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4시 17분. 푸른 달빛이 창밖에서 희미하게 어둠을 비추는 밤이자 새벽. 소년은 이불 속에서, 혹은 그 꿈속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 연신 발버둥을 쳤다. 보슬보슬 내리는 땀에 마른 뺨은 영지를 잃어갔고 새어나오는 신음과 몸부림의 잠꼬대는 갑갑하다는 감정을 그대로 담아내기 충분했다.
어둠에 잠긴 눈은 짓눌려져가는 육체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되뇔 뿐이었다.
‘안 돼....... 안 돼.......’
의미도 목적도 불분명한 이 신음소리, 고통소리는 “앗!”하는 탄성으로 쏟아져 나와 육체를 해방시켰다.
소년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이 있는 장소를 둘러보았다. 비록 깜깜하긴 했지만 거기는 어두운 소년의 방. 아까 보았던 것과 다르지 않았지만 거칠게 내쉬는 숨소리와 사춘기 소년 특유의 페로몬의 내음이 방안의 풍경이라는 느긋한 박자의 타악기 연주 위에서 바이올린떼와 플루트처럼 공감각을 두드리는 현실이었다.
자각해낸 소년은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몸 여기저기를 양손으로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오른손이 왼 어깨를 시작으로 왼손의 오른 갈비뼈, 생길락 말락 하는 유방과 뭉치기 시작한 배, 허벅지와 둔부의 사이를 창백한 열 손가락과 손바닥이 더듬거리며 행진했다. 그러면서도 시야는 어느 한 곳에 온전히 두지 못한 채 바닥과 벽부터 천장의 구석까지 방안 곳곳을 미친 듯이 기어 다녔다.
‘또 악몽이야......! 또......!’
그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며칠째 내용도 이름 모를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년의 머리에 남는 거라곤 그 장대하고 무시무시한 한 편의 괴기소설이자 야상곡의 한 문단이요, 한 소절. 똬리를 튼 뱀이 어둠 속에 버팅기고 있는 그 모습. 과연 그것이 어찌하여 무서웠는지, 스스로도 어째서 떨고 말았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그 뱀 이후의 무언가가 뇌를 향하여 ‘공포’라 불리는 감각 그대로의 순수한 형태로 바닷가 마을을 덮치는 해일처럼 몰아닥쳤던 것 외에는 설명할 것도 없었다.
본래 꿈이란 깨어있을 때 겪은 일들이 무작위로 합쳐지고 또 쪼개지고 섞인 걸 깨기 직전 뇌가 인과율에 근거해 재조합하는 잔상에 불과한 물건. 어쩌다가 꿈이 마치 두 노래가 두 트랙으로 나뉘어 담겨진 음반처럼 송출됐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었을 것이다. 소년에게 지금 벌어진 건, 인과율에 맞지 않아 다른 꿈과 서로 섞이는 과정에서 누락된 꿈의 조각이 소년의 등골을 싸늘하게 얼려버린 상황이었다.
현실을 자각한 소년은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방 안의 전등을 켰다. 화사하게 망막에서 부서지는 형광등의 빛에 소년은 눈을 반사적으로 깜빡여 동공의 크기를 맞추고는 벽 높이 걸려 있는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은 어느새 4시 30분. 평소 약간의 불면증을 앓아 한 번 깨면 그날 밤 12시 정각이 되지 않으면 통 잠을 못 자는 소년은 한숨을 푹 내쉬며 “오늘 밤도 다 잤구나.”하며 밤을 새고 다음날을 보내고자 커피를 타러 방 문 밖으로 떠났다.
어느덧 꿈의 4일째, 토요일. 계속 가만히 이러한 악몽의 굴레를 받아들이다 보면 몸 또한 적응해 나가 자연히 끝날 일이 아니란 것을 자각한 소년은 근래 아는 이들 중에서 이런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해 줄 수 있는 이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 사람은 외국의 유명 대학의 박사학위며 석사학위를 오래 묵은 취업준비생의 자격증마냥 그 짧은 기간에 여러 개를 딴 희대의 천재이자 기인인데 어릴 때부터 이웃사촌으로 지내며 이런저런 잡동사니들을 고치는 도움을 줬던 인물이었다.
