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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의 결말)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거야. 무슨 귀신소리같기도하고. 암튼 기분 엄청 거시기한게 뒷통수를 한 대 후려 맞은거처럼 정신이 몽롱해지더라구. K군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밖에 안 떠오르는거야. 뭐냐구? 뻔하거 아냐. 여러분같으면 어떻게 하겠어.
그래 바로 그거야. 빨리 이 집을 나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안나는거야. 근데 순수히 나갈 수 있겠어? 원래 이런 이야기가 그렇잖아. 들어올 땐 들어와도 나갈 땐 못나가는 거. 그거 기본아냐. 물론 여기서도 못 나가는 거지.
정말 미치겠는지 K군의 얼굴이 노랗게 달아오르더니, 입술도 파르르 떨리고 완전 인간의 얼굴이 아니었어. 집에 있는 사람이라곤 바람만 불어도 픽 쓰러질거같은 할아범 할멈뿐인데도 파고드는 공포를 어쩔 수 없었는지, 그도 그럴것이 힘으로야 K군이 세지만, 할아범 할멈은 도무지 제정신으로 보이지 않으니.
여기서 칼이라도 휘두르면? 바퀴벌레 한 마리만 봐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K군인데, 과도만 봐도 은근 끔찍해 사과도 안 깍고 차라리 농약을 먹고말지 하며 그냥 먹는 K군인데,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지.
K군은 결심했어. 여기서 나가기로. 근데 어떻게 나가지? 뭘 그렇게 고민하냐구? 그냥 나가면 되는거 아니냐구. 그게 지금 이 상황이 제대로 된 상황이 아니잖아.
보라구 저 노친네들, 지금 제정신으로 보여? 할아범은 누구를 죽여달라고 하지않나. 할멈은 기분 거시기하게시리 하이얀 소복을 입고 왔다갔다 하지않나. 지금 상황이 그렇다구. 작전이 필요한거야.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손자병법 알지?
K군은 온 힘을 다해 빌고 또 빌었어. 제발 여기서 나가게 해 주세요. 여기서 나가게만 해 주신다면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살고 싶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앞으로 착하게 살께요.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렇게 빌고 또 빌었어.
머리털나서 처음으로 양심고백이란 것도 하고, 그렇게 원망하던 신께도 다시는 원망하지 않고, 그렇게 미워하던 세상도 더 이상 미워하지 않겠다고 맹세 또 맹세했지.
그때였어. 갑자기 초인종이 울리는 거야. 짜장면 배달아저씨인가? 그러면 다행인데. 그냥 무조건 붙잡고 살려주세요 하면되잖아. 아 그건 쫌 아닌가. 아직 뭐를 휘두르거나 그러지는 않았는데 말이야.
K군이 은근 오버쟁이라서 말이야. 그냥 은근슬쩍 뭍혀서 나가기로 했지. 누굴까 은근 기대하고 있는데....이런 할망구. 치매걸린거 아냐. 진짜루 짜장이 배달됐는데, 배달 시킨적 없다고 문도 안 열어주네. 에휴, 미치겠다 정말.
K군은 할수없이 정면돌파하기로 결심했어. 눈을 부릎뜨고 만만하게 보이면 안되거든. 일단 눈이 제일 중요한 거 알지? 눈으로 먼저 상대를 제압하려고 부릅 뜨며 노려보았지. 그러다가 깜짝 놀라 얼른 눈꼬리를 다시 내렸어. 왜냐구? 괜히 신경건드리면 안되잖아.
위로 보나 밑으로 보나, 안으로보다 뒤집어 까보나 제정신들이 아닌 노친네들인데 괜히 자극하면 안되지. 거친 눈초리를 거두고, 적당히 어려워 보이고, 적당히 타협적인 눈초리로 노려, 아니 쳐다보았지.
그러다가 좀 약한가 싶어, 다시 눈에 힘을 주고, 노려보다가 다시 풀다가를 반복했어. K군이 은근 우유부단하거든. 겁도 많고. 그랬더니 뭔가 이상했나 할아범이 한마디 하네.
