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옥 金相玉 (1890.01.05 ~ 1923.01.22)
"나의 생사가 이번 거사에 달렸소. 만약 실패하면 내세에 만납시다. 나는 자결하여 뜻을 지킬지언정 적의 포로가 되지는 않겠소."
의열단 소속으로 활동했으며, 그 악명높은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은신하던 중 밀고로 인해 은신처가 발각되자 단신으로 권총 두 자루만을 가지고 왜경들과 총격전을 펼치며 기와집 지붕을 뛰어다니면서 도주하신 분입니다. (기와집 지붕에서 중심 잡기도 어려운데 뛰면서 총격전까지;)
그 후 스님께 짚신과 승복을 빌려 또다른 은신처로 피신했는데, 이 때 추격을 피하기 위해 짚신을 거꾸로 신었다는 일화가 있죠.
그러던 도중 동지가 왜경의 수사망에 걸려들어 고문당한 끝에 마지막 은신처가 발각되었는데, 이 한 분을 잡기 위해 최소 400명에서 1000여 명에 달하는 왜경이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어딘가에는 400명이라 하고 어딘가에는 1000여 명이라 하니 일단 이렇게 씁니다.)
포위망을 끝내는 뚫지 못하고 담벼락을 지탱하고 3시간 반 동안 총격전을 벌였지만, 끝내 총알마저 다하여 남은 탄환을 머리에 대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자결, 순국하셨습니다.
일본 경찰이 이 분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자결하신 뒤에도 행여나 살아있을까봐 가까이 가지 못하고 이 분의 어머님을 보내 생사를 확인하게 했다고 합니다. 이후 시신을 확인했을 때 총상은 11발, 자결에 쓰인 총알을 제외하면 10발이었습니다.
이 분은 조선 여학생을 희롱하는 일본 '기마경찰'을 때려눕히고 칼을 빼앗을 만큼 무력도 출중하신 분이었지만(그냥 일화가 아니라 이 때 빼앗은 검이 독립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더욱 대단한 점은 항일 정신이었습니다.
김상옥 의사께서 중국에서 활동하실 때 함께하던 독립투사 한 분이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하자 김구 선생이 돈을 주며 관을 사오라고 했지만, 의사께서는 관 대신 권총을 사온 일화에서 이 점을 엿볼 수 있죠. 동료의 원수를 갚고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관보다는 총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관은 따로 사비를 들여 구매했다고 합니다.)
그 많은 적을 상대로 총탄을 맞아가면서도 굴하지 않고 싸우신 불굴의 상징인 이 분을 잠시나마 기억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 이 글을 썼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