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한국해군사관학교가 세계4대해전이라고 주장하는 한산도해전에 대해서는
기존 한국의 주장에서, 와키자카의 영지규모와 동원전력이 부족해서
( + 와카자카 야스하루 - 아와지국 스모토 3만석 영주 )
( + 기본적으로 임진왜란에 참전한 번대의 메인 영주들은 평균적으로 20만석이 넘었습니다 )
한국과 일본이 주장하는 내용이 서로 모순되는 현상이 자주 발생합니다
이 주장에 대해서는 와키자카가 가지고 있는 기본병 1500명에서 +a가 되었다는 근거로
당시 임진왜란 왜군 총사령관이였던 우키다 히데이에게
요리키(與力)로 지정받아 그의 군대를 이끌게 됬다는 것인데
요리키(與力)라는 의미의 본질은
즉 한 가문에 있는 가장 힘있는 신하에게 붙는 명칭으로
위와 같이 오다가문의 신하인 도요토미가 요리키를 받았다는 예는 적절하지만,
와키자카와 우키다는 각각 서로가 상관없는 가문,영지와 세력을 두고 있어
이들이 요리키 관계에 있었다는 건 좀 모순되는 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일본사를 다 아는게 아니라 반례가 있다면 제가 배우겠습니다만,
어쨋든 요리키로 와키자카가 우키다에게 군대를 충원받았다는 기록은
일본사료에서는 전혀 언급이 없는 이야기인듯합니다
이렇게 와키자카가 나선 한산도해전에 +a가 있었느냐 없었느냐가
한국과 일본의 연구사이에 활발히 토론되는 주제가 되어야할텐데
일본에서는 일본대로, 한국에서는 한국대로 자기 주장만 내세워
서로의 입장과 사료만 가지고 주장하는 부분은 상당히 아쉬운 부분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