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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생활이 날 병들게 했다.
게시물ID : gomin_176098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초코브라우니
추천 : 11
조회수 : 1455회
댓글수 : 19개
등록시간 : 2018/11/06 18:05:22
(일기장에 있는 거 가져와서 반말체로 되어 있어요.양해 부탁드려요.)
 
도시에서 살다가 가세가 기울어져
깡촌으로 이사가 15년 넘게 살았었다.
 
버스 한 번 타려면 한 30분은 걸어야만 했던 것 같다.
 
진흙길 양 옆으로는 드넓은 논밭이 펼처져 있었고
그 30분 걸음을 반지름으로 돌려서
약 150호의 가옥들이 사방에 산재해 있었다.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집 안이 난리가 나 있었다.
어머니는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울고 계셨고
아버지는 단단히 화가 난 표정으로 날 노려 보셨다.
 
"너 왜 동네 어른들 보고 인사도 안 하고 다녀?"
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내가 등교길에 동네 어른을 보고도 인사를 안 했다는 거다.
누구누구네 자식 가정  교육이 잘못돼서 예의가 없다는 소리가 돌았단다.
 
나는 보이는 족족 인사했었다.
병석이네 집네 논이 길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한 가운데서 일하시는 병석이 아버지를 내가 시야에서 놓친 거 같았다.
 
"동네서 안 좋은 말 돌면 여기서 못 산다.앞으로는 무조건 어른들 보면 인사드려라.
다음에 이런 일 발생하면 용서 안 할 줄 알아."
 
아버지의 경고는 무서웠다.
 
다음날부터 나는 인사 기계가 되어 등교길,하교길마다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평균적으로 한 번에 약 30회가 넘는 인사를 했었던 것 같다.
하교길에는 더 많은 인사를 해야만 했다.
한 번은 세어보니 정류소에서 집에 올 때까지
30분 동안 58회 머리 숙여 인사를 했었다.
 
조심한다고 했지만 사단은 일어나고야 말았다.
그날은 왠지 목이 너무 말랐었다.도시락 반찬으로 어머니가 황석어젓이 듬뿍 들어간 충각 무김치를 싸 주셨고
급우들이 모여서 도시락을 먹는 와중에 그 무김치는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가 싸 주신 곰 삭은 황석어젓 무김치를 부지런히 입에 넣었고
그리고 사그덩사그덩 소리나지 않게 깨물어 녹여 먹으면서
그 부피를 다른 아이들이 눈치 못 채게 줄여야 했다.
 
 
그래서일까.집에 가서 빨리 물을 먹고 싶었다.
그날 따라 오가는 길에 어른들이 자주 보였고 얼추 잡아도 50회가 넘게 머리 숙여
인사를 한 터였다.
 
집에 도착해서 뿌듯한 기분으로 우물물을 길어 먹으려는 순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버지의 손이 날라왔고
난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지고 말았다.
 
땅바닥에 널브러진 상태에서 올려다보니
진격의 거인에 나올 법한 덩치 큰 괴물이 광분해서 날 뛰고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괴물은 솥뚜껑 같은 주먹과 발을 무차별적으로 누워 있는 나에게 쏟아붓기 시작했다.
 
"내가 인사하라고 했어 안 했어? 어른 말이 말 같지 않어? 엉?"
나는 맞고 맞고 또 맞았고
밟히고 밟히고 또 밟혔다.
기절했다 깨어나기를 반복하면서 떡죽이 되도록 쳐 맞고 밟혀야만 했다.
그 때 내 나이 11살이었던가..그쯤으로 기억한다.
그 때는 그랬다.야만의 시대였다.
 
나중에 어머니께 들었다.
내가 등교길에 한 어르신에게 인사를 안 했단다.
철규네 할아버지가 논에서 피 뽑다가 둔치 떡갈나무 아래서
잠시 쉬고 있었는데
내가 그걸 미처 못 보고 지나친 거였단다.
 
어버지는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발생하면
마빡을 밀가루 반죽으로 만들어버리겠다고 경고하셨고
나는 살기 위해서 그 후 15년 동안 인사의, 인사에 의한, 인사를 위한 사람이 되어 갔다.
조금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았다.
단 한명도 놓쳐서는 안 되었다.
아침에 50번,오후에 50 번 이상의 머리 숙임은 하루도 빠짐 없이 계속 되어야만 했다.
 
15년 넘게 이런 시골 생활은 계속 되었고
난 이웃 어른들에게서 참 예의바른 아이란 칭찬을 듣는 대신
상상력이 말소된 마네킹이 되어 있었다.
남을 의식하는 삶,남에 좌우되는 삶,남에게 휘둘리는 삶을 사는 바보가 되어 있었다.
 
시골 생활은 정신적으로 날 병들게 했다.
 
너무 길어서 나중에 시간 되면 그 후의 일에 대해서 쓸께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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