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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판사님께 보내는 편지
게시물ID : panic_994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r.사쿠라
추천 : 5
조회수 : 191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8/10/29 23: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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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본 작품은 PC 감상을 권장합니다.
 
 
 
 
 
 
 
 
 
 
맥스웰 판사님께
 

판사님, 판사님께선 이 편지를 그저 위선의 탈을 쓰려는 악마의 3류 소설로 여기시리란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이 억울함과 비통함을 마지막 순간에라도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부디 이 편지를 읽어주십시오.
 
이 모든 일들은 그 작고 끔찍한 기념품에서 시작됐습니다. 그것은 찰랑찰랑한 금발을 기르고 분홍 리본을 그 머리에 끼운, 하늘하늘한 드레스의 어여쁜 아가씨 인형이었습니다. 골동품처럼 고귀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정말 아름다운 인형이었습니다. 하지만 플라스틱도 나무도 아닌 석회암 같이 이상한 재질에 썩은 물고기의 것과 같이 생동감 없던 그 푸르른 유리 눈알이 정말 마음에 걸렸습니다. 프랑스 출장을 가느라 딸의 첫 번째 생일을 함께해주지 못한 남편이 미안한 마음에 사다 준 선물이었지요.
 
, 판사님. 제가 이 인형을 보자마자 바로 태워버리지 못한 죄에 대해서 부디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인형이 초래할 비극은 아마 하나님께서도 미처 다 알지 못하셨을 겁니다.
 
남편은 요람 안에서 고무 오리와 네모난 블록을 만지작거리며 노는 리지에게 그 인형을 건네주었습니다. 그 나이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늘 그렇듯이, 조그만 리지에게 그 자신만큼 커다랗고 푸근한 인형은 그야말로 신세계였을 것입니다. 리지는 그 인형을 꼬옥 끌어안았습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저는 보고야 말았습니다. 보고도 못 본 척 했습니다. 보석처럼 찬란히 빛나던 리지의 눈이 순간 검은 물감을 칠한 유리구슬처럼 죽은 듯 보였던 그 순간을 말입니다.
 
, 판사님!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제가 그 흉측한 악마가 리지에게 안기는 순간 바로 빼앗아들어 태워버리지 못한 죄에 대하여 용서해주십시오. 그것의 덫에 빠진 순간 리지의 눈빛을 제대로 보았음에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제 죄에 대하여 제발 용서하여주십시오.
 
리지는 그날 이후로 그 인형에게서 한시라도 떨어지는 법이 없었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목욕을 할 때도 그 인형과 끊임없이 붙어있었습니다. 제가 리지를 안으려 할 때면 리지는 마치 괴물에게 끌려가기라도 하는 것 마냥 울며불며 거부했습니다. 때로는 이유식까지 거부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전에는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죠.
 
, 판사님. 저는 너무나도 불안했습니다. 당시까지는 그저 리지가 저 인형 때문에 정서발달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하는 일차원적인 걱정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제겐 크나큰 불안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리지가 낮잠을 자고 있을 때였습니다. 리지는 언제나처럼 그 프랑스 인형을 끌어안고 요람 안에서 누워 자고 있었습니다만, 어째 자는 폼이 리지가 인형에게 눌리는 폼이었지 뭡니까? 저는 불안한 마음에 처음으로 그 인형을 리지에게서 빼앗았습니다.
 
순간, 리지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는 도저히 갓 두 살 난 아기라곤 생각할 수 없는 고양이 같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저를 쏘아보고는 떠나가라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그때부터 전 그 인형을, 그 악마를 적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악마로부터 리지를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리지는 되도 않는 몸부림과 울음, 그리고 얼마 나지 않은 이빨로 제 팔을 물었습니다. 전 그에 맞춰 울며 달려드는 그 2살짜리 아이에게 끝없이 안 돼!”하고 외치며 인형에게서 떨어트려놓고자 싸웠습니다. 결국 아이는 30여 분 정도 울더니 힘이 빠져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판사님, 저는 그때라도 그 인형을 빨리 태워버렸어야 했습니다. 저는 어느 정도 후유증이야 좀 남았겠지만, 얼마 안 가 정상적인 가정으로 돌아와 살아갈 수 있는 행복과 나아가 이 세상 모두의 평화와 행복을 지킬 수 있었지만 그 기회를 저 멀리 차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이만 힘이 빠진 건 아니었습니다. 그때는 얼음이 녹아 갓 따뜻해지기 시작하는 3월 말이었습니다. 밀려오는 춘곤증과 작은 사투의 피로로 인해 저 또한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꿈을 꾸었습니다. 아주 끔찍한 꿈을.
 
