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소통을 했다는 것인가요?
환단고기 및 유사역사학 추종자 여러분들이야 말로 자기들 주장만 잔뜩 늘어놓고 말꼬리만 잡다가 휙 사라져버리고, 역게쪽 사람들이 올리는 반박글은 제대로 안 읽은 것 같은데요? 사실 읽었다치더라도 싹 다 무시했겠구요. 이건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지금까지 유사역사학을 지지하는 추종자 여러분들이 그대로 했던 패턴입니다. 무려 매우 오랜기간 동안 변하지 않는 정형화된 패턴 같은 것이지요.
그와 반대로 유사역사학 업계 추종자들이 엄청나게 까고 비난하는 강단사학도 그 사이에 새로운 유물과 유적 그리고 사서에 대한 새로운 재해석 그리고 기존 이론에 대한 반대 이론이 나오면서 발전하는데(물론 환단고기 등 유사역사학 책들이 위서라는 것은 변함이 없지요) 유사역사학 추종자 여러분들의 패턴은 바뀐 것이 하나 없으니 참 ....
아 이쪽에서 그쪽 억지주장 받아들여서 환단고기 등 유사역사학 짱짱맨이라고 말하는게 그게 그쪽 업계에서 말하는 소통의 의미인가보죠?
이건 뭐 인류를 카오스 신들의 의지에 굴복시키겠다는 미니어쳐 게임 워해머40K의 카오스데몬들을 보는 것 같네요. 환단고기와 그 유사역사학 사서 의지에 강단사학 지지자들과 일반인을 굴복시키겠다 ... 물론 저런 카오스데몬들도 발전하는데 유사역사학 추종자 여러분들은 항상 그 패턴 그대로라는게 다른 점이겠죠
※ 짧은 역사 이야기
전한 경제의 아들인 노공왕(魯恭王)의 후손인 유언은 중평(中平) 5년(188), 천하가 소란해지자 익주목 감군자사(益州牧 監軍刺使)를 자청하여 취임했습니다. 익주목이 된 유언은 이후 자칭 황건적을 칭하는 마상(馬相)과 그가 이끄는 군대를 격파하고 그리고 익주 전역의 토착 호족들을 회유하거나 혹은 죽이면서 익주를 장악했습니다.
이런 유언의 익주평정을 가능케했던 것은 일명「동주병(東州兵)」이라는 군사집단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유언은 익주목 감군자사로써 익주에 들어왔을 때 남양(南陽)과 삼보(三輔: 수도를 중심으로 하는 세 지역을 말했습니다. 이 삼보를 가리키는 지역을 다스리는 지방관을 경조윤*좌풍익*우부풍이라고 불렀습니다.)의 유민 수만 호를 거느리고 왔습니다. 유언은 이 유민들 중에서 날래고 힘쎈 장정들을 선발하여 「동주병(東州兵)」을 창설한 것이었습니다.
이 동주병은 유언과 그 아들인 유장이 익주 내의 토착세력들을 진압하고 동시에 익주를 다스리는데 근간 구실을 했습니다.
※ 익주는 겉으로는 평온해보였지만 내부적으로는 동주병을 중심으로 하는 남양과 삼보의 외래세력(이들 외래세력을 「동주과」라고도 불렀습니다.) 기존의 익주 토착세력간의 대립이 상당히 격화되고 있었습니다. 유비의 입촉(入蜀)의 배경도 이러한 유언과 유장 2대에 걸친 토착세력 억압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 출처 : 위진남북조사(이공범), 중국의 역사「진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