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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명수가 싫다
게시물ID : economy_146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부코스키
추천 : 20
조회수 : 2282회
댓글수 : 93개
등록시간 : 2015/09/15 17:36:20



지금보다 어리고 쉽게 상처받던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충고를 한마디 해주셨는데,
나는 아직도 그 충고를 마음속 깊이 되새기고 있다.
“누구든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하여라.”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 위대한 개츠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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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다가도 생활비가 떨어져 주기적으로 노가다를 뛰어야만하는 작가와 화가들,
생활고로인해 단칸방 고시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연극인들,
상업화에 밀려나는 인사동과 삼청동의 가난한 예술가들,
공방을 만들기에는 돈이 없어서 도자기 공장에서 일하는, 하지만 '도자기를 만들고 싶은' 도예가들,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애니메이터가 되었는데 기획에는 참여할 기회도 없고
하청에 하청만을 거쳐서 극히 일부의 잡일만을 하고 하청 구조 때문에 위로 올라갈 수 없는 사람들.
메이크업 아티스트인데 연예인에게 배정되어서 전체 시스템 내에서 규정된 시간 내에 규정된 수준의 작업만 해야하는 사람들.
프로그래밍이 좋아서 개발자가 되었더니 단순 코더로 소모되는 사람들.. 사람들.. 사람들..

자신이 좋아하게 된 일이 시장이 원하는 일과 맞아 떨어진다면, 거기다 잘 할 수 있는 재능까지 발휘가 된다면 좋겠으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이란 것이 시장의 요구와 소비자의 요구에 맞물린다는 보장은 없으며
오히려 대개는 그러한 요구들과 동떨어진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현실 속에는 변화무쌍한 환경들이 난무하고,
브라운관을 비추는 수많은 멘토들의 추상적 조언은 구체적인 삶의 현장 앞에서 더없이 무력해진다.
세상은 더없이 냉정하여 개개인의 인정을 봐주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출세의 문이 모든 재능에게 열려 있지 않다.
어떤 재능은 굉장히 가치있어도 돈이 되지 않는 반면
어떤 재능은 너무 천박해서 재능이라기보다 악덕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수익성이 좋다.



2.


꿈이라, 성공이라, 열심히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그들의 믿음.
그러한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스스러워 온 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같은, 소위 말하는 '자본의 위인'이 되기 위해 모두가 다 똑같은 길을 달려가고 있었다.

내 친구  K는 개그맨이 되고싶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낮밤으로 일하랴 연기 배우랴 참으로 고달픈 삶의 행로에 올라서게된 것이다.
나는 친구에게 왜 그런 고생을 하면서까지 개그맨을 하려느냐 물었다.
친구는 '사람들을 웃기게 하는 일이 너무 좋다', '거기서 보람을 얻는다',
'이런게 행복인가 싶었다', '그래서 이 일로 내 인생을 던져보고자 한다' 등등의 어쩌구 저쩌구 감격스런 말들을 내뱉었지만서도
결국 뭔가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찝찝해하는 눈치였다.
그렇다, 친구는 사실 자본의 위인이 되고 싶었다.

친구는 달콤한 자본주의의 열매를 따먹고 싶다 이야기했다.
일생을 월급이나 받으며 칙칙하게 살아가는 궁핍한 노동자로써는 살기 싫다는 것이었다.
개그맨 공채에 합격하여 브라운관에 얼굴을 비추고,
이윽고는 예능이니 뭐니 하는 방송프로그램들에도 한번씩 기웃거리다가
여차저차 저차여차해서 이렇게 저렇게 스타가 되고말겠다고 친구는 이야기했다.
그런 친구의 굳은 의지는 참으로도 천박하고 역겨웠으니!

오늘날 시대에서 세상의 부자란, 질투가 아닌 부러움을 전리품으로 챙기며 자본주의의 전쟁에서 승리한 현대의 위인들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들의 행적을 쫓아간다.
누군가는 고전을 읽으면 성공할 것이라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진심으로 원한다면 우주가 도와 이끌어줄 것이라 이야기한다.
또 누군가는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그에 상응하는 보답이 올 것이라 이야기하는데...
아하,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부자라는 영광의 골을 향해 맹렬하게 싸우는 게임에 불과한 것이다.

K는 양 발을 각기 다른 곳에 딛고 서있었다.
한쪽 발은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다른 한쪽 발은 욕심을 충족시켜 줄 만한 돈을 갖고 있지 않다는 현실을 딛고 있었다.
자신이 상상하는 삶을 살아가기에는 돈이 너무나 부족하고,
그렇다고 그러한 삶을 포기하자니 자본주의의 훈장이 너무도 탐이 난다.
그 친구가 이러한 진퇴양난에 빠져 있는 한, 그의 사유는 언제나 과시적 소비가 만들어내는 유행에 휩쓸리게될 것이다.

.
.
.

이 시대에 부르주아들은 정치인처럼 권력으로 세상을 지배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는가?
그들은 영리하게도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들을 부러워하게 만들고 이 부러움에 근거해 우리의 뇌를 장악한다.
이제 부르주아들은 자신의 몸을 숨긴 채 연예인이라는 셀럽을 전면에 내세워 세상을 장악한다.
셀럽이란 무엇인가? 상류층을 대신하여 상류층의 삶을 전시하는 살아 있는 마네킹인 것이다.
상류층의 과시적 소비는 이제 그들의 하수인과 대리인인 '셀럽'을 통해 낮은 곳으로 흐른다.
그 상류층 트렌드의 폭포 바로 밑에는 그들을 흉내 내고 싶어하는 좌절한 자본주의자들의 욕망이 들끓는다.



3.


나는 때때로 사업가나 연예인이란 작자들이 나와 저렇게 성공학개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나도 역겹다.
그들은 정말 자신이 노력해서 그만큼 성공했다고 믿는 것인가?
그렇게 따진다면야 이 시대에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있단 말인가?
저리도 뻔뻔한 얼굴로 '대한민국은 나같은 사람을 성공시킨 기회가 넘치는 땅'같은 개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인다.

조금이라도 신중한 인간은, 자신이 성공하는 그 과정을 통해서
성공이란 것이 온전히 자신의 '노력'만으로 되는게 아니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그래서 제대로 성공한 인간일수록 '노력'보다 '기회'를 포착하고 잡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런 인간들은 다른 사람들한테 노력하라는 꼰대질을 하지 않는다.
온갖 트렌디한 식당들 만들어서 돈방석에 앉고 소유진이랑 결혼까지 한 백종원이
'니들도 나처럼 맛있는 음식을 위해 x나게 노력하세요'라는 말 한 적이 있는가.

힐링캠프에 출연했던 소설가 김영하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소설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에 아버지의 직업도 괜찮았고, 먹고 살기 괜찮은 시대였으며,
글쓰다가 잔뜩 엉망으로 어질러진 자신의 책상을 아무말없이 조용히 청소해주던 아버지의 배려와 믿음 때문이었노라고.
오늘날 소위 '성공했다는 자'들이 취해야할 마땅한 애티튜드는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노력으로서 꽃피우기위해 어떤 어떤 소중한 기회들과 주변의 도움들이 있었는지.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자신같은 축복받은 사람들을 많이 만들기 위해
어떻게 기회와 서로의 도움이 많이 흐르는 그런 '기회의 땅'을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을런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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