꿈속에서 난 중세 유럽의 한 귀족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것도 지역 유지 정도 되는 보통 귀족이 아니라 대단한 명문가로서 현실의 나의 생활로썬 상상할 수 없는 크나큰 부를 누렸고 고모는 한 나라의 여왕 쯤 되는 높은 직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내 생일날, 먼 친척으로부터 어여쁜 인형을 하나 선물 받았습니다. 그랬습니다. 그 인형이었습니다. 친척이 내게 줬던 건 그 악마 같은 인형이었습니다. 나는 어느새 이 인형에 푹 빠져 언제나 같이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의 무언가가 인형의 무언가와 바뀌어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는 느끼지 못했지만, 이렇게 꿈을 꾸고 있는 나는 얼마든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은 흘러가 나는 열 몇 살의 나이로 비슷한 나이의 귀공자와 호화로운 결혼식을 올렸고, 정신을 차려보니 아이가 대여섯 명이나 되는 중년의 나이에 이르렀습니다. 그때쯤에는 인형은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고 는 나와 인형의 무언가가 완전히 바뀐 걸 눈치 챘습니다. 그렇게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들은 이후, 나는 끝없이 늙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녀가 제게 무언가 실수를 했습니다. 저는 하녀를 벌주다가 하녀의 피가 제 얼굴에 튀었고, 그 피가 제 피부에 흡수되었던 것을 느꼈습니다. 흡수된 곳의 피부가 탱탱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피가 필요하다. 나는 처녀들을 꾀어 남편도 없이 홀로 남은 내 성으로 불러들여 손수 만든 상상도 못 할 고문 기구로 피를 짜 내 그 피로 목욕을 했습니다.
 
나는 그 악몽에서 바로 깨어났습니다. 깨어나 보니 리지는 어느새 요람을 빠져나와 저 인형을 끌어안고 방실방실 웃어댔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악한 표정으로요.
 
, 판사님! 저는 제 아이가 너무나 두렵습니다. 그 두려움은 비단 제 아이에 대한 두려움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인형, 그 인형이 초래할 결과에 대한 제 안의 본능적인 두려움이었습니다.
인형과 아이를 꼭 떨어트려야한다는 생각에 저는 이틀 후, 흉포해진 리지를 일리노이의 친정댁으로 보냈습니다. 어머니는 심리치료사 일을 하셨던 적이 있었기에 걱정하지 말라며 오히려 자진해서 적극적으로 리지를 맡아주셨습니다.
 
이제 인형을 처리해야했습니다. 남한테 팔거나 줄 수는 없었고 이런 골동품을 함부로 태웠다간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에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인형은 버릴 때마다 돌아와 있었습니다. 분명 쓰레기 수거차량에 올라탄 것을 보았는데도 쓰레기차가 쓰레기를 수거한 다음날이면 쓰레기통 안에 덩그러니 놓여있었습니다. 나오지 못할 상자에 넣어 꽁꽁 묶어서 버려도, 몇 마일은 떨어진 이웃마을까지 나가서 버려도, 버리면 버릴수록 집안 어디에서 발견되거나 초인종을 딩동 누르며 현관 앞에 나타는 둥, 악몽을 꾸고 일어나면 머리맡에 놓여있었습니다.
결국 태우기로 결심한 날 아침이면 인형은 어디론가 사라져있었고, 저녁께가 되면 엎어진 휘발유통, 박살난 성냥, 폭발한 부탄가스 라이터 앞에서 께름칙한 미소를 지으며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그 인형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파고들기로 했습니다. 우선 악몽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인형과 그 악몽들이 과연 관련이 있는가, 악몽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악몽에 대해 기억나는 것은 대체로 제가 처음에 꾼 꿈의 끝자락과 같았습니다. 학살, 시체, 그리고 ’. ‘였습니다. 단지 밖에 기억이 안 납니다. 그래서 꿈 일기라는 것을 써 보기로 했습니다. 띄엄띄엄 쓰이던 악몽의 기억들은 결국 하나의 완전한 이야기가 되어 꿈속에서 볼 수 있었고, 나아가 루시드 드림까지 성공해냈습니다.
만들어낸 가장 완전한 이야기들 중 하나입니다.
 
