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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더쿠] 2002년 민주당 국민경선 상황을 설명해줄게
게시물ID : sisa_111804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순은으로정화
추천 : 21
조회수 : 1120회
댓글수 : 21개
등록시간 : 2018/10/21 09:25:32
더쿠 유저분의 주관적인 글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2002년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지 잘 설명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민주당은 사정이 좋지 않았어


디제이는 레임덕이고 민주당은 인기없었고 의회를 장악한 한나라당?의 이회창이 차기 대통령이라고 대세론이 세워졌지


지지율도 제일 높았고


그래서 민주당 브레인들이 판세를 뒤집기 위해 기획한 게 미국처럼 국민경선을 하는 거였어


지금이야 프라이머리 방식의 국민경선이 자리잡혔지만 그땐 그런 거 없었거든


처음 시도한 경선방식은 완전국민경선도 아니고 대의원 20 당원 30 일반국민 50의 비율로 투표권주는 방식이었지


그때 국민경선에 신청했던 수가 190만명인데, 이 사람들이 다 투표한 게 아니야


위의 비율에 맞추기 위해 35000명을 추첨해서 그 사람들에게만 투표권을 준 거야


게다가 지역별 인구비례도 맞춰야 했어


2007년 경선처럼 신청하면 다 투표권 주고, 특정지역(전북)에서 신청자가 몰려도 그거 다 받아준 그런 방식이 아니야


2007년 당시에 박스떼기가 횡횡했던 게 저런 방식때문이었어, 신청자 하나하나가 득표에 심각하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지


2002년은 그게 아니었다고


특정지역에서 신청자가 몰려도 그 지역에 할당된 숫자만큼만 추첨해서 뽑았어


박스떼기가 의미가 없었던 거야


애초에 국민경선이 처음이었기때문에 꼼수의 노하우가 쌓일 수 없었던 거지


경선 홍보와 참여 독려 차원에서 ㅇㄷㅎ처럼 했던 사람이 혹시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게 경선결과에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었어


그러니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고


게다가.....


조직을 동원할 수 있었던 건 이인제 측이었지 노통 쪽은 아니었어


이후의 대선활동때 노사모가 크게 활약을 했지만, 경선때는 그렇지 않았다고


물론 열성지지자들이 움직여줬지만 소수였어


광주경선 때 승리하면서 노풍이 불었고, 사람들이 주목하고, 그래서 투표권자들의 표심이 움직였고,


그렇게 경선에서 승리해 대선후보가 되면서 노사모가 거대해지기 시작한 거야


당시 소수의 노사모가 했던 건 대의원 당원들에게 손편지쓰기였어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였기에 직접 설득했던 거야


그래서 광주에서 이길 수 있었고


그거 말고는 경선장에 가서 투표하러 온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찍어달라고 유세했던 거


마타도어 스티커 붙으면 떼러 다닌 거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이기는 결과 나왔던 신문 배포했던 거


노사모가 한 건 이런 거였어


노무현도 박스떼기 안했을 거 같냐는 발언이 노사모에게 얼마나 모욕적인지 ㅇㄷㅎ은 모를 거야

출처 https://theqoo.net/index.php?mid=politics&document_srl=897464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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