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음향기기에 손 댄지 8년이 되었네요. 처음 입문하게 된 계기는 순전히 호기심으로 질렀습니다.
중학교 시절부터 미니기기에 관심이 많았는데, 같이 덕질하던 친구가 어느날 우연찮게 100만원이 넘는 이어폰이 있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더라구요.
막 오케스트라 들으면 어느 위치에 어느 악기가 있는게 느껴진다고 하길래 "지금도 잘 느껴지는대 헛소리 하고 앉아있내" 하곤 넘겼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 처럼 3만원대 이어폰들, 번들 전전하던 어느날.. MDR EX500의 소가죽 케이스를 보고 반해버려서 질렀는데, 이전에 들었던 이어폰들과 뭔가 다르긴 한대 뭔지 잘 모르겠을 차이가 있더라구요.
비싼거라서 기분탓인가 하던 차에, 마침 명절이 되었고 돈이 30만원 남짓 생겼는대, 당시 고등학생이 였던 저는 돈 쓸곳이 전무했었죠..
마침 집앞에 포낙보청기가 있어 당시 가성비로 명성을 떨치던 포낙의 PFE112를 질러버립니다.
휴대폰에 연결해서 노래를 듣는대 그동안 싫어했던 찰랑거리는 소리가 너무나 정갈하게 들리더라구요. 벙벙 퍼지던 저음은 툭툭 치는 느낌으로 바뀌고 정말 신세계였습니다. 소리를 들으면서 눈물이 난다는걸 처음으로 실감한 시점이였어요..
이때 이미 노빠구 개미지옥에 발이 빠지기 시작한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아무일 없이 2년이 흐르고 대학을 진학하게 됩니다. 이어폰이 2년동안 단선이 되지 않았던것도 신기하고 내가 모르는 세계가 너무 많았지만, 음향은 고등학생 신분으로 즐기기엔 너무 비싼 취미여서 눈팅만 죽어라 했죠.
음향 커뮤를 보다보면 챗바퀴 처럼 돌아가는 주제가 몇가지 있잖습니까.
그 중 하나인 "탈 이어폰 소리다 vs 무슨 발악을 해도 체급 차이는 못따라 간다" 를 보고 후자에 설득당해 헤드폰 구매를 결심하게 됩니다.
지금와서는 이어폰, 헤드폰, 스피커가 다 있는 입장에서 후자에 더욱 무게를 실어주고 싶네요.
더 작은 제품이 그것보다 큰 제품의 흉내는 썩 괜찮게 낼수는 있어도 근본적인 차이는 절대로 극복 불가능한것 같습니다.
아무튼 당시에 엑스페리아에 미쳐서 격렬한 소니빠가 되어있던 저는 첫 알바월급을 타자마자 당장 달려가서 소니의 MDR 1R 을 질렀습니다.
청음이고 뭐고 없이 그냥 가서 바로 질렀습니다. 들어본 소리라고는 포낙이 전부였기에 헤드폰은 전혀 다른 세상을 맛보는 느낌이였죠.
이후로 이어폰, 헤드폰 모두 소니 시리즈를 전전하며 5년을 보넀습니다.
MDR 1A, XBA N3 를 구매할때즘 문득 현자타임이 오더라고요.. 아무리 기변을 해도 쓰는돈에 비해 나아지는게 너무나 없습니다.
직장이 생겼고, 신용카드가 있다고 하더라도 40만원 짜리 물건이 손쉽게 살만한 제품은 아니니까요.
같은 회사라 사운드 튜닝이 비슷해서 그런가 싶어 MEZE 99 Classic을 질러봤으나 여전히 쓴 돈에 비해 리턴이 적다는 생각밖에는 들지가 않더라구요. Meze 가 1A 와 사운드 차이도 분명하고, 전혀 다른 소리가 나긴 하지만 이전처럼 드라마틱한 변화는 이제 더 없는건가 싶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맘때쯤 충격과 공포의 아이폰7이 나오며 DAP 구매에 뽐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좋아 이제 리시버는 충분히 질렀으니, 디바이스를 지를 차례가 왔어" 라는 일념하에 소니와 AK에서 갈등하다 AK JR이 떨이를 시작해서 구매를 하게 되었어요. 소리의 차이는 잘 모르겠는대 노래 넘기는게 너무 편해서 좋았습니다.
