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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역사 무인시대5
게시물ID : history_147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8750
추천 : 4/12
조회수 : 1864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4/03/15 20:23:41
최우
 
 
꽃미남 주얼리정
 
아버지가 문신으로 권력 기반을 다졌다면
최우는 부친의 수법을 더욱 체계화시키는 한편으로
몽골의 저항의식을 적절히 이용하면서 여론결집시킨다.
 
교정도감
 
 
아버지 최충헌이 만든정치기구
도방
군사적기구
 
서방

최우는문신자문기관따로 설치한다
 
정방

인사권독점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다
 
몽고의 지나친 공물요구와 다루가치의 내정간섭에 위기를 느낀 우는 
강화도로천도하여 몽고와 항전할 것을 결정하여 이후 40여년간 고려는 몽고에 대항하였다. 

이때 되도 않는 팔만대장경을 만들면서 국민들을 괴롭히고 강화도에서만 짱박히고 본토는 나몰라라 해서
본토는 아비지옥이된다.

군인의 본분은 나라가 어려울때 자기한몸바치는게 아니였던가??????????
 
그의 아들들은 몽골침약기에 고리대금을 해서 국민들의 지탄을 받는데,
이때문에 이들은 도성으로 올라오는 계기가 된다
 
개망나니 새끼들 국민은 외적방어하느라 죽을판인데 국민 등꼴이나 빼먹고,,
 
후계자는 사위인 김약선이었으나  김약선이 어이 없는 사건으로 최우에게 죽고
망나니 아들이 후계자가 된다.
이때 망나니 아들이 후계자가 될수 있었던 이유는 최우의 강력한 후견때문이였다
아버지의 마음이란 ㅡ.ㅡ
만전이란 이름으로 출가해 있던 항을 환속시켜 가병 500 여 인을 주고 후계자로 지목한 것이다.
 
최우는 최씨집안 사람으로 아들을 인정하고 가신들에게 충성맹세를 받았으며
그의 사후에 김준에게 아들 후견인이 되줄것을 부탁한다.
 
고종 36년 우가 죽고 서자인 항이 무신집권자가 되었다.
만적에서 최항이된다.
항은 우의 측근이며 반대파를 숙청하고 아비의 뒤를 이어 왕의 출육을 반대하며
반몽정책을 고수하였지만 이미 육지는 초토화되어서 대몽항전은 백성들의 지지를 잃었으며
 
무신정권이 강화도에 짱박혀 있는상황에서 세금만 강요해 민란의 발생하고 백성들이 관군보다 몽고군을 반기고 몽고군에 협조하는 일이 발생하게 하였다.
애초에 능력이 없다 보니 최씨무신정권이 분열을 초래하고 이와더블어최항은 온갖패륜질등으로 최씨 무신정권을 말아먹는다
 

몽골보다 고려놈들이 더나쁜놈들이랑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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