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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단편]] 아기 바구니와 삼총사---여성의 성해방을 위한 랩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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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푸우여자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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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 76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1/18 23: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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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바구니와 삼총사
 

어느 금요일 아주 깊은 밤, 강남 유흥의 거리, 어느 한적한 곳 보기 힘든 담벼락에, 젊은 여성 하나가 토악질을 했는지 쪼그리고 앉아있다. 오른쪽 머리와 어깨를 벽에 기댄 채 곧 잠에라도 빠질 태세로 보이는 데다, 늦가을치고는 매서운 바람이 여자의 철에 맞지 않은 옷차림을 더욱 애처롭게 보이게 한다.
 

LZ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젊은 여성을 양쪽에서 부축하여 일으킨다. 두 사람이 곱상하게 예쁜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것은 여자가 예수의 그것마냥 양팔을 벌리고 둘에게 몸을 내맡긴 상태에서였다. 여자는 그들 또래 같아 보였다.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눈도 뜨지 못하는 것이 이미 잠에라도 빠진 듯 보인다.
 

없는 살림에 택시를 불러 세우고, 둘은 끙끙대며 여자를 태워 자취방으로 향한다. 둘이 여성을 안고 현관문을 거칠게 열고는 우선 급한 대로 소파에 눕히고 이불을 가져다 덮어준다. 그 정도의 소동이 있었으니 안방에서 Q가 안 나와 볼 수가 없다.
이게 뭐야?”
Q는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급하게 내뱉는다. Z가 숨을 헐떡이며,
가게 근처에서 발견했는데, 그대로 뒀다간 나쁜 놈들이 데려가거나 얼어죽을 것 같아서 우선 데려왔어.”
Q? 여긴 내 집이야! 허락도 없이!”
그래도 연약한 여자가 이 추운 날씨에 길에서 쓰러지게 생겼는데, 늦은 시각에 위험하잖아. 무슨 일 당하는 것보다 낫지. 너 천국 갈 거라 생각해 짜샤!”
LQ의 팔을 툭 치며 무마하려 든다. 그들 셋은 초등학교 동창으로 다시 말해, L, Q, Z 셋은 가장 원초적인 모습으로 어울리며 모든 것을 함께 나누며 어울리던 불알친구, 삼총사였다. 초등학교 동창으로 서울에서 나고 자랐어도 그렇게 불리울 만 한 게, 개울가에서 발가벗고 물장구는 치지 못했어도, 함께 일요일마다 동네 목욕탕에를 다녔고, 물총 싸움은 물론 아동용 기관총으로 우정을 다졌으니까. 눈빛으로도 척척 통하는 그들은 올해로 나이 스물 셋이다.
 

L, Q, Z, 모두 소파 위의 한 여성에게 눈길을 주고 고민을 한다. 그들 서로 기가 막히게 잘 통한다 해도 생월일시가 다르듯 고민의 색깔도 재각각이다.
물수건으로 얼굴이라도 닦아줘야 하나?’
여기 빌붙어 산다고 하면 어쩌지?’
혼자 마셨으니 저토록 고주망태겠지? 무슨 고민이라도 있던 걸까? 우리 또래 같은데....’
삼총사는 여자니까 더 이상 손대는 것보다는 푹 자게 두는 게 낫겠다고 합의를 보고 아늑한 조명등으로 바꾸어 주고 방으로 향한다. Q는 그 집의 주인이니 침대가 있는 아늑한 안방으로 향하고, LZ는 생활비를 보태며 얹혀 사는 입장이므로 나머지 방 하나로 들어가 간신히 포개져 잔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제일 먼저 Q가 나와 여자를 살핀다. 높은 침대 위에 누이고 바닥에 조아리고 앉아 시중을 위해 기다리는 하인이라도 된 마냥 소파에 누워 있는 그녀를 Q는 올려다보고 있다. 찬찬히 그녀를 훑어보는 Q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는데 머리를 재빨리 회전하는 듯하다. 여자는 자그마한 체구였고, 예쁘장했는데 그냥 예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무언가가 있었다. 언뜻 봐도 노숙자는 아닌 듯 싶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LZ도 나와서 나란히 바닥에 앉는다. 한 여인을 보는 것인지 감상하는 것인지 관찰하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새로운 생명체를 발견한 것인지, 셋은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 말도 없이 어쩜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여자를 샅샅이 훑는다. 아무렇게나 지워진 화장으로 판다처럼 변한 눈과 번져버린 입술 그리고 밤새 뒤척였는지 상체만 보이는 옷도 이곳의 것이 아닌 것처럼 야들야들하고 화려한 무늬였다. 지금은 11월 말. 철에 안 맞아도 한참 안 맞는 옷차림이다. 삼총사의 눈길은 이러한 것들을 관찰하며 상상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이제 겨우 아침 7시다.
 