어둡고 무료한 여섯 시간을 두 눈을 지세고 보낸 소년은 태양이 남쪽으로 서서히 넘어가려는 때에 그를 찾으러 떠났다.
그가 사는 곳은 만월산 자락을 그득히 메운 빌라촌, 그중에서도 빌라가 서서히 뜸해지는 나름 교외에 서 있는 크고 넓은 층당 2호실의 2층짜리 콘크리트 건물. 아래쪽은 중화요리 ‘무영각’이 두 호실을 다 쓰고 있었지만 2층에는 1층으로 통하는 계단 입구 쪽, 영화 ‘레옹’에나 나올 법한 작은 화분이 반기고 있는 그의 거처이자 사무실은 여느 가정집과 같은 철문이 달려 있었으나 그 안은 창가에서도 보이지 않는 기묘한 공간이었다.
“띵-동”
소년은 거침없이, 자연스럽게 화분 반대쪽, 그리고 조금 위에 달린 자그마한 초인종을 부드럽게 꾹 눌렀다. 기계음인지 실제 악기 소리인지 모호한 초인종 소리가 복도 전체, 그리고 사내의 집 안까지 부드럽게 울려 퍼졌다.
“들어 와.”
초인종에 부착된 스피커에서 잡음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년은 철문을 여느 문처럼 부드럽게 열고 들어왔다.
가구 배치는 마치 변호사 사무실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우선 자그마한 TV가 문 바로 왼쪽 모서리의 구석에 앙증맞게 붙어 있었다. 눈앞에는 길쭉한 소파가 양 옆으로, 세로로 마주보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길쭉한데다가 이끼 낀 듯 푸르딩딩한 모포, 그 위의 판유리가 깔린 탁상이 두 소파 사이에 껴서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척 봐도 좋아 보이는 마호가니 책상과 사양 높은 컴퓨터와 푹신한 의자가 밖에선 보이지 않는 창문을 등지고 가로로 우뚝 서 균형을 잡아 주었다.
그리고 그 책상 위에, 거의 모든 것을 아는 기묘한 사내가 걸터 앉아 소년을 노려보았다.
우선 그는 샤프로 그은 것처럼 얇은 세로선에 금방이라도 피에 젖었거나 고급 와인이라도 뿌려놓은 듯 새빨간 와이셔츠, 그와 대비되어 더욱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명품조연인 정갈한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또한 그의 학식을 증명하는 언밸런스한 상징으로 새하얀 가운을 그 위에 걸치고 있었다.
눈매와 머리는 더욱 가관이었다. 마치 폭풍을 맞은 백양처럼 거칠고 새하얀 곱슬머리와 외계에서 인간을 들여다보는 호기심과 재미에 찬 라플라스의 악마 것 같은 붉은 눈동자가 새하얀 피부 위에 박혀 있었다.
“무슨 일로 왔지? 김성일.”
특이한 박자의 드럼과도 같은 말 빠르기, 청명한 미성의 보컬 톤, 베이스처럼 은은히 물드는 특유의 간드러짐과 시시각각 들어오는 숨소리, 기타 솔로. 록밴드 공연을 듣는 듯 독특한 그의 말이 소년의 고막에 박혔다.
소년이 “재호 씨”하고 운을 떼려던 참이었지만 사내는 역으로 소년의 말을 끊어재끼며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아니야. 마침 부르려던 참이었는데 잘 됐군.”
그는 책상 아래에서 무언가 손잡이가 달려 있고 벨벳 암막이 쳐져 있는 커다란 직육면체 상자를 꺼내 올렸다. 그러더니 마술쇼를 하듯 부드럽게 벗겨내서 아크릴판으로 된 상자의 진면목과 그 내용물, 본질을 보여주었다.
“.......!”
순간, 소년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콘크리트 타일 바닥에 털썩 넘어지고 말았다. 상자 안에서 날름거리며 숨을 쉬는 그것은 꿈에서 본 것, 검은 줄무늬에 꼬이고 또 꼬여 똬리를 튼 한 마리 뱀이었다.
그런 소년의 행동을 사내는 마치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에게 있어서 소년이 뱀을 무서워해 넘어지는 모습은 마치 소라껍질을 바꿔 끼우기 위해 줄을 서는 소라게 무리와도 같아보였다.
