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요 사장님, 제 말은 정말로 전부 사실입니다. 저도 제 이런 얘기가 헛소리 같다는 거 잘 알아요, 예. 예. 그렇지만 이건 하나님께 맹세코 거짓말이 아니라구요. 제인의 저주란 말입니다.
따지고 보면 다 제 잘못이에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인정해요. 제가 너무 쓰레기 같이 굴었던 거...... 그녀를 그렇게 내치는 게 아니었는데...... 저도 지금 와서 생각하면 너무나도 후회돼요.
아무래도 너무 어렸던 게 문제였던 것 같아요....... 그 나이 또래 애들은 다 그렇잖아요? 쉽게 타오르고, 쉽게 꺼지고. 마치 홈쇼핑에서 파는 프라이팬 같이 말이요.... 다만 제 경우는, 꺼진 시점이 되돌아가기엔 너무 늦었고 그렇다고 끝까지 안고 가기에는 이미 꺼져 버렸는걸요.
아직도 죄송한 마음은 변한 적 없어요, 사장님. 에이미가 죽은 것도, 톰이 그렇게 된 것도... 전부 제가 제인을 버렸기 때문이에요, 사장님...... 용서해주세요.......”
착잡하던 마이클의 표정이 서서히 울상이 되어갔다. 마이클은 이내 무릎을 꿇으며 제퍼슨 사장을 향해 엎드려 울더니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펑펑 울어재꼈다.
“제인......! 아아, 제인......! 이제 와서 이렇게 비는 게 정말로, 정말로 어이없고 치졸하고 추하단 거 알고 있지만...... 그래도 부탁해....... 이만 하면 됐잖아? 응? 제인! 용서해 줘..... 제발.....”
‘퍼거스 제퍼슨’이라는 빛나는 명패 뒤의 얼굴을 찡그리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더니 오른 손의 약지와 소지를 접은 뒤 비서 나오미 양에게 내 보였다. 시가를 가져오라는 신호였다. 나오미는 냉큼 서랍을 열더니 담뱃갑에서 시가를 하나 꺼내 손가락에 쥐어준 뒤 제퍼슨 사장이 시가를 입에 물자 성냥을 태워 불을 붙여주었다.
제퍼슨은 시가 연기를 한 모금 빤 뒤 입으로 길게 내쉬며 말을 꺼냈다.
“마이클 군....... 내 자네를 생각해서 얘기 못해준 게 있네만.... 에이미는 원래 자네에게 소개시켜줄 때부터 암 말기였어. 7년 시한부 인생이었다구..... 제인인지 뭔지 하는 여자애의 저주 때문에 죽은 게 아니었단 말이야.... 그리고 톰이 그런 건 유전적인 요인이야. 애초에 자네 아이도 아니었어. 바람피워서 생긴 자식이었다네... 애초에, 에이미 머리는 검은색이고 자네 머리도 금발인데 어째서 갈색 머리 아이가 태어나겠나? 임신일 출산일 계산해 보고 의심 안 해봤나?
결정적으로, 내가 자네를 부른 건 사표 때문이야. 정신병이 생겨서 회사 다니기 힘들 것 같다 하는 얘기도 아니고, 이건 그냥 사직서도 뭣도 아닌 3페이지짜리 피에로 공포증 노이로제 일기와 인생 날려먹던 시절의 추악한 회고록 아닌가?”
제퍼슨 사장은 품 안의 종이봉투를 꺼내 담뱃불에 지져 태워버렸다. 그러더니 눈을 찡그리듯 감으며 콧구멍으로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하지만 사장님...... 제 얘기는 진짜입니다....”
“우스운 소리 집어 치우게. 귀신이니 저주니 하는 게 실제로 존재했더라면 왜 아직까지 과학하는 양반들이 밝혀내지 못했겠나? 없기 때문에, 거짓말이기 때문일세.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이나 투명한 분홍 유니콘 같은, 종교인이나 점쟁이들이 멍청이들 돈 뜯어먹으려는 개수작에 불과하다고!”