그러고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여자가 부스스 눈을 떠 두리번거리다가 갑자기 놀란 눈으로 바뀌더니 벌떡 일어나 앉는다. 삼총사는 한 몸인 것처럼 흠칫 놀라고 말았다. 마치 토끼 세 마리가 맹수 하나가 자다 일어나 포효하는 것을 본 것 같은 모양이다.
여기가 어디야?”
여자가 처음 던진 한 마디다.
길에서 술 취해 쓰러져 있는 것을 이 친구들이 업고 왔어요.”
Q가 말하자, L,
정확히는 벽에 기대어 앉아있었고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죠.”
무슨 술을 그렇게 드시고 인사불성으로 여자가...요새 나쁜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Z도 한 마디 한다. 여자는 자신에게 세 남자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음을 깨닫고 갑자기 두려움을 느낀다.
저 이만 가볼게요. 가게 해주세요.”
얌전하고 조용히 말하는 여자의 음성에는 불안감이 잔뜩 묻어있다.
쪼그리고 앉아있던 주위에 핸드백도 없었어요. 어쩌려구요?”
Z가 또 불안감을 조성한다.
택시비 드리면 될까요? 이 날씨에 그 옷을 보면... 집 나왔죠?”
L도 여자의 처지를 분석해 본다.
여자는 L을 보며 눈동자가 약간 흔들린다.
Q,“노숙자도 아닌 것 같고...”
이름은 뭐예요?
L이 비교적 다정하게 묻는다. Q,
나는 Q라고 해요.“
나는 Z“
L,
나는 L이고요. 우리 셋은 스물 세 살 초딩 동창들이에요. 나쁜 사람들 아니니까 안심해요.“
하지만 여자는 이제부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는 듯, 입을 앙다물어 버림은 물론 이불을 목까지 끌어 올려 방어태세를 취한다. 셋은 깨지기 쉬운 자기 하나를 두고 어떻게 얼룩거리는 검은 때를 지울 수 있을까 고민함은 물론, 여자가 고분고분 대답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때,
! 제일 체구가 작은 네가 가장 편한 옷, 빨아 놓은 것으로 갖고 와봐!“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싶은 QZ에게 소리친다. 그리고는 여자에게,
...깨끗이 씻고, 밥도 먹고 얘기해요. 우리 나쁜 사람 아니에요. 걱정 말아요.“
ZTV를 틀어주고 편하게 입을 옷을 찾으러 가고, 벌써부터 주방으로 향했던 L은 아침식사를 준비하느라 부산스럽다. Q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명함 한 장을 가져와 여자에게 건넨다.
형이 운영하는 조그마한 무역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인신매매범 아니에요. 쟤들은 지금 같이 알바 중이고.“
Q는 여자가 은근히 예쁘다는 것을 깨닫고 급친절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어서 여자가 의심을 풀고, 긴장을 풀고...어쩜 웃어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한다. 웃으면 정말 예쁠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때 Z가 옷가지를 들고 나온다,
아무리 찾아도 이 면티와 트레이닝 바지 밖에 못 찾겠다.“
Z가 한 번 들어 보이고는 여자에게 건네는데, 여자는 그리 향기롭지 않은 냄새가 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Q는 반기며,
씻고 갈아입어요. 욕실 잠그고 씻으면 되잖아요. 걱정 말아요.“
그래도 이불을 꼭 끌어안고는 긴장도 경계도 풀지 않는 여자. QZ는 그저 망연자실 여자의 눈치만 살피다가, 여자가 보지도 않고 소음 밖에는 안되는 TV를 꺼 버린다. 그렇게 어색한 경계심과 낭패감이 어우러져서 30여분 쯤 지났을까, 주방에서 L이 아침밥 먹으라고 소리를 지른다.
QZ는 여자에게 밥 먹으러 가자고 해보지만 여자는 어떤 말도 움직임도 없이 둘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한다. 그녀가 식탁으로 나오길 기다리다가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 L은 국그릇과 수저가 담긴 쟁반을 들고서 여자 앞에 대령한다.
”D! 이제부터 네 이름은 D! 이름도 없이 여기서 살 수는 없잖아. 우선 해장국부터 먹고 마음의 문을 열어봐. 만약 우리가 나쁜 놈들이었다면 어제 널 그냥 재웠겠냐?“
말해놓고도 아치 싶은 L. QZL에게 눈총을 날린다. 그러고 보니여기서 살다라는 말에 Q가 제동을 걸지 않았다. Z는 그녀가 깨끗이 좀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으면 싶다.
D의 눈에 먹음직스런 북어국이 들어온다. 국을 한 숟가락 떠 먹어보더니 체면도 안차리고 정신없이 국을 마구 흡입한다. 술에나 고주망태가 되었지 음식은 오랜만인 듯싶다. 그녀, D가 입을 연다.
김치 없어?“
너무나 반가운 그 한마디에 삼총사의 얼굴이 대번에 환해진다.
있지, 그럼! 밥도 줄까?“
L이 말하면서 주방으로 달려갔다가 금새 날라와서는 기대를 잔뜩 하고 김치와 밥을 쟁반 위에 올려놓는다. D는 맛있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고 밥 반 그릇과 김치 한 그릇을 다 먹어치운다. 행복한 세 남자들... 그들은 대만족이었고 D는 쓰린 속을 따뜻한 음식으로 채워서인지 곧 몸이 노곤해짐을 느끼는 것 같다.
커피 줄까? , 몇 살이야?“
QD에게 더욱 다가가려 애쓴다. 한참을 세 남자의 얼굴을 스캔이라도 할 듯 돌아가면서 보더니 D,
정말 씻어도 돼?“
짧은 질문에 셋은 날아갈 듯 반갑다.
그럼!!!“
D는 또, ”나 씻고, 이 옷으로 갈아입고, 입었던 옷 빨고...그래도 돼?“
그럼!!!“ 셋이 또 합창한다. D는 우스운지 싱긋 미소를 짓는다. 바로 그순간 세 남자들은 그녀가 달리 보임에 가슴이 벅찬다. 삼총사가 똑같이 그녀의 환심을 얻어야겠다고 마음을 굳힌 것이다. D는 이들이 참 착한 애들이구나 생각하며,
다 하고 나와서 커피 같이 마시자.“
하고는 갈아입을 옷을 들고 곧 욕실로 향하는 뒷모습을 보인다. D가 욕실 문을 잠그고 오랜 시간 머무르는 동안, 삼총사는 머리를 맞대고 뜨거운 토론이라도 하는 듯하다. 당장 돈도 갈 곳도 없어 보이는데, 당분간 머무르게 하자고, 자기가 미안하면 밥이나 청소라도 해 놓지 않겠냐는 의견을 모으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도 그녀가 아담 사이즈 글래머에 예뻐서 같이 있고 싶다는 내심은 표현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대충 아침 식사를 하고 담당구역을 청소하느라 정신이 없다. 매주 토요일은 대청소를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필시 D를 의식하지 않으려 했겠지만 더더욱 깨끗하고 윤기 나게 청소를 하고 있는 세 남자.
 

얼추 청소가 다 끝났을 무렵 D가 욕실에서 나온다. 트레이닝 바지를 몇 겹이나 둘둘 접어 입고 있었는데, Z의 면티는 또 얼마나 큰지 팔도 한참을 접어 올려 입고 어깨까지 축 늘어져 있는 것이, 마치 초등학생이 성인 복을 입은 것만 같아 실소를 자아내게 만들 수도 있었는데, 그럴 수 없는 것은 가슴만 유독 풍성하여 그곳만 사이즈가 얼추 맞아 보였기 때문이다. 삼총사는 웃음을 짓기는커녕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또한 구정물 같던 화장기를 깨끗이 지운 얼굴은 그냥 봐도 자기들 또래 같아서 아주 강한 친근감마저 느꼈다. 마지막 히트는 그녀가 한 손으로 탈탈 털고 있는 무척이나 관능적인 속옷 세트였다. 참 그러기도 힘들지만, 거짓말처럼 그들은 여자 형제가 없었다. 집에서 본 어머니의 팬티와 브라는 대충 밋밋한 흰색 면소재에 반드시 세트만은 아니었을 터인데, 삼총사는 인터넷 야동에서나 구경했던 그것을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가슴만 내밀고 그것들의 물기를 탈탈 터는 모습에 똑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흔히 상상할 수 있는 그런 것들 말이다.
이건 어디다 널어?“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보는 것에 더 당황하는 세 남자들...
L이 정신을 가다듬고 손짓으로 베란다 쪽 건조대를 알려준다. D가 건조대에 머물며 볼일을 보고 다시 그들 앞에 다가올 때까지 LQZ, 세 사람의 눈은 D의 행동 하나하나를 좇았다.
커피 안 마셔?“
한결 경쾌해진 D의 목소리에 또 합창하듯 제 각기의 반응을 하고는 주방으로 달리듯 사라진다.
 