“.......왜......? 그렇게 무섭나?”
맹한 말투. 정말로 순수한 궁금증과 놀라움과 신기함에서나 빚어져 나오는 말투였다.
“아....... 아니....... 그......”
소년은 아크릴 수조를 가렸던 검은 벨벳 천을 가리키며 이를 딱딱 부딪쳤다. 사내는 소년이 다시금 아크릴을 가려달라는 요구를 하는 것을 알아듣고 벨벳 천을 들어 한 바퀴 휘감아 수조를 가렸다. 소년은 숨을 푹푹 몰아쉬며 소파 위에 앉았다.
사내는 그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거의 턱 밑까지 내려온 다크 서클, 닭살이 돋아 얼기고 설긴 피부, 빨갛게 충혈 된 눈, 덥지도 않은 날씨에 흘리는 땀. 거기다가 뱀을 보고 보인 반응까지 종합해 보았다.
“악몽을 꿨군.”
사내가 말했다.
“어....... 어떻게......?”
소년은 채 가시지 않은 두려움 반, 사내에 대한 경외심 반의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해몽 정도는 해 주지. 무슨 꿈이었지? 뱀 꿈?”
“네....... 뱀이 똬리를 틀고 앉아있는 꿈이요.......”
사내는 책상 위, 그의 둔부 옆에 놓아둔 흰 머그컵 안의 홍차를 홀짝거리며 새빨간 눈알을 좌우로 굴려댔다.
“뱀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건 재물을 뜻하는 꿈이야. 돈 좀 들어오겠군.”
사내의 말에 소년의 얼굴에 화색이 돋는 듯싶었지만 얼굴이 그렇게까지 바뀌진 않았다. 무의식 속에 남은 꿈의 뒷부분이 영 석연찮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 꿈이 무섭다면 자각몽이라는 걸 또 연습해야하는데........ 내 분야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고. 꿈인지 현실인지 알고 싶다면 손가락을 뒤로 접거나 팽이나 동전을 돌려봐.”
하지만 그가 뒷부분에 얘기한 자각몽 관련된 이야기는 돈 때문에 슬쩍 묻혔다. 좌우지간 돈 얘기라면 나쁠 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진....... 진짜요......?”
“그럼. 이 해몽은 정확해.”
사내는 품 안에 손을 넣고 휘적거리더니 노트 정도로 두툼한 종이봉투를 허공에서 비둘기를 만들 듯 꺼냈다.
“괜찮다면, 알바 좀 해 볼래?”
얼핏 형광등과 들어오는 햇살에 비춰진 건 두둑한 만 원짜리 지폐였다.
“무슨....... 일인데요......?”
“이 뱀 좀 돌봐줘.”
사내가 다시금 뱀을 꺼냈다. 맘몬의 후광인지, 인간으로서의 적응인지, 뱀은 아까 보았을 때와는 다르게 전혀 무섭지가 않았다. 오히려 은은하게 빛나는 검은빛에 멋들어진 구석이 느껴질 정도였다. 머리 모양 또한 흔히들 생각되는 우산처럼 펼쳐져 어둠으로 인도하는 머리도, 화살촉처럼 뾰족하게 뻗쳐 매서운 독니로 위협하는 머리도 아니었다. 둥글둥글한 삼각형의 끝 부분이 약간 위로 접혀 돼지코를 연상시키는 귀여운 모습이었다.
사내가 녀석의 수조에 손을 넣자 녀석은 선뜻 그의 손 위를 느긋하게 휘감으며 올라왔다. 그리고는 자신의 말아 올려진 코를 사내의 손바닥에 비비며 애교를 부려대며 꿈틀거렸다.
하지만 소년에게는 아직 뱀이 어색했다. 오래 보아야 예쁘고 사랑스러운 들꽃처럼 귀엽다지만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세상에서 제일 많이 떨게 한 존재였으니까 말이다.
“이 뱀은 돼지코뱀의 아종이야. 신종인데, 지인이 미국에서 발견한 놈이지. 독이 없고 인간에게 애교를 잘 부리는데 원종에 비해 큰 편이야. 살모사 반 정도니까.”
