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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적한 산골마을. 성택의 유일한 기쁨은 토끼같은 손주들이 방학을 맞아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 오는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막내 손주는 할아버지인 성택을 너무도 좋아라하며 쫓아다녔다. 할아버지 농사일을 도와준다며 나서고, 넘어져도 씩씩하게 일어나 괜찮다고 큰소리 쳤다. 첫째로 태어났으면 맏이노릇을 톡톡히 했을 장군감이리라. 그런 손주를 성택도 너무나 예뻐했고, 그 덕에 방학기간 동안은 호랑이같은 성택의 성질머리가 한동안 잠잠해져 아내 정옥도 방학기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할부지! 할부지! 내 책 쫌 읽어도.”
손주가 동화책 한 권을 집어 성택에게 들이밀었다. 시골 밥상이 입에 맞지않는지 저녁을 거의 먹지 않아 걱정이던 손주를 위해 아내 정옥이 우유를 데우던 중이었다.
"여 앉어."
성택은 자기 다리를 톡톡 치며 가르켰고, 손주는 당연하듯 자신의 할아버지 품에 안겨 동화책을 건넸다.
“이.. 아 언나들 읽는책에 도깨비가 뭐여. 할부지가 구신야기 해줄까? 책에나온것은 다 공갈이잖나. 마커 다 허상이”
성택은 손주가 편하게끔 품에안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할부지가 옛날 때, 산에 낭걸하러 갔는데. 날이 안개때문에 마커 흐려서 할무니가 소나기 내리니 나가지 말라고 붙잡는걸, 눌러 올테니 잼심 차리노라고 하고 나섰지. 낭걸 한참 비고 있는데, 아이! 저짝 산밑에 우리 밭에 놀갱이 하나가 뜀박질을 하미 너분지리 저지리를 하고 있잖나. 그래 그 놀갱이 쫓칠라고 마커 우리 밭으로 뛰가다가 고만 냉게배겼어. 눌러 인날라하니 이 다리가 말을 안들어 인나지나. 뜀박질을 하니 신도 고만 뱃기져서 양짝이 맨둥발이 되고 발목이 바눌에 찔리는것 처럼 쑤시니 고자리에 주저 앉았지.
한참을 그래 앉아 있는데, 우리 밭 밑에 사는 송재추이 성이 “어이 성택이~ 자네 괜찮은가?” 하고 날 부르잖나. “아 재추이 성이여? 아 우리밭에 놀갱이 쫓칠라다 냉게배겼는데, 아이 이 다리가 말썽이여.” 하니 재추이성이 눌러 산에 올라와서 놀갱이도 쫓치고 내 다리도 쭈물러 줬지.”
그때, 아내 정옥이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줬다. 이야기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손주가 벌써 성택의 품에서 잠들어 버렸다. 멀리서 차타고 오느라 피곤했으리라. 성택은 천천히 일어나 손주를 안고 안방 아랫목에 뉘였다.
‘쌔액-쌔액-’ 하는 손주의 차분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성택은 이미 잠든 손주를 토닥이며 다시한번 재웠다. 잠귀가 밝아 잘 깨는 손주가 성택의 토닥임에 깨어버릴까 신경쓰던 정옥은 이내 한마디 하려다 꾹 참고 방문을 닫았다.
성택은 끝내지 못한 이야기를 잠들어 버린 어린 손주를 토닥이며 다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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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춘이 주물러주자 쑤셨던 다리가 많이 좋아졌다. 성택은 고맙다며 연신 감사의 인사를 했고 재춘은 맨발인 성택의 발을보고 자신의 신을 벗어줬다. 성택의 발은 가시를 밟아 피가나고 있었다. 성택은 재춘에게 자신에 집에 들러 밥을 먹고 가라고 했다. 정옥에게 점심을 일찍 차려놓으라 했으니 집에가면 식사가 있을것이라 말했다. 그러자 재춘은 “아 마누래 밥은 자네가 먹고, 난 자네가 그 보자기에 싸온 참이나 주게.”
성택은 보자기를 풀어 재춘에게 주었다. 정옥이 주먹밥 두개와 막걸리 한 병을 참으로 싸줬다.
재춘은 허겁지겁 주먹밥과 막걸리를 해치웠다. 오랫동안 굶은것 처럼 재춘이 참을 해치우자 성택은 마음이 안좋았다. 본래 재춘의 집은 마을중에서 가장 가난하여 하루에 두 끼만 먹는 집이었다. 성택은 연거푸 자신의 집으로 함께가서 점심을 먹고가라고 청했지만 재춘은 거절했다. 그리고선 나무를 하려거든 해 밝은날 하고 이렇게 안개가 낀날은 산짐승들이 마을로 내려오니 조심하라고 말했다. 성택은 알겠다고 하고 얼마 없는 나무를 짊어지고 마을로 내려갔다.
