 물안개가 그만 이거든요.”
“그래.”
박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저수지 쪽을 쳐다봤다. 그러나 방풍림사이여서 그런지 정확히 보이지 않았다.
현관에 들어서자 카운터를 정리하던 모텔 주인이 쳐다봤다. 습관처럼 숙박여부를 물으려다 그만 두었다. 그건 낯익은 황동팔이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황동팔은 박형사 보다 한발 빨리 주인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나 여사 갔어요?”
주인은 뜸도 드리지 않고 곧 바로 말했다.
“초저녁에 일이 끝나자마자 두통이 심하다며 집으로 갔는데.......”
황동팔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물었다.
“집에 안 왔는데요?”
“그래?! 그럼, 저어기 도로 끝 모퉁이 구멍가게 갔나?”
“거기는 왜요?”
박형사가 나서며 물었다. 그러자 주인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댁은?!”
“아네. 안성서 강력계 박형삽니다.”
“아참, 언젠가 한번 이 양반을 찾으러 왔었지.”
펜션주인은 그제야 생각난 듯 황동팔을 가리키며 말했다. 박형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나 여사가 사고라도 쳤다는 겁니까?”
“아...아닙니다. 지금 돌보고 있는 손녀에 대해서 알아보려고요. 혹시 손녀에 대해서도 아세요.”
“정확한 것은 모르고, 딸아이가 용인에서 가게를 해 대신 봐준다고 하던데요..... 가끔 여기도 데리고 왔어요.”
“그래요?”
“최근에 보신 적 있으세요.”
“아니오. 안 본 게 한참 되었는데요.”
“그래요. 알겠습니다.”
박형사는 고개를 조아리고 창가로 다가갔다. 황동팔이 말처럼 저수지는 장관이었다. 물안개가 피어나 실바람에 하늘거렸다. 박형사는 다시 펜션주인을 보며 물었다.
“엊저녁에 별일 없었나요?”
그 말이 나오자 펜션주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한숨과 함께 말했다.
“난리도 그런 난리가 아니었어요. 날씨가 미쳤는지 천둥번개질도 부족해 얼마나 퍼붓던지....... 전기마저 나가 지하실이 물에 잠겼어요......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양수기를 동원에 물을 퍼내느라고 정신이 없었어요.”
박형사는 진지하게 그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런 일이 자주 있었나요?”
“아니오. 한여름 장마철이라면 몰라도 봄날에 이런 일은 드물어요.”
그는 귀신조화라도 된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러나 박형사는 결코 표정을 놓지 않으며 물었다.
“나 여사가 갈 때도 그랬나요?”
그러자 그는 뭔가 잠시 생각하더니 벽시계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오. 나 여사가 간 시간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그때가 저녁 6시가 좀 지난 시간이었으니까요. 비가 퍼붓는 것은 7시가 지나서 였구요.”
“그럼, 7시 이후에 정전이 되었나요?”
“네.”
“그때 펜션 투숙객은 얼마나 됐나요?”
“다행히 어제는 한명도 없었어요.”
“그렇다면 나 여사가 할 일도 없었겠네요.”
“아네요. 그런 날은 보통 객실 청소를 하죠.”
“그렇다면 그 전날은 요?”
“아네. 남자한 분이 저녁께 왔다가 그 다음날 새벽에 나갔어요.”
순간 박형사의 눈빛이 빛났다. 그건 예삿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박형사는 집요하게 물었다.
“그러니까 어제가 아닌 그제 새벽을 말씀하시는 거죠?”
“네.”
펜션주인은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박형사를 쳐다봤다. 그러나 박형사는 아랑곳없이 질문을 이어갔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이곳에 자주 오는 낚시꾼이었나요?”
“아뇨. 처음 본 사람으로 왠지 슬퍼 보였어요?”
“슬퍼 보이다뇨?”
“글쎄요. 표현이 적당한지 몰라도 왠지 센티하다고 할까? 그는 들어와서부터 한마디도 하지 않고 종이와 볼펜을 달라고 해서 필답을 했어요.”
순간 박형사의 눈빛이 빛났다. 그는 뭔가 확신이 드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질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필답으로요?”
“네.”
“그럼 농아라도?”
펜션주인은 뭔가 깊이 생각하더니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그런 것 같지는 않았어요.”
“그래요. 나이는?”
“수염을 길러서 그런지 몰라도...... 사십대 초반쯤으로 보였어요.”
“짐은?”
“컴퓨터 전용 가방 같은 걸 달랑 메고 왔어요. 그래서 나는 글 쓰러 온 사람인가 했죠. 우리 펜션에 작가들이 찾아와 종종 묵고가곤 했으니까요.”
