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 보건소 앞. 펜토미노의 4명은 보건소의 문 앞에 주르륵 줄을 서 있었다. 권재호가 마침 자물쇠를 잠그며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네 명을 흘깃 보고는 “‘장비’좀 가져오게, 기다려라.”고 하며 보건소 옆 멋들어진 양옥집에 들어갔다.
“어머! 멋지다-! 머리가 새햐얘! 다들 봤지 그지?”
정은주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지랄, 아주 염병을 하세요. 남정네만 보면 아주 눈까리가 돌아가, 저놈 저거!”
입이 거친 김홍택은 인상을 찌푸리며 침을 퉤 하고 뱉었다.
“의사양반이 지 중2병은 못 고치나?”
김홍택은 쭈그려 앉아 푸념을 계속했고, 카메라를 든 장동혁은 묵묵히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권재호가 집안에서 나왔다. 권재호의 등에는 1m정도 돼 보이는 엽총이 뾰족이 솟아있었고, 오른손의 커다란 가방을 그 자리에서 활짝 열었다. 가방의 안에는 BB탄이 가득한 병과 진한 고글, 주황색 총구의 에어소프트건이 열 정 정도 누워있었다.
“우와-! 이게 다 뭐예요?”
정은주는 냅다 달려가서 총을 만지작거렸다.
“친구 건데, 살상력 있게 개조했어. 마음에 드는 걸로, 한 개씩 골라.”
권재호가 말했다. 세 명은 “와아” 하는 함성을 지르며 총을 골랐다.
“난 이거!”
글록 30.
“남자는 제리코지.”
제리코 941.
“...”
장동혁은 묵묵히 발터 P99를 들었고, 김성일은 남아있는 마카로프와 P-38 둘을 두고 고민하다 P-38을 들었다.
“그럼 이만 가자.”
권재호는 앞장서서 뒷산으로 향했다. ‘녀석’, 바실리스크, 혹은 코카트리스는 지난주, 박 씨의 집에서 부화한 이래 계속 뒷산 수풀 속에서 게릴라마냥 생활하고 있는 듯 했다. 권재호가 말했다.
“외워둬라. 첫째, 녀석에게 절대로 손대지 마. 녀석은 독화살개구리나 두꺼비처럼, 피부에서 독액을 내뿜는다. 발이나 깃털이 난 모가지 정도는 만져도 돼. 다만, 비늘만큼은 절대 안 돼. 게다가 녀석은 꼬리가 길쭉하기에 어딜 잡으나 소용없지만. 둘째, 고글을 절대 잃어버리지 마. 녀석은 마안을 가지고 있어. 보면 바로 그 닭장주인이나 강아지처럼 돌이 돼 버린다. 셋째, 가능한 빨리, 보는 즉시 죽여.”
그리고 권재호는 입을 다물었다. 김성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왜 보는 즉시 죽여야 하죠?”
권재호는 한숨을 뱉듯이 내쉬며 말했다.
“녀석은 7분이면 알에서 깨어나고 7초면 병아리에서 닭 모습으로 바뀌지. 거기서... 7일이 지나면...”
“공룡이라도 되나요...?”
정은주가 넌지시 물었다.
“그래, 비슷할 거야. 아마.”
어느새 그들은 뒷산에 도착했다. 권재호가 말했다.
“나랑 얘가, 그리고 너희 셋이 한 조로 산을 수색한다. 탄알은 한 병씩 줬어. 흘리지 말고. 어두워서 잘 안보일 테니까 후뢰시로 일단 수풀은 비추고 봐. 고글 벗겨지면 눈 감고 소리 질러.”
그렇게 말하고 다섯 명은 흩어졌다.
권재호는 엽총을 들고 수풀을 쏘아봤다. 뒤따르던 김성일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입 닥쳐. 들킨다.”
권재호는 김성일의 말을 끊었다. 그와 동시에 수풀은 바스락거렸다. 권재호는 때를 놓치지 않으며 독수리 발톱마냥 움켜쥔 엽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탕’하는 소리와 함께 도탄이 튀어 올라 나무 위의 잎사귀를 맞췄다. 그러더니 “꽥!”하는 소리와 함께 그 그림자가 쏜살같이 나무를 타고 내뺐다. 마음 한 편으로 쾌재를 불렀던 권재호는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고, 그림자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달려갔다.
김성일은 권재호의 뒤를 따라가면서도 수풀 속을 바스락거리던 무언가를 살폈다. 그것은 토끼모양 돌이었다. 돌에는 엽총의 산탄에 맞아 움푹 패인 자국과 핏자국이 흥건했다. 권재호가 쐈던 것은 ‘그것’에 당해 점점 돌이 되어가던 토끼였다. ‘그것’이 권재호가 이리 올 것을 예상하고 토끼를 돌로 만들어 미끼삼아 유인했으나 석화가 예상보다 빨리 진행되어 엽총의 산탄이 튕겨나가고, 그것이 꼬리를 스쳐 부상을 입고 도망친 것이었다. 김성일은 간신히 권재호를 뒤쫓았다.