“어디 불편한가?”
“네? 불편한거 없는데요”
“아까부터 계속 눈을 치껴떴다가 내려떴다가 ”
“아 네...제가 눈이 좀 아퍼서..”
“그래도 젊은 사람이 좀 참아야지. 바보처럼 보여”
뭐? 바 바보? K군은 정말 너무 어이가 없었어. 그래서 다짜고짜 물었어. 이쯤됐는데 뭐 눈치볼거 뭐있어. 내친김에...
“아니 어르신! 무슨 이유로 사람을 죽여달라 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런 사람아닙니다”
“사람을 죽여달라니 그건 무슨 소린가”
이런 할아범이 기억을 못하는군. K군에게 제안한 내용을 하나도 기억을 못하는거야. 전혀 모르겠다는 듯 K군을 보았지. 완전 멘붕! 진짜 뒷통수 제대로 한 대 얻어맞은거 같이 정신이 없더군. 어째거나 잘됐지 뭐. 그냥 서둘러 나가려고 일어서는데,
"아니, 어디가나"
"어디가긴요. 집에 가야죠."
"왔으면 얘기를 끝내고 가야지"
"끝내다니요 뭘요"
"알바하러온거 아닌가?"
"네에? 알바요?"
또 다시 긴장하는 K군. 또다시 하얗게 질리고 온 몸이 경직되기 시작하는거야. 은근 슬쩍 다시 주거 앉으며 물었어. 물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지. 지금 상황이 좀 그렇잖아.
“알바라뇨.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아 사람을 거시기하고, 100억 받기로 하지 않았나?”
“아니 이 할아버지가!! 보세요!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그리고 어떻게.. 아이구 내가 말을 말아야지. 인생 그렇게 사는거 아닙니다. 돈낳고 사람낳지. 사람낳고 돈난거 아니라구요. 뭐 뭐야 거꾸로인가? 아 아무튼 뭐! 그렇다고요!
왠일인지 말이 술술 나오는거야.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K군이 또 한 무식하거든. 그때였어 갑자기 어디선가 어린 여자아이가 뛰어오더니, 뭐가 불만인지 자기 얼굴을 마구 꼬집고 머리카락도 마구 뜯고 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쓰는거야. 그러더니 할멈이 와서 데리고 어디론가 가더라구.
"바로 저 아이일세. 자폐증이 심해서 누구도 돌볼 수 없는 아이네. 어자피 우리 늙은이들 죽으면, 오갈 때 없는 고아가 되는거네. 그래도 친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당하는 것보다, 생판 모르는 이가 덜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 그거야 뭐. 마 맞는 말씀이긴하지만...."
아 이건 또 무슨 말. 조건을 수락하겠다는건가. 이성이 양심을 이기는 순간. 아니 이기심이 양심을 누르는 순간. 그 이기심이라는 것이 늘 그렇지. 약간의 틈이 생기면, 그 틈을 이용해 일시에 공격하는거지. 놈들이 그렇거든. 때론 비열하고 전투적이고, 늘 그렇게 기회를 엿보는거야.
그리고 헛점을 찌르지. 결국은 굴복하게 만드는거고. 그게 바로 인간이고, 삶이고, 상황에 따라 밤낮으로 그 얼굴을 바꾸는 이성이라는 친구지. 지금은 그 이성이 잠시 기회의 틈을 보는거야. 옷을 갈아입으려는거지. 그래서 K군이 넘어갔냐구?에구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쩌나. 같이 보자고. 여기서 넘어가면 게임끝인데 말이야.
“저 그런 사람아닙니다! 어르신, 그만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인생 그렇게 사시면 안됩니다!!”
“허허헛!! 멋진 청년이로군. 좋아 합격이야!”
“네에? 합격이라고요?”