박형사는 작가라는 소리에 약간 풀이 죽긴 했지만 질문의 강도는 늦추지 않았다.
“그래요? 숙박부 좀 볼 수 있을까요?”
“네.”
하며 그는 카운터 서랍을 열더니 낡은 책자를 꺼냈다. 그리고 그는 친절하게 그가 작성한 페이지를 펴 내밀었다. 순간 박형사가 말했다.
“이건 필기한 게 아니라 명함이잖아요.”
거긴 놀랍게도 필기 대신 명함 한 장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쓰길 귀찮아하시는 손님한테는 명함을 받아요. 따지고 보면 필기보다는 더 확실하니까요.”
“그 말씀은?”
“가라(거짓)로 많이 쓴다는 거죠. 평일 손님은 대부분 낚시를 빙자한 불륜들이니까요.”
“아네.”
박형사는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숙박부를 유심히 살피며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촬영한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체크 인 하고 곧장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나요?”
“아니오. 짐만 풀고 나와 저수지를 산책했어요.”
“얼마 동안이요. 자정이 넘도록 이요.”
“그리고?”
“돌아 와 그렇게 말도 없이 새벽녘에 떠났어요.”
“물론 차를 가지고 왔겠네요?”
“아뇨.”
“그럼 걸어서 갔다는 거요?”
“그야 모르죠. 포장도로가 끝나는 쉼터에 세워놓고 올 수도요.”
“아참. 그렇지. 흙탕물 범벅이라면 세차비가 만만치 않을 테니까.... 근데 엊그제는 비가 오지 않았잖아요?”
“그렇죠. 하지만 들어와 봐서 아시겠지만 페인 곳이 많아 밤에는 위험하죠.”
“허긴 나도 들어올 때 애 좀 먹었죠. 근데 여기서 거기까지 거리가 대략..... 15분가량 되죠?”
“아네요. 저기 저수지 뒷길로 가면 7분 정도면 가요. 근데 그건 왜? 그 사람이 수배자라도 되나요?”
펜션주인은 계속된 추궁에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네요. 가로등 시설이 전혀 없는 거리를 들어왔다 나갔다고 해서요?”
박형사는 얼렁뚱땅 둘러대긴 했지만 나를 대로 추리를 이어갔다. 그의 생각은 이러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퇴근했다는 나 여사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두통이 심했다면 기필코 집에 돌아 왔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뭔가 냄새가 난다는 거였다. 용의 점은 아직 저수지에 남아 있긴 하지만 펜션에 사람이 없었다면 그곳 역시 한가한 게 틀림없을 거라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용의선상에 오른 황동팔과 자신이 나 여사의 거처에서 같이 잤음에도 불구하고 나 여사가 오지 않았다는 건 뭔가 일이 심상치 않게 흐르고 있다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당일은 아니지만 정체불명의 사내의 방문이 있었다니 그것 또한 그냥 지나 칠 수 없어 집요하게 물은 것이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주인에게 질문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황동팔을 보며 말했다.
“다음은 어디로 가지?”
“저수지 가서 알아보고 마지막으로 도로 끝 구멍가게 장노인한테 물어보죠.”
“그러지.”
박형사는 펜션 주인에게 고개를 조여보이고 앞장섰다. 황동팔도 고개를 조아리고 뒤따랐다. 펜션주인은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봤다.
펜션 앞 저수지는 앞이 탁 튀어 있었다. 방풍림도 방해 시설도 없었다. 두 사람은 곧바로 펜션 좌측 관리실로 향했다. 관리인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멀지 않은 곳에서 뭔가 고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형사는 황동팔을 보며 물었다.
“저 사람 관리인 맞지?”
그건 황동팔이 이곳을 오랫동안 드나들었다면 모를 리 없기 때문이었다. 황동팔은 몇 발자국 앞서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박형사는 습관처럼 옷매무새를 다듬고 그에게 다가 갔다.
그는 좌대 출입구를 수리하고 있었다. 얼마나 열중인지 그는 두 사람이 다가서는 것도 몰랐다. 박형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수고하십니다.”
그러나 그는 눈치 채지 못했다. 저번에 만났던 관리인인가 하고 유심히 보았지만 아니었다. 염색한지 오래된 듯 흰머리가 듬성듬성 보이는 그는 60대 중반에 딴 사람이었다. 그는 아랑곳없이 저수지 밖 쇠말뚝과 좌대에 연결된 쇠말뚝에 쇠사슬을 거는 작업을 계속했다. 황동팔이 안 되겠다는 듯이 다가서며 말했다.
“형님!”
그때서야 그가 작업을 멈추고 쳐다봤다. 그는 황동팔과 박형사를 번갈아보더니 말했다.
“자네 짓이야?!”