Q, ”그럼, 속에 아무것도 안 입은 거네?“
Z, ”저거...내 옷인데...“
L, ”속옷도 사줘야하나?“ ,
사이즈가 D는 될 거 같아
 

그렇게 삼총사는 하나의 뮤즈를 보며 소리를 죽여 속내를 내뱉는다. 셋이서 그럭저럭 커피 네 잔을 만들어 D가 기다리고 있는 소파로 간다.
L, ”기분 좀 상쾌해졌어?“
D는 미소를 지으며,
, 많이
Z, ”커피 맛 어때?“
D는 역시 미소를 지으며,
좋아
Q, “갈 때는 있어?”
D는 시무룩해져서,
솔직히...좀 그래
삼총사는 무척 반가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며 또 한마디씩 한다.
Q: “여기는 내 집이야. 나갈 준비가 될 때까지 머물러도 돼.”
Q는 인심 쓰듯 한 마디 던진다.
Z: “그래, 우리 또래 같은데, 가고 싶을 때까지 머물러. 사총사 하지 뭐. <독수리 4총사> !”
반갑게 눈을 빛내며 Z가 거든다.
L: “나도 그랬으면 해....근데 너 뭐 필요한 물건은 없니?“
D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세 남자를 관찰하며,
내게, 왜 이런 친절을 베푸는 건데?“
L: ”사정이 있어서 집을 나온 거 같아서. 친구 같아서. 대화도 하고...문제를 같이 풀고 싶어서.“
Q: “갈 곳이 없는데....어쩌려구 그래?”
Z: “나쁜 놈들 많다니깐?”
D는 한숨을 폭 쉬더니,
글쎄, 해결 가능할까...언제쯤?”
숙였던 고개를 들어 삼총사를 하나하나 훑어본다. 그들이 무엇을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묻는다.
그럼, 난 어디서 자? 어제처럼 여기서 자면 되는 거야?”그 말에 LZQ를 바라본다. Q,
그래도 숙녀분을 소파에서 재울 순 없지. 내 방 침대에서 자. 내가 소파에서 잘게.”LZQ가 그녀에게 흑심을 품고 있음을 눈치채지만 D가 편하게 잘 수 있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러는 사이 D,
안 돼. 집주인 방을 어떻게 내가 차지해! 다른 작은 방 없니?”
정색을 하며 동그란 눈을 깜박이는 그녀에게 L,
하나 있는데, Z랑 내가 자는 방이야.”
네 명의 머리가 굴러가는 소리가 한참 들린 후 D가 입을 연다.
그럼, 내가 밥도 하고, 너희들 출근했을 때 청소도 하고...그러면 될까? 한 번 해볼게.”
그 말에 삼총사는 합창으로 즉각 응한다.
그래!”
생각지도 못한 세 남자의 반가운 대답에 놀라고 기쁜 D는 방긋 웃어 보인다.
이제 독수리 사총사는 모두 기쁘다.
그들은 말 나온 김에 인근 대형 마트에 들러 그녀의 속옷과 필수품은 물론 간편복 여러 개 그리고 겨울에 입을 외출복과 신발까지 사서 챙긴다. 장까지 잔뜩 봐서 집으로 돌아오는 그들 손에는 짐이 한가득이었지만 마음은 날아갈 듯 행복하다.
 

Q의 방은 아늑했지만 과연 남자의 방다웠다. 생각보다 깨끗하게 정돈이 되어 있었지만 쾌쾌한 냄새를 빼기 위해 환기를 시켜야 했고 선견지명인지 센스인지 D가 사온 방향제도 제 몫을 톡톡히 하게 생겼다. 침대 시트도 바꾸고 베갯잇도 바꾸고 서투르지만 D는 열심히 그간 찾던 둥지라도 되는 듯 정성스럽게 가꾸고 있었다. 대충 정돈이 된 방 침대에 앉아 그녀는 겨우 하루동안 있었던 많은 일들을 떠올리며 생각을 정리해 본다.
저들은 친구들이 아니라 형제들 같아...생긴 것은 다르지만 다 비슷하고...그런데 또 많이 달라.’
벌써 D는 세 사람의 특색을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다.
 