사내는 엄지로 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돈 좀 줄 테니까, 내일 정오까지 맡아줘. 선약이 있어서 가봐야 하는데, 그 녀석이 막무가내로 놓고 갔거든.”
그렇게 말하면서 사내는 소년에게 뱀을 키우기 위한 각종 세트를 나눠주었다. 태양을 대신할 인공전등과 톱밥 등 인테리어가 깔린 좀 커다란 수조, 밀 웜이며 핑키며 얼추 사흘 치 분량의 각종 먹이.......
소년은 이 많은 짐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시금 집에서 침대 옆 서랍에 재정리하고 그 침대 위에 털썩 드러눕고는 사내처럼 손을 집어넣어 뱀의 몸을 어루만졌다. 그러자 아랫배에 소화와는 전혀 다른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녀석, 산달이 얼마 안 남았으니 태어날 때 주의해. 건들지 말고.”
그는 마지막으로 사내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어느새 그는 뱀에게 정이라도 든 것 같았다.
오늘 밤 그는 안심했다. 꿈은 반대라고 했으니까, 진짜 뱀을 데려온 이상 그 뱀이 나오는 악몽은 꾸지 않으리라는 논리였다. 어김없이 12시 정각이 찾아왔고 소년은 잠에 빠졌다. 그리고 꿈이 재생되었다.
“아........ 아.......”
소년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나왔다. 때마침 똬리를 튼 뱀은 새끼를 낳기 시작하고 있었다. 꽁무니의 자그마한 구멍에서 자그마한 벌레 같은 놈들이 하나 둘 꾸물꾸물.......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양수가 나올 리도 없는 뱀이 붉은 액체와 함께 새끼를 낳고 있었다.
잠시 꿈에서 흔히 나오는 ‘건너뛰기’, 새끼들이 뱀의 온몸 여기저기서 아까와 같은 ‘양수’와 함께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나오는 게 아니었다. 새끼들은 점차 들어가고 있었다. 어미를 갉아먹으며 피를 내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뱀에게서, 그것도 등허리 끝에서 양수가 나올 리가 없잖은가. 그 끔찍한 광경 속, 신비를 넘어 괴이(怪異)의 광경. 옴짝달싹 못하는 소년의 비명은 공기를 타지도 못하고 멀어져만 갔다.
‘안 돼......! 엄마를 잡아먹지 마......!’
순간, 그의 몸 이곳저곳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가 맞아본 적은 없었긴 했지만 총을 맞으면 이런 기분이었으랴? 몸 한가운데 고름을 쏟아내는 구멍의 양 옆으로 호저가 들이받은 듯 따끔한 고통이 그의 전신을 에워쌌다.
이게 그가 꾼 꿈의 전부였다.
그가 어김없이 12시에 잠들었듯 어김없이 4시에 눈을 뜬 순간, 그의 눈앞에는 달빛이 은은하게 비추는 그 방의 풍경 따윈 없었다. 소년 그 자신이 소년을 샛노랗고 날카로운 눈초리로 노려보고 있었다. 가슴이 미어지는 격렬한 고통과 구불구불 기어 다니는 마귀의 벌레들의 촉감이 하반신을 에워쌌다.
‘이....... 이게 뭐야......!’
“정말 고맙게 됐어.”
수조 밖의 소년이 혀를 날름거리며 말했다.
“내게 몸을 준 거, 너무나도 고마워. 이걸로 난 목숨을 부지하고 제 2의 삶을 살 수 있게 됐어. 그 빨간 눈의 몸은 빼앗을 수 없었거든.”
녀석은 바로 일어서며 입이 귓가에 걸리도록 미소 지었다.
“이제 눈을 감아. 우리 어머니도, 그 어머니들도 그래왔듯이 말이야. 하하하하하하하!”
한편, 김성일에게 뱀을 맡기고 진도로 떠난 권재호는 잠결에 생각했다.
‘뱀에게 똬리를 트는 건 공격한다는 예비자세....... 똬리 튼 뱀 꿈은 어쩌면, 위협이 닥치게 되는 흉몽 아닌가......!’
하지만 그는 언제나처럼 몸을 뒤척이며 잊어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