황동팔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형님은 아직도 내가 잔챙이로 밖에 안 보여요.”
“그럼, 뭐야? 저 분은 짭새.... 아니 형사 냄새가 나는데?”
“그래도 이 양반이......”
황동팔은 화가 치미는지 소매를 걷고 다가섰다. 순간 박형사가 가로막아서며 말했다.
“안성서 강력계 박형삽니다. 그런 거 아니고, 좀 물어볼게 있어서요.”
“뭔데요?”
그때서야 그는 경계심을 풀고 쳐다봤다. 박형사는 좌대 안쪽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러자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한 1년 이상 조용하기래? 끝난 줄 알았는데..... 어떤 섞어 문드러질 놈이 좌대 통행금지로 처 놓은 쇠사슬을 걷어 갔어요.”
“근데 왜 나를 가지고 지랄이야!”
황동팔이 억울하다는 듯이 나서며 말했다. 그러나 그는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그야. 옛날처럼 보호비 늦게 준다고 걷어가는 줄 알았지.”
“이 양반아! 나 이제 그런 쌩아치 아냐! 건축업에 종사하는 CEO라고......”
“아참, 그렇지. 나 여사한테 그 소린 들었어. 하지만 얼마 전에 나 여사가 좀 어렵다고 그러던데.....”
관리인은 그래도 뭔가 의심은 풀지 않고 쳐다봤다. 황동팔도 질세라 소리쳤다.
“이 양반이 정말 왜 이래! 나 양아치 손 씻었다니까!”
그때서야 관리인은 사과를 했다.
“그....그래 미안하네...... ” 그리고 그는 곧바로 박형사를 보며 말했다.
“근데 무슨 일로........”
박형사는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 여사가 어제 저녁에 여기 오지 않았나 해서요?”
그러자 그가 망설임 없이 말했다.
“손님도 없는데 걔가 왜 와....... 걔가 무슨 일 당했어요?”
관리인은 뭔 일이 있느냐는 듯이 되물었다. 박형사는 그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펜션에서 바로 퇴근하고 집에 갔다는데...... 보이지 않아서요.”
“그러면 도로 끝 구멍가게 장 노파네 갔겠지.”
그리고 그는 별일도 아닌 것 가지고 그런다는 듯이 잠시 놓았던 일을 다시 시작했다. 박형사는 그의 일손을 살피며 물었다.
“이걸 끊으려면 대단한 장비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요즘은 그렇지도 않아요. 장비가 워낙 좋아서 보트커트 정도면 간단하지…….”
“그래요? 그렇다면 어디 절단 흔적이라도 있어요.”
“그게 나도 의문이요.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
하며 잠시 허리를 폈다. 박형사는 이때라는 듯이 의자를 끌어 당겨 앉으며 물었다.
“저번에서 사무실에서 보니까. CCTV가 있던데.........”
그러나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있으면 뭘 해요. 정전이면 그만인데......”
“그래도 혹시 살펴는 봤어요?”
“물론이죠. 비바람이 치면 잘 보이지도 않지만 정전까지 돼 온통 시커먼 것뿐이었어요.”
“그래요. 그렇다면 그 외에 다른 것은 발견되지 않았나요?”
“한 바퀴 돌아 봤지만 이렇다 할 것이 없었어요.”
“그렇다면...... 아무 것도.......”
“그러니까 귀신 곡할 노릇이지....... 아무래도 고사를 한번 지내야 할 까봐요......”
그리고 작업을 계속했다. 그건 일하는 사람 괜히 방해 말고 가라는 표시였다. 박형사도 더 이상 묻지 앉고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협조랄 것까지......”
그는 일별도 주지 않고 작업에 몰두했다. 박형사는 고개를 약간 숙여 보이고 뒤돌아섰다. 그러나 황동팔은 돌아서지 않고 한마디 했다.
“형님! 나 분명히 얘기하지만 양아치 아니요!”
“알아! 씨 거시기.......”
역시 일별도 주지 않고 작업에 몰두했다. 앞장 서가던 박형사가 황동팔을 보며 빨리 오라고 손짓을 했다. 황동팔은 무슨 말인가 한마디 더 하려다 말고 박형사를 향해 달려갔다. 관리인은 그들이 저수지를 벗어나 도로로 접어들자 좌대 밑을 더듬어 뭔가를 꺼냈다. 그건 놀랍게도 물을 잔 뜻 먹은 베개였다. 그는 다시 한 번 박형사 쪽을 살피더니 보이지 않자 배게 속에 낡은 해머를 끼어 저수지에 던져버렸다.
- 풍덩!
멀지 않은 곳에 떨어진 베개는 작은 물결을 만들고 금방 사라져 버렸다.
관리인은 휠끔 쳐다보더니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작업을 계속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