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이었다. 해는 7시가 다 돼가는 지금에야 뉘엿뉘엿 산 너머로 한 발짝 뗐을 뿐이었다. 펜토미노의 남은 세 명은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는 것 외에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말이 많고 입담이 좋던 김홍택이 사라졌으니, 당연한 상황이었을지도 모른다. 김천댁의 집 마당에 내놓은 평상의 김홍택이 안던 구석 자리에는 착잡한 얼굴의 권재호가 숙연히 앉아있었다.
이야기를 들은 김천댁은 김치말이 국수를 네 사발 쟁반에 내서 앞의 네 명에게 나눠주었다. 아침의 다소 화기애애한 분위기와는 달리 매콤달콤한 국수에서까지 씁쓸함이 번졌다. 네 사람 눈물 젖은 국수 가락을 뜯을 때, 김천댁이 넌지시 얘기했다.
“그라믄 말이다... 고 친구, 기몽태이 돌덩이를 이리 갖고 와가 아랫말 무당한테 얘기해야카는 기 아이가? 와, 고 요번에 뭐라 굿하고 씨부맀다카는 고 여편네...”
김천댁은 평상에서 폴짝 뛰어내려와 기지개를 피더니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느그들은 잘못 읎다. 고 괴물딱지가 나쁜 기지, 고 나쁜 기 하필이모 김홍태이를 잡다 죽인기 잘못이지. 덕구는 개시끼라 그릏다 쳐도, 사람새끼를 그래 맹그는 새끼를 느그들이 우예 막노? 그라고 정은주이, 남 구할라꼬 몸 던지는 시끼는 예수나 부처 아이모 또라이다. 니 죽으모 야들이랑 갸가 안 슬퍼할 것 같노?”
김천댁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는 정은주를 보고 말했다.
“승일이 내 새끼, 닌 장한 일 한기다. 사람 돌로 멩글고 두꺼비 새끼마냥 독도 뿌리대는 고 괴물딱지를 니가 잡아가 복수도 한긴데, 장한 기제. 암.”
이번에는 김성일의 등을 토닥이며 어루만져주었다.
“고 장도에기(장동혁이)? 니 다 뭇나?”
“네...”
“고 홍태이 델러 니가 갔다 온나. 야그들은 못 쓰겄다.”
그 말을 들은 목석같던 장동혁은 눈물을 훔치며 일어났다. 그리고는, 노을 진 뒷산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남은 사람들이 사발을 다 비우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흘린 눈물에 국수가 불어난 것일까, 산에 허리를 걸치고 있던 태양이 서서히 넘어갈 때쯤에야 완전히 비었다. 이름 모를 큰 새 한마리가 뒷산 저편의 양계장에서부터 따옥따옥 소리를 내며 태양을 등지고 날아갔다.
“이야, 요즘 새새꾸들은 참말로 희한히도 생겼데이. 쌍판떼기는 벌건데 다리 몽디랑 몸땡이는 희끄무레 하다. 의사총각, 아는 기도 많아 뵈는데 저 새새꾸는 뭐라 카는 새새꾼지 아나?”
권재호는 김천댁의 푸념을 듣고 순간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따오기였다. 대한민국에선 멸종해서 중국에서 개체를 들여와 복원을 한다는 뉴스기사를 본 적은 있지만, 아직 방사했다는 뉴스는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오기...! 한국에는 없는데도 어디서...? 그리고 왜...? 게다가 닭장에도 있던 놈이 양계장에도 나타났다...! 그렇다면...!’
권재호는 외투를 고쳐 입고 엽총을 들쳐 맸다. 그리고는 국수를 겨우 다 비운 김성일과 정은주에게 “따라와.”라고 말한 다음에 뒷산으로 향했다.
권재호와 두 명은 여우비가 내려 질척질척한 흙길을 따라 뒷산을 쭉 올라갔다. 멀리 가지 않아 돌이 된 채 서 있는 장동혁과 이미 오래전에 쓰러져 있는 김홍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헉헉대며 그닥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달려오던 정은주와 김성일은 돌이 된 나머지 둘의 모습을 보고 달려가려 했으나 권재호는 번개같이 제지하고는 엽총으로 두 석상의 머리 위의 수풀을 쏘았다.
“탕”하는 총성과 “꿱!”하는 비명이 거의 동시에 들렸다. 아까처럼 돌을 미끼로 나무 위에 숨어있던 ‘녀석’이 총에 맞고 떨어진 것이다.
“낮에 봤던 녀석은 아마 양계장에 들어가서 짝짓기를 하고 나왔던 거야... 자기 새끼에게 마을을 멸망시키는 일을 맡기려고...!”
권재호가 말했다. 정은주와 김성일은 굳어버린 김홍택과 장동혁을 확인했고 권재호는 그 옆에 나있던 ‘녀석’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순간, 권재호의 얼굴이 김홍택과 장동혁처럼, 석고상 같은 하얀 색으로 질렸다. 반 정도 감겨있던 눈빛은 공포에 일그러졌다.
“이 발자국... 닭발의 마디마디가 보이지 않아... 한 놈의 물건이 아니란 거야...”
하긴, 왠지 녀석이 양계장에서 보낸 시간이 길었었다. 굳이 한 놈과 짝짓기를 할 필요는 없었는데, 널린 게 백색 레그혼 암탉이었는데 말이다.