한 달을 가까이 넷이서 살고 있다.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로 채워진 알콩달콩 조금 특색있는 동거. 그들은 사총사가 되어 손발이 척척 잘 맞았다. 남자들이 아침에 일어나 말끔하게 얼굴을 씻고 식탁에 앉으면, D는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을 떨며 준비한 아침 식탁을 수줍게 선보였다. 처음엔 국도 찌개도 반찬도 무슨 맛인지 모르겠더니만, Q가 개통해 준 스마트 폰으로 요모조모 찾아보더니, 날이 갈수록 반찬의 맛이 기가 막히게 진보하고 있었다. 세 남자 중 그중 솜씨가 좋아 식사 당번을 맞고 있던 L이 고개를 끄덕이며 D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 맛에 굳이 감탄하지 않아도, 나머지 두 남자 역시 D가 그 맛이 기가 막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청소 감독이었던 ZD가 어쩜 그렇게도 모를까 놀라며 차근차근 요령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면서 어느 집인지 고이 자란 아가씨 같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추측을 했으나, 혼자만 알고 있기로 한다.
과연 그녀는 습득의 여왕 같았다. 작은 체구로 작지 않은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막대에 걸레를 걸고 씩씩하게 거실과 방을 쓸고 닦으며 반진 반질 윤기가 흐르는 집으로 변신시켰다. 그런데 단 하나 그녀가 죽어도 못하겠는 일이 있었으니, 바로 화장실 변기 청소였다. 막대가 달린 솔로 변기 구석구석을 닦는 시범을 보이는 Z 앞에서, 자꾸 헛구역질을 하려 했으니, 직접 하도록 시키는 일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변기 청소는 내가 할 게, 나머지만 네가 해!”
선심 쓰듯 Z가 내뱉은 말에 D는 상큼하게 웃으며 조금 전에 Z에게서 배운대로 욕실 바닥용 청소 솔로 바닥을 문지른다. 그러다가 수챗구멍에 이르러 징그럽게 엉켜있는 머리카락을 보더니 또 감출 수 없는 역겨운 표정을 흘리고 만다.
에에에~ , 화장실 청소는 안 되겠다. 화장실 청소는 내가 할게!!”
급 화색이 돌며 D는 자기도 모르게 욕실 청소용 솔을 집어던지고 Z를 꼭 안고 기쁜 표정을 송송 날리고 만다. Z의 눈빛이 순간 반짝인다.
Q는 그중 경제 사정이 나아서였는지 물량 공세로 D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줬다. 제법 넓직한 안방에 공주풍의 경대를 사주어 그녀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준 것이다. D의 얼굴에 분홍빛 화색이 돌며 감사의 찬사가 쏟아지는 것을 듣는 Q, 흐뭇해서 하늘을 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보이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런 역할 분담도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한 달도 채 못되어 청소와 빨래는 세 남자가 나눠서 하게 되었고, D는 식사 당번만 맞게 된다. 그것도 식사를 준비하고 차리는 것만 하고 설거지 역시 남자들이 알아서 처리하기에 이르른 것이니, D는 아마도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한 번도 여자가 먼저 힘들다고 우는소리를 하거나 발을 뺀 적이 없었는데도 남자들은 알아서 그녀가 힘들어 보인다며 그런 일을 할 시간에 보다 생산적인 일을 하라고 적극적인 배려를 하는 것을 보라. 그 과정은 아주 자연스러웠는데, 마치 그녀의 야들야들한 속옷이 빨래 건조대에서 팔랑거리는 것에 남자들이 적응된 것처럼.
그렇게 모두가 행복한 스위트 홈이다. 세 남자는 여자의 얼굴이 날이 갈수록 밝아져 감을 보며 흐뭇해했고, 집에 오는 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한편 다정한 세 남자의 관심과 배려가 마냥 벅차고 기쁜 그녀였다.
 

