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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눈팅만 하던 제가 아이디 만들어 글하나 올립니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나의 답으로 답하기는 어렵겠지만 우리는 민주주의를 다수의 사람이 합리적 결론을 내는 과정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의 과정에는 규칙이 있기 마련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그냥 다수결 원칙이나 평등 혹은 자유로운 토론같은 것과 같은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런 것은 제한규칙이 전혀 없는 경쟁이 가장 좋은 결과를 낸다는 주장이나 마찬가지로 현실과는 거리가 멀고 비합리적인 이야기입니다. 참고로 제한규칙이 전혀 없다는 것은 총칼로 상대방을 제압해도 된다는 겁니다. 군대를 장악한 정부가 국내의 모든 상수도를 차지하고 물한병에 10만원에 팔아도 된다는 겁니다.
아무리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도 유치원생이 대선에서 투표할 권리를 가져도 된다고 주장하고 모든 마약류와 무기의 사용을 개인의 자유로 두자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즉 마약이나 무기를 의사나 군인같은 전문가가 아니라 누구나 평등하게 쓸 수있게 하자고 하지는 않는다는 거지요. 그래서 민주적 결정시스템에 참여하는 데는 기본적인 자격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합리적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믿는 겁니다.
여기에서 그 자격을 매우 까다롭게하면 그것은 엘리트주의나 귀족정치가 됩니다. 한문같은 걸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세상에서 한문을 알고 유학을 아는 사람이나 정치를 논할 자격이 있다고 말하면 저절로 엘리트주의가 되지요. 미디어를 장악하고 일반 사람들은 권력자와 학벌높은 교수들이 하는 이야기나 듣게 하면 그것도 엘리트주의입니다.
반대로 그 자격을 한없이 낮추면 중우정치가 됩니다. 아니 우리가 아는 어떤 정치도 못될 겁니다. 그건 내 맘에 안들면 주먹을 휘두르는 토론 문화니까 토론도 아닙니다. 토론을 위해 광장에 나가면 물리적 폭력을 쓰는 깡패가 나오거나 정신 이상자가 나와서 습격을 하는 판이니 토론의 광장에 사람들이 무서워서, 더러워서 나오질 않습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는 것을 정치라던가 민주주의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겁니다.
자격요건을 너무 높이면 애초에 토론의 장에 매우 편협된 정보밖에는 들어가질 않습니다. 복잡한 세상에서 소수의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정보는 설사 그들이 매우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한계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게 오늘날 독재가 통하지 않는 이유고 집단적 의사결정인 민주주의를 하는 이유입니다. 독재를 하면 중앙이 모든 걸 결정하게 되는데 전체 사회가 너무 복잡해서 결정이 느리거나 결정이 말도 안되게 엉터리가 되니까요. 소수의 사람만 부패해서 장님이 되면 전체 사회가 자살의 길로 달릴 수도 있습니다. 나중에 좋은 뜻이었다며 사과로 끝날 수준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격에 대한 요구를 모두 버리면 아무 것도 안됩니다.
문제는 우리 시대에 맞는 민주주의와 참여의 자격은 뭔가 하는 겁니다. 그것이 집단적, 사회적 의사결정의 합리성을 결정할 겁니다. 세상에는 자격 운운하면 기분나빠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엘리트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남들을 무시하고 차별할 때 자격이야기를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긍정할만한 기초적인 자격들은 있습니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문자 해독능력과 우리 사회에 대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언어로 의사소통을 합니다. 그리고 문자는 보다 추상적인 정보를 담는데 있어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언어로 의사소통이 안되고 읽고 쓰기가 안되는데 그 사람이 사회적 결정을 하는데 있어서 합리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까요?
또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장님에게 두개의 그림을 주고 어느 쪽이 더 아름답냐고 물을 수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결정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 최소한의 경험은 있어야 옳은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 사회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는 것이 분명한 사람이 한국에서 투표권을 가지면 그것이 선거 결과를 더 합리적으로 만들어 줄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죠.
