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 이광재
우산이 없는 사람에게 내린다
일기예보도 보지 못한
서툰 인생에게 내린다
갈 데는 없지만
어디로든 떠나고파 집을 나선 걸음 위에 내린다
내려서
건물 안이든 처마 밑이든
그늘을 가리켜 놓지만
빗길을 걷는 사람에게 내린다
서툰 영혼의 몸만을 씻긴다
더럽다며 머리가 빠진다며
가림 막을 펼치지 않는
서툰 영혼만이 빗물에 씻긴다
끌어야 할 체면도
망가질 이름자도 없는 사람에게 건네는
따뜻한 손길,
슬픔에게 뒷길을 열어주는
크나큰 포옹...
(2017년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