생산적인 일
여자는 조금씩 자기만의 시간이 많아지자 세 남자가 주는 용돈으로 무얼할까 고민한다. 옷을 사기에는 적은 돈이고 아니, 마트에서 파는 옷은 살 수 있었지만 그녀의 취향하고는 너무나 달라서 그냥 집안을 꾸미는데 신경을 쓰기로 한다. 그것이 자신에게 좋은 공간은 물론 우정까지 제공하는 삼총사를 기쁘게 하는 일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냥 팔자 좋은 안주인처럼 굴며 TV나 보며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L은 한 권짜리 장편소설을 화장실에서 발견하게 된다. 책 표지만 보아도 무척 관능적이었는데, 2017년 김동수 문학상을 차지한 것을 보면 문학성도 있다고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침실로 가져온다. D는 모처럼 얼굴이 달아오른 채 한 숨에 읽어 내려간다. 다 읽은 후 여자는 커피를 타 와서 천천히 마시면서 조금 전에 함께 했던 소설의 군데군데 자극적인 요소들을 떠올려 본다. 그러다 빙긋 미소를 지은 이유를 우리는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겠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한 달이 되었다. 네 사람도 모처럼 집에서 거하게 송년 파티를 열기로 한다. 함께 음식을 만들기도 하고 주문도 하고, 케잌은 물론 빠질 수 없는 술도 넉넉히 사서, 마침 그녀가 총각들의 집에 입성한 지 꼭 한 달이 되는 날, 1224일 아늑한 거실의 불빛 아래 모두 모였다.
음식보다 술이 줄어드는 속도가 빠른 것은 젊은 그들에겐 너무나 당연한 일.
다들 거나하게 취했다. 홍일점이라 그런지 언제부턴가 그들의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은 그녀, D였다. 오늘도 그녀가 본론으로 들어간다.
근데, 너희는 애인도 없니? 매일 퇴근 후 곧장 귀가. 재미도 없게. 오늘 같은 날에도 그렇고...”
술이 들어가면 긴장이 풀려서인지 부쩍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바뀌는 것을 그녀 자신도 물론 알고 있으리라. 미소를 머금고 한 마디 던진 후 D는 담배를 한 모금 빤다.
Q, ”왜 없냐? 있긴 있지!“
D, ”그래? 근데 크리스마스 이브에 데이트도 안 해?
L, ”D! 너는 애인 없어?“
D, ”? 여기서 이렇게 숨어 지내는데...크큭...어케 만들어. 싱겁긴...L너도 애인 있어?“
L, ”있지...근데 고백을 못했어.“
D, ”...Z, 너는?“
Z, ”물론 나도 있어
D, ”크리스마스 이브에 애인들은 안 만나고...하긴 우정도 중요하지. 그래도 애인이 더 중요한 거 아냐? 암튼 우리의 우정을 위해 건배!!!“
그렇게 싱거운 농담과 가벼운 주제로 거나하게 취하는 사총사는 웃으며, 깔깔대며 밤이 깊어가는 줄을 모른다. 그러던 중, D가 흐느적 대며 갑자기 옆에 앉아있는 L에게 진하게 키스를 한다. 얼떨결에 키스를 끝내고 더욱 벌게진 얼굴로 D를 살피는 L.
, ....진심이야?“
D는 술을 쭉 들이키고는,
뭐가?“
하며 안주를 조금 씹는다. 어리벙벙해진 사람은 세 남자다.
Z가 얼떨떨해진 표정으로,
, L을 좋아하니? 아니, 사랑하니?“
Q는 얼이라도 나간 듯 입을 벌리고 있다가,
...나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이번엔 D가 놀란 표정으로,
뭘 그래? 그것 같고. 그게 꼭 사랑해야 하는 거니? 아하, 여긴 한국이지?“
삼총사는 무언으로 의사 교환이라도 하는지 Q도 간신히 입을 뗀다.
, 집 한국에 없어?“
여유롭지만 약간 미간을 찡그리며 D가 답한다.
노 코멘트
왜 내게 키스했어? 난 순간적으로 착각했잖아! 너도 나를 사랑한다고 말야!“
전에 볼 수 없었던 화난 표정의 L이 소리친다. D도 상기되어 답한다.
혹시, 너희들 각자의 애인이 나니? 나를 다 맘에 두고 있는 거야?“
삼총사는 미친 듯이 술을 들이 붓고 담배를 피워댄다. 그렇지만 D는 전혀 동요되지 않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다 다시 대화를 이끈다.
난 결혼관, 사랑관이 확실해. 그리고 섹스도 무척 개방적이야. 내가 여기 처음 와서 놀라고 경계한 것은 정말 너희들이 나쁜 인신매매범, 범죄인 집단은 아닐까 해서였어. 그런데 너희는 무척 선량한 시민들이더라. 섹스 없이도 행복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 그리고 참 희한한 것은 너희 셋은 피를 나눈 형제도 아니면서 서로 비슷하며 의지하는 것이 꼭 한사람처럼 굴러가는 눈사람 같았어. 세 개의 동그라미가 이어져 붙은 눈사람.
또 의아했던 것은 너희들 중 아무도 나를 성적 대상으로 볼 생각을 못 한 건지, 아니면 그렇게 생각 안 하려 노력한 건지...암튼 좀 그랬어...내가 아는 수컷들, 아니 남자들은 같은 공간에 머물면서 여자를 이삼일 안에 덥치지 않고는 베길 수가 없거든.“
D는 술을 한 모금 들이킨다.
지금 생각해 보니 둘 중 하나구나. 세 남자의 우정! 혹은 내 의사의 존중! 암튼 둘 다 너무 감동적이야!“
그런 후에 새로운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인다. 한 모금 길게 빨아 들이키고는 그녀의 속 생각을 풀어 놓는다.
난 너희 셋 모두를 똑같이 사랑해. 친구로서는 물론 남자로도 말야. 비슷하지만 다들 달라. 그래. 개성이 충분해. 하나하나 너희들을 다 사랑해. 어찌 보면 너희는 한 세트인 것만도 같고.“
또박또박 잘도 말하는 D. 삼총사는 하나 같이 넋이 나간 얼굴이다. D가 다시 입을 연다.
이왕 나온 얘기, 터놓고 얘기해 보자. 셋 중 처음으로 내 키스 받은 L! 너의 사랑의 정의를 듣고 싶어.“
그리곤 앞쪽에 QZ를 보며 말한다.
두 사람도 준비해줘?“
떠듬떠듬 L이 말한다.
나는 사랑이라는 게, 좋은 거 나쁜 거 다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애인이고 그 애인과만 나누는 모든 거. 키스....아무하고나 하면 안된다고 생각해!“
L은 마지막 문장을 원망 조로 터트리고 말았다.
D는 약간 동요된 듯 하나 Q에게로 눈을 돌린다. Q,
소중한 것을 함께 나누는 거.“
Z,
이상과 꿈을 공유하고 섹스마저도 잘 통하는 감정?“
잘 듣고 있던 D,
너희들 정말 괜찮은 친구들이구나? 다 맞는 말이잖아. 내가 한 수 배웠어. 맞아. 사랑은 그런 걸 거야. 나의 사랑관은 세 사람의 사랑관들을 짬뽕해 놓은 것에 플러스 느낌! 그게 내 사랑관이고 섹스관이야. 느낌이 올거 같아. 하늘이 정해준 사람이라면...“
이젠 너무 안어울리는 마지막 문장을 읊조리는 D의 눈빛이 순간 순수한 듯 빛났다.
세 남자는 일제히 D를 응시한다.
그런 내게 맞는 좋은 사람과 섹스했을 때 완벽함을 느끼겠지. 미안, 한국에서는 공공연히 섹스에 관해 얘기하면 안 되는 거지? 그런데 섹스도 없는 게 어떻게 사랑이야? 정신적 사랑? 개가 웃겠다. 난 내숭 떤 적 없다? 그간 너희들과 동화되어 살았을 뿐야. 그리고 L! 미안해. 너 혹시 태어나서 처음 해본 키스였니? 아까 그게?“
L이 시무룩해져서 말한다.
그렇지는 않아
그럼 다행이고...말했잖아, 난 너희 셋 모두를 남자로 보고 있었던 것 같아. 다 좋아한다고. L! 니가 내 옆에 있어서 내 키스를 받게 되었는데 불쾌했다면 진심으로 사과할게.“
L을 바라보며 다소곳이 말하는 D. L은 그녀를 한참 보다가 아무 말 없이 술을 계속 마시고, Z는 벌린 두 다리 사이로 고개를 떨구고 연거푸 담배만 피워대고 있고, Q는 소파에 파묻힌 채 천장을 바라보며 담배 연기를 품어대고 있다.
삼총사에게 말할 게. 날 이성으로서 좋은 감정으로 느껴줘서 고마워. 게다가 공주님처럼 받들어 주는 것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 근데 성에 나처럼 개방적인 여자, 한국 남자들은 싫어하는 것으로 아는데...실망시켰으면 미안해....나도 내 짝을 만날 때까지 그럴거야. 뭐든 게 다 맞는 사람을 찾기는 어렵겠지만 만나게 되면 물론 그에게만 충실할 거야...결국 충실하기 위해 고르는 거 아니겠니? 문란과 개방은 좀 다르다고 생각해. 너희들도 알거라 믿어. 그리고 난 내 짝을 만나도 결혼에는 아주 신중할 거야.....정숙한 여자가 아니라 이젠 보기도 싫다면 내가 떠날 게...너희 같은 좋은 친구들 만나서 참 좋았어.“
D는 그 후 입을 다물고 술을 최대한 많이 마시고 약간 비틀거리다가 그녀의 아늑한 침실로 들어가 버렸다.
삼총사는 충격의 도가니에 빠지고 말았다. 자기들 각자에게서 동시에 남자를 느꼈다니! 위로라 하면 하나 하나 좋아해 주기는 했다라는 점. 누구보다 L이 더욱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생에 두 번 째 키스인데 그것이 너무나도 강렬했기 때문이다.
 

