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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gomin_17665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인기소년★
추천 : 9
조회수 : 1376회
댓글수 : 13개
등록시간 : 2019/03/05 19:40:46
다소 긴 글을 읽으시기 싫으신 분들께서는
안 읽어주셔도 됩니다ㅠㅠㅠ
요즘 너무 힘들고 답답한데
주위 사람들은 제 이야기를 이미 알아서
털어놓을 곳이 없어서요..이미 알고 있는 이들에게
같은 이야기로 힘들다고 하소연 하는 것은
듣는이들의 입장에선 지루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자주 오는 커뮤니티 몇 곳에 꺼내봅니다.
요즘 뭣도 없고 의욕도 없으니
음슴체로 가보겠슴..
저는 28살 고졸학력임
고졸도 18살 때 중퇴 후에 대입검정고시를
치뤄서 딴 학력..
학교를 다닐 때 막 반항을 한다거나
소위 노는(?)부류나 말썽 때문에
중퇴를 한 것은 아니였고
돈을 벌기 위함이였음
가족이라곤 어머니 아버지 본인
셋 뿐이였고 친척도 없음.
아버지가 IMF 이후로 운영하시던 공장이 망하면서
그 때 부터 술주정뱅이에 폭력적인 사람이 되어버렸고
그러다보니 몇 없는 친척들도
수 십 년 전에 연락이 끊김
어머니께서는 연세가 많으셨는데
본인을 낳으실 당시가 마흔이 넘으신 연세셨음
IMF이후 어린 본인과 폭력적인 아버지가 있는
집에서 어머니는 오랜 시간동안
식당일, 농사 밭일, 등으로 본인을 먹여살리셨음
정말 세상에서 제일 존경스럽고 훌륭하시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머니임.
반지하 월세방 생활에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에 지치셔도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대로
힘들게 일하셔서 늘 아들에겐 잘 해주셨음
1~2년전이 되어서야 생각이 든건데
우리 어머니..여름이면 그 더운 뙤약볕에서
겨울이면 그 차갑고 시린 밭에서
하루종일 허리도 못 펴시고 일하셨을 모습을
생각하니 눈물이 미친듯이 쏟아졌었음..
좀 더 일찍이 알았어야 했는데..
아무튼 다시 과거 이야기로 돌아가서..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18살쯔음 더이상
어머니께 도움만 받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고등학교 중퇴 후 다음 년도에 검정고시부터 보고
그 이후 주구장창 알바만 했음
20대 초반? 23살 쯔음까지
돈을 벌고 놀고 먹고 쓰고
아버지때문에 힘들다는 이유로
괴롭다며 술 먹고 놀고 쓰고..
그 때 까지는 정말 몰랐음..
그 동안 고생하신 어머님께 보탬이 되었어야 하는데
그저 금전적 도움만 안 받으면 효도지
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었음..
주위 많은 친구들은 대학을 다니고 있을 때
본인은 그저 돈을 벌고 쓸 생각만 했으니..
지금 현재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후회를 하고 있음..
다른 이들은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였고
본인은 그러지 못 했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을 함.. 그래다 20대 중반부터
영업의 길을 걷게 되었음..
이유는 학력과 크게 상관이 없고
잘만 한다면 돈을 꽤 벌 수 있다고 생각을 했음..
그렇게 소위 말하는 인식이 안 좋은 직업인
폰팔이, 수입중고차팔이도 해봤고
돈벌이는 꽤나 쏠쏠했음..
지금은 양아치짓을 하지 않아도 되는
영업직에 있으나 돈벌이가 시원찮음..
그래서 늦은 나이지만
다른 진로가 무엇이 있을까
너무 늦은 시작은 아닐까 고민중..