“너, 무슨 얘기 하려고 했냐?”
권재호가 물었다.
“녀석이... 하악... 하악... 수풀이 아니고... 나무 위에... 있었다고요...”
김성일은 가쁜 숨을 내쉬며 서서히 뒤쳐졌다. 권재호는 엽총으로 그것을 노렸다. 하지만 ‘그것’은 권재호가 총을 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 마냥 빠른 속도로 우회해 산을 올라갔다. 권재호도 ‘그것’을 따라 산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한 바퀴를 돌아 어느새 정은주, 김홍택, 장동혁 세 명에게 도착하고 말았다.
“으아악!”
녀석에게 겁을 먹고 뒷걸음질 치며 총을 쏘던 셋은 그만 넘어져 한 데 뒤엉켰다. 그러던 도중, 김홍택의 고글이 벗겨졌고 그만 달려오는 ‘그것’의 번뜩이는 눈과 마주쳤다.
“이런 니ㅁ...”
말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김홍택은 돌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찰나, 정은주는 김홍택이 만일을 대비해 조끼 안주머니에 넣어둔 식칼을 빼내 앙상한 그것의 날개를 찔렀다. 녀석은 괴성을 지르며 버둥거리다 푸르고 끈적끈적한 젤리 같은 피가 정은주의 팔을 적신 뒤 이내 날개가 잘렸고, 뒷산 반대편의 양계장으로 향했다.
“하아... 하아... 다친 덴 없어...?”
한 발 늦은 권재호는 셋의 앞에서 숨을 고르며 말했다. 그러나 돌이 돼버린 가련한 김홍택과 지친 눈을 한 정은주와 장동혁을 보고는 권재호는 씁쓸한 얼굴을 하고는 정은주가 간신히 가리킨 수풀 방향으로 뛰어갔다.
뒤이어 가쁜 숨을 내쉬며 터벅터벅 달려온 김성일은 돌이 된 김홍택을 보고는 무릎을 꿇었다. 정은주는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이따가... 찾아오자... 녀석을 잡고 나서...”
그리고는 김성일을 일으켜 세워 권재호가 간 방향을 따라 산을 넘어갔다. 머지않아, 권재호를 따라잡을 수 있었고 뒷산 공터에 우뚝 세워진, 커다란 양계장이 보였다. 녀석은 굳게 잠긴 양계장 문에 살짝 벌어진 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권재호의 말이 없었어도 남은 세 명은 정사각형모양에 각진 지붕이 있는 양계장의 네 면에 하나씩 서서 에어소프트건을 겨눴다. 네 면의 벽들 중 어디에도 구멍 하나 없었고, 짙은 코팅으로 내부가 보이지 않는 창문이 면마다 하나씩 있을 뿐이었다. 양계장 안 닭들의 꼬꼬꼬 하고 우는 소리만 어렴풋이 들려왔고, 미세한 틈으로 미세한 닭똥 내음이 산들바람을 타고 풍길 뿐이었다.
어느덧 시간은 4시, 태양이 금빛으로 물들었다. 이 기나긴 대치상황은 휴식도 없이 지속되었으며 세 명의 마음속에는 친구를 잃은 분노가 뾰족이 서려 있었다. “퍽!” “퍽!”하는 소리가 김성일이 서 있는 유리창을 울렸다. 그리고는, 번뜩이는 녀석의 눈이 유리조각을 반사시켜 양계장의 밖으로 튀어나왔다.
“꿰에엑!”
녀석의 비명이 살짝 먼저. 김성일의 총알은 녀석의 빛나는 오른 눈을 정확히 맞췄고 그와 연결된 머리통에서 뇌수와 피의 분출이 작렬했다. 오른 눈과 뇌의 일부가 깨지자 불빛이 사그라들 듯 녀석의 왼 눈도 빛을 잃어 누렇게 변했다. 그렇지만 녀석은 가소롭다는 듯 광소와 같은 울음소리를 “오로로...”하고 내뱉었다.
그와 동시에 권재호와 남은 둘이 김성일 쪽으로 냅다 달려왔다. 눈매의 따스함을 잃은 김성일은 약 스무 발이 장전돼 있는 본인의 총알을 녀석을 맞추는 데 전부 써버렸고 그 직후에는 아무도 ‘그것’을 ‘녀석’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둥근 플라스틱 덩어리에 무차별하게 쏘여 붉은 피와 푸른 독에 범벅이 된 더러운 고깃덩어리를 말이다. 그리고 여우비가 땅을 적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