저는 이것보다는 조금 더 복잡한 참여의 조건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의사결정 시스템을 이해할 능력입니다. 이것은 다르게 말하면 게임의 법칙을 이해하는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교통법을 모르면 운전할 자격이 없는거나 마찬가지죠. 그런 사람은 아무리 운전능력이 뛰어나도 다른 사람에게 위협이 되니까요.
그중에서도 가장 기초적인 이해능력은 내가 지금 집단적 의사결정이라는 게임에 참여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자각하는 능력입니다. 자신의 권리와 의무가 그것에 달려 있으니까요. 장기두는 사람들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은 생각은 할 수 있지만 자기가 끼어들어 장기말을 옮겨버리면 안됩니다. 그러면 비난을 받게 됩니다. 자기는 구경하는 사람이지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장기를 두는 사람은 답을 몰라도 자기 차례에는 게임을 해야 하고 게임에 지면 자기가 졌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자기 게임을 하다가 갑자기 구경꾼처럼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해서는 안됩니다. 그 게임의 승리와 패배는 자신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집단적 의사결정에 참여한다는 것은 그 결과에 승복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회적 결정이란 언제나 개인적 결정보다 뛰어난 것은 아닙니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사회도 한계를 가지니까요. 하지만 투표를 하고 경선을 했는데 그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무조건 승복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애초에 그런 게임에 끼어들 자격이 없는 겁니다. 결국 모두 내가 옳으니까 내맘대로 하겠다는 것밖에는 안되니까요. 이런 경우는 참여가 곧 기만입니다. 위조지폐들고와서 도박하는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사회적 결정이란 언제나 개인적 결정보다 뛰어난 것은 아닙니다. 사안 사안에 따라 그 반대일 수도 있으며 우리는 때로 어떤 사회적 명령에 불복합니다. 개인적으로 사회적 결정보다 더 큰 가치가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지난 촛불집회는 대체로 합법시위였지만 사회적 항의를 모든 법을 하나도 어기지 않고 할 수 있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런 거라면 경찰이 줄하나 긋고 여기 넘으면 안된다고 하면 그걸로 항의는 끝일 겁니다.
사회적 불복종이란 그 항의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지금 미쳤다고, 비정상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우리 사회가 미쳤다거나, 지금의 정부가 미쳤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런 불복종행위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그걸 통쾌하게 생각하고 훌룡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기분좋은 일이 될 수는 없습니다. 자기가 미쳤다고 말하는데 기분좋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사회적 불복종이란 이런 의미에서 명령하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미쳤으니 내 말을 들으라고 하는 겁니다. 나는 이 시스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이게 민주적 과정이라는 게임의 기초적 법칙들입니다. 우리는 규칙을 지키고 참여해서 그 결과에 승복하는 겁니다. 불복종으로 나갈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 상대방이 기분나빠하는 일이 있어도 놀라서는 안됩니다. 그건 마치 상대방의 얼굴에 침을 뱉고서 왜 기분나빠하냐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사회적 불복종이란 결국 혁명이고 쿠데타고 세뇌인 겁니다. 그런 걸 당한 쪽에서는 반대로 그것에 지나친 관용을 보이는 것이 바보인 겁니다. 이번 촛불혁명에서도 군부구데타 모의가 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런 구데타모의를 대충 넘어가자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민주주의에 참여할 자격이 없는 겁니다. 민주적 의사결정시스템이란 그런 걸 관용하면 결국 망하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는 일반론이었습니다만 아마도 여기까지 참고 읽으신 분들은 제가 무슨 이야길 하려는지 이미 알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최근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재명에 반대했던 사람들의 대다수가 민주적 토론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재명을 반대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그들의 행동을 단순히 의견의 차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보다 그들은 구데타를 했고 실패한 겁니다.