술을 많이 마셨음에도 잠도 못 들고 뒤척이던 L, 결국 새벽에 그녀의 침실로 향했다. 새벽 3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조용히 문을 열고 불을 켜고 이불을 들춰 보니 D는 겨우 위 아래 하나 씩만 걸친 속옷 차림이었다. L의 기억이 맞다면 그녀가 처음 이 집에서 샤워 후 빨아 널었던 무척이나 감각적인 팬티, 브라 세트였다. 충분히 참았던 L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녀에게 몸을 포갠 채 정신없이 키스를 퍼부었다. D는 잠에서 깬 은근한 얼굴로 L을 알아본 후 L에게 그냥 몸을 내맡겼다. 그의 거친 숨과 손길 등에 자극을 받고 특별함을 기대하던 D는 일가견 있는 자기가 리드 하기로 한다. 겉잡을 수 없는 황홀경에 빠진 두 사람. 그렇게 사총사의 다각적인 파티는 시작되었다.
 

다음 날 아침 식탁에서 D는 조금도 다를 바 없었지만, L은 얼굴을 제대로 들지 못했다. QZ가 눈치를 챘다. 그들이 어물쩍거리는 동안 L이 선수를 쳤다는 것을. D가 입을 연다.
어제 한 말 기억하지? 세 사람 중 하나라도 내가 이곳에 있는 게 싫은 사람이 있다면 말 해줘. 이번 주말까지 별 말 없으면 계속 머물러도 좋다는 걸로 해석할 게. 그래도 될까?“
일일이 얼굴을 살피는 D에게, 삼총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 말 없이 세 가지의 스타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대충 밥을 먹고 일어서면서 D는 한마디를 더 던진다.
모두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 모두를 사랑하니까.“
이렇게 해서 하루아침에 삼총사는 이상한 구조의 삼각관계의 연적들이 되고 말았다.
 

그날 저녁에는 Q가 자신의 침대에서 자고 있는 D를 보러 들어간다. 자다 깨어 Q의 얼굴과 시계를 본 D,
어쩜 시간까지 비슷하게 오나? 그것까지 서로 의논하나?’
생각하며 Q의 얼굴을 차근차근 뜯어보았다. 비슷하게 뜨거운 키스로 시작하여 D의 몸을 뜨겁게 탐하는 것이, D는 그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으며 정성을 다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Q는 자신의 침대라서 그랬을까. 어딘가 익숙한 놀림이 있었다. 그리고 분명 L보다 경험이 많은 듯했다. 샴쌍둥이처럼 몸 하나에 얼굴만 셋인 것 같던 삼총사는 가장 은밀한 경험은 제각각 알아서 해결했는지 정말 많이 달랐다. 여기서 DZ는 어떤 남자일까 실로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L은 물론 Q도 자신에게 무척 빠져있음을 여실히 알 수 있었는데 죄의식 같은 것은 느끼지 않았다.
내가 느끼기에 괜찮은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 하여, 그저 우아하게 응하는 것일 뿐, 결국 내 타입이 아니면 내칠 수 밖에 더 없는 것 아닌가.’
D는 가볍게 넘겨 버린다.
 

그다음 날 이른 밤에는 의외로 L이 또 찾아왔다. 그는 이번에는 불을 켜고 D의 몸 구석구석을 감상하듯 쓰다듬으며 한참을 참고 나서 불같이 돌진했다. 이불 따위는 필요 없었다. 이틀 전과는 사뭇 다르게 밀어부쳐서 D는 조금 당황했다. D는 여실히 느낀다. 가볍지 않다고, L이 자신을 무척 깊이 사랑한다고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걱정한다.
‘L이 이렇게 생각의 방식이 판이하게 다른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정말 그럴 수 있을까? L은 나를 사랑한다. 나를 사랑하니까...이 남자일까?’
DL의 얼굴을 들어 본다.
세상에...왜 울어?’
 

DL이 사랑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을 Z는 문을 빼꼼히 열고 지켜본다.
저렇게 대낮같이 환한 불빛 아래서!’
Z는 질투심에 불타 현기증이 난다. L과 함께 쓰는 방에 들어가 저들이 언제 끝내고 나오나 시간을 잰다.
‘1시간 넘게 지랄하고 있네
두 시간 가까이 진을 빼고 나온 L이 그만 쓰러져 잔다. 모르는 척 불도 끄고 누워있던 Z는 황급히 그러나 도둑고양이처럼 어둠 속을 지나 불 켜진 욕실 안을 훔쳐본다. D가 샤워를 하고 있다.
그럼, 그래야지.’
D가 샤워를 끝내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면서도 긴장되고 설레는 것이 Z는 머리에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D가 침실로 들어가자마자 Z도 따라 들어선다. 깜짝 놀란 듯 뒤돌아 보는 D는쥐고 있는 큰 타올 꼭대기 모서리를 순간적으로 꼭 쥔다. Z가 더 견디지 못하고 잽싸게 타올을 벗겨 버린다. Z는 놀란 D의 얼굴을 보고, 터질 듯 탐스러운 젖가슴을 보고, 잘록한 허리에 눈길이 멈추고는 그대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미친 듯 키스를 퍼부었다. 숨이 막히도록 입을 맞춘 후 Z는 차근차근 코스를 밟았다. Z를 느끼며 D는 또 품평을 시작한다.
여자의 몸을 다루는 것도 그렇고 그 나이에 어쩜 이렇게 능숙할까? 그런데 너무 과격해.’
D는 숨이 차서 헐떡이며 내뱉는다.
너무 거칠다고 생각 안해?“
그래야 흥분하는 거 아냐?“
아닌데
과연 ZD의 정신을 빼놓을 정도로 흥분시켰다. 그때 Z는 다그치며 묻는다.
말해! 누가 제일 좋아! 셋 다 좋은 게 어딨어! 누구지? 나라고 말해 어서!“
Z는 폭력만 쓰지 않았지 성난 맹수만 같았다.
왜 말 안 해! 누가 제일 좋아?“
내가 잘못했나 보다. 너희들 우정에...내가 방해물 같아.“
D의 혼자 내뱉는 듯 가라앉은 목소리에 D를 올라타고 앉아있던 Z가 갑자기 멍한 표정이 되어 버린다. 곧 정신을 가다듬고 D에게 정성스러운 키스를 하는 Z.
미안해. 떠날 생각하지 마. 이렇게라도 있어줘. 사랑한다고만 말해줘. 나를 사랑한다고만 말해달라고!”
Z도 그만 눈물을 보인다.
제발...”
“Z.....사랑해.”
D는 말해준다.
 