그 말과 동시에 나무 위 여기저기서 백색 레그혼들과 ‘그놈’의 자식들이 내려와 셋을 둘러쌌다. 어두운 뒷산에서 번뜩이는 놈들의 눈은 밤하늘을 수놓은 은하수라도 되는 것 마냥 괴상한 울음소리를 전주곡처럼 틀어 셋을 압박했다. 김성일과 정은주는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고, 권재호는 마안 덕에 돌이 되지는 않았지만 ‘공포를 부르는 힘’은 통하지 않았다.
‘제길, 어두워서 동공이 확장되니까 ‘공포의 문양’이 만들어지지 않는 건가...!’
정은주는 분노에 겨워 크게 소리쳤다.
“보이지 않아도 이렇게나 많으면, 적당히 해도 죽여 버릴 수 있겠네!”
그러고는 정은주는 주머니에 숨겨두었던 식칼을 빼내 휘두르며 볼 수 없는 적진을 향해 돌진했지만 허공조차 가르지 못하는, 아무런 감각도 느낄 수 없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소름끼치는 감각에 슬며시 뜬 눈에 보인 건, 낮에 튄 검은 젤리 같은 독이 자신의 팔에 고통 없이 절단돼 칼자루를 쥔 상태로 꽂혀있는 괴이한 광경이었다.
“꺄아아!”
정은주는 검은 젤리 사이로 피가 샘솟는 자신의 팔을 보며 비명을 지르다가 무의식적으로 놈들의 눈을 봐버렸다.
“으아아아ㅇ...”
그는 김홍택과 똑같이 차갑디 차가운 석고상이 되어 굳어버렸다. 김성일은 이 비명소릴 들었지만 ‘정은주가 돌이 됐다’ 이외의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눈과 귀를 막고 웅크려서 벌벌 떨 뿐이었다. 그놈들은 김성일에겐 하나도 신경쓰지 않고 서서히, 서서히 거대한 덩어리로 모여 권재호의 코끝을 향해 다가갔다.
백 마리는 돼 보이는 그 그림자의 위압감에 엽총은 점점 녹슬어갔고, 권재호의 눈을 제외한 모든 것이 미지근히 흔들렸다.
“너희는... 누구냐...?Who are You?”
“나는 ‘군단’이다. 우리가 많기 때문이다.My name is 'LEGION', for We many.”
*
민흥리의 아랫마을, 송평리. 그곳에는 윗말 민흥리에서 쫓겨났다는 노인 양정택이 하루 한 번씩 골동품가게를 하다가 치매 증세를 보이며 골골대는 . 평소에는 발음이 다른 환자보다 훨씬 정확했던 그였지만 이 이야기만큼은 특유의 높고 혀가 새는 발음으로 오늘도 지나가는 여자를 붙잡고 중얼거린다.
“그 민흥리 개쉐이들이, 내가 꼴랑 100평 쬐만한 땅 팔았다꼬 내 집에다 불을 질러삤다 아이가? 내 기래가꼬, 요 전번에 에이아인가 뭔가 돌았을 때 닭 시체 쌓아 놓은 데 갖다가 꼬부랑글씨도 외고 내 피도 쏟고 지랄을 했다 안카나. 그르다 내 빙원도 갈 쁜 하고. 내가 미쳤제, 미쳤었제! 허허허허! 근데 고게 효과가 있었는지 우쨌는지 고마 미능리 고 쌍것들이 죄 디지뿠다 아이가! 허허허허허!”
오늘 그의 타겟이 된, 옷가게 점원 윤미래는 주름 서너 개가 갓 생긴 얼굴을 강하게 찡그렸다. 그리고는 양정택의 손을 강하게 뿌리친 뒤, 무당집이 망하고 생겨난 자신의 직장, 옆집 옷가게로 달려들어와 옷가게의 점장인 오영실 씨에게 말했다.
“언니, 언니! 요 옆에, 골동품점에 저 할배 얘기가 뭔 말인지 알아요? 맨날 떠들어대는 것도 짜증나는데, 당췌 뭐라는지 궁금해서 더 짜증나는 거 있죠?”
검은 뿔테안경을 낀 오영실은 한숨을 내쉬며 담당 간호사에게 말했다.
“너 신삥이라 잘 모르나보구나. 너, 저-기 민흥리라고 들어봤지?”
“예... 뭐... 저 뱀산 윗동네에 그 폐촌이요?”
“그래, 거기. 시청 직원이 여름 끝나고 난데없이 태풍이 불어서 피해는 없나 가봤더니 온 동네 집들 무너진 거랑 깨진 돌덩이만 차고 넘쳤다는 거기. 거기가 지가 20년 전에 닭 쌓아놓고 주문 외우고 피 뿌려서 망했다고 뻑 하면 발동 걸려서 저 소리잖니.”
오영실은 쓴웃음을 내비치며 보라색 블라우스를 진열대 옆 옷걸이에 걸었다.
“어머, 진짜요? 20년 전이어도 환갑 다 돼가는 노땅이었을 텐데 오컬트라니, 완전 깬다!”
“무당 이모 얘기로는 저 영감이 원래 윗말 사람이었는데 길림이었나? 그 닭 잡는 회사에다가 마을 땅 양계장하라고 팔고는 여기로 쫓겨나서 그랬단다. 참나.”
오영실과 윤미래 두 사람의 이야기가 사실인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10년 전 그날 밤, 불어오는 태풍과 함께 검고 커다란 무언가가 날아올랐고 사람이라곤 친구들과 외갓집을 방문한 고등학생이 안구근이 파열된 채로 모든 기억을 잃고 숲길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던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는 사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