집에 도착하자 아내 정옥이 엉엉 울며 성택을 맞았다. 무슨일이냐고 성택이 화를내자 정옥은 해가 다져서 저녁때가 지났는데도 오지 않아 산에서 길을 잃은줄알고 걱정했단다. 시계를 보니 저녁 10시가 다되어가고 있었고 하늘은 캄캄했다.
“허….”
성택은 시간이 가는줄도 모르고 자신이 산에 있었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아침먹고 바로 나무를 하러 갔으니 아침 7시에는 떠났을텐데 15시간이 넘게 산에 있었던 것이다. 아내는 피가나는 남편의 발에 꽂힌 가시들을 빼내며 밤을 보냈다.
장마가 곧 시작되려는지 내내 하늘이 흐렸다. 지난 날 나무를 충분히 해오지 못한 성택은 다시 나무를 하러 나섰다. 정옥은 참거리를 충분히 챙겼으니 나무를 많이 해오라며 성택을 보냈다. 장마에 아들을 낳았던 정옥은 장마때만 되면 온몸이 쑤셔 집에서 온찜질로 몸을 지져야 장마를 버틸 수 있었기에 오늘 충분한 나무를 해오기를 바랐다.
성택은 나무를 하러 산을 올랐다. 지난날 보았던 재춘도 나무를 하러 산에 와있었다. 성택은 오늘 정옥이 참을 많이 싸주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재춘은 분명 아침도 먹지 않았을텐데 일찍 나무를 하러 왔으니 분명 배가고플 터였다. 성택은 재춘에게 이렇게라도 고마움을 표하고싶었다.
둘은 한참 나무를 패다 점심때가 되어 참을 펼쳤다. 재춘은 싸온 참이 없었다. 성택은 보자기를 풀며 재춘에게 참을 권했다.
“아 성택이 마누래는 요리 잘해서 좋겠다. 참을 궁궐상처럼 거하게 챙기줬구만 그래.”
아침을 굶었을 재춘은 그렇게 참을 허겁지겁 먹었다. 성택은 재춘이 먹어치운 참그릇을 정리하며 오늘 자신의 집에서 밥을 먹고가라고 했다. 그러자 재춘은 "아 마누래 밥은 자네가 먹고, 난 내일도 나무하러 오니 또 참이나 나눠먹세.” 했다.
그렇게 둘은 나무하러가서 함께 참을 나눠먹는 사이가 됐다. 어쩌면 노루가 밭을 엉망으로 만들었던 그날, 재춘이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분명 뱀에 물려 잘못되었으리라고 생각하는 성택은 재춘이 너무도 고마웠다.
여느날처럼 나무를 하러간다며 점심을 먹으러 오지 않을테니 참을 넉넉히 싸달라는 남편을, 정옥은 의심했다. 성택은 노상으로 먹는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밭에 나가더라고 식사때가 되면 집으로 와서 밥을먹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무만 하러 가면 밖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저녁늦게 들어오는것이 의심이 되기 시작했다. 정옥은 아들을 시켜 아버지 뒤를 몰래 따라가보라고 했다.
제용은 엄마말에 나무하러가는 아버지 뒤를 쫓았다. 경사진 자신네 밭 위를 올라 산속으로 들어가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그리곤 아버지가 지게를 내려놓고 나무를 패기시작하는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아버지가 혼자서 허허 웃으며 미친사람처럼 말도하고 대답도 하는것이었다. 제용은 바로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날 오후, 나무를 해온 남편에게 정옥이 이 사실을 이야기 했다. 성택은 지난 장마때에 있었던 일부터 지금까지 재춘과 함께 나무하는 사이가 됐다고 얘기하며 자신의 뒤를 몰래 쫓았던것에 불같이 화를 냈다. 당장 아들을 매타작을 하려고 회초리를 들어올린 찰나에 아내가 말했다.
“아이 이기 지금 뭔소리래요! 재추이 아저씨 서울로 돈벌러 간다고 나가고 집에 연락도 없이 그래 살잖아요.”
성택은 아내를 다그쳐 그것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성택은 바로 신을 신고 재춘네 집으로 향했다. 방금전에도 함께 나무를 했는데 그럴리가 없었다. 하지만 재춘의 동생 대춘은 재춘이 서울로 간지 수년이 넘었고 여태 집으로 연락을 안해서 행방을 모른다고 했다.
성택은 생각했다. 그 동안 자신이 만난 재춘이 누구인지. 성택은 행방불명된 재춘이 서울에서 객사해 영혼이 고향으로 돌아온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성택은 재춘이 자신의 죽음을 알리기위해 매번 나무를 하러 오는 자신에게 온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안타까운 마음이 들은 성택은 배고픈 영혼에게 줄 참거리를 아주 많이 짊어지고 나무를 하러 산으로 갔다. 여느날 처럼 재춘이 먼저 나무를 하고 있었고, 성택은 약간 소름이 돋았지만 평소처럼 행동했다.
