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버스를 타고 회화로를 건너면 면 단위 마을에 사는 친구들 집에 갈 수 있었습니다. 집에 있던 낫 하나 들고 그 놈들이랑 대나무 숲에 가서 아직 덜 영근 대나무나, 노란색으로 변해버린 대나무 하나 찍어다가 끄트머리에 흠집을 내서 어설픈 낚싯대를 만들었습니다. 나름대로 낚싯대라며 줄에다가 바늘 하나 매달고 물고기 한 마리 없는 웅덩이에 그 어린 낚싯대를 얹고는 이 소문, 저 소문 이야기했던 것이 제 첫 낚시에 대한 기억이네요.
10살 때엔 목포 앞바다에 나가 백부님 낚싯대를 빼앗아 아무렇게나 바다에 던지다가 낚시 바늘이 걸려서 끙끙대다가 결국 아버지께서 낚시 바늘을 끊어주셨던 기억도 나네요. 저는 어렸을 적, 비위가 무척이나 약해서 해산물을 잘 먹진 못했지만, 낚시에 대한 기억은 항상 즐거웠어요.
그리고 8~9년이 흘러서, 제가 대학에 합격한 날, 아버지께서 일을 하루 쉬시더니 새벽 중에 저를 차에 태워 나가시더라구요.
아버지께선 피로한 인생을 사셨습니다. 아직 영글지 못한 머리였지만 그때 아버지의 모습은, 세상 풍파가 처자식에게 쏟아지지 않게끔 혼자 그걸 다 맞으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는 걸 깨달아 슬픔과 자책감과 피곤함까지 모두 안고 있던 모습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선 제가 처음 보는 강가에 차를 멈추시곤 아직 비닐도 뜯지 않은 낚싯대를 넘겨주십니다. 반 바지 차림으로 왔었다간 종아리에 풀독이 옮을 게 뻔한 길을 따라서 강가에 도착했습니다. 아무런 장비 없이 그냥 부자가 앉아 낚싯대만 강가에 들여놓습니다.
세 시간이 지나도, 네 시간이 지나도 고기는 잡히질 않습니다. 스텐레스로 만들어졌을까 싶은 동네 가게에서 빵을 사와 아버지와 나눠 먹습니다. 별 다른 대화도 없이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렀습니다. 갑자기 아버지께서 입을 여셨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놀아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노는지 모르겠다."
그때 제 대답은 기억나지 않네요. 하지만 그 모습은 제가 본 아버지의 모습 중에서 가장 슬픈 모습이었습니다. 모진 풍파에도 버텨주던, 제가 가장 사랑하고 제가 가장 든든하게 여기던 거목이.. 이젠 힘들다고 말하는 모습을 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요즘도 더러 광주에 내려가면 아버지를 모시고 황룡강 낚시를 나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아버지께선 노는 법을 모르시는지, 그마저도 나가시질 않으십니다. 아버지께선 황룡강에 억지로 어린 저를 깨워 나가선 한 마리도 못 낚고, 빵이나 하나 겨우 먹여 보낸 게 미안스러워하십니다. 하지만 낚시가 물고기 낚으려고 하는 건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랑 별 말 없이 그냥 물안개 낀 황룡강을 봤던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다. 하하 하지만 전 빵을 싫어하니까 미리 도시락은 준비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