제퍼슨 사장은 책상을 쾅쾅 두드리며 소리 질렀다. 그와 동시에 입에 문 시가가 뱉어져 떨어져나갔다. 그러자 마이클은 온몸을 떨면서 얘기했다.
“그렇지만 사장님....... 그러면..... 저기 창문가에 앉아있는 저 피에로 인형은 뭐에요....?”
달달달 떨리는 마이클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본 적도 없는 피에로 인형이 미소를 지으며 앉아있었다. 제퍼슨 사장이 그 존재를 눈치 챈 순간 피에로는 초승달처럼 활짝 찢어진 입을 한층 더 크게 찢었다.
“나오미.... 자네 저런 거 저기에 둔 적 있나?”
퍼거스도 마이클을 따라 떨기 시작했다.
“아뇨. 없습니다.”
나오미가 벌벌 떨리는 퍼거슨의 말에 기계적인 어조로 대답했다. 퍼거슨은 달달 떨리는 오른손의 소지, 약지, 중지를 반의반 정도 접어서 나오미에게 내밀었다. 나오미는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고 서랍 안의 토가레프 권총을 꺼내어 퍼거스의 손에 쥐어주었다.
제퍼슨은 벌떡 일어나서 피에로를 향해 총을 쏘았다. “탕!” 하는 격발음과 함께 탄환은 단숨에 피에로 인형의 머리를 관통했다. 총구에선 하얀 연기가 보일 듯 말 듯 흘러나왔다. 퍼거슨은 권총을 내팽개치며 푹신한 사무용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사장님, 누가 신고를 하는 것 같습니다.”
나오미가 기계적인 어투로 말했다.
“에이씨, 순사 양반한테 프랭클린 선생 몇 장 쥐어주고 끝내. 총 씻다 오발됐다고 둘러대면 되겠지.”
사장은 이번엔 마이클을 향해 말했다.
“마이클 자네, 저 인형 한번 잘 봐봐.”
“네......”
마이클은 급작스런 상황에 눈물을 멈추고 어기적어기적 피에로 인형을 향해 다가가 조심조심 낚아채 퍼거슨에게 가져왔다. 피에로 인형은 탄환의 고열로 인해 맞은 부위가 새까맣게 타들어가 있었고 아무것도 없었다.
“이걸 봐봐! 이 옆구리에 지퍼는 뭔가! 솜도 아니고 스티로폼 볼도 아닌 게 왜 등짝에 이런 지퍼가 달려있나! 가만 보자, 이거 라텍스잖아!”
사장은 소리를 지르며 지퍼를 활짝 열었다. 피에로 인형은 헝겊 안에 무언가가 채워진 게 아닌, 라텍스 조형물에 덮어씌워진 모습이었다. 라텍스 조형물은 마치 사람 형상의 무언가가 들어갈 만 한 작은 공간과 숨구멍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거, 이거!”
“그럼 저주가 아니라.... 난쟁이.... 인건가요...?”
마이클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멍청하긴! 아무리 봐도 외계인 아닌가!”
퍼거스가 그렇게 툴툴거리던 순간, 생쥐보다 조금 작은 무언가가 마이클과 그의 귀 안을 파고들어왔다.
“윽!”
그 무언가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귀 안을 헤집어 놓았고, 이내 고막을 뚫고 뇌까지 파고들어가 둘의 뇌를 완전히 잠식했다. 그러자 나오미가 딱딱한 어투로 말했다.
“드디어 성공했군요. 정말 어려운 상대였습니다. 결벽증 부사장에다 신경과민 사장....... 이것으로 이 회사는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됐군요.”
“네. 다 나오미 씨께서 수고해 주신 덕분입니다.”
제퍼슨이 무뚝뚝한 어투로 정중히 답했다.
“이걸로 우리의 지구정복 초석이 완성되었군요.”
마이클도 같은 어투로 맞장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