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레온(Leone). 고향 독법으로 읽으면 레오네. 아버지는 사르데냐 출신이었고 어머니는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자 2세다. 두 분은 아버지가 미국 여행을 가셨을 때 만나셨고, 아버지는 이탈리아에서 벌이던 사업을 접고 여기 미국으로 이민 왔다.
20대 때까진 꿈을 좇았다. 멋진 기타리스트가 되는 게 꿈이었다. 통기타를 매고 얼추 몇 년간 미국 전역을 험버트 험버트와 롤리타처럼 돌아다녔고, 길거리에서 컨트리 음악을 부르는 것으로 그날 먹고 살 돈을 벌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하느님은 내게 재능을 주시지 않았었고, 노래에는 동전보다 야유와 조롱이 더 많이 들려왔다. 텍사스에선 음악을 들을 사람이 없어 6일까지 굶어봤고, 할렘에서는 기타를 삼 분 정도 켠 것으로 맞아 죽을 뻔했다. 뉴올리언스에선 원래 오기로 했던 밴드가 오지 못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무대에 서봤는데 재즈가 아니었기에 온갖 저녁거리의 세례를 받았다.
어떤 녀석이 저녁으로 포크와 날카로운 스테인리스 의자를 씹어 먹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그것에 맞아 내 기타는 부서지고 말았다. 결국 난 본가가 있는 노웨어(Nowhere) 시티에 돌아왔고,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았다.
그래서 현재, 나는 돈과 아내, 가족, 직업까지 얻게 되었다. 내 직업은 사채, 흥신소, 마약밀매, 부동산, 성매매업소, 이 모든 걸 관리하는 ‘대부’이다.
그렇게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중 일어난 일이었다.
“사장님,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비서 죠니였다. 젊고, 유능한 인재다.
“왜 그러나?”
“그러니까, 헤롤드 가 끝자락에 목장 말입니다....... 호주에서 온 노인이 운영하는 그......”
“거기.... 지지난 달 쯤에 ‘직원들’ 풀지 않았나?”
“네...... 그런데도 꿈쩍을 않더라구요.... 그래서 그저께에 총 쥐어 보냈습니다만.... 아직도 안 돌아오고 있지 뭡니까....”
죠니는 땀을 삐질삐질 흘려대며 말했다. 총까지 쥐어 보냈는데 안 돌아온다.... 뭔가가 있다. 이 바닥에서 살아온 감으로 느끼건데, 뭔가가 분명히 있다. 저 노인에게 ‘뒷배’가 있는 것 같다. 이럴 땐... 여태처럼 하면 안 돼.... 부드럽게 접근하자. 북풍이 벗기지 못하는 옷은, 태양의 열로 벗겨버리자. 그러면 돼.... 그러면......
“에이미!”
집이다. 직장에서 돌아와 난 일곱 살배기 내 딸을 부른다.
“아빠!”
활기차게 뛰어나오는 저 발걸음. 발레리나 같이 화려한 분홍치마와 코코넛처럼 아름다운 광택의 검은 빛 얼굴. 그물로 묶어낸 곱슬거리는 짧은 머릿결. 아내를 꼭 닮았다.
“내일 아빠랑 엄마랑 셋이 나들이 갈까?”
“좋아요! 그런데 어디로요?”
“그러니까......”
어디였더라? 옳지.
“헤롤드 가 끝에 있는 목장으로. 아빠 아는 분이 하시는 곳이란다.”
“좋아요! 신난다!”
에이미가 방방 뛰어다닌다.
“내일 나들이를 간다구요?”
아내 샬롯이 계단 위에서 뛰어내려왔다.
“그러엄. 마침 좋은 곳을 알게 됐어. 사업상으로 말이야.”
내 마지막 말 한마디에 아내의 눈빛이 흔들린다. 이런, 우리 자기. 이해해 줘. 가족을 위한 일이잖아?
괴팍한 노인이기야 하겠지마는, 어찌 나들이 온 가족을 내칠 수 있으랴? 이것이 태양이다. 우리 귀여운 딸 에이미, 그리고 사랑스러운 자기, 샬롯. 너희 둘은 나의 태양이야! 북풍보다 강한 태양! 하하하하....... 사랑해.......
날이 밝았다. 짐은 적당히, 나들이 가는 가족처럼 챙겨두자. 돗자리와 간단한 도시락... 햄 에그 샌드위치 정도가 딱이지. 우리 여보 선글라스에... 에이미 여벌옷도 챙기고.... 여기에 서류가방만 챙기면 된다.