그렇게 보름 정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눈에 띄게 변한 게 있었다. 한 여자와 세 남자, 그들 사총사는 약속이나 한 듯 점점 말이 없어졌다. 대화가 거의 끊기다시피 한 것이다. D는 세 남자와 무척 가까워져서 더욱 편안해졌지만, 남자들은 서로 눈치를 보고 맹숭맹숭해져 버린 것이다. 물론 밤에 침실에서는 일대일 이런저런 속삭임이 있었지만..... 분명히 이전과는 달리 세 남자는 서먹서먹하고 어딘가 서로 경계하고 있었다. D는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1월 말 금요일 저녁에 또 한 번의 술파티를 기획한다. 중간 점검의 시간을 마련한 것이다.
작년 송년회 때처럼 준비하고 둘러앉은 그들은 어느덧 다들 거나하게 취했다. 술은 긴장을 풀어주며 진실의 말을 끌어내게 하는 마법의 물 아니던가.
술기운 탓인지 다들 방글방글 웃으며 자잘한 대화가 오고 갔다. 주로 음식 얘기와 변죽을 울리는 것들이었지만. D는 과연 탁월한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역시 오늘의 주제로 말문을 여는 그녀.
이젠 서로를 견제하지 말았으면 해! 나 때문에 너희들 우정이 금이 간 것만 같아서.”
그녀의 제안에 다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술만 마신다.
내가 오기 전과 지금 너무 많이 다르잖아. 여자 하나 때문에 그럴거야? 내 마음은 똑같아. 난 너희 셋 다 사랑해! 근데 왜 서로를 견제해? 그리 오래는 함께 못 살겠지만, 밖에서 애인 만들 사람도 생길테고......내가 싫어질 수도 있을거야. 우리 서로 사랑하는 동안 서먹서먹하게 굴지 말자. 그냥 내가 떠나길 원치 않는다면 말야. 내 사랑을 삼등분해서 사이좋게 나눠 갖는다고 여기면 좋잖아. 난 니들이 다 좋아. 친구이자 남자로서 좋아서 밤에 만나는데, 하나만 고르라면 어떡해! 다 비슷한 걸...똑같이 좋아!”
D는 진심 반 속상한 맘 반이 뒤섞인 눈물을 조금 보인다.
그 일이 있은 후 삼총사는 다시 그 예전의 삼총사다워지기 시작했다. 한 여자의 사랑을 갈구하며 그저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할 뿐, 그들의 우정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듯 보였다. 그들의 특이한 동거는 다시 <즐거운 우리집>이 되었다. 즐거운 우...
적어도 D가 보기에는 이제 삼총사가 견제도 가식도 없이 다시 다정하게 어울리는 것만 같았다. 아주 없는 것 보다 삼분의 일이라도 소유하는 게 낫다고 결론을 내리기라도 한 것일까.
 

어느 날에는 D가 도마에서 칼질을 하다가 작은 상처를 입은 게 계기가 되어, 겨우 주방만 담당하던 DL의 제안과 Q, Z의 흔쾌한 찬동으로 그것에서 마저 손을 떼게 된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시간이 더욱 많아지고 세 남자는 조금 더 바빠지게 되었지만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벌써부터 여자를 여왕처럼 모시고 싶었기에 오히려 아주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 그리 염치가 없지 않은 D는 그래도 무언가를 해야할 것 같아 커피를 홀짝이며 마른 빨래를 걷어 차곡차곡 개고 집에 은은한 음악을 깔아 놓고 방향제를 많이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삼총사가 모아 준 돈으로 가까운 마사지 샵에서 피부를 가꾸고 수영을 하고 손톱 하나하나에도 정성을 기울였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돌자 D는 도서관에 들러 책 속에 파묻히거나 인터넷으로 책을 구입해 읽으며 실로 우아하고 풍요로운 삶을 만끽하기에 이른다.
 

밤마다 다른 얼굴의 애인은 그녀를 위해 사랑한다고 속삭였고, 그녀에게 큰 기쁨을 주기 위해 온갖 정성을 쏟아부어 그녀를 감동시켰다.
하나 같이 한 번씩은,
누가 제일 좋아? 나지?”
라고 물어보는 것을 침실에서만은 허락해야 했다.
한 몸으로 엉겨있으며 그 순간 사랑하지 않는다면 말이 되지 않으니까. 그러다가 날이 밝고 책을 읽는 등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하다가도 밤에 쏟아지는 남자들의 확인 작업이 떠오르면 적지 않게 마음이 쓰였다. 행복하면서도 갈등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문제였다. 동시에 세다리라니...그것도 만나도 상대방이 모르게 만나면 모를까 연적들이 시시콜콜 모든 것을 아는 상황이니.....남자는 여자를 삼분의 일만 차지하는 것에 괴롭고, 여자는 넘치는 사랑에 괴롭다.
 