“재추이성, 오늘 참 넉넉히 챙겨왔으니 많이 잡수소.” 성택은 본인의 몫까지 재춘의 영혼에게 챙겨주었다.
“으아~ 잘먹었다. 정옥이같은 마누래 있어서 좋겠어 성택이.” 막걸리를 마시며 재춘이 말했다. 성택은 용기내어 입을 떼었다. “성, 서울서 죽었소? 어서 죽었는지 말만 해주소. 대추이 데비고 서울로 찾아 갈 수 있소.”
그러자 재춘이 하하하 크게 웃으며 말했다. “성택이! 사실 나는 재추이가 아니네.” 하더니 마지막 남은 막걸리를 마셨다. 그러자 재춘의 모습이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이 전에 성택이 본적 없는 모습이었다.
“재추이성이 아니란 말이오?” 성택은 눈을 뜨고도 믿지 못했다.
“성택이, 그 동안 내 벗해주어 고맙네.”
그제서야 성택은 알아차렸다. 성택의 할아버지가 생전에 말해줬던 도깨비이야기가 떠올랐다. 이 덕재숲에 자주 나타나 덤부사리에 숨어 지낸다던 도깨비. 성택은 도깨비에게 지난 날 자신을 도와준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했다.
“성택이, 이 산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자네를 만나 좋았네. 나는 인제 떠나. 자네 소원 하나 들어주고 갈테니 말해보.”
성택은 주저없이 딸을 하나 낳고싶다고 했다. 성택 자신도 9남매중 여동생이 하나밖에 없었다. 성택은 아들 하나에 딸 하나 낳고 싶어했다. 예전부터 소망해 오던 꿈이었다. 도깨비가 말했다.
“성택이 자네도 참. 딸이 갖고싶으면 셋째까지 꼭 낳게. 그 동안 고마웠네. 잘 지내게.”
그리고 신기루 처럼 사라져 버렸다.
성택은 진짜 도깨비가 맞는지 아닌지 확인해보고자 했다. 아내가 둘째를 가졌을때, 성택은 확인을 위해 용한 무당을 찾아가 둘째가 딸인지 물었다. 무당은 성택의 아내가 딸을 낳을 수 있는 능력이 없어 10명을 낳아도 모두 아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둘째가 태어났다. 아들이었다. 성택은 도깨비가 셋째는 딸이라고 했으니 셋째까지 낳고자 했다. 몸이 연약한 아내가 셋째를 낳을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건강히 출산했다.
셋째를 안고 산파노인이 성택에게 아기를 안겨주었다. 성택은 믿을 수 없었다. 셋째도 아들이었다.
딸이라고 확신했던 셋째가 아들이었다. 성택은 빌어먹을 도깨비가 막걸리를 먹고 취해서 힘도 제대로 못썼다며 욕을했다. 딸에게 주려고 지어놓은 이름도 있었다. 성택은 막내아들에게 돌림자도 주지않고 원래 딸이 태어나면 주려고 했던 이름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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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 막내이 전화왔소.”
한참 생각에 빠져있던 찰나, 거실에서 티비를 보던 아내가 안방으로 휴대폰을 건냈다.
-"여보세요"
“아, 아부지 밥 잡쉈습니까? 아는 잡니까? 거, 아 밥 안묵어도 쪼꼬렛캉 사탕 주지 마시소 입배립니더. 아 안울고 잘 있지예? 지가 할부지 보고싶다해가 데려다 안놨습니까, 일때문에 바빠가 아만 놓고 갑니더. 아부지 쎄빠지기전에 아 데비러 갈테니까 그때까지만 잘 델꼬있고, 아! 갈때 뭐 드시고싶은거 말씀하시면 사갈게예.”
바쁜지 자기 할말만 쭉 늘어놓는 아들놈이었다.
-“됐다. 하나도 안되다. 언나 잠도 잘자고 밥도 잘 먹는다. 눌러 올 필요 없다 일봐라.”
성택은 전화를 끊었다.
전화소리에 잠이 깬 손주가 눈에 들어왔다.
“할부지… 아빠전화가?”
성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손주를 토닥거렸다. 성택은 조용히 자장가를 불렀다.
“우리 막내이 희주 딸 우리 손주딸,
우리 막내이 희주 딸 우리 공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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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공게에 글쓰네요ㅋㅋ
얼마전 공게에서 본 ‘믿을 수 없는 이야기’ 라는 글을보고 저희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께서 해주셨던 이야기들이 생각나서 적어보았습니다.
재밌게 읽으셨길 바랍니다 ㅎㅎ
출처 보완 |
아 혹시 이해가 안되시는분을 위해!
딸은 못가졌지만 셋째까지 낳아 그 셋째 아들에게 손주딸을 보라는 도깨비의 조언이엇습니당 성택이 하루종일 함께한 손주는 막내아들의 딸이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