2주정도 잘 쓰고 있었는데 AK240이 세일 하는거 보고 교통사고 당해서 바로 JR을 팔아넘기고 질렀습니다.
AK240 구매당시는 플라시보 효과인지 모를 무언가 때문에 너무 좋았습니다. 100만원 보단 200만원에 가까운 가격이 였으니 실제로 소리가 좋지 않더라도 좋게 들었을것 같아요.
지금에 와서 조금은 객관적인 평을 해보자면 핸드폰에 비해 큰 볼륨에서 소리뭉게짐이 적고, 스테이징감이 자연스러운것 같습니다. 자주 들어 익숙한 곡에서나 캐치를 하지만, 소리에서 차이는 유의미하게 있는것 같아요.
디바이스를 지르고도 뭔가 2% 부족함을 느끼던 도중 문득 오픈형 헤드폰이란 분류가 생각이 났습니다.
언젠가 눈팅을 하다 "오픈형 헤드폰과 밀폐형 헤드폰은 같은 헤드폰으로 묶으면 안된다" 라는 글이 번쩍하고 떠오릅니다.
당시에는 오픈형 헤드폰을 어디다 써먹냐고, 집에서 밖에 사용을 못할거면 돈아깝게 왜 사는지 전혀 이해를 못했던것 같네요.
아무튼 리시버 변경에 현자타임이 많이 심했는지, 오픈형 생각이 나자마자 바로 근처 매장에 가서 HD600을 들어봤습니다.
커뮤에서 보던 드라마틱한 차이는 없지만, 공간감 이라던가 개방감 등등 확실히 새로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후 구매를 위해 고민하던 도중 우연찮게 HD800을 발견하고 청음을 해봤는데, 생전 듣도보도 못한 소리가 났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이게 헤드폰에서 나는 소리라고?" 이 한마디로 표현할수 있습니다.
HD800의 음색이 취향과는 절대로 맞지 않지만, 아무것도 모르다 처음으로 포낙을 들었을때의 신선함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반주에서 나오는 사소한 찰랑거리는 소리 하나하나가 온몸에 전율을 일으켰습니다.
이 가격대쯤 오니 헤드폰에서 소리가 난다는 느낌보단 머리 주변을 소리로 채워주는 느낌을 줍니다.
이걸 계기로 비교를 하고 또하고 한달을 검색해보니 포칼 오픈형 제품이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에디션8과도 고민을 많이 했으나 오픈형 뽕에 가득차서 이건 다음으로~
금전적 압박으로 클리어는 포기하고 일리어를 질렀습니다. 이때 검색을 하다 제가 저음 취향이란 사실도 깨닳게 되었구요 ㅎㅎ
이후 이번에 오디오엔진 A2+를 질렀고 문득 생각이 나서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기변질좀 그만해야 할탠대 앞으로 어디까지 나아갈지가 걱정이네요...-_-
만약에 누군가에게 제가 가지고 있는 기기를 들려준다고 하면 일리어를 제일 먼저 들려주고 싶어요.
일리어를 검색할때 "스피커의 느낌을 잘 담아낸 헤드폰" 으로 글이 많이 보이던데,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이 헤드폰을 꼈을때 들었던 그 웅장한 소리의 감동은 굉장했으니까요.
스피커를 들인 지금에야 스피커에서 나올법한 소리인걸 알지 처음에 들었을땐 충격이 어마어마 했습니다 ㅎㅎㅎ
스피커에 비해 헤드폰이 가지는 디테일의 이점과, 잘 튜닝한 웅장한 사운드가 만드는 하모니는 너무 좋습니다.
일리어 짱짱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