나는 20세기 초 독일에서 태어난 남자아이였습니다. 아버지가 직장을 이리저리 옮기던 터라 저도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오가며 자라났습니다. 청년이 돼갈 무렵, 저는 집안 창고에서 우연히 오래된 나무상자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사 오신 골동품으로 와인 상자보다 1.5배는 굵은 사각형 상자였는데, 붉은 노끈으로 묶여있었습니다. 저는 그 상자를 열어 그 안의 내용물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그것은 하늘하늘한 금발 머리에 분홍 원피스를 입은 푸른 눈의 여자아이 인형,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상한 백색에 오래 된 느낌의 그 인형은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는 처음 꾼 꿈에서 느꼈던, 나의 안의 무언가와 인형의 무언가가 서로 뒤바뀌는 그런 감각을 느꼈습니다. 급속도로 바뀌어가는 나와 인형의 무언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어느새 나치의 당원이 돼 있었고 무언가가 완전히 뒤바뀔 무렵 나는 유대인 학살을 자행하며 그 피를 마시는 악마가 돼 있었습니다. 이후 독일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했고 저 또한 남미로 도피했습니다만, 결국 1960년에 붙잡혀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랬습니다. ‘는 그 유명한 학살자, 아돌프 아이히만이었던 것입니다.
다른 꿈들의 내용도 비슷했습니다. 내가 선량한 어린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그 악마의 인형과 접하고, 급기야는 타락해 피를 갈구하는 악마가 되어버리는 내용.
 
사건’  일주일 전날 꾼 꿈에는 한 살 정도 돼 보이는 갓난아기가 되었습니다. 그 아이의 엄마는 인형을 빼앗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썼지만 결국 아이와 인형 안의 무언가는 완전히 뒤바뀌고, 아이는 어디론가 떠나게 되었습니다. ‘는 차창 너머로 분명히 보았습니다. ‘일리노이라 쓰여 있는 표지판을요. 그 아이는, 리지였습니다.
 
그리고 자각몽이 시작되었습니다. ‘는 리지와 분리되어 인형의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 판사님! 그 안은 마치 그분께서 강에 흘려보내신 돼지 떼와도 같은 무언가로 우글우글했습니다. 저는 인형의 안에서 빠져나가고자 애를 쓰다가 결국 빠져나왔습니다만, 발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발로 그들이 타고 올라옵니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전화벨이 울려왔습니다. 수화기를 들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헬가 이모였습니다. 어머니의 부고였습니다.
어머니는 리지에게 타줄 분유를 찾기 위해 높이 있는 찬장을 뒤지다 의자에서 떨어지셔서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답니다.
 
부랴부랴 장례식을 끝내고 리지는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영정사진은 TV 오른쪽에 놔두었습니다만, 그걸 보며 입맛을 쩝쩝 다시는 리지를 본 저는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리지가 아니었으니까요. 아기의 얼굴이 아니었으니까요. 앞니보다 빨리 자라난 송곳니 둘, 영락없이 작은 악마였습니다.
밤이 되니 리지는 어느새 그 인형을 끌어안고 요람에 누워있었습니다. 심연 저 편에서 미소 짓는, 미지의 악마의 미소를 지으면서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때의 저는 너무 지쳐서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꿈에서 보았습니다. ‘그들을요. 인형 안에서 바글거리는 수억의 악마들을요.
 
우리의 먹이가 되어라. 우리의 가축이 되어라. 우리의 새로운 몸이 되어 이 세상을 바쳐라.”
 
깨달았습니다. 이 인형 안에는 악마들로 가득합니다. 이 인형 자체가 하나의 림보(Limbo)입니다! 다른 세상의 악마들이 인형에 모여들어 우리의 세상을 넘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을 빼앗고, 우리를 잡아먹어 결국 이 지구를 빼앗을 것입니다!
 

- 엔리카 올리비아
 

 

맥스웰 판사님께
 

판사님, 지난날 급작스럽게 황당무개한 편지를 받으셔서 많이 놀라셨으리라 생각되어 심심한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스런 리지를 죽인 것에 대한 하나님의 벌로 저는 더더욱 미쳐가고 있습니다.
저를 그 누구도 용서치 않으리란 걸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비를 베풀어 선처를 해주신 판사님께 감사를 드리며 다시금 최근 보낸 편지에 대해 사과드리는 의미로 이 소포를 보내드립니다.
 

-엔리카 올리비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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