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민주당은 사정이 좋지 않았어
디제이는 레임덕이고 민주당은 인기없었고 의회를 장악한 한나라당?의 이회창이 차기 대통령이라고 대세론이 세워졌지
지지율도 제일 높았고
그래서 민주당 브레인들이 판세를 뒤집기 위해 기획한 게 미국처럼 국민경선을 하는 거였어
지금이야 프라이머리 방식의 국민경선이 자리잡혔지만 그땐 그런 거 없었거든
처음 시도한 경선방식은 완전국민경선도 아니고 대의원 20 당원 30 일반국민 50의 비율로 투표권주는 방식이었지
그때 국민경선에 신청했던 수가 190만명인데, 이 사람들이 다 투표한 게 아니야
위의 비율에 맞추기 위해 35000명을 추첨해서 그 사람들에게만 투표권을 준 거야
게다가 지역별 인구비례도 맞춰야 했어
2007년 경선처럼 신청하면 다 투표권 주고, 특정지역(전북)에서 신청자가 몰려도 그거 다 받아준 그런 방식이 아니야
2007년 당시에 박스떼기가 횡횡했던 게 저런 방식때문이었어, 신청자 하나하나가 득표에 심각하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지
2002년은 그게 아니었다고
특정지역에서 신청자가 몰려도 그 지역에 할당된 숫자만큼만 추첨해서 뽑았어
박스떼기가 의미가 없었던 거야
애초에 국민경선이 처음이었기때문에 꼼수의 노하우가 쌓일 수 없었던 거지
경선 홍보와 참여 독려 차원에서 ㅇㄷㅎ처럼 했던 사람이 혹시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게 경선결과에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었어
그러니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고
게다가.....
조직을 동원할 수 있었던 건 이인제 측이었지 노통 쪽은 아니었어
이후의 대선활동때 노사모가 크게 활약을 했지만, 경선때는 그렇지 않았다고
물론 열성지지자들이 움직여줬지만 소수였어
광주경선 때 승리하면서 노풍이 불었고, 사람들이 주목하고, 그래서 투표권자들의 표심이 움직였고,
그렇게 경선에서 승리해 대선후보가 되면서 노사모가 거대해지기 시작한 거야
당시 소수의 노사모가 했던 건 대의원 당원들에게 손편지쓰기였어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였기에 직접 설득했던 거야
그래서 광주에서 이길 수 있었고
그거 말고는 경선장에 가서 투표하러 온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찍어달라고 유세했던 거
마타도어 스티커 붙으면 떼러 다닌 거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이기는 결과 나왔던 신문 배포했던 거
노사모가 한 건 이런 거였어
노무현도 박스떼기 안했을 거 같냐는 발언이 노사모에게 얼마나 모욕적인지 ㅇㄷㅎ은 모를 거야
출처 | https://theqoo.net/index.php?mid=politics&document_srl=8974641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