“돈에 눈이 멀지 않은 후견인을 구하고 있었지. 바로 이 아이의 후견인. 우리 두 늙은이 죽으면, 이 아이를 친 자식처럼 챙겨줄 후견인 말일세. 자네라면 믿을 수 있을거 같네. 물론 약속대로 100억은 지불함세”
우와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정말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근데 이 속담 여기에 맞는거 맞아? 아 몰라! 맞으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 지금 중요한 건 이 할아범이 시험을 한거래잖아. 착한 친구찾기. 아니 착하다는 표현보다는 양심적인? 정의로운? 암튼 그런 멋진 친구찾기에 내가 합격한거구.
우와 살다보니 이런 행운이. 그러게 맘을 곱게 먹어야 하는거야. 자고로 사람이라면. 로또를 살게 아니구 맴을 곱게 먹어야 한다구. K군은 너무 좋아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었어. 그래서 췄냐고? 에구 그러면 안되지. 좀 점잖아야 믿음을 주지.
우리 한국사람들이 좀 그렇잖아. 특히 노인네들이 볼 때는 더욱 더 그래. 묵직한 사람을 은근 신뢰하거든. 이런 중요한 순간에, 가볍게 보여서는 안되는거지. 끝날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그거 알지?
“그래, 할 수 있겠나. 이 아이의 후견인”
할수있냐구? 100억을 준다면야 무슨 일인듯 못하겠어. 누굴 뭐 어떻게 해버리라는 것도 아니고. 까짓 어린여자아이 하나 돌보는게 뭐가 어렵다고. 자기 얼굴을 꼬집고 머리카락을 쥐어 뜯는다구? 어떻게든 못하게 막아야지. 돈을 준다는데 밤을 세워서라도 못하게 막아야지.
뭐라구? 내 얼굴을 꼬집히면 어떻하냐구? 하루종일 내 얼굴이 꼬집히고 내 머리카락이 따 뜯겨도 돈만 준다면야 아무 문제 없지. 알잖아 돈이면 다 된다는거.
악마의 주도면밀한 검은 손도 살 수 있는게 돈 아니야? 물론 천사의 뜨겁고 심약한 심장도 살 수 있지. 돈 앞에 굴복한 양심가들이 도처에 깔렸으니까. 돈만 준다면 양심을 버릴 친구들이 지금 문밖에 줄을 섰거든. 물론 작은 양심. 큰 양심은 아주 많지는 않을거야. 그래도 있긴 있어. 어찌보면 차고도 넘쳐.
자 오늘은 운수대통. 너무 신나는 K군. 하느님 조상님, 일찍이 돌아가신 아버님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신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원망한거 너무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그렇게 감사하고 또 감사했어.
그때였어. 갑자기 현관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들어오네. 왠 젊은 여자인데, 딸 같기도 하고 며느리같기도 하고 말야. 뭐야 아무도 없다고 했는데, 가정부인가? 아니면 파출부?
“아휴 아버님, 또 사람을 부르신 거예요? 미안합니다. 생전에 작가가 꿈이셨는데, 치매 걸리신 뒤로 자꾸만, 이렇게 일을 만드시네요. 죄송합니다.”
뭐 뭐라구? 치..치매? 그럼 난 뭐야. 아무것도 아니네. 완전 X된거네. K군은 너무 어이가 없어 실신할 뻔했어. 가까스로 몸을 추스르는데, 그때였어 어디선가 소리가 들리는거야.
아무것도 아닌건 아닌거 같은데.. 잘 생각해봐. 손녀를 죽여달라고 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거 같지 않았나. 빨리 나가고 싶었지만, 못 나가 나갈 궁리를 했지?
짜장배달부가 왔을 때 같이 은근 슬쩍 나가려고 했는데, 그 또한 무산됐지? 여기서 무사히 나가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했지. 제발 살려달라고 외친거 같은데, 앞으로는 착하게 살겠디고. 원망도 하지 않고, 열심히 살겠다고, 그렇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던거 같은데..
세상이 그래. 공짜는 없거든. 오늘 어쩌면 가장 귀한 한 가지를 얻은 거 같은데. 천하를 얻고도 생명을 잃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진리.. 이정도면 당신은 참 운이 좋은 사내라는 생각이 드는데, 아닌가.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