그렇게 그들의 동거 생활이 6개월을 채워갈 무렵 어느 토요일 점심 식사 후 함께 어울려 차를 마시다가 D가 청천벽력 같은 한 마디를 내뱉는다.
, 임신했어.”
여기가 남극인가 북극인가? 비교적 D는 담담했다. 다시 한번 강조하면 지금 계절의 이름은 여름이다.
어떡할거야?”
정신을 가다듬은 Z가 제일 먼저 입을 연다.
정확해?”
Q가 얼이 나간 표정으로 묻는다.
아이스커피 잔을 꼭 쥐고 D가 눈을 내리깐다.
조심하잖구!”
ZD를 작지 않은 소리로 탓한다. D는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그때 L이 말한다.
너만의 잘못도 아닌데 왜 그렇게 죄지은 사람처럼 굴어? D! 친부도 알 수 있는 세상이야.....네 계획을 말해봐!”
지우지 그래
Z가 아주 건조한 목소리로 제안한다.
그래. 누가 아빤지 알아 보는 것도 낳아 봐야 아는 거 아냐? 그냥 지워라.”
Q가 아까보다는 안정이 되어 다그친다.
난 생명을 죽이진 못해!”
D는 거의 울상이 되어 내뱉는다.
이제 우리 겨우 스물 네 살이라고. 어떻게 애 아빠가 돼?”
Q가 설득하듯 말하자 D,
누가 아빠가 되었든 난 못 죽인다고!!!”
D는 울부짖으며 바닥만 본다. 밖은 한 여름인데 어깨를 바르르 떠는 게 어딘지 안쓰럽다.
아무런 기반도 없고 누가 아빠인지도 모르고 준비된 게 하나도 없어. 어떻게 낳아서 기른다는 거야?
Z가 유산을 해야 할 이유를 조목조목 나열한다.
이 개자식들!“
갑자기 L이 벌떡 일어서며 쩌렁쩌렁 소리친다. D가 깜짝 놀라고 다른 두 남자도 얼어붙는다.
사랑 타령할 땐 언제고! 그저 질투였냐? 그저 여자 하나 뺏기기 싫어서 그런 거야? 사랑이라는 게 그런 말을 내뱉을 수 있어? 아니면 경쟁이었냐? 결국 D를 독차지 해 보이겠다는? 아니면 단지 D가 공창이라도 됐던 거냐? 개자식들!“
눈물을 글썽이던 DL을 올려다 보며 주루륵 눈물을 흘리고, 두 친구는 입을 벌리고 눈에서 레이저를 쏟아내는 그를 놀라 쳐다본다.
이런 것들을 불알친구라고 소개하고 다녔다니!“
한마디 더 쏘아붙이는 L을 올려다보며 그녀가 펑펑 운다. 서러운 빛은 보이지 않고 긴장이 풀린 듯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인다.
진정해, L! 나 때문에 또!“
울먹이다가 뜨겁게 울어 재낀다. 그가 그녀의 오른 팔을 잡아 올리며 소리친다.
울지마. 애가 놀라겠다. 우리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자. 손 귀한 집이라 반기실거야. 싹싹한 며느리 들어왔다고 좋아하실 거라고. 여기선 태교도 못해. 개자식들! D, 어서 짐 싸자.“
그가 그녀의 손을 잡고 방으로 향한다. 둘이 그가 머무르는 방에 다다르자 그녀는 그의 허리를 꼭 감싸 안고 그를 우러러보다가 까치발을 하며 그의 목을 잡아내리며 진한 키스를 한다. 그녀의 눈에서는 감격의 눈물이 한없이 흐른다. 긴 포옹을 한 후 그녀가 작게 속삭인다.
너일 줄 알았어. 내 아이의 아빠! 너이길 바랬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던 그가 무슨 말을 하려하자,
!“ 그녀가 입술로 그의 입술을 막는다. 그리고는,
어서 집에 가자!“
경쾌하게 내뱉는다.
그녀는 입은 옷 그대로 지갑만 챙겼고 그는 대충 중요한 것만 가방에 골라 담아 곧바로 <즐거운 너희집>을 나서는데, 나머지 두 친구는 줄담배만 피우면서 그들 한 쌍이 나서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만 본다.
처음 만난 날처럼 두 남녀는 택시 뒷자리에 앉았다. 그는 큰 결심을 한 남자답게 그녀의 오른손을 꼭 잡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앞만 응시했고, 그런 그가 빛나 보여 그녀는 환희에 찬 눈길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다. 택시는 웨딩카라도 되는 것처럼 안정감 있게 미끄러져 나아갔다.
 

그의 본가에 도착하여 그가 초인종을 누르려는 순간에 그녀가 그의 손을 잡아 막으며 말한다.
”L! 사랑해. 정말 사랑해. 이렇게 멋진 남자인 줄 알았더라면 벌써 그 집에서 나왔을 거야. 너랑.“
”D! 사랑해. 내가 더 사랑해.“
그가 그녀의 볼을 소중하게 감싸 안으며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한다.
뱃속의 아이, 누구 아이인지도 모르는데?“
내가 사랑해서 너랑 잤는데, 내 아이이지 누구 아이야.“
그녀는 또 눈물을 쏟는다.
, 정말.....실은 너만 사랑한 지 꽤 오래되었어. 그런 생각하면 네게 미안해.“
그는 눈이 커지면서,
”D! 정말이야?“
, 네가 젤 좋으니까, 다른 애들은 귀찮은데도....내가 나빴어.“
그는 감격스러운 듯 그녀를 꼭 껴안는다.
한 가지 더 기쁜 소식 있는데...“
그녀는 특유의 애교섞인 목소리로,
나 임신 안했지롱~“
하고는 밝게 웃는다. 벙찐 표정으로 그가 순간 얼어붙는다.
그런 극단적인 절망 속에서 남자답게 처신하는지 확인하고 싶었어. 셋 모두 나를 사랑한다는데 테스트하고 싶었다고 할까. 세 사람과 동시에 결혼할 수는 없잖아. 어떤 반응을 할지 어차피 QZ의 반응은 상관없었어. 셋 모두를 테스트하는 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난 너의 반응만이 중요했으니까. 난 널 확신했거든. 당당히 우리 둘이 커플이 되어 나오는데도 ZQ는 어떤 저지도 못 하던 거 봐봐. 만에 하나 너마저 아기 지우라고 하면, 병원 간다 하고는 그냥 집으로 가려고 했지.“
L은 놀란 눈으로,
? 어딘데 집이?“
미국에 있어. 초등학교 때 이민 갔거든. 정략결혼 시킨다고 하셔서, 부모님 의견이 너무 강경해서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어. 사랑하지도 않고 나이도 많고 매력도 없는 사람한테 말야. 너 내 결혼관, 사랑관 잘 알잖아. 말도 안돼! 한국으로 들어온 것은 꿈도 못 꾸셨나봐. 반년 정도 연락이 끊기자 죽은 줄 알았대. 내 전화 받고 아빠가 엉엉 우셨어. 이왕 잠적한 김에 확실하게 수개월 삼총사 집에 머문 게 먹힌 거야. 엄마는 20 키로그램이나 빠지셨대. 실은 나 무남독녀 외동딸이거든. 죄송스러워서 혼났어.“
발랄하게 말하는 그녀에 비해서 그녀의 입만 바라보는 그의 눈은 아주 얼떨떨하다.
아빠가 이제 내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줄테니 어서 미국으로 오라고 하셨어. 곧 엄마가 나 데리러 오실 거야.“
그래서 미국으로 간다고?“
같이 가자! 아빠가 너 공부도 더 시켜주신댔어. 아빠가 최소한의 요구만 들어준다면 이라고 조건을 붙이셨는데......크큭! 널 만났는데 내가파티의 여왕’! 더 할 이유가 없지롱~“
놀람과 반가움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가,
”D! 정말이야? 나만 사랑한 거랑 미국 가서 같이 살고 공부도 할 수 있는 거야?“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얏호!“
그는 뱃속에 떨어질 아이가 없는, 그저 사랑스러운 애인을 안고 경쾌하게 웃으며 빙글빙글 어지럽도록 돌고 있다.
출처 자작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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