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부르고 짬뽕을 먹었다.
매운짬뽕.
그런데 땀이 미친듯이 나서 이젠 매운것도 못먹겠다.
시간이 지남에따라 변하는 것들이 많은데,
식성이 제일 크게 바뀌는것이 아닐까 덜컥 겁이 났다.
내가 맛있어했던 것이 시간이 지남에따라 맛 없어진다는 것은 겁이 나는 일이다.
어쩌면 실패할 여유를 몸이 자동으로 습득해서 차츰 실패할 수 있도록 유도해주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해봤다.
가뭄에 아주 조금씩 흐르는 시냇물처럼 아주 조금씩 어디론가 흐르고있지만, 그걸 알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닐까.
노래와 밥 그리고 다이소에서 필요 없지만 왠지 있으면 필요할 것 같은 말도 안되는 물건들을 잔뜩사고,
찢어질 것 같은 봉투를 보며 흡족해하며 신호등을 건넜다.
피곤하다, 뭔가 딱히 한것은 없는데 그냥 피곤했다.
집에가서 쉬고싶다는 생각이 격하게 들었다. 그때쯤 비는 습기만 남겨두고 자취를 감췄다.
새로운 집은 조용해서 좋다.
물론 방음이 잘되진 않는다.
그러나 가구수가 적고 주변에 소음을 만들 요소가 없어서 그런지 조용해서 좋다.
간혹 들려오는 개짖는 소리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지팡이소리나 주변의 공사장 소리 정도가 다다.
음, 글로 적고보니 딱히 조용한 것도 아니네.
새벽에 이렇게 노래를 들으며 글을 적는데, 기분이 매우 좋다.
내가 생각한 이야기들을 글로 풀어낼 수 있음에 감사한다.
글 재주는 없지만 이렇게 글을 쓸수 있는 생각을 준 주님께 감사하고 아버지 어머니께 감사한다.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어느정도 소비를 하며 살수 있음에 감사한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 사랑이라는 감정이 다시금 살아남에 감사한다.
토요일의 만남이 비록 스쳐지나가는 인연일지라도,
새로운 집에서 3주째 설치 못한 인터넷 설치할 기회를 마다하고,
이야기를 하며 카페를 지켰던 내 순수한 마음이 대견하다.
쓰담쓰담이 필요한 순간은 사실 이럴 때가 아닌가 싶다.
자신이 잘한 일들을 자신이 제일 먼저 알아채고 칭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자기애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 누구도 이해해주고 칭찬해주지 못할지라도 낙심하지 말라.
자기 자신이 눈치채고 얼른 자기 자신이 삐치기 전에 사랑해주고 토닥거려 주라.
토라지면 무섭고도 두려운 것은 너무나 잘 알지 않는가.
행복은 멀리있지 않다.
소소한 행복은 이런 글을 씀에 있어서도 발현된다.
나긋한 목소리의 가수의 노래가 들려오는 이 새벽에 시원하고도 습한 공기를 맡으며,
곧 다가올 폭염과 나를 사랑해주는 모기를 생각한다.
좋아하는 맥주를 하나 까서 바닥을 뒹굴거리며 다음주에는 어떤 사람들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를 생각하는 이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가.
그 친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교대근무를 하며 피곤에 지쳤을까? 아니면 늦은 일요일에 맥주를 까며 좋아하는 넷플렉스의 바다에 몸을 던졌을까?
그 친구를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지는데, 그 친구는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참, 행복한 여름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