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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밸익장] 배게 냄새에 대하여
게시물ID : readers_14560짧은주소 복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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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 8
조회수 : 1421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4/08/11 12:2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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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곧 판타지 단편을 올릴 책게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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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자는데 있어 제일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배게, 필자는 배게의 냄새를 맡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빨고난 뒤 뽀송해진 배게에서 나는 섬유유연제의 냄새는 물론이거니와 몇달 동안 빨지 않아 사람의 머리 냄새가 밴 배게의 냄새를 맡는 것도 좋아한다. 

내가 배게의 냄새를 맡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꽤나 명확하다. 냄새를 맡기 위해 배게에 얼굴을 파묻으면 냄새는 물론 배게 특유의 푹신한 감촉까지
느껴진다. 한가지 행위만으로도 두가지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이 얘기다.  만약 배게 커버에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면 시각적인
행복도 누릴 수 있을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이런 공감각적 느낌을 누릴수 있는 행위는 이 세상에 그렇게 흔치 않다. 

또한 나는 위에서 서술한 것 만큼 배게 냄새를 맡는 걸 좋아해 수많은 사람들의 배게 냄새를 탐했다. 친지들의 배게는 당연한 범주에 속하는 것이었고 매년 가는 수련회, 수학여행 때엔 이부자리 정리를 자처해 같은 반 아이들이 배고 누웠던 모든 배게의 냄새를 맡았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베개 냄새가 두가지 있다. 하나는 바로 내 유년시절을 같이 한 배게의 냄새다. 붉은색 바탕에 귀여운 개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배게였는데 난 이 배게를 정말로 좋아했다. 자는 때를 포함해 이 배게를 시종일관 껴안고 지냈는데 그 배게에서 나는 냄새를 정말로 좋아했다. 
사랑도 첫사랑이 가장 강렬한 법이라고, 나에겐 그 배게의 냄새가 처음으로 기억되는 배게 냄새를 정말로 좋아했다. 하지만 사랑도 강렬할수록 빨리 
식는 다는 얘기가 있는 것 처럼 난 배게와 제법 빠른 이별을 겪어야 했다. 다 해진 배게 커버를 보면서 어머니는 슬슬 버려야 겠다는 말씀을 하셨고 
난 어머니의 말씀에 최대한으로 저항했다. 하지만 배게 커버의 교체는 바꿀 수 없는 일이었고 배게 커버를 바꾸기 직전의 날 밤, 난 마지막으로 그 
배게의 냄새를 맡았다. 내 눈물에 젖어 감촉 면에선 좋지 않았지만 냄새 만큼은 여태껏 맡아 왔던 냄새 중에 당연 최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렴, 
감정과 추억은 향기에게 있어 최고 품질의 용연향과 다를 게 없다.

다른 하나는 감정과 추억이 일체 섞기지 않은 배게 냄새다. 순수히 향기로써 놀란 쪽이었는데.. 슬슬 배게 냄새의 참맛을 알아가고 있던 내게 황홀경을 선사한 환상적인 배게 냄새였다. 그 당시의 나는 환상의배게 냄새에 관한 나름대로의 황금 비율을 세웠는데 그 것은 섬유유연제 향기와 사람의 머리 
냄새가 6대 4의 비율로 섞인 것이었다. 실제로 이 향기를 맡기 위해선 새로 빤 배게에서 사흘 잠을 자면 되었다.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필자는 이틀에 한번 씩 머리를 감으므로 이 공식을 쉽게 실천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만의 비법이 생겼다고 좋아하던 중 부모님이 자는 안방에 
들어가 TV를 보았다. TV를 보는 위치는 바로 침대 위 였고 난 자연스레 배게 냄새를 맡으며 TV를 맡았다. 그리고 난 그 순간 배게와 일심동체가 
되었다. 배게가 곧 나의 머리였고 내 머리가 곧 배게였다. 숨이 막혀도 개의치 않았다. 난 어머니가 무슨 짓거릴 하고 있냐고 타박을 줄 때 까지 냄새를 
맡는 걸 멈추지 않았다. 환상적인 냄새를 풍기던 그 배게는 내 황금비율을 적당히 맞췄으면서도 어딘가 색다른 무언가가 들어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일단 머리 냄새의 기본적인 베이스는 어머니의 냄새였으므로 난 어머니에게 샴푸를 바꿨냐고 물어보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파마한 것도 못 알아보냐고. 그렇다, 파마약의 냄새가 가미되었던 것이다. 배게 냄새의 출처를 깨달은 나는 앞으로 어머니가 파마를 하면 무조건 배게 냄새를 맡아야 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어머니가 파마를 하고 오셔도 내게 천국을 선사했던 그런 냄새를 맡을 순 없었다. 어째선진 잘 
모르겠다. 그저 그 때 맡았던 배게 냄새는 어머니가 주로 가지 않으시는 미용실에 들르셔서 그랬던 것이라 어렴풋이 생각해볼 뿐이었다. 

내 이런 취향을 아는 친구는 나를 '배게의 미식가'라 평했다. 하지만 난 그렇게 대단한 게 되지 못 한다. 미식가가 되기 위해선 전문성을 필요로 하지만 난 전문성이 결여 되어 있다. 순전히 배게 냄새 맡는 걸 즐기는 게 전부였다. 굳이 이런 일에 전문성을 부여하는 게 웃기는 일이지만 말이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들도 지금 당장 자신의 배게 냄새를 맡아보는 걸 추천한다. 향긋하면서도 지독한 그런 오묘한 냄새가 당신의 후각과 촉각을 사정 없이 자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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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월호를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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