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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W. 묘오렌
아버지가 죽었다. 열대야로 한창 잠을 이루지 못할 시각, 내가 항상 타는 4호선 첫 차에 몸을 던졌다고 들었다. 즉사였고, 고깃덩어리가 된 몸은 과연 ‘이것’이 나의 아버지가 맞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찌그러져있었다. 신원을 알려준 것은 지하철 바닥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소지품이었다. 10년도 더 쓴 낡은 지갑과 다 헤진 서류가방. 그것은 내 아버지의 것이 맞았다. 시신을 보고 나오며 나는 공허함에 가슴을 움켜쥐었다. 집에 돌아가 어머니의 얼굴을 봐야하는 공포가 나를 숨 막히게 했다. 아버지는 모든 책임을 나에게 옮기고 쉽게 떠나버렸다. 어쩌면 그토록 이기적일 수 있는가.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지 않은지 어느 덧 일주일이었다. 그러나 본인 이외의 모든 일에는 병적으로 무심한 어머니는 아버지를 찾을 생각은 하지 않았을 뿐더러, 비극이게도 나는 그녀의 성격을 빼다 닮아있었다.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돌아올 거라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우리 가족에게 그런 존재였다.
아버지의 죽음을 알게 된 저녁은 어쩐지 평소보다 더 무겁고 사람을 괴롭게 만드는 분위기였다. 동네의 작은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나의 어머니는 시도 때도 없이 자살시도를 하는 정신병자였고, 그날도 어김없이 욕조에 앉아 손목의 핏줄을 끊어놓으려고 하는 것을 겨우 뜯어말린 참이었다. 모든 것이 지긋지긋해진 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어머니의 뺨을 때렸다. 붉어진 뺨의 어머니는 죽은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한참이나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를 들지 않은 반대쪽 손에는 아직 어머니에게서 빼앗은 커터칼이 쥐어져있었다. 할머니에게서 온 전화였다. ‘아, 아가. 지금 뉴스보고 있니?’ 내 시선이 TV를 향했다. 9시뉴스였다. 50대중반의 남자가 지하철을 향해 투신자살했다는 아나운서의 말이 들렸다. 할머니가 뭐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직감적으로 저 남자가 나의 아버지라는 사실만 온몸에 전율이 흐를 정도로 느끼고 있었을 뿐이다.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났다. 장례식을 하던 도중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버지는 이미 회사에서 해고를 당했다고 한다. 돈을 벌어다주는 기계에서 이젠 살아있을 가치도 없는 기계가 되었다는 사실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한 것이라는 사람들의 수군거림도 들려왔다. 나는 그것을 인정했다.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선택은 아주 탁월했다. 어쩌면 그의 인생에서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을 지도 몰랐다.
열대야. 무더운 밤. 어머니의 오열을 들으며 나는 잠이 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울음소리는 내 고막과 심장을 찢어서 죽여 버리기라도 할 듯 끊임없이 들려와 결국 나는 대책 없이 집을 뛰쳐나와 달렸다.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숨이 막혔다. 마치 물속에서 나를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들어갔다.
간신히 내가 걸음을 멈춘 곳은 지하철 4호선이었다. 정확히 아버지가 몸을 던진 그곳. 나는 그곳에 멈춰 서 한참동안 숨을 고르고 있었다. 곧 첫차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밝은 두개의 라이트가 나를 잡아먹을 듯이 빛나고 있었다. 나는 히죽 웃었다. 그리고 나의 몸을 내던졌다.
*
잠이 오질 않아서 쓴 조악한 조각글.
묘오렌은 제가 블로그에서 쓰는 이름이에요: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