이재명에 반대하는 분들 (줄여서 이반파라고 부르겠습니다)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동안 세상에는 두가지 현상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그분들이 반대하는 이재명에 관련된 선거와 경선에서 이반파는 모두 패배했다는 겁니다. 이반파는 정말 뜨겁게 인터넷에서 자기 주장을 했지만 선거결과는 그와 달랐습니다. 이재명은 경선에서 이겼고 지방선거에서도 이겼습니다. 이반파는 자칭 문재인 지지자들인데요. 그들은 민주당도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이반파가 반대하던 이해찬이 당대표에 뽑혔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지지하던 김진표는 2등도 못됐습니다. 어떻게도 변명할 수 없는 패배였습니다.
또하나의 현상은 이반파들이 활발했던 커뮤니티나 게시판은 모두 활동이 저조해 졌다는 겁니다. 글이 올라오지 않고 조회수가 줄었습니다. 이반파들과 노무현의 노풍과의 가장 큰 차이가 이겁니다. 노풍이 불때 사람들은 오히려 참여가 늘었습니다. 감동과 공감이 있었습니다. 노풍에 편승한 사이트들이 오히려 트래픽이 올랐죠. 노하우나 서프라이즈같이 애초에 친노를 표방하며 만들어진 사이트들이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물론 노무현이 승리했습니다. 이반파들이 활발해진 이후에는 좀 심하게 말하면 한국의 인터넷 시사 게시판들이 종말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어딜가나 뚜렷하게 게시판참여율이 줄어드는게 보였으니까요. 이반파는 자기들끼리 인기있는 커뮤니티를 만들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점령군처럼 이미 존재감있는 게시판들을 하나 하나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곳에서 저질싸움을 벌여서 게시판을 비활성화시켰죠.
이 두가지 사실들이 보여주는 결론중의 하나는 이반파들은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사실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동조하지 않는 분들은 많은 희생과 참을 성을 발휘했습니다. 이재명이라는 주제가 아니라도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정보채널이 이재명이슈로만 막혀 있었으니까요. 비슷한 일은 미투운동에서도 있었죠. 적폐청산이나 이명박비리척결을 외치고 싶은 사람들은 미투문제가 미디어를 장악하자 답답한 것도 있었습니다. 그것도 중요한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몇몇 사안들은 사실 사소해 보일때도 있었습니다. 악용되어 친정부인사만을 공격하는 무기가 되는 것같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참았죠. 그것도 아주 중요한 문제니까. 그들에게 무대를 사용할 기회를 주는 것은 성숙한 태도니까. 같은 혜택을 이반파들도 받았습니다. 몇달이나 계속해서 스피커와 무대를 장악했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했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패배였죠. 세상사람들은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인터넷 게시판만 보면 이재명이 꼴찌할 것같은 기세였는데 말이죠.
이반파들이 갖추지 못한 것은 승복하는 자세뿐만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 불복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도 모르는 태도를 취합니다. 자신들이 양보받았다는 생각이 없이 점령군처럼 구는 겁니다. 사회적 결정이 몇달이나 걸쳐서 나왔고 그정도면 이제 승복할만도 한데 거기에 불복을 한다면 최소한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기분나쁜 일이 된다는 것정도는 알아야 했을 겁니다. 그러면 자기들끼리 만든 사이트에서 자기들끼리 미래를 이야기하거나 이제는 좀 수그러들면서 다른 사람에게도 무대를 넘겨주는 매너를 보여야 했을 것이고 사람들이 불편해 하고 기분나빠했던 것에 대해 미안해 하는 자기반성이 있어야 했을 겁니다.
그런데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자기들 이외의 사람들을 미친 사람으로 몰았죠. 이반파가 휩쓴 인터넷은 욕설과 비아냥으로 가득찼습니다. 흑백론으로 가득찼습니다. 한번은 이반파의 어떤 분 쓴 글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이반파가 아닌 사람과 대화를 하다보니 한나라당 지지자들과 이야기하는 것같다고 하더군요. 그분은 이반파야말로 그렇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같았습니다. 사소한 것을 흑백론으로 몰고가서 침소봉대하고 결국은 이재명이 우주의 삼라만상을 다 결정하며 5년후 10년후를 자기는 명백히 예언할 수 있다는 과대망상에 빠진 것은 이반파입니다.
