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oi, Eloi! Lama Sabachthani?아버지, 아버지!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아름다운 별빛이 소나타를 울리던 그날 밤, 그가 외쳤던 말. 따스한 숨을 내쉬지도 않고, 명랑하게 웃지도 않으며, 따뜻한 가슴을 잃어버린 그녀의, 가녀린 목을 부러져라 흔들면서. 메마른 눈에서 눈물을 뽑아내면서.
그가 나에게 가져온 그 고깃덩이를 끌어안으며 울부짖고, 천둥과 벼락이 억수같이 흐르는 비에 맞춰 웅장한 장송곡을 불렀던 그날을, 난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따스한 햇살 같던 홍조는 창백한 나무토막이 되어버렸고, 여신의 비단옷과 같던 머릿결은 희끄무레하고 누리끼리한 산돼지의 터럭. 따뜻하게 두근거리던 심장은 이제 거무튀튀한 피가 담긴 물컹물컹한 덩어리에 불과해.
그 멍청한 친구는 추접한 하수구에서, 지저분한 오막살이에서 그 고깃덩이를 끌고나와 울부짖었다네.
“당신에 대해 들었습니다. 당신은 온 우주의 진리를 깨우쳤다 들었습니다. 삶과 죽음의 질서를 뛰어넘어, 영겁의 세월동안 끝없이 빛이 날 당신에 대해서! 그리하여 이 비천한 도둑이 감히 위대한 당신께 여쭙겠습니다. 간곡히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는 연거푸 눈물을 훔치며 흐느끼듯 말했네.
“제발 이 여자를 살려주십시오!”
나는 그 어떤 때보다도 활짝 웃으며 대답했지.
“어리석은 중생아, 아둔한 범인凡人아. 너는 어찌하여 영혼 없는 그 인형을 들고 와 그리 애걸하느냐?”
“제가 사랑하던 소녀입니다. 마魔에 홀린 그녀를 구제해 달콤한 나날을 보내다가 오늘 밤 갑자기 앓다 떠나버렸습니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녀를... 되살려주십시오...”
나는 너무나 즐거워 박수를 치며 말했지.
“더러운 거지야, 지저분한 걸인아. 추저분한 황금도 없이 그 너저분한 고깃덩이에 영혼과 생명과 아름다움을 불어달라니! 우습기 짝이 없도다.”
“뭐든지 드리겠습니다. 이 도시의 모든 돈을 훔쳐와 바치겠습니다. 다른 무언가라도 얼마든지 잡아와 바치겠습니다. 정 안된다면... 제 썩어 문드러지고 남은 이 몸뚱이라도 바치겠습니다.”
그는 애걸하면서 자신의 옷을 찢어버렸지. 그러더니, 그의 안의 모든 것이 보였어. 그의 안의 우윳빛 뼈가, 살은 모가지와 대가리에만 있고 나머지는 바람이 숭숭 빠져나가는 백골이었지! 혼자만 보기 아깝도록 놀라운 광경이었어. 같이 볼 사람은 없었지만!
“후하하하하! 정말이지, 우습구나! 하하하하하!”
내 광소는 끝없이 터져 나왔고, 애수의 찬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만 갔다네. 마음에 들었어. 얼마든지, 얼마든지. 네놈의 몸뚱이면 만족해. 그래, 생명을, 생명을 주마!
“이 위대한 연금술사, 축복받은 용사, 달을 끌어 내린 소년, 생제르맹, 파우스트 K카이. 파라켈수스와 위대한 네필림 혈족의 이름으로 맹세하노니! 이 소녀는! 되살아나리라! 크하하하하하하!”
광소가 천둥벼락이 되어 지천을 뒤흔들었던 밤이었지. 나는 그 고깃덩이를 들어 유리관에 넣었어. 피를 몽땅 다 빼고, ‘그걸’ 넣었지.
“이제 다 끝난 겁니까?”
“그렇다. 몇 시간만 있으면 ‘대지의 젖’이 피를 대신해 온몸을 돌아다닐 것이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네. 망해가는 세상을 다 구한 표정이었지. 하지만 나는 짜증이 났어. 그가 기뻐하는 게 짜증이 났어. 겨우 여자 하나 죽고 사는데 일희일비하는 인간의 감정이란 것에, 기분이 더러웠다네. 질투심이 났다네. 내가 영겁을 살며 잃어버린 것에, 그가 순간을 살며 간직하고 있다는 것에.
그렇기에, 불어넣었다.
“정말이지... 이렇게 보니 아름다운 소녀로군... 내 꿈에 나타나던 그 여신 같아...”
“그렇습니다... 제... 여신입니다...”
그가 지껄이고 난 그를 바라보며 경멸했다네.
“추하구나.”
눈물 가득하던 그의 얼굴이 석고상처럼 메말라갔어.
“저런 아름다운 여자들은 으레 자네 같은 남자들을 이용만 해 먹고 도망치지. 하하하하!”
내가 웃어재끼자 그가 도발에 보기 좋게 넘어왔어. 석고상은 금세 녹아 붉으락푸르락 하면서도 자신의 처지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는 그 표정이 하나의 예술이었다네.
“그녀는... 그렇지... 않을... 겁니다...”
너무나 우습군! 꼴에 자기 여인이라고 보듬어주는 모습을.
“않기는 뭐가 아닌가? 해골선생. 자네는 인간도 괴물도 뭣도 아닌 애매하게 끼어있는 명계와도 같은 추악한 괴물이 아닌가? 그러면서도 어찌 저 아름다운 여자가 끝까지 자네의 여자로 남길 바라나?”
