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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 시려 잠에서 깼다. 우측 아래 끝에서 두 번째 어금니다. 며칠 전부터 기미가 보이더니 오늘 아침 기어코 치통으로 발전했다. 일단 난 뒤척이며 애써 고통을 모른 척 해보았다. 지금 일어나기엔 밤새 내 체온으로 따뜻해진 이불 속과 일요일 오전이라는 시간이 아깝기 그지없었다.
“아프다.”
하지만 치통은 내게 주말의 사치를 허락하지 않았다. 나른한 이불 속에서 간신히 벗어난 나는 상비약이 남았는지 수납장을 열어 확인했다.
작년에 사두었던 진통제가 보였다. 아마 사내 단합회에서 스키장을 다녀오던 길에 사놓았던 것 같다.
-상품명 : xxx. 효능.효과 : 근이완제. 소염,소통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는..-
자세히 보니 진통제가 아니라 근이완제였다. 둘의 차이를 난 잘 모른다. 아무렴 비슷하지 않을까. 한 알을 뜯은 후 냉장고에서 찬물을 꺼내 같이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단 1초만에 내 행동이 얼마나 멍청한지를 깨달았다.
“으악!”
비명이 절로 났다. 난데없이 찬물을 뒤집어쓴 어금니는 반항의 뜻으로 내게 엄청난 고통을 선사했다. 초 단위로 덜덜 떨리는 신경통이 내게 색다른 공포를 선사했다.
주방 의자에 앉아 고통이 사그라질 때까지 머리를 식탁보에 비비며 양손으로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고통은 점차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이 고통에 익숙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 내가 왜 그때 나서 가지고.”
지난주 금요일 회사 회식은 유난히도 즐거웠다. 왜인지 모르게 술도 달았다. 불알친구 놈이 소개팅을 준비 중이라며 괜히 내 허파에 바람을 넣었기 때문일까? 창피한 이야기지만 그때만큼은 난 내 인생 가장 뜨겁고 청초했던 스무살로 다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물론 현실은 이제 불혹, 40이라는 숫자는 그냥 보기에도 무게가 느껴질 만큼 내가 그동안 먹은 세월의 양이 적지 않지만 말이다.
그렇게 술기운과 허파에 들어간 바람이 만들어 낸 호승심은 길가에서 자랑스럽게 연초를 태우던 고삐리들을 보자 단번에 불타올랐다. 이 위험한 불꽃은 나 하나로는 고삐리 네 명은커녕 하나도 상대할 수 없다는 1 더하기 1은 2와 같은 아주 당연한 상식까지도 불태웠는데, 덕분에 나는 성년이 된 이후 처음으로 흠씬 두들겨 맞아봤다.
나는 다시 침대 속으로 들어가 이불로 몸을 돌돌 말았다. 그때 나서지만 않았어도 두들겨 맞을 일도 없었을 테고, 그럼 이가 흔들릴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황금 같은 내 주말에 아파할 일도 없었겠지. 아니, 그 전에 불알친구 녀석이 소개팅 소리만 안 했더라면.
치통 하나가 나를 인생 자체를 부정하는 염세주의자로 만들었다. 이래서 건강이 중요한 거다. 난 이불을 뒤집어쓰고 세상 모든 것들을 하나씩 증오하기 시작했다.
충격에 약한 구강구조의 체계와 통증을 유발하는 신경조직들과 신경관까지 내 저주의 영역이 넓어질 때즘, 띵동- 벨소리가 울렸다.
“누.구.세.요.”
저 한마디에는 왜 금쪽같이 소중한 일요일에 찾아와 굳이 내 시간을 소비시키는 것이냐는 불만이 가득 담겨있었다.
“아 저기 이번에 407호로 이사 왔거든요. 떡 좀 드리려구요.”
순간 퍽퍽한 내 인생에 한줄기 살랑이는 봄바람이 부는 것 같다. 세상 청량하고 낭랑한 목소리가 인터폰을 타고 들려왔다. 주식으로 꾀꼬리 고기를 삶아 먹느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물론 생각으로만이다. 저딴 소리를 개그라고 뱉었다간 시덥잖은 아재라는 서러운 꼬리말이 박히게 된다.
철컥-. 난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내가 그렇게 지정한 적은 없는데 어쩌다 보니 금녀의 공간이 된 내 집 안에 처음으로 여성이 들어왔다. 문이 개폐되는 그 찰나의 시간동안 난 내 머리가 혹시 까치집이지 않을까, 혹시 눈곱이 끼어있지 않을까하는 온갖 걱정에 시달려야만 했다.
“아 제가 주무시는데 방해한 걸까요?”
생각대로 아리따운 여성분이었다.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407호 여성분은 내 몰골을 보자마자 단번에 내가 자다 깬 것임을 알아맞혔다.
“아뇨, 생명의 은인이신걸요.”
“예?”
당황하는 407호에게 난 황금 같은 주말에 치통으로 시작된 염세주의가 나 자신에 대한 허무로 번져 자살에 대한 충동으로까지 진화되는 걸 천사같은 당신이 찾아와 막았다와 같은 말 같지도 않는 긴 서술을 할 수 없었기에 그저 웃으며 407호가 든 떡을 가리켰다.
“와 맛있겠네요. 그릇은 나중에 돌려 드릴까요?”
“예?”
...떡을 담은 그릇은 일회용이었다. 당황한 407호 여성은 어색하게 미소지으며 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는 쪽팔림과 따뜻한 시루떡과 여전한 치통만이 남아 나를 괴롭혔다.
일하다가 심심해서 끄적거렸어요.
다음 진행 어떻게 하죠? 이세계로 보낼까요. 아님 사실 주인공은 자신도 모르는 힘을 가진 호구였다. 혹은 치통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함으로써 이야기를 마무리지을까요? 허허..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