상황은 대칭적이 아닙니다. 사회적으로는 분명 소수파인데도 인터넷 게시판을 지난 몇달동안 점령하다시피한 것은 분명 이반파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분들은 타인들의 관용에 대해 감사해 하질 않더군요. 자기들이 오히려 핍박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같았습니다.
제가 민주주의의 자격이라는 글을 쓴 이유는 분명합니다. 한마디로 이런 분들이 토론에 끼면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이재명을 지지하거나 반대해서가 아닙니다. 심지어 남경필을 찍자고 해서도 아닙니다. 심지어 욕을 했다거나 비아냥거려서도 아닙니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으니까요. 사람이 가끔은 흥분해서 선을 넘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타인의 관용을 자신의 권리로 착각하는 분들은 영원히 마이크를 잡고 그걸 내려놓을 생각이 없는 겁니다. 벌써 몇달째인지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시시비비에 상관없이 이재명이야기 지겹다고 말하는데도 전혀 들을 생각이 없는 사람은 교통법이 뭔지 신경쓰지 않으며 나홀로 주행하는 운전자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재명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와 똑같이 굴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건 민주주의에 참여할 자격이 없는거지요.
이반파가 세상을 보면 세상사람들이 미쳐보입니다. 왜 사람들은 이재명을 보호해 주려고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이반파는 자신들은 작전세력이 아니라고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항변합니다. 하지만 이재명타도라는 목표를 위해서라면 자유한국당이 흥하는 것도, 민주당이 망하는 것도, 현여권을 지지해주는 범 지지층을 모두 폄훼하고 공격하는 것도 다 내맘대로 하고야 말겠다는 판단은 첫째로 실패한 쿠데타세력의 이데올로기고 둘째로 재벌개혁과 적폐청산과 이명박수사등에 여론이 집중되는 것을 피하고 싶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들어주는 행위였지요. 그것에 반하는 것이 여론이고 국민다수의 뜻이고요. 그러니까 그에 반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보면 이반파는 작전세력 아니면 미친 것같아 보이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는게 당연한 겁니다. 본래 민주적 의사결정의 틀 바깥으로 벗어나면 서로 미친 것같아 보입니다. 문제는 자기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에 있습니다.
저는 결과적으로 이반파는 고도의 이재명 지지자들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노풍이 불고 노사모가 생긴건 노무현에게 세상이 지나치게 불공정했다고 여겨서 였습니다. 이재명을 죽이고야 말겠다는 지나친 집착은 오히려 이재명에게 면죄부를 주고 무엇보다 넓은 지명도를 줍니다. 계속 이재명 뉴스를 나게 만들었으니까요. 이재명을 죽일 수도 없으면서 이재명을 계속 때리면 이재명은 오히려 더 유명해 집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재명에게 큰 관심은 없었지만 글마다 나는 이재명을 지지하지는 않는다라고 써야 할 것같은 분위기에 크게 발반심이 듭니다. 이게 이반파가 반들어 낸 고도의 이재명 지지효과가 아니면 뭐겠습니까. 현실은 분명히 저같은 사람이 국민 중 다수인데.
이렇게 긴 글 얼마나 읽으셨을지 얼마나 공감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오유의 눈팅에 불과합니다. 로그인도 안하고 눈팅만 하다가 최근에 그래도 분위기가 바뀐 것같아 지지를 표명하는 차원에서 아이디를 만들어 겨우 씁니다. 새로운 내용도 아닙니다만 오랜기간 답답했었습니다. 참여에는 자격이 필요합니다. 이재명을 반대하건 찬성하건 마찬가지입니다. 이재명 지지자들이 똑같은 일을 했어도 저는 똑같은 글을 썼을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지적하듯이 이재명을 지지하냐 반대하냐가 핵심이 아닙니다. 최소한의 참여의 자격을 파괴하는 것은 민주주의 자체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 말이 하고 싶어서 답답해하다가 겨우 이 글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