그 표정이 정말로 예술이었다네... 두고두고 조각으로 남겨 기록해뒀어야 하는 그런 예술...
“자세히 보니까,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누구더라? 그래! 파비앙! 거렁뱅이 파비앙 피닉스! 생각이 나는구나! 40년 전이었나? 내 가르침을 받고 만병을 물리치는 단약을 얻어 죽어가는 어미를 살렸건만 입이 싼 어미의 허풍 때문에 이단으로 몰려 죽게 된 그 불쌍한 친구!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아프구나. 떠벌대는 어미를 두어 일찍 간 그가 말이야!”
그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한 표정이었다네. 그는 아마 파비앙 피닉스의 이름을 쓰면서 살았을 것이야. 사교계를 돌아다니며! 별장의 가구를 털며! 그러면서도 꿋꿋이 40년 전에 죽은 아둔한 효자 파비앙 피닉스의 이름을 달고 살아갔을 그를 생각하면!
“이번엔 손을 보자꾸나. 오호라! 두 손은 생긴 게 묘하게 다르구나? 오른손은 어디 곱상하나 피가 마른 게 중늙은이 손이로구나! 아마 메르지나 도브레크 두 녀석들 중 하나겠지. 서로를 죽도록 미워하다 결국 한 놈이 죽었나 보구나!”
손뿐이 아니라 그의 온몸은 파르르 떨렸다네.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웠는지, 아니면 그 둘이 너무 역겨웠는지!
“왼손! 이 투박한 게 마치 남정네 같지만 이 반지자국! 필시 계집의 것이로구나! 그렇다면 이 년이 바로 올리비아로군! 주제를 알았어야지! 천한 백정 년 주제에! 샬로트 경의 사랑을 샀어도 이교도의 근성은 버리지 못한 게야! 하하하하하하!”
그 말 한마디가 그를 완벽히 부숴버렸다네.
“아... 아니야...! 웃기지 마...! 내가 아무리 해골이라 한들, 괴물이라 한들! 거지의 얼굴과 추악한 오른손과 천박한 왼손을 가졌다 해도! 그와는 상관없이, 7일 동안, 그녀는 목숨을 구해준 내게 감사했고, 나를 사랑했다! 그녀는 절대로 나를 버리지 않아! 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해골과 내장만 있다고 해도! 그녀는 나를 사랑해 줄 순수한 여자란 말이야!”
그러고선 반짝반짝 빛나는 새하얀 내 이가 박힌 내 입을 주먹으로 쳤다네. 하지만, 아프지 않아. 겨우 너 같은 해골이 내 몸을 칼로 쑤신대도, 난 전혀 아프지가 않아. 너무 기뻐서! 우스워서! 아픔 따윈 잊어버릴 정도니까!
“재화를 훔치다 마음을 도둑맞아 눈물을 훔치는 도둑놈이, 심보 또한 다를 바가 없구나! 어찌 그런 추악한 몸뚱이를 하고 여신과 어울리려 드느냐? 고작 이레 간 본 모습을 그녀의 전부라 받아들이겠단 말이냐? 그 소녀의 웃음이 거짓이 아니리라고 어찌 자신한단 말이냐! 어울리지 않음을 인지하고서 어울리고자하는 생각조차 가지고 있지 않으니, 어찌 천생연분이며 네놈의 썩어버린 몸뚱이는 천 쪼가리 한 꺼풀만 벗기면 드러날 지언데 어찌 풍전등화가 아니란 말이냐!”
그 말에 그는 울었다네. 본인은 인간이 아님을 깨닫고서. 인연과 우연의 조화로 인해 생긴 사랑은, 마치 한 송이 꽃처럼 금세 피고 진다는 것을 깨닫고서. 그는 내게 간청했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그리고는 버릇처럼 눈물을 훔치며 다시 물었지.
“어찌하면... 그녀가 저를 떠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어.
“그녀와 같아지거라.”
다시금 강조하며 외쳤다네.
“그녀와 같아지거라! 흉측하고 희끄무레한 뼈 위에 진한 진홍색 피와 선명한 선홍색 근육과 부드러운 분홍색 살을 입어라! 그녀와 같은 모습이 되어 너와 그녀와 같은 자식을 낳아라.”
괴물과 고깃덩이는 그렇게... 다시 사람이 되었다네. 지난 7일보다 더 달콤한 열흘을 보냈다네.
*
“쾅쾅쾅!”
누군가 대문을 두들겼다네. 나는 문을 열어 반가운 손님을 맞이했지.
그날 밤으로부터 열흘이 지난 어두운 밤. 자그마한 풀숲에서 벌레가 지저귀던 밤. 소녀는 입가에 진홍색 액체를 야만스럽게 잔뜩 묻히고 내 아지트로 들어왔다네. 그녀의 입속에선 분홍색과 선홍색 덩어리가 희끄무레한 이빨 사이에서 춤췄다네.
나는 그 괴물이 오른손에 든 고깃덩이를 보며 말했지.
“우스운 머저리야, 가소로운 우민아. 사랑이 그리 달콤하더냐? 여체女體가 그리 탐나더냐? 자기 자신을 모르고 덧없는 백일몽만을 좇아 버려버린 한심한 녀석 같으니! 잠들거라. 파비앙 메르지 혹은 도브레크, 그리고 올리비아.”
그리고 괴물을 내 왼손의 검으로 찔러 오른손의 검으로 베었다네.
“더러운 년 같으니. ‘여신님’을 너처럼 만들었다면 백배천배는 깨끗하고 고귀하게 처리하셨을 텐데.”
그 뒤론... 놈들에게 당해 기억이 없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