아내는 조수석에, 에이미는 뒷좌석에. 왜건은 달려간다. 헤롤드 가의 끝을 향해. 이 방법이 실패한 적은 없었다고요, 영감님.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란 이런 겁니다.
“오늘의 일기예보입니다. 정오까진 맑은 날씨가 계속되오나 점점 흐려져 4시부턴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나들이 가는 분들은 우산 챙기시길 바랍니다.”
후후, 걱정 마요 기상캐스터 양. 비가 오기 전에 넘어올 테니까.
사십 여 분을 달리자 농장에 도착했다. 얼추 20 헥타르는 돼 보이는 넓이, 여기에 놀이동산만 지으면 말 그대로 알부자가 되는 길. 후후. 노인네가 짐승이나 기를 곳이 아니다, 이 말씀이야.
우선 농장 앞에 버티는 대문의 초인종을 누른다. 계신가요? 계시는군. 직접 들어가서 인사를 나눠봐야겠다.
“들어오시구려.”
뒤뜰의 넓디넓은 농장에 비해선 초라한 집. 마당에는 정체불명의 하얀 케이지가 텅 빈 채로 쓰러져 있다. 우리는 어기적어기적 몸빼바지 노인의 걸음을 따라 하얀 테라스를 지나 갈색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무슨 일로 오셨나?”
‘직원들’과 단체로 맞춘 넥타이핀을 만지며 헛기침 살짝. 그다음에 말한다.
“딸애에게 목장구경을 좀 시켜주려구요.”
옳지. 이 영감, 단박에 눈치 챈 것 같다. 좋아.
“그렇다면....”
영감은 등 뒤의 먼 곳을 응시하며 소리쳤다.
“존! 이리 온!”
영감의 말 한마디에 “헥, 헥!”거리는 이질적인 울음소리가, 개 같은 포유동물이 아닌 것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것’이 부엌을 거쳐 거실로 모습을 드러냈다.
온몸이 흑갈색, 툭 튀어나온 주둥이. 짤뚱한 꼬랑지, 맞지 않게 길쭉한 다리. 무릎까지 올라오는 키의 그놈이 짖어대듯 다가왔다.
“이..... 이게 뭡니까....?”
노인은 피식 웃더니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프리스티캄프수스. 호주에선 흔한 종이지.”
“멸종한 것 아닙니까?”
“멸종했지, 암. 완전히는 아니었지만. 어찌어찌 밀수해 냈다네.”
“워싱턴 조약 위반 아닙니까?”
“멸종된 걸로 쳐서 해당되지 않는다네.”
“그래도 맹수잖습니까?”
“에잉, 안 물어. 불도그도 똑같은 맹수지마는, 안 물잖아. 얘는 불도그 따위랑은 비교도 안 되게 똑똑한걸. 그렇지, 존?”
존이 이에 맞춰 헥헥댔다. 검은자 없이 흐리멍덩하다 생각했던 노인의 눈 안에는 강철 같은 회색 눈동자가 버티고 서 있었다.
“악어.... 무서워....”
에이미가 샬롯의 품에 꼭 안겨 말했다. 영감은 눈빛을 감추며 너털웃음을 짓고는 날카로운 아까까지의 태도는 어디 가고 없는지 한 없이 부드럽게 말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꼬마 아가씨. 존은 착한 아이란다. 아가씨처럼.”
노인은 눈동자를 다시 드러내며 이리저리 굴리더니 씨익 웃으면서 다시 말을 건넸다.
“아가씨, 여기 목장에, 맑고 푸른 연못이 하나 있는데 가서 수영하지 않겠니? 존이 멋지게 안내해 줄 거란다.”
수영이란 말에 에이미의 경계가 조금 풀어졌다. 샬롯은 나를 바라보며 눈빛으로 가도 되냐고 물어봤고, 나는 허락하고 말았다.
“네. 좋아요. 에이미, 엄마랑 같이 가자. 에이미보다 작잖니. 겁먹지 마.”
“그래. 갔다 와. 여벌옷도 챙겼으니까. 난 영감님이랑 얘기 좀 나눌게.”
나와 샬롯은 영감에게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자 영감은 씨익 웃고는 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존, 저 아가씨를 연못까지 데려다주렴. 정중히 모셔야 한다.”
존은 이에 맞춰 다시금 헥헥대더니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내며 문 밖을 나섰다. 에이미와 샬롯도 그 짐승을 따라 문을 나섰다.
그리고 몇 십 초간 침묵이 일었다. 그러자 노인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아무런 해코지도 하지 않겠네. 맹세하지.”