그 당시 20대 중반쯔음 돈을 벌면서
어머님께 가끔 용돈도 드리고
가전제품 같은 것도 바꿔드리고
본인도 돈을 조금씩 모으면서 지냈음
2017년쯤 그 폭력적이고
술주정뱅이에 덩치도 크시던 아버지가
삐쩍 마르시고 몸이 안 좋아지시더니
알콜성 치매가 오셨고 그 해 말쯔음
거동조차 못 하시고 음식섭취도 못 하셔서
누워만 계시고 대소변도 못 가리는 상태가 되심
약값이나 치료비 때문에
일흔이 다 되신 어머니와 본인은
돈을 벌었고 집에는 가정방문 간호사분과
간호를 도와주시는 분이 오셨었음
그러다 욕창 등 상태가 심각해져서
큰 병원 중환자실로 입원하셨음
매 달 나오는 병원비와 아버지의 상태 때문에
어머니께서도 많이 힘들어하셨고
병원에서는 이미 간과 콩팥 등이
완전히 망가졌고 간경화 말기의 환자는
간이식 외에는 답이 없다고 했음..
당연히 우리 집에는 그렇게 큰 비용이
없었고 결국 아버님을 집으로 모셔오게됨..
그 후로 2018년도 초쯤..
어머님께서도 정말 너무 힘드셨는지
술을 2주가 넘는 시간동안 계속 드셨는데
본인은 일 끝나고 집에 가면
괴로워서 술을 드시는 어머님과
말도 거동도 못 하시는 아버지가 누워 계셨고
그 상황을 보고 나도 모르게 몇 년 만에 어머니께
짜증과 화를 내버렸음..
연세도 있으신데.. 몇 주 동안
술만 드시는 어머니가 미웠음..
그런 시간이 반복이 되던 어느 날
일 끝나고 집에 도착을 했는데
집 앞에 수많은 경찰과 구급대원분들이 계셨고
나는 그 걸 본 순간 속으로
아버지 돌아가셨나보다.. 생각을 했음
집을 들어가려고 하니
경찰분이 이 집에 사냐고 물어봄
그렇다고 하니 어머님 성함을 말하면서
아들이냐고 물음 맞다고 대답을 했는데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였음..
도대체 왜..?
몇 주동안 드시긴 하셨어도
거실에 보이는 소주병을 수시로
세어보았고 그렇게 많은 양이 아니였는데..
알고보니 몇 안 되는 소주병 옆에 있는
쌀통 안에 수 십 병의 소주병이 담겨 있었음..
어머님은 술병이 너무 많으면
내가 화내고 잔소리 할까봐 혹은
걱정을 할까봐 숨겨두신 것 같음..
그렇게 연로하신 어머님은
안주도 없이 과음을 하셨고
몸에 무리가 오셔서 돌아가셨음..
일평생을 고생만 하셨던 우리 어머니..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아들 걱정만 하다가
가셨을 생각을 하니 너무 슬픔..
...
한동안 어머님은 나 때문에 돌아가셨다
나는 죽일 놈이다.. 난 지옥에 갈 거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자리잡고 있었음..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도 모르셨음
대소변을 못 가리시는 것과 별개로
거동은 커녕 아예 말씀도 못 하시고
눈만 껌뻑이는 식물인간과 비슷한 상태셨으니..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옮기고
어머님의 장례를 치뤘음..
그리고 정확히 3주쯤 지나고
아버지도 돌아가셨음..
그동안 모았던 돈을
아버지 병원비로 쓰다가
어머님 아버님 장례 치루고 나니
딱 제로가 되었음..
장례 치루는데 2천만원에 가까운
돈이 들 줄 상상도 못 했음..
어머님 돌아가시고 정신 못 차리다
뒤늦게 유품 정리하는데
시장에서 5천원주고 사오셨던
신발과 오래 입으신 옷들이 너무 헤져서
그 걸 보면서 눈물을 펑펑 흘렸었는데..
벌써 좀 있으면 돌아가신지 1년이 됨..
이번 신정과 구정연휴는 참 쓸쓸이 보냈음..
이제 진짜 돈 열심히 모아서
장가도 가고 해야 하는데
지금 하는 영업일이 참 벌이도
들쑥날쑥 하고 미래가 불투명해서..
뒤늦은 나이지만
기술을 배우거나 자격증을 따거나
공부를 해서 회사에 다녀보고 싶기도 함..
어떤 분야로 정해야 할지 막막하지만..
하소연을 할 곳이 없어서 두서없이
떠들었는데 우선 긴 글 읽어주신 분들
고맙습니둥
다들 복 많이 받으시구
늘 부모님께 효도 하시구
하는 일 다 잘 되세유
ps. 20대 후반 고졸이 배울만한 기술이나
자격증이 뭐가 있을까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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