그러면서 식탁에 놓인 자기가 먹던 커피를 홀짝거리고는 짤막하게 덧붙였다.
“호주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홀홀.”
이 영감, 보통 노인네가 아니다.
“제가 찾아온 이유는......”
“다 안다네, 사장님. 직원들 찾으러 왔지? 목장 매각 얘기도.”
영감이 내 말을 끊으며 말했다.
“네.....”
“따라오게나.”
나는 노인을 따라 문 밖으로 나아갔다. 목장 안으로 이어진 세 갈래 오솔길. 오른쪽으론 에이미와 샬롯, 그리고 존의 발자국이 이어져 있었다. 영감은 가운데 길로 직진했다.
1/4마일 정도를 걸으니 비로소 눈앞에 울타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울타리.... 울타리.... 성벽처럼 높디높은 울타리.... 잠시만, 울타리가 저런 게 맞는 건가? 저렇게 성벽처럼 높은 데엔 무슨 의미가 있지?
“계단으로 올라가 보시게.”
나는 영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달려 올라갔다. 2 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서 무언가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으아아아아아!”
“살려줘-!!”
다 찢어져가는 고급 양복, 상처투성이인 몸..... 우리 ‘사원’들이었다. 잠시만, 팔다리가 없다? 그게 말이 되는가?
저들의 뒤를 쫓아대는 저것은 무엇인가? 그래, 악어다! 악어가 따라다니고 있다! 이 영감, 대체 뭔 수작이지? 악어를 시켜 사람을 쫓게 만든다니!
영감은 이 모든 일을 안다는 듯이 느릿느릿 계단을 올라왔다.
“오르니토수쿠스. 프리스티보다 구하는데 더 힘들었지. 참 재밌는 광경이지 않수? 호주에선 흔한 일이지.”
난 영감의 멱살을 쥐어잡고 외쳐댔다.
“뭐야, 이게! 이게 사람이 할 짓이야? 당신이 그러고도 인간이냐고! 어떻게, 당신이 그럴 수가 있어?”
영감은 폭소를 내지르며 말했다.
“사람? 자네는 그럼 사람이 할 짓을 했는가? 헐값에 남의 물건을 빼앗고, 목숨을 해하면서! 정작 본인들이 저리 당하는 건 비인도적인가? 안 그런가, ‘대부’님?”
노인의 미소는 광기로 서서히 일그러져갔다. 그래, 맞다! 에이미! 샬롯! 내가 영감을 내팽개치고 달려가자 영감이 말했다.
“오른쪽으로 쭈욱 가게! 연못이 나올 거야! 하하하하하하!”
몇 백 미터 가지 않아 나는 숲속의 연못을 발견했다.
“에이미-!!”
“어? 아빠다!”
연못이라기엔 너무 컸다. 그래, 호수였다. 얼추 헥타르 단위는 나오는, 넓은 호수였다. 에이미는 샬롯이 따로 챙겼는지 튜브를 타고 놀고 있고 샬롯은 무릎까지만 물에 들어가 에이미를 보고 있었다. 멀리서 존은 이 광경을 즐거이 보고 헥헥거리고 있었다.
잠시만, 에이미의 뒤에 저 거대한 그림자는 뭐지? 저 거대한 물속의 그림자는 뭐지....? 설마....?
샬롯은 나보다 빨리 그림자를 눈치채곤 에이미에게로 헤엄쳐갔다. 하지만, 때는 늦었다. 거대한 아가리가 활짝 열려재끼며 아내와 딸을 집어삼키고는 다시 그림자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으아아아아아!”
저 멀리서 노인이 이 광경을 지켜보며 느릿느릿 걸어왔다. 노인이 실실 웃어대며 말했다.
“난 해코지하지 않았어. 저 놈이 했지. 푸루스사우루스. 아버지 때무터 길들여온 놈이라네. 하하하하하!”
증오에 찬 내 손길이 영감의 목을 졸라댔다. 영감은 숨통이 막혀가는 그 순간에도 껄껄 웃기를 멈추질 않았다.
“이 영감탱이! 뭐가 좋아서 웃어! 지금 내 아내와 딸이 죽었는데, 뭐가 좋아서 웃고 있어!”
“끼힉... 끄어히힉...”
다시 생각해 보면 영감은 껄껄대던 것뿐만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리고 콰직! 내 목뼈가 부러졌다. 존이 뛰어올라 나를 문 것이다.
“으윽....”
그렇게 난 쓰러진다.
“그러길래 말 했잖아. 똑똑하다고.... 불도그보다....”
이 순간까지도, 영감의 말이 내 귀에 남는